새하얀 눈동자 <회색 인간 외줄 타기>
이민우가 임무혁에게 말했다.
“이제 밥도 먹고 치료도 했으니 보스를 만나러 가야해. 어서 일어나.”
보스라는 말에 임무혁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보스는 물뱀파의 수장이었다. 회장이라고도 불렸다. SS 호텔과 SS 나이트의 주인이었고 인천의 실세이기도 했다. 그와 관련된 유력 사업가와 유력 정치가가 많았다.
임무혁이 물뱀파 보스를 떠올렸다. 그의 이름은 남궁철이었다. 현재 50대 중반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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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와 면접을 무사히 마친 임무혁이 검은색 정장을 입고 SS 호텔 나이트로 향했다.
SS 호텔 나이트는 인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8차선 도로에 넓은 인도가 있었다.
각종 술집과 옷집이 많아 젊은이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곳이었다. 젊은이뿐만 아니라 중년도 많았다. 중년을 위한 오락실과 게임장이 곳곳에 있었다.
SS 호텔은 20층 건물이었다. 나이트는 호텔 후문에 있었다. 후문에 네온사인이 불타올랐다. 바로 나이트 네온사인이었다. 가까이 가면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매우 밝았다.
임무혁이 나이트 정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지기인 기도(きど) 중 하나가 한 손을 들었다. 기도들도 검은색 정장을 입었다. 모두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다. 한결같이 험상궂은 인상이었다.
손을 든 기도가 말했다.
“무슨 일이지?”
“보스를 만나러 왔습니다.”
“두호 형님이 보내서 왔나?”
“맞습니다.”
“좋다, 들어가라.”
기도가 문을 열었다. 임무혁이 크게 숨을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그가 어두운 통로를 지났다. 천장 양쪽에 조명이 있지만, 그리 밝지 않았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터널이 끝나자 입구가 보였다. 입구 밖으로 무척 넓은 공간이 있었다. 나이트 홀이었다.
무대 앞에 테이블이 많았다. 테이블 위에 의자가 올려져 있었다. 오늘은 나이트가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평상시에 울려 퍼지던 댄스 음악도 들리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고요함이 열정과 광기의 나이트를 지배했다.
임무혁이 계속 걸음을 옮겼다. 무대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다섯이었다.
한 사람이 중앙에 앉아 있었다. 넷이 그 주변에 병풍처럼 서 있었다.
넷이 다가오는 임무혁을 보고 서로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그중의 하나가 입을 열었다.
“회장님, 저 아이가 임무혁이라는 아이입니다.”
중앙에 앉은 남자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회장, 남궁철이었다. 인천 제1의 조폭 물뱀파의 보스였다.
남궁철은 키가 작고 땅딸한 체격이었다. 삭발 머리에 두 눈이 부리부리했다. 큰 눈, 큰 코, 두꺼운 입술의 소유자였다.
그는 백옥같은 하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와이셔츠도 하얀색이었고 넥타이도 하얀색이었다. 아래도 마찬가지였다. 양말도 구두도 모두 새하얬다.
한마디로 백색의 신사였다. 어둠의 조폭과 어울리는 옷이 아니었다.
그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한쪽 다리를 절며 걸었다. 오른쪽 다리에 문제가 있었다. 그는 절름발이였다.
“응?”
그 모습을 보고 임무혁이 깜짝 놀랐다. 인천 일대 암흑가를 주름잡는 보스가 절름발이였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절름발이 보스가 걸음을 멈췄다. 임무혁이 그 앞에 섰다. 두 남자가 서로를 응시했다.
보스 남궁철이 씩 웃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네가 임무혁이구나. 신부장이 추천한 놈이군.”
남궁철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모여 있는 넷에게 말했다.
“신부장, 이리와. 네가 추천한 네 아들이야.”
넷 중에서 한 사람이 걸음을 옮겼다.
그는 중간 키에 당당한 체격이었다. 네모난 얼굴에 눈썹이 진했다. 눈코입이 뚜렷하고 강인했다. 마치 직업 군인 같은 얼굴이었다.
신부장이 걸음을 옮겼다. 그는 신두호였다. 임무혁을 추천한 인물이었다.
임무혁이 신두호 부장을 보고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신부장은 임무혁이 테스트받던 날 출입문 밖에서 그를 기다려준 사람이었다. 임무혁이 마지막 관문인 출입문을 넘고 쓰러졌을 때 그를 안아준 사람이기도 했다.
신두호 부장이 보스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보스 남궁철이 그에게 말했다.
“진짜 아들은 아니지만, 신부장이 잘 챙겨야 해.”
“알겠습니다.”
“테스트를 아주 세게 했는데도 통과했다고 들었어.”
“네, 그렇습니다. 무혁이는 아주 독종입니다. 조직을 위해 헌신할 인재입니다.”
“하하하! 요즘 인재가 귀했는데 … 복덩이가 들어왔군. 면접을 본 이사들과 사장들도 무혁이 이 친구가 듬직하다고 했어. 야망이 큰 친구라며 … 크게 써야 한다고 칭찬했어.
테스트 강도를 두 배로 했는데도 통과했다니 아주 놀라워. 이런 일은 처음이야.”
임무혁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절도있게 숙였다. 감사의 표시였다.
“그래서 말인데 ….”
보스 남궁철이 말을 하다가 멈췄다. 그가 입술에 침을 묻히고 말을 이었다.
“무혁이를 빨대로 써야겠어. 예전 빨대가 오래됐으니 이젠 바꿀 때가 됐어.”
“빨대라고요?”
빨대라는 말에 신두호 부장이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무혁이는 조직원에 적합합니다. 일단 행동대에 넣어서 그 능력을 시험하고 술집 운영을 맡겨야 합니다.”
“그래도 좋지만, 이놈 배짱이 마음에 들어. 이놈을 면접했을 때 분명히 말했어. 출세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겠다고 말했어.
눈빛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 조직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는 놈이야. 죽기를 각오한 놈이야.
지금 우리한테는 그런 놈이 필요해. 겁쟁이가 너무 많아.
그래서 빨대에 적합해. 경찰에 심어서 아주 요긴하게 써먹어야 해.
빨대가 가장 어려운 일이거든 ….”
순간! 임무혁이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가 미소를 짓고 힘을 주어 말했다.
“어떤 임무든 상관없이 다 해내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하하하! 시원시원하군.”
신두호 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빨대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이제 20대에 접어든 임무혁이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가 보스에게 말했다.
“기존의 빨대를 꺾는 건 저도 찬성입니다. 그자는 이제 무능력합니다.
하지만 무혁이는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이제 스무 살이 됐습니다.
우리가 포섭한 경찰을 빨대로 이용하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보스 남궁철이 그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답했다.
“신부장, 이건 예전부터 생각했던 구상이야. 젊고 똑똑한 놈을 경찰에 심어서 우리 편으로 만들고 싶었어.
경찰 학교 졸업한 후, 빽을 쓰면 우리 관할서로 데리고 올 수 있어. 그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야.
이미 결정한 사안이야. 신부장은 토 달지 말아.”
“네, 알겠습니다. 보스의 결정이라면 당연히 따라야죠.”
“흐흐흐!”
보스 남궁철이 웃음을 흘렸다. 새로운 빨대로 선택한 임무혁이 마음에 드는 거 같았다. 그가 임무혁에게 말했다.
“이제 너는 경찰이 돼야 한다. 오늘부터 경찰 시험을 준비해라. 반드시 최고의 경찰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뒤를 밀어주겠다. 그러면 누구보다 빨리 승진할 거다.
어때 구미가 당기지? 정 싫다면 말해라. 강요하지 않겠다.”
임무혁이 큰 소리로 답했다.
“빨대가 되겠습니다. 최고의 경찰이 돼서 보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습니다.”
“그래야지, 암. 내 기대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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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혁이 보스 남궁철을 떠올렸다. 그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많은 기억이 돌아오고 있었다.
“휴우~!”
이민우의 말은 다 사실이었다.
임무혁은 스무 살 때 물뱀파에 가입했다. 그리고 가장 힘든 임무인 빨대로 발탁되어 경찰 학교에 입학했다. 그렇게 물뱀파의 빨대로 15년을 살아왔다.
잃어버렸던 기억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그래, 보스를 만나야지.”
임무혁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이민우가 말했다.
“보스가 말했어. 형이 위험하다고 … 그래서 행동대 정예를 이끌고 형을 구한 거야. 보스가 말했어. 형을 무조건 구해오라고 그랬어.”
“그랬군. 내 탈출이 보스의 작품이었군.”
임무혁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보스를 만나야 했다. 얼굴에 착잡함이 서렸다.
그는 기억을 잃고 한동안 자신을 청렴한 경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자기기만에 불과했다.
임무혁이 답답한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기억이 돌아오면서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그게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건 복수였다.
하지만 과거 어떤 일을 당했고 누구한테 복수해야 하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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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새벽 4시를 향해 갔다. 차 한 대가 공사장으로 향했다.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5층 아파트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아직 철거 전이었다.
고급 세단이 공사장 후문을 통과했다. 차가 어둠을 가르며 아파트 차도를 달렸다.
잠시 후 차가 멈췄다. 차에서 남자 둘이 내렸다. 임무혁과 이민우였다. 둘이 걸음을 옮겼다.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며 계속 걸었다.
1분 정도 둘이 걸었을 때
저 앞이 갑자기 밝아졌다. 차 헤드라이트가 켜졌다. 차 두 대에서 내뿜는 불빛이었다.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 두 대에서 여섯 이 내렸다. 구두 굽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고 임무혁과 이민우가 걸음을 멈췄다. 둘이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떡였다.
검은 실루엣들이 계속 걸었다. 그들이 임무혁과 이민우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 무혁이냐?”
임무혁이 대답 대신 앞으로 나갔다. 그가 한 남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두 눈에 중년 남자가 보였다.
중년 남자는 40살의 나이에 물뱀파 보스가 된 남궁철이었다. 이제 그는 55세였다. 삭발한 머리는 여전했다. 이마의 광택이 어둠 속에서 반짝거렸다.
임무혁이 보스 앞에서 절도있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예를 표했다.
보스 남궁철이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 무혁이가 돌아왔구나. 하하하! 정말 오랜만에 집으로 왔구나. 15년 만이야. 그동안 일을 정말 잘 처리했다. 덕분에 피라미만 잡히고 큰 이득을 얻었어.”
“과찬의 말씀입니다.”
임무혁이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어서 고개 들어. 이제 호텔에 가서 푹 쉬어야지. 총을 다리에 맞았다고 들었다. 괜찮은 거냐?”
임무혁이 고개를 들고 답했다.
“김선생한테 치료받아서 괜찮습니다.”
“그렇지, 김선생은 솜씨가 좋아. 그래서 내가 돌봐주는 친구야. 자, 어서 호텔로 가자. 오늘을 푹 쉬어. 내일 오후에 보자. 오전까지 푹 자도록 해.”
“감사합니다. 보스.”
임무혁과 보스의 짧은 재회가 끝났다. 사람들이 차로 돌아갔다. 차에 시동이 걸렸다. 차 헤드라이트가 아파트 차도를 비췄다.
차들이 공사장 정문으로 향했다. 공사장에서 빠져나온 차들이 물뱀파의 본거지인 SS 호텔로 향했다.
20분 후
임무혁이 탄 차가 SS 호텔 정문 앞에 멈췄다. 차 문이 열리고 임무혁과 이민우가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조직원이 급하게 뛰어왔다.
이민우가 조직원에게 말했다.
“차를 잘 주차해. 비싼 차다.”
“네, 알겠습니다. 형님.”
임무혁과 이민우가 SS 호텔 정문으로 걸어갔다. 건물 위에 호텔 간판이 있었다. 간판의 빛이 어둠을 밝혔다. 커다란 SS가 마치 활활 타오르는 거 같았다.
“오늘도 뱀 두 마리가 사이가 좋네.”
이민우가 SS 간판을 보고 말했다. S는 뱀 모양을 상징했다. 이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뱀파 보스 남궁철은 뱀을 상징하는 S를 호텔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였다. 두 마리 뱀이 서로 도와서 하늘로 승천해 용이 되기를 바랐다.
임무혁이 고개를 들어 SS 간판을 바라봤다. 두 마리의 뱀이 사이좋게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서로 물어뜯는 거 같았다.
그가 이를 악물고 미간을 모았다.
복수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