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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olee Oct 23. 2024

06_도둑을 쫓는 구형사

여형사 구나정 1편 <죽음이 게임, 술래>

밤 11시 35분


로프를 타고 펜스에 오른 구나정 형사가 펜스 위에서 사방을 살폈다. 도둑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도망친 거 같았다.


“어디로 간 거지? 비명을 분명히 들었는데 … 어디를 다친 거 같았는데. 벌써 도망쳤나?”


그녀는 펜스 너머로 도둑이 내지르는 비명을 똑똑히 들었다. 그래서 도둑이 높은 펜스에서 떨어지면서 다리나 허리를 다친 거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펜스 위로 올라와 보니 벌써 도망치고 없었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건 깊은 어둠 속에 잠긴 재건축 현장뿐이었다. 다행히 칠흑처럼 어둡지는 않았다. 저 멀리 가로등 불같은 조명이 곳곳에 있었다. 


“벌써 도망친 거야? 이거 아주 재빠른데 …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낙담한 표정을 짓던 구나정 형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 도둑을 계속 쫓아야 하나? 아니면 여기에서 멈춰야 하나? … 여기는 재건축 현장인데 그래서 아주 넓은 곳이야. 조명이 있어서 아주 어둡지는 않지만 …….’


구형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을 때!


2시 방향 30, 40m 떨어진 곳에 사람 실루엣이 보였다. 그곳은 조명이 비추는 곳이었다. 한 사람이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고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한쪽 다리를 다친 거 같았다.


“아! 도, 도둑!” 


도둑을 발견하자, 구나정 형사의 몸이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펜스 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 때는 몸이 차갑게 식어버렸는데 도둑이 다시 나타나자, 의욕이 샘솟으며 몸에서 열이 났다.


“좋다! 잡으러 가자. 다리를 다쳤으니 멀리 못 간다.”


결정을 내린 구형사가 아래를 확인했다. 아래는 3m 높이였다. 그냥 뛰어내리기에는 매우 위험했다. 자칫하면 도둑처럼 허리나, 무릎, 발목을 심하게 다칠 수 있었다. 


안전하게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했다. 이에 바깥쪽 펜스를 따라서 축 늘어진 로프를 끌어당겼다. 로프를 꼭 잡고 안쪽 펜스를 타고 내려가려고 했을 때, 멈칫했다.


‘… 맞아! 로프가 요긴할 거 같은데, 로프를 챙겨야 해. 로프를 타고 내려가면 갈고리가 펜스 위에 단단히 박혀서 빼내기 힘들 거야 …. 이를 어떡하지? …… 맞아! 내 키가 170cm니까 벽 위를 잡고 팔을 쭉 내리면 2m 정도 될 거야. 그러면 발밑은 1m에 불과해. 그래, 그렇게 내려가면 되겠다.’


생각을 마친 구나정 형사가 펜스에 걸린 갈고리를 쑥 뽑았다. 그리고 로프와 갈고리를 바닥에 던졌다. 탁 소리가 들렸다. 


구형사가 양손으로 벽 위를 잡고 몸을 벽을 따라서 축 늘어트렸다. 그러자 운동화 바닥과 지면 사이의 거리가 1m 정도였다. 


벽 위를 꼭 잡았던 양손을 탁 놓자, 아래로 쑥 떨어졌다. 무술 고수답게 무릎을 부드럽게 굽히며 안전하게 착지했다.


자세를 낮추고 매의 눈으로 사방을 살피던 구나정 형사가 서둘러 몸을 일으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는 로프와 갈고리를 챙겼다. 


등에 멘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로프와 갈고리를 집어넣었다.


“어서 가자!”


짙은 어둠 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구형사가 도둑이 보였던 2시 방향을 향해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밤 11시 40분


‘불이 켜진 게 …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나? 아니면 공사 현장을 밝히는 불인가?’


구나정 형사가 곳곳에 설치된 조명을 보면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경흥동 옆 동네인 우영동에 살고 있었다. 


그녀가 듣기로 미래 경흥아파트 4단지 이주가 다 끝났다고 들었다. 그래서 철거를 앞두고 있다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말하는 걸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었다. 


이주 날짜가 점점 다가오자, 많은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주했고 그 바람에 근처 아파트, 빌라, 상가 주택의 전세가와 월세가가 부쩍 올랐다며 수지맞았다는 말도 들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소식통인데 … 잘못 알았을 리가? 그럴 리가 없어. 그분들은 그쪽으로는 누구보다도 전문가야. 이주는 끝난 게 맞고 저 불은 작업장을 비추는 불이 맞을 거야.’


구나정 형사가 생각을 마치고 윗입술에 침을 묻혔다. 


인적이 없는 커다란 재건축 현장에서 어둠을 틈타 도망치는 도둑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치 술래잡기하는 거 같았다.


한발 한발 구형사가 발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이동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도둑의 발소리와 숨소리를 쫓았다. 


시각 청각 후각을 총동원한 레이더에 도둑이 걸리면 당장 달려가 로프로 꽁꽁 묶을 심산이었다. 


도둑이 처음에 뛰어나온 어두운 골목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고급 빌라촌이었다. 그곳에서 벽을 넘어 귀중품을 훔친 게 분명했다. 


이후 귀중품을 챙겨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골목 앞을 지나가던 노부부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부딪힌 거였다.


장대 등을 따라서 찬찬히 걷던 구나정 형사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어?”


그녀의 두 눈이 두 배로 커졌다. 바닥에 뭔가가 떨어져 있었다. 액체였다. 검붉은색이었다.


“이건 피 같은데 ….”


구형사의 생각대로 그건 피가 맞았다. 강력반 형사답게 바닥에 떨어진 피를 확인하자, 빙그레 웃었다. 


보통 사람은 피를 보면 누가 다쳤다는 생각에 당황하기 마련이지만, 강력반 형사한테는 피는 범인을 잡거나 피해자가 누구인지 가리는 중요한 단서였다. 그래서 그녀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빛났다. 


구형사가 오른손을 바닥으로 내려 중지에 피를 묻히고 엄지와 중지로 피의 상태를 가늠했다. 


선혈이었다. 도망치는 도둑이 흘린 피가 맞았다. 길을 따라서 피가 조금씩 뿌려져 있었다.


‘도둑이 어디를 다친 게 분명해 … 펜스에서 떨어지면서 어디에 긁혔거나 살이 터진 거 같아. 잡으면 응급조치부터 해야겠는걸. … 놈이 다리를 다친 상태에서 피도 흘리고 있으니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겠어.’


생각을 마친 구나정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났는지, 오른손을 급히 왼쪽 겨드랑이로 가져갔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아! 참, 총은 사무실에 있지.”


왼쪽 겨드랑이에 그녀가 애지중지하는 권총이 없었다. 구형사는 보고서 작성을 마치고 퇴근하면서 겨드랑이에 찼던 권총을 사무실에 두고 나왔다.


‘상관없다. 놈은 다쳤어. 총이 없어도 충분해. 아니 처음부터 내 상대가 아니었어.’


긴장감을 삼키려는 듯 침을 꿀꺽 삼키고 구나정 형사가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5층 아파트 뒤편, 흙길이었다. 펜스를 따라서 흙길이 길게 펼쳐졌다. 


흙길에는 커다란 나무와 잡초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곳곳에 장대 등이 있어 어둠을 밝혔다.


핏자국을 따라서 도둑의 행방을 쫓아가던 구나정 형사가 고개를 급히 왼쪽을 돌렸다. 


피가 아파트 동 사이로 향했다. 그곳에 인도가 있었다. 보도블록이 깔려 있었다. 이에 고개를 끄떡이고 그곳으로 향했다.


구형사가 사잇길로 들어섰을 때, 바로 그때 큰 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텅! 텅!


“응?”


난데없이 들리는 큰 소리에 구나정 형사가 반사적으로 몸을 낮췄다. 왼무릎을 바닥에 대고 몸을 수그렸다. 그리고 매의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뭔가를 쏘는 듯한 소리가 분명 들렸다.


“이게 대체 뭔 소리지?”


구형사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여기는 아파트 동 사잇길이었다.


다시 소리가 잦아들었다. 정적이 다시 흘렀다. 


구나정 형사가 잠시 숨을 죽이며 상황을 살피다 소리의 근원지를 확인하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그때! 다시 소리가 들렸다. 어둠의 정적을 다시 깨는 소리였다.


타타타타!


“아이고!”


약한 총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렸다. 여성의 목소리 같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총소리 같은데 … 비명은 또 뭐야?’


느닷없는 총소리에 구형사가 무척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총은 허가받지 않은 민간인은 소지할 수 없었고 총을 쏘는 곳도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다. 


여기는 재건축 공사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총을 쏘는 건 범죄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쭉 흘러내렸다. 구나정 형사가 침을 꿀컥 삼켰다. 도둑을 잡으러 재건축 현장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총소리와 비명을 들었다.


무슨 큰일이 생긴 것만 같아서 심장이 쿵쾅거리며 떨리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놀라서 도망쳤겠지만, 특전사 특급 용사 출신에 화정경찰서 강력반 에이스인 구형사는 이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대체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길고양이처럼 발소리를 죽이며 구나정 형사가 아주 조심스럽게 아파트 사잇길을 걸었다. 


사잇길 끝에 다다르자, 벽에 몸을 딱 붙이고 고개를 내밀어 사방을 살폈다. 


앞에 찻길과 다른 아파트 동 뒷면이 보였다. 차도를 따라서 장대 등이 듬성듬성 설치되어 있었다.


아까와 달리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바람 소리와 나뭇잎이 흔들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길고양이도 들개도 없는 거 같았다. 오직 고요함만이 폐가와 같은 아파트 단지를 감쌌다.


‘아무 일도 없는 거 같은데 … 아까 분명히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 …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구나정 형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3분 정도 숨죽이며 벽에 숨어있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는 밖에 나가서 상황을 살펴야 했다. 


구형사가 다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렇게 사잇길을 벗어났을 때!


적정을 깨는 커다란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헉!”


큰 소리가 들리자, 구나정 형사가 다시 사잇길로 재빨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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