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사 구나정 1편 <죽음의 게임, 술래>
“헉! 헉!”
매우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사잇길에 숨어서 쥐 죽은 듯 숨어있던 구나정 형사가 고개를 밖으로 내밀어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사람 실루엣이 보였다. 세 사람이었다. 두 명이 미친 듯이 도망가는 한 사람을 쫓고 있었다.
쫓기는 사람은 굶주린 사자에게 쫓기는 어린 가젤 같았다. 거친 숨소리가 점점 커졌다. 손에 산탄총을 들고 있었다. 바로 게임 참가자였다.
몇 초 후, 쫓기는 사람이 구나정 형사 앞까지 달려왔다. 앞에 장대 등이 있어 그 모습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뭔가가 발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텅!
텅!
사람이 달려오는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에 구형사가 급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에도 사람이 있었다. 두 명이었다. 두 명이 연달아 총을 발사했다.
펑! 펑!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형광 물질이 보였다. 네온사인처럼 아주 선명한 연두색이었다.
‘형광 물질?’
구나정 형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어린 가젤처럼 도망치던 사람이 형광 물질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형광 물질이 빛을 발했다.
뒤이어 총소리가 들렸다.
타타타탕!
연발 사격이었다. 형광 물질을 뒤집어쓴 사람한테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갔다.
“아이고!”
비명이 들렸다. 뒤이어 불빛이 마구 날아왔다. 하늘을 쏜살같이 날아다니는 불빛이었다.
마치 예광탄(발사하면 빛을 내며 날아가는 탄환) 같았다. 불빛이 형광 물질을 뒤집어쓴 사람에게 마구 날아들었다.
“윽!”
비명이 또 터져 나왔다. 적어도 총알 50발을 맞은 듯했다. 진짜 총알이라면 큰일 날 법한 상황이었다.
형광 물질을 뒤집어쓴 사람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산탄총을 힘들게 들더니 왼쪽과 오른쪽을 향해 각각 한발씩 방아쇠를 당겼다.
펑!
펑!
하지만 사거리가 매우 짧았다. 산탄총에서 발사된 소금탄이 흩어지면서 날아갔지만, 10m 이상을 날아가자, 약해지기 시작했고 이후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를 쫓던 사람들은 25m 이상 떨어져 있어서 전혀 피해가 없었다.
상황이 종료된 듯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형광 물질을 뒤집어쓴 사람에게 걸어왔다. 참가자를 잡는 최초 술래들이었다. 총구가 조명을 받아서 반짝였다.
“하, 항복이요! 그만 하세요. 너무 아파요.”
결국, 형광 물질을 뒤집어쓴 참가자가 산탄총을 집어 던지고 두 손을 높이 쳐들었다.
“흐흐흐!”
기쁨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최초 술래 둘이 총구를 내렸다.
뒤이어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자루를 멘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형광 물질을 뒤집어쓴 참가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가 번호를 확인하고 말했다.
“게임 참가자 24번 항복입니까?”
“24번 … 항복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번호를 제거하고 새 번호를 붙이겠습니다.”
게임 진행 요원이 말을 마치고 헬멧과 가슴에 붙어있는 검은색 번호 24를 뗐다. 이윽고 같은 자리에 노란색 24번을 붙이고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2차 술래로 전환하겠습니다. 2차 술래 24번입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나요?”
“총에 맞아서 좀 아픈 거 빼고는 없습니다.”
“통증은 곧 사라질 겁니다. 원하시는 총을 고르세요. 여기 무전기가 있습니다. 최초 술래와 교신하면서 참가자를 쫓으세요. 참가자를 잡을 때 공을 세우면 큰 혜택이 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참가자 24번이 2차 술래 24번이 되었다. 그가 무전기를 받고 예광 효과가 있는 BB탄 에어 소프트 건을 골랐다.
“참가자 24번이 2차 술래 24번으로 전환됐습니다.”
게임 진행 요원이 무전기로 통제 센터와 교신했다. 이 광경을 은밀히 지켜보던 구나정 형사가 이제야 상황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떡였다.
‘이거, 보아하니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거구나. 진짜 총이 아니었어. 어쩐지 총소리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 형광 물질은 페인트 탄이었고 불빛은 예광탄이었어 … 요즘 기술이 좋기는 하네, 불빛이 멋있게 날아가네.’
구나정 형사가 실제 예광탄 같은 게임용 탄알을 보면서 감탄했다. 그녀도 서바이벌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서바이벌 게임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페인트 탄을 쏘는 가스총(마커)과 작은 구슬 같은 BB탄을 쏘는 에어소프트건 게임이었다.
에어건(air gun)인 공기총은 수렵용으로 사용할 정도로 그 위력이 대단했다.
그래서 게임용으로 사용하는 공기총은 그 위력을 상당히 축소한 에어소프트(airsoft gun) 건이었다. 고글과 같은 보호장비만 제대로 갖추면 사실상 문제가 없었다.
상황이 종료되자 사람들이 자리를 떠났다. 모두 헬멧과 고글을 비롯한 보호장비를 철저히 착용해서 다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다시 고요함이 밀려들었다.
마치 구경꾼처럼 서바이벌 게임을 지켜보던 구나정 형사가 갑자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생각에 잠겼다.
‘이거, 좀 이상한데 … 보호장비를 갖추고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건 문제가 없는데 … 왜 여기에서 이런 게임을 하지? 여기는 게임장이 아닌데 … 여기는 재건축 공사 현장이잖아?
어떻게 여기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지? 게임은 허락받은 곳에서 하는 게 원칙인데 … 아무리 위력이 약한 총이라도 눈에 맞으면 큰일이 나는데 … 이게 말이 되나? 더군다나 야심한 밤에!’
구형사가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건 분명 불법 게임이야. 공사 현장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다니! 구청이나 경찰에 허락받지 않은 게 분명해!”
구나정 형사는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불법 게임을 한다고 직감했다. 이에 합당한 조처를 해야 했다.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었다. 이에 배낭을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고 왼손을 품 안으로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 액정을 두드리자 환한 빛이 들어왔다. 구형사가 침을 꿀컥 삼키고 112로 신고하려고 할 때! 뒤에서 무슨 인기척이 들렸다. 작은 발소리 같았다. 뒤에서 누가 몰래 다가오는 거 같았다.
“응?”
구나정 형사가 재빨리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어!”
검은 실루엣이 앞에 딱 서 있었다. 불과 5m 거리였다. 모래색 헬멧과 고글, 마스크가 희미하게 보였다. 헬멧과 가슴 중앙에 검은색 33번이 붙어있었다. 바로 게임 참가자 33번이었다.
참가자 33번이 걸음을 멈췄다. 산탄총이 구나정 형사를 향했다. 소금탄은 사거리 짧아서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 안전했다. 반면, 짧은 거리인 5m에서는 그 위력이 대단했다.
현재 구형사는 헬멧, 고글, 마스크와 같은 보호장비가 전혀 없었다. 소금탄에 정통으로 맞으며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구를 수밖에 없었다.
구나정 형사가 핸드폰을 꼭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떨리는 눈망울로 고글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한 사람을 쳐다봤다.
키가 165cm 정도였다. 가냘픈 체격에 골반이 컸다. 한눈에 보기에 여자 같았다.
참가자 33번이 잠시 구나정 형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구형사의 모습을 여러 번 훑어보다가 말했다. 마스크 사이로 가녀린 목소리가 들렸다.
“… 저, 누구죠? 게임 참가자나 술래가 아닌 거 같은데 … 맞나요?”
구나정 형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앞에 총이 있었다. 게임용 총이라도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다. 서둘러 자신이 누구인지 밝혀야만 했다.
“저는 게임 참가자가 아닙니다.”
“그렇군요. … 그럼, 누구시죠? 여기는 게임장입니다. 오늘 밤 이곳을 빌렸습니다. 그래서 게임 참가자와 술래가 아니면 이곳에 들어올 수 없어요.”
“아! 그렇군요. 저는 ….”
구나정 형사가 말하다가 갑자기 멈췄다. 자신이 화정경찰서 강력반 형사라고 신분을 밝혀야 했지만, 이곳은 불법 게임장 같았다. 신분을 사실대로 밝히면 위험할 거 같았다.
현재 경찰은 자신밖에 없었고 많은 사람이 불법 게임에 참여한 거 같았다. 참가자들 모두 총을 들고 있었다.
구형사가 대충 둘러대기 시작했다.
“그게, 길을 가다가 문이 열려 있어서 기웃거렸는데 … 무슨 소리가 나길래 들어왔습니다.”
“문이 열려 있었다고요?”
참가자 33번이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게임 시간 동안,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해 게임장 입구를 철저히 봉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구나정 형사가 의심의 눈초리를 느끼고 서둘러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거 같은데 … 어디 동호회에서 나오셨나요?”
참가자 33번이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네,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거 맞습니다. 보물을 찾아야 하고 술래에게 잡히면 안 됩니다.”
구나정 형사가 보물과 술래라는 말에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보물과 술래가 뭐죠? 저도 서바이벌 게임을 여러 번 해봤는데 그런 거 없었어요.”
“그건 ….”
참가자 33번이 말을 하다가 구나정 형사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봤다.
“응! … 흐흐흐!”
이윽고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술래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거액의 상금이 걸린 보물이었다.
보물은 바로 라이트가 들어오는 핸드폰이었다. 게임장 안에 있는 핸드폰이라면 어떤 핸드폰도 상관이 없었다.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듣고 구나정 형사가 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어디 아프세요? 총에 맞으셨어요?”
참가자 33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말했다.
“저는 술래와 아직 맞닥뜨리지 않았습니다.”
“술래라고요? 그건 또 뭐죠? 술래잡기 술래를 말하는 건가요? 그게 서바이벌 게임이랑 무슨 관계가 있죠?”
술래라는 말에 구나정 형사가 다시 물었다. 술래는 술래잡기 놀이에서 숨은 사람을 찾는 역할이었다.
“그게 … 흐흐흐~!”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참가자 33번이 웃음을 계속 흘렸다. 하지만 어딘가 꺼림칙한 게 있었다. 고글 속에 숨어있는 탐욕스러운 눈빛이 구형사의 핸드폰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