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_15_29년 후, 인광 연구소

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by woodolee

실종된 아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한 달이 지났다.


강인을 비롯한 소년 탐정단은 매송 경찰서를 방문했다. 오늘 용감한 어린이 시상식이 있었다.


경찰서 대강당에서 행사가 치러졌다.


행사 사회자인 경찰서 차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목을 한번 가다듬고 말했다.


“유강인 어린이, 이진호 어린이, 최윤호 어린이는 단상으로 올라오세요.”


“네에!”


강인, 윤호, 진호가 크게 답하고 단상으로 올라갔다.


“하하하! 아이고 귀여워라!”


“우리 아들이에요.”


소년 탐정단 부모들이 환하게 웃었다. 그들은 맨 앞자리 귀빈석에 앉았다. 단상에 올라간 아들들을 자랑스러워했다.


차장이 표창 내용을 차분한 목소리로 읽었다.


“위 어린이들은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명덕산에 올라 납치된 친구들을 구했습니다.

그 용기가 참으로 가상해서, 매송 경찰서는 세 어린이를 용감한 어린이로 선정하고 시상합니다.

매송 경찰서 서장, 김황호”


“우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소년 탐정단 부모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귀빈석 뒷자리에 앉은 매송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쁜 나머지 손뼉을 마구 쳤다.



짝! 짝! 짝!



우렁찬 박수 소리에 대강당이 크게 울렸다.


“하하하!”


강인이 환하게 웃었다. 윤호, 반장 진호도 같이 웃었다.


셋이 표창을 받고 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오른손으로 V자 그리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참 기쁜 날이었다.


그렇게 명덕산 사건이 종료됐다.



아이들을 납치한 자를 잡지 못한 채

아이들 피를 왜 뽑았는지 밝히지 못한 채

죽은 시신이 지남철 박사인지 확인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사건이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끝난 게 아니었다. 추악한 진상을 밝히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 사건에는 은밀한 것들이 있었다. 수면 아래에 숨어있었다. 그것들의 정체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었다.



공포, 분노, 원망이었다.



셋은 한동안 납작 엎드렸다. 그러다 다시 꿈틀거렸다. 그 에너지가 아주 천천히 모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한데 뭉쳐버렸다.


뭉친 힘이 엄청났다. 그 엄청난 기운이 세상을 뒤덮을 날만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했다.


이 힘은 1965년 강원도 진향리 청기와집에서부터 시작됐다.


청기와집 뒤편 동굴 속에서 딸을 부둥켜안고 죽은 김덕길의 저주가 그 시작이었다.


김덕길은 죽기 전, ‘검은 피’를 일갈했다. 그 저주가 서린 ‘검은 피’가 고개를 쳐들었다. 세상을 검게 물들일 날만 기다렸다.


그 참혹한 기세에 한 사람이 동참했다. 바로 더벅머리 소년이었다.


그는 유강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명덕산에서 만났던 아이였다. 자기를 ‘병아리 2’라고 소개했다.


더벅머리 소년, 병아리 2는 선과 악의 과일을 동시에 든 야누스의 얼굴이었다.


1996년, 비밀 연구소를 탈출한 더벅머리 소년은 복수를 다짐했다. 그렇게 검은 피의 저주에 동참했다.


그러자 어둠의 저주가 꼬일 대로 꼬이기 시작했다. 배배 꼬여서 터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파국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항상 그렇듯 무상한 세월이 거침없이 흘러갔다.


29년이 훌쩍 지나갔다. 검은 피로 물든, 악의 꽃이 만개할 시점이 드디어 다가왔다.





2025년 12월 20일 오후 1시 12분


초겨울이 끝나고 한겨울이 시작되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쌀쌀한 바람이 거리에 가득했다. 낮 기온이 섭씨 0도에 불과했다. 손이 꽁꽁 얼고 발이 시리는 계절이 도래했다.


바람 소리와 함께 차 소리가 크게 들렸다. 한강 강변도로에 차들이 많았다. 8차선 도로에 차들이 넘쳐났다. 그 차들 속에 탐정단 밴이 있었다.


탐정단 밴이 강변도로를 내달렸다. 아파트촌을 지나 녹지로 향했다. 수풀이 우거진 곳이었다.


탐정단 밴이 일반 도로로 빠졌다. 4차선 도로를 따라서 달리다 한 빌딩으로 향했다.


빌딩은 울창한 녹지 속에 자리 잡은 연구소였다.


연구소는 커다란 정문에 넓은 야외 주차장이 있었다. 야외 주차장 뒤로 하얀 건물이 탑처럼 우뚝 솟았다. 연구소 본관으로 최첨단 건물이었다.


본관은 담뱃갑을 똑바로 세운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지상 12층, 지하 3층 건물이었다.


본관 뒤로 별관이 있었다. 본관과 달리 담뱃갑이 누운 모양이었다.


연구소 이름은 ‘인광 생명 공학 유전자 연구소’였다. 강동구에 있었다.


인광 연구소는 한국을 대표하는 생명 공학 유전자 연구소였다. 유전자 연구에 특화한 곳이었다.


연구소는 한강 변 녹지에 자리 잡아 분위기가 한적했다. 이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그래서 연구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야외 주차장에 차들이 북적였다.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그 이유가 있었다.


오늘 인광 연구소에서 축하 파티가 있었다. 유전자 치료제 ‘바이오클린(Bio-clean)’ 상용화 축하 파티가 있었다.


축하 파티를 빛내기 위해 많은 손님이 연구소를 찾았다.


탐정 유강인도 귀빈으로 초청됐다. 자리를 빛내 달라는 공손한 초청장을 받았다.


유강인이 초청장을 받았을 때 황정수가 말했다.


“탐정님, 축하 파티에 참석하실 건가요?”


황정수의 말에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말했다.


“가야지. 초청장을 보낸 사람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이야. 초등학교 동창이야. 5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


유강인이 파티 초청에 응했다. 친구가 보낸 초청장이었다. 그래서 가야 했다.


탐정단 밴이 지하 주차장에 주차했다. 유강인과 조수 둘이 차에서 내렸다. 셋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축하 파티 장소는 지상 2층 대강당이었다.



1층, 2층 … 딩동댕!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유강인과 조수 둘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2층 복도에 들어서자, 한 사람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탐정단을 기다린 거 같았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남자였다. 그 남자가 허겁지겁 유강인을 향해 달려왔다.


유강인이 달려오는 남자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동철아!”


“강인아!”


유강인을 기다린 남자는 박동철이었다. 유강인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박동철은 1996년 초등학교 5학년 봄 소풍 때 명덕산에서 납치된 아이였다.


유강인은 박동철과 인연이 깊었다. 처음에는 악연이었다. 같은 반이었지만, 축구팀 라이벌이었다.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였다.


박동철은 또래보다 키가 훨씬 컸고 덩치도 좋았다. 그래서 자기 힘만 믿고 말 그대로 안하무인이었다. 그의 만행에 아이들이 박동철을 싫어했다. 강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앙숙 같은 사이가 명덕산 사건을 계기로 친구로 변했다. 납치된 박동철을 유강인이 구했다. 박동철은 그날 이후 유강인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겼다.


“와줘서 고마워, 강인아. 참 강인이 아니라 유강인 탐정님이지. 유강인 탐정님, 초청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박동철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강인이 답했다.


“당연하지. 너는 내 친구잖아.”


“그렇지, 우리는 친구지.”


박동철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그의 모습은 여전했다. 초등학교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키가 컸고 덩치가 좋았다. 씨름 선수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얼굴도 여전히 부리부리했다.


“아, 이분들이 조수님이구나.”


박동철이 조수 둘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 그러자 황정수와 황수지도 서둘러 맞절했다. 황정수가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유강인 탐정님 선임 조수 황정수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조수 황수지입니다.”


박동철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수님들. 자! 유강인 탐정님, 어서 파티장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행사가 곧 시작합니다.”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기쁜 표정으로 답하고 걸음을 옮겼다.


파티장인 대강당은 바로 앞에 있었다. 손님을 환영하는 듯 출입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많은 사람이 축하 파티에 참석했다. 딱 봐도 200명 이상 모인 거 같았다.


박동철이 탐정단을 귀빈석으로 안내했다.


유강인 받은 초청장은 박동철이 보낸 초청장이었다.


박동철은 인광 연구소 보안 팀장이었다. 그는 연구소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연구소 연구는 대부분 극비였다. 보안 팀장은 그 극비를 책임지는 자였다.


인광 연구소는 국가의 전폭적인 투자를 받는 주요 시설 중 하나였다.


유강인이 자리를 확인하고 앉으려고 할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박팀장.”


굵은 목소리였다. 박동철이 급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뒤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40대 중반 남자였다.


박동철을 부른 남자는 중간 키에 마른 체격이었다. 훤한 이마에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금테 안경이 반짝거렸다.


“아! 소장님!”


박동철이 급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허리를 펴고 유강인에게 말했다.


“강인아, 어서 인사드려. 이분은 인광 연구소 소장님, 지단길 박사님이셔. 연구소를 운영하고 책임지시는 훌륭한 분이셔.”


유강인이 고개를 돌려 연구소 소장 지단길 박사를 바라봤다. 지박사가 유강인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가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밝고 따뜻한 목소리였다.


유강인이 고개 숙여, 지단길 박사에게 인사했다. 그가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탐정 유강인입니다. 소장님을 만나서 저도 반갑습니다.”


지단길 박사가 말을 이었다.


“저는 항상 유강인 탐정님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유탐정님을 정말 비범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유탐정님은 많은 범죄자를 잡았습니다. 모두 대단한 범죄자들이었습니다.

머리가 비상하고 잔인한 자들이었는데 그자들을 모두 일망타진했습니다. 그래서 유탐정님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지박사가 말을 이었다.


“저는 유탐정님 유전자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런 업적을 쌓았는지 궁금했습니다.

생명 공학과 유전자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유탐정님의 유전자가 참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참 특출난 유전자라고 감탄했습니다.”


“그냥 부모님 덕분이죠. 유전자는 부모님이 물려주는 거니 ….”


유강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단길 박사가 입술에 침을 묻혔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 기회가 된다면 유탐정님 유전자를 연구하고 싶습니다.”


유강인이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네에? 제 유전자를 연구하고 싶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유탐정님 유전자에 똑똑함의 비밀이 숨어있을 거 같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설마 제 피를 뽑으려는 건 아니죠?”


지박사가 정색했다. 그가 말했다.


“하하하! 그럴 리가요. 농담입니다. 그 정도로 유탐정님 능력을 높이 사는 겁니다.

사실 똑똑한 건 타고나는 겁니다.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어요. 천재 자식 중에 천재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렇군요. 참 다행이네요. … 들어보니 아버님이 대단하신 분 같은데, 아버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유강인의 말에 지단길 박사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가슴 아픈 일이 있는 거 같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성함은 … 지자 남자 철자, 지남철 박사님입니다. 생명 공학의 권위자셨습니다. 지씨 집안이 낳은 천재 중의 천재셨죠. 유강인 탐정님처럼 ….”


지단길 박사가 말을 마치고 실실 웃었다. 방금까지 가슴 아파했던 표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박사가 긴 혀로 입술을 싹 핥았다. 그 모습이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거 같았다.


“응?”


유강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박사의 행동이 예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심상치 않았다.


본심은 말로 숨길 수 있지만, 행동으로는 나오기 마련이었다. 무의식적 행동이 본심을 드러냈다.


유강인이 생각했다.


‘지단길 박사라는 자가 나를 잡아먹으려는 거 같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그런데 지남철 박사는 어디선가 들은 거 같은데 … 어디에서 들었더라?’


유강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남철이라는 이름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지단길 박사가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했다.


“유탐정님, 조수님들 어서 귀빈석에 앉으세요. 행사가 곧 시작할 겁니다. 저는 단상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축하 연설을 해야 하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좋은 연설을 기대 하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귀빈석에 앉았다. 조수 둘은 옆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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