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경찰은 병원뿐만 아니라 매송 초등학교도 방문했다.
경찰차 두 대가 매송 초등학교 운동장에 주차했다. 차에서 수사관 두 명이 내렸다.
그들은 먼저 교장과 얘기를 나눴다. 교장과 얘기를 나눈 후, 소년 탐정단 셋을 불렀다.
이에 강인, 윤호, 반장 진호가 교장실로 불려갔다.
아이들이 자리에 앉자, 수사관들이 미소를 지었다. 셋은 납치된 동철과 진주를 찾은 기특한 아이들이었다. 이는 백여 명이 넘는 경찰도 못 한 일이었다.
소년 탐정단은 테이블에 있는 요구르트를 들었다. 요구르트를 먹으며 긴장감을 풀었다.
수사관 하나가 입을 열었다.
“동철과 진주를 어떻게 찾았는지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지?”
“네에!”
소년 탐정단이 크게 답하고 어제 일을 소상히 말했다.
“산 중턱에 바위 동굴이 있었어요.”
“어떤 아이가 바위 위에서 갑자기 나타났어요. 그 아이가 동굴 입구를 열었어요. 동굴 안에 동철이 있다고 했어요.”
“웬 아이가 나타났다고? 그 아이가 누구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처음 보는 아이였어요. 이름을 물어봤는데 병아리 2라고 했어요.”
“뭐? 병아리 2라고?”
“네, 분명 그렇게 말했어요.”
“그렇구나, 계속 말하렴.”
“비밀 입구에 들어갔는데 안에 긴 통로가 있었어요. 좁은 길이었어요. 그 길을 따라서 쭉 갔는데 끝에 벽이 있었어요.
병아리 2, 그 아이가 비밀번호를 입력하더니 문을 열었어요. 벽이 사실은 문이었어요.”
“그래?”
수사관들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이들이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안에 연구실 같은 게 있었어요. 뭘 연구하는 거 같았어요. 노트북하고 서류가 많았어요. 그런데 그 연구실에 불이 났어요.”
“뭐? 불이 났다고?”
수사관들이 그 말을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동굴 안에 비밀 연구소가 있는 것도 모자라 불까지 났었다.
수사관 하나가 정색하고 급히 말했다.
“진짜니?”
“네! 진짜예요.”
“거기로 안내해줄 수 있니?”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윤호와 반장 진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동굴로 가고 싶지 않은 거 같았다. 이에 강인이 말했다.
“제가 안내할게요. 제가 길을 잘 알아요. 옆에 있는 친구들을 길을 잘 몰라요.”
“그래, 좋다. 네 이름이 유강인이라고 했지?”
“네, 유강인이에요.”
“그럼, 오늘 산으로 갈 수 있지?”
“갈 수 있어요.”
“먼저 부모님과 학교에 허락을 구할 테니 좀 기다려라.”
“알겠습니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수사관들이 강인 부모님과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허락을 받았다.
강인이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럼, 갔다 올게.”
윤호가 말했다.
“그럼, 조심해서 갔다 와.”
반장 진호가 괜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경찰 아저씨들과 함께 가잖아. 걱정할 건 없어.”
“그래, 맞아. 금방 갔다 올게.”
강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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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강인은 경찰과 함께 명덕산으로 향했다.
오후 2시쯤 경찰 십여 명과 강인이 산 중턱에 올랐다.
강인이 말했다.
“저를 따라오세요. 저기 큰 나무 근처에 샛길이 있어요.”
“그래, 샛길이 있구나.”
경찰들이 강인을 따라서 샛길로 들어갔다.
샛길을 따라서 걷던 강인이 집채만 한 커다란 바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경찰들이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규모가 상당했다.
“여기 근처에 비밀 입구가 있어요.”
강인이 서둘러 비밀 입구를 찾았다. 더벅머리 소년의 행동을 떠올리며 움직였다.
이윽고 끼익! 하며 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동굴의 비밀 입구가 열렸다.
“헉! 진짜네!”
“비, 비밀 입구가 있어!”
경찰들이 활짝 열린 비밀 입구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들은 소년 탐정단의 말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이 모두 사실이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오랜 세월 감쪽같이 명덕산에 숨어있던 비밀 연구소가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
“어서 들어가자! 랜턴을 켜!”
경찰들이 하나둘씩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랜턴을 켜서 동굴을 밝혔다. 허리를 굽히고 좁은 통로를 걸어갔다.
통로 끝에 다다르자, 강인이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경찰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이 온통 새까맸다. 모든 게 잿더미였다. 화재로 연구실이 불타버렸다. 매캐한 냄새가 풍겼다.
“진짜 불이 났구나! 방독면을 어서 써!”
경찰들이 준비한 방독면을 쓰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잿더미를 살피던 경찰 하나가 급히 외쳤다.
“시신이 있습니다. 불타 죽었어요.”
“그래?”
선임 경찰이 급히 불에 탄 시신을 살폈다. 시신은 불에 완전히 탔다.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30분 후 비밀 연구소 조사를 마친 경찰들이 동굴 밖으로 나왔다.
경찰들은 불 타죽은 시신의 신원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
강인이 어제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어떤 아저씨가 연구실에 있었는데 … 죽은 사람을 지남철 박사라고 불렀어요.”
“확실하니?”
“네, 분명 지남철 박사라고 들었어요.”
“그래, 알았다.”
강인은 죽은 자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했다. 연구실에서 도망쳤던 남자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남자는 박사의 조수 같았다. 책상에서 서류를 챙겨서 급히 도망쳤다. 도망치기 전, 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지남철 박사라고 불렀다. 지박사 대신 연구를 잇겠다는 말도 했었다.
경찰은 지남철 박사라는 단서를 잡았다. 이에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명덕산 비밀 연구소와 화재, 불타 죽은 시신, 아이들 납치는 큰 사건이었다.
사건을 맡은 매송 경찰서는 먼저 지남철 박사를 수소문했다. 지박사는 명덕산 비밀 연구소서 불타 죽은 남자로 유력했다.
조사 결과, 지남철 박사는 생명 공학의 권위자였다. 학계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지박사는 강원도 진향리 유지였던 지인광의 아들이었다. 그 지역 명소인 청기와집 소유자이기도 했다.
지남철 박사는 어릴 때부터 천재라고 불렸던 인물이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다.
이후 아버지가 투자해서 설립한 ‘인광 생명 공학 연구소’에서 연구에 매진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 검사 결과, 병명은 혈액을 비롯한 전신 염증반응이었다. 의료진은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지남철 아버지, 지인광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사랑하는 막내딸을 잃은 후 아들들도 차례로 잃었다. 이제 두 아들만 남았는데 남은 아들마저 쓰러지고 말았다. 두 아들은 지남철과 지남승이었다.
지남승은 20년 전 집에서 가출해 행방이 묘연했다. 그는 막냇동생과 형들이 차례로 죽자, 큰 충격을 받았다.
지인광은 아들이 누운 병상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여섯 번째 아들, 지남철 박사도 막내딸처럼 검은 피를 토했다. 그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건 동굴 속에서 딸을 부둥켜안고 죽은 김덕길의 저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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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씨 집안에 저주를 내리리라! 모두 검은 피를 토하고 불지옥의 고통을 느끼며 …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너희가 자초한 업보다! 내 저승에서 그 모습을 똑똑이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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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 이를 어째!”
지인광이 몸을 떨었다. 커다란 좌절 속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허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었다. 흡사 도사 같았다.
노인이 지인광에게 말했다.
“인광이 나를 알지? 난 자네 사촌이야.”
“아! 형님!”
지인광이 노인을 알아봤다. 그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노인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가 모르는 일이 있어. 우리 집안에 유전병이 있어.”
“유, 유전병이라고요?”
“응.”
노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자네 증조할아버지가 서른 살 때 갑자기 검은 피를 토하고 석 달 만에 돌아가셨어. 그 증상이 먼 조상부터 있었어.”
“네에? 저는 처음 듣는 말입니다.”
“그게, 자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유전병이 없었어.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셨지. 그래서 집안에서 유전병이 사라진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다시 발병한 거야. 자네를 거르고 자네 아들과 딸한테 그 몹쓸 병이 다시 나타난 거야.”
“헉! 그, 그럼 진짜 말씀해 주셔야죠!”
“난, 그동안 외국에 있었어. 그래서 자네한테 큰일이 닥친 지 몰랐어.”
“세, 세상에!!”
지인광이 유전병이라는 말에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경찰 조사 결과, 지인광의 핏줄에 유전병이 있었다. 그 병이 대대로 이어졌다. 지인광의 할아버지, 아버지, 본인 3대를 거르고 4대째에 유전병이 다시 발병했다.
병원에 입원한 지남철 박사는 치료를 받았지만, 증세가 호전되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는 몸이 점점 약해지면서 낙담했다. 막냇동생과 형들처럼 죽을 거 같아 불안감에 떨었다. 그렇게 낙담하다가 자살 시도까지 했다.
자살 실패 후 어느 날, 지박사는 병원을 탈출해 종적을 감췄다. 10년 전의 일이었다.
경찰은 병원에서 도망친 지남철 박사의 행적을 뒤쫓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지박사는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사람이었다.
국과수는 불에 타 죽은 시신을 정밀 감정했다. 감정 결과, 죽은 사람이 지남철 박사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시신의 훼손이 너무나도 심했다. 그래서 지박사가 맞는다는 보고서를 작성할 수 없었다.
지남철 박사와 달리 비밀 연구소 조사 결과는 금방 나왔다.
6년 전, 명덕산 정비 사업이 있었다. 정비 사업에 동굴 보존 사업도 있었다. 동굴 보존 사업 명목으로 비밀 연구소가 지어진 거로 확인됐다.
당시 사업은 구청장이 인가했다. 구청장의 현금 거래를 조사한 결과, 누군가한테 거액을 받은 게 드러났다. 그 돈은 뇌물로 밝혀졌다.
뇌물을 받은 구청장은 구속됐다. 경찰은 누가 뇌물을 줬는지 캐물었지만, 구청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누가 뇌물을 줬는지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동굴을 살핀 암석 전문가는 명덕산 암석이 물러서 동굴을 쉽게 만든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 솜씨가 정교하다며 감탄했다.
경찰은 명덕산 조사를 마치고 비밀 동굴을 폐쇄했다. 그렇게 비밀 연구소가 사라졌다.
사건의 키는 10년 전에 사라진 지남철 박사였다. 하지만 지박사의 행방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사건 수사가 난항에 빠지고 말았다.
정황상 병원에서 탈출한 지남철 박사가 명덕산 바위를 파서 비밀 연구소를 만든 거 같았다.
이후 아주 비밀스러운 동굴 속에서 지병을 고치기 위해 실험을 한 거 같았다. 그 실험을 위해 아이들을 납치한 거 같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 추론일 뿐, 증거가 없었다.
지박사의 가문은 경찰의 수사에 즉각 불쾌감을 드러냈다. 천재 과학자의 불운과 실종을 추악한 범죄와 억지로 엮었다며 이는 명예 훼손이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뒤이어 지남철 박사와 지씨 가문은 명덕산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성명서도 발표했다.
경찰은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목격자인 강인의 증언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박사를 납치의 범인이라고 명확하게 지목할 수 없었다. 그렇게 수사가 답보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