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흐흐흐!”
더벅머리 소년이 다시 웃기 시작했다.
강인이 침을 꿀컥 삼키고 생각했다.
‘이 아이는 대체 뭐 하는 아이지?’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앞에 있는 더벅머리 소년이 어떤 아이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더벅머리 소년은 납치된 아이였고
비밀 연구실에 불을 지르고 도망친 아이였다.
비밀번호를 가르쳐 준 아이이기도 했다.
잠시 두 갈래 길에서 침묵이 감돌았다.
다섯 아이와 더벅머리 소년이 말없이 대치했다.
찬 바람이 쌩쌩 불기 시작했다. 계곡 근처라 칼바람이었다.
“아이고 추워라!”
진주가 몸을 마구 떨었다. 다섯 아이 중 진주가 가장 어렸다. 그래서인지 추위를 많이 탔다.
북! 하며 지퍼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진주가 점퍼 지퍼를 최대한 올렸다.
강인이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렇게 정신 차리고 더벅머리 소년에게 말했다. 화가 난 목소리였다.
“너 때문에 우리 모두 죽을 뻔했어. 네가 라이터를 던졌잖아. 그래서 불이 난 거고.
그런 짓을 했으면서 … 너 때문에 우리가 살았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더벅머리 소년이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서 … 어떻게 됐는데? 살면 된 거잖아. 무슨 문제 있어? 너희 다 멀쩡하잖아.”
“뭐라고?”
“잘 생각해봐. 내가 비밀번호를 가르쳐줬잖아. 내가 그때 입을 다물었으면 … 너희가 과연 살 수 있었을까? 내 덕을 무시하지 마.”
강인이 지지 않고 외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는 도대체 누구야? 이름이 대체 뭐야?”
“내 이름?”
“그래, 네 이름이 도대체 뭐야?”
더벅머리 소년이 미소를 지었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병아리 2야.”
“뭐? 병아리 2라고?”
“응, 박사님이 나를 그렇게 불렀어. 병아리 2라고 불렀어. 흐흐흐!”
“너 지금 …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서 진짜 이름을 말해! 네 이름이 대체 뭐야?”
강인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더벅머리 소년이 대답 대신 진주를 바라봤다. 진주는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저 진주라는 아이가 … 너를 강인 오빠라고 부르더라. 네 이름이 강인이지? 그렇지?”
“그래, 내 이름은 유강인이다.”
강인이 큰소리로 외쳤다.
더벅머리 소년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말했다.
“네 이름이 유강인이구나. 만나서 반갑다.”
“난, 네가 반갑지 않아.”
“흐흐흐!”
더벅머리 소년이 다시 실실 웃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강인아, 지금 고민하고 있지?”
“뭐?”
“네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잖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서 지금 고민하고 있지?”
강인이 깜짝 놀랐다. 허가 찔린 표정이었다. 더벅머리 소년이 강인의 마음을 꽤 뚫었다.
더벅머리 소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저번처럼 답을 가르쳐 줄게. 나를 따라와. 길을 안내해줄게. 나만 믿어.”
“뭐, 뭐라고?”
강인이 화들짝 놀랐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갑자기 나타난 더벅머리 소년이 구원자인 양 행세했다.
“흐흐흐!”
더벅머리 소년이 웃음을 흘리고 뒤로 돌아섰다. 두 갈래 길에서 오른쪽 길로 걸어가며 말했다.
“강인아, 내가 비밀번호를 가르쳐줬잖아.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나를 따라와. 그러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좀 있으며 매섭게 추워질 거야. 얼어 죽기 싫으면 어서 따라와.”
더벅머리 소년이 오른쪽 길을 계속 걸어갔다.
20초 후 숯처럼 새까만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그가 불쑥 나왔던 곳이었다.
“이, 이게 대체!”
강인이 매우 놀란 나머지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잠시 어쩔 줄 몰라 했다.
더벅머리 소년이 소년 탐정단을 다시 시험하는 거 같았다.
첫 번째 시험은 비밀번호였다. 비밀번호를 외우지 못하면 죽는 시험이었다.
그때 강인이 비밀번호를 외웠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래서 모두 살 수 있었다.
두 번째 시험은 두 갈래 길에서 한쪽 길을 택하는 거였다.
강인이 두 갈래 길에서 주저하고 있을 때 더벅머리 소년이 갑자기 나타났다. 오른쪽 길이 답이라고 말하고 그쪽 길로 들어갔다.
“오른쪽 길이 정답이라고?”
강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생각을 이었다.
‘저 애가 오른쪽 길이 정답이라고 하지 않았어. 답이라고 했지. … 오답도 답이야.’
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더벅머리 소년은 여태까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 함정이 있었다. 오답도 답이었다.
두 갈래 길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갔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비밀 연구소처럼 봉변을 당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강인이 두 갈래 길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동철이 걸음을 옮겼다. 뭐에 홀린 듯, 더벅머리 소년을 따라서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
강인이 그 모습을 보고 서둘러 외쳤다.
“동철아! 가지 마!”
동철이 걸음을 멈췄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강인에게 말했다.
“왜? 이 길은 쟤가 간 길이야. 이 길을 따라가면 산 밑으로 내려갈 수 있을 거야. 쟤가 산을 잘 아는 거 같아.”
“아닐 수도 있어.”
강인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뭐라고? 그럴 리가?”
동철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윤호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 애가 오른쪽 길로 갔잖아. 위험한 길이면 갈 리가 없어. … 따라가도 괜찮을 거 같아.”
“맞아. 괜찮을 거야.”
동철이 맞장구쳤다.
“아니야!”
반장 진호가 고개를 가로젓고 외쳤다.
“저놈은 믿을 수 없어. 우리를 연구소로 몰아넣고 불을 질렀어. 우리 모두를 죽이려 한 놈이야.
그런 짓을 한 놈을 무작정 따라가겠다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럼 왼쪽 길로 가자는 거야? 거기가 내려가는 길이 아니면, 우리는 산속에서 밤을 꼬박 지내야 해!”
동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두려운 표정으로 왼쪽 길을 바라봤다.
왼쪽 길이 오른쪽 길보다 더 어두워 보였다.
“왼쪽 길이 맞을 거야.”
반장 진호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왼쪽 길로 걸어갔다. 그가 한 손으로 왼쪽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길로 가자. 왼쪽 길로 가자.”
“아니야, 오른쪽 길로 가야 해! 비밀번호가 맞았잖아. 이번도 마찬가지일 거야.”
동철과 윤호가 오른쪽 길을 고집했다. 그들은 더벅머리 소년의 말을 믿었다. 비밀번호처럼 바른길을 가르쳐줬다고 생각했다.
반장 진호가 지지 않고 말했다.
“왼쪽 길이 맞아! 왼쪽 길로 가야 해!”
“그 아이가 오른쪽 길로 갔잖아. 그 아이를 따라가면 아래로 내려갈 수 있을 거야.”
셋이 옥신각신 싸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진주가 울면서 외쳤다.
“오빠들! 그만해. 그만 싸워!”
진주가 울음을 터트렸다.
울음소리에 셋이 말싸움을 멈췄다. 셋이 두 갈래 길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왼쪽 길로 가야 할지 오른쪽 길로 가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날이 점점 추워졌다. 다리가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강풍이 불면 사지가 얼어버릴 거 같았다. 이제 시간이 없었다. 몸이 얼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좋다.”
강인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지금 한시가 급했다. 어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도 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렇게 추운데 밤이 깊어지면 그 추위가 대단할 거 같았다. 다들 봄옷만 입고 있었다. 밤 추위를 누구도 견딜 수 없었다. 저체온증에 걸리면 살 수 없었다.
강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법은 두 가지야. 첫 번째는 다시 산 위로 올라가는 거야. 동굴 속으로 들어가 추위를 피하는 거야.
두 번째는 여기에서 길 하나를 선택해야 해.”
“다시 올라가는 반대야! 그 동굴은 생각만 해도 끔찍해!”
반장 진호가 크게 외쳤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도 산 위로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길을 찾자!”
강인이 손뼉을 짝 치고 두 갈래 길로 걸어갔다. 허리를 굽히고 두 갈래 길을 자세히 살폈다.
두 길 다 어두운 숲속으로 이어졌다. 더벅머리 소년은 오른쪽 길로 들어갔다.
강인이 양 입술에 침을 묻혔다. 왼쪽 길과 오른쪽 길을 왔다 갔다 하며 길을 자세히 살폈다.
윤호, 반장 진호, 동철, 진주가 말없이 강인을 바라봤다. 강인이 정답을 찾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군.”
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뭔가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오른손 검지로 왼쪽 길을 가리키고 말했다.
“왼쪽 길로 가자.”
“그렇지? 왼쪽 길이 맞지?”
반장 진호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동철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강인에게 물었다.
“강인아, 왜 왼쪽 길로 가야 하지?”
강인이 답했다.
“길을 자세히 살펴보니, 오른쪽 길은 잡초가 많은 길이야. 사람이나 짐승이 다니지 않는 길이 분명해.
반면 왼쪽 길은 잡초가 별로 없었어. 사람이나 짐승이 다니는 길이 맞아. 그래서 왼쪽 길로 가야 해.”
“아! 그래!”
동철이 그 말을 듣고 입을 쩍 벌렸다. 강인의 말이 맞는다는 표정이었다.
윤호가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강인의 말이 참 그럴듯하네. 그렇지! 잡초가 무성한 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야.
그래, 왼쪽으로 가자. 잡초가 무성한 길은 가지 말자! 잡초가 무성한 길을 샛길이야. 샛길은 가면 안 돼! 동철이 샛길로 가서 납치된 거잖아.”
“그래, 서두르자.”
아이들이 급히 움직였다. 그렇게 두 갈래 길에서 왼쪽 길로 향했다.
길을 선택한 강인이 앞장섰다. 어두운 숲속을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혹 위험한 일이 있을 수 있었다. 그때는 재빠르게 대처해야 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왼쪽 길로 들어간 후 1분이 지났다. 오른쪽 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들리더니 더벅머리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양 갈래 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인이라는 자식, … 똑똑한 놈이군. 오답을 알아챘네. 흐흐흐!”
더벅머리 소년이 실실 웃었다. 양 손바닥을 쓱쓱 비볐다. 이 상황이 무척 재미있는 거 같았다.
강인의 판단은 옳았다.
오른쪽 길은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아니었다. 산속 깊숙이 들어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인적이 끊겼다. 길에 인적이 끊기자, 잡초가 무성해졌다.
강인은 오른쪽 길에 무성한 잡초를 보고 내려가는 길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래서 잡초가 없는 왼쪽 길을 택했다. 올바른 선택이었다.
더벅머리 소년이 참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
“오빠!”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더벅머리 소년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갈게.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더벅머리 소년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산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