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그 거지 같은 놈이 우리를 죽이려 했잖아!”
윤호가 이를 악다물고 말했다. 화가 잔뜩 난 거 같았다. 윤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더벅머리 소년은 소년 탐정단을 동굴 안 비밀 연구소로 안내했다. 이는 사실 유인이었다. 곧 죽음의 길이 펼쳐졌다.
양갱을 맛있게 먹던 더벅머리 소년은 다른 물건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지퍼 라이터였다. 지퍼 라이터는 소년한테 어울리는 물건이 아니었다. 불을 지를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물건이었다.
소년 탐정단이 연구실로 들어가자, 더벅머리 소년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주저하지 않고 연구실 안으로 지퍼 라이터를 던졌다. 그러자 불이 확 일어났다. 이 모든 건 계획된 일이 분명했다.
잠시 침묵이 흘렸다.
소년 소녀들이 참담한 현실을 깨닫고 할 말을 잃었다. 둘은 납치되어 고초를 겪었고 셋은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고 죽을 위기에 처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산에서 부는 바람이라 싸늘했다. 5월이지만, 초겨울 같았다.
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동철에게 말했다.
“납치된 아이 중 남자아이는 도망쳤고 여자아이는 보이지 않아. 사라진 여자아이를 봤다고 했잖아. 그 아이는 어떤 아이였어?”
동철이 같이 있었던 여자아이를 떠올리고 답했다.
“걔는 … 머리가 아주 길었던 거 같아.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였어. 도망친 아이랑 친했던 거 같아.”
“그렇구나.”
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장 진호가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둘이 도망친 거네. 작은 방에는 동철과 진주밖에 없었잖아.
둘이 같이 도망친 게 분명해. 남자아이가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으니 같이 도망치는 건 쉬웠을 거야.”
“그렇지.”
강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불을 지른 남자아이는 바닥에 쓰러진 아저씨와 관련이 있는 거 같아.
아저씨가 옆에 약병이 있었어, 알약도 본 거 같아. 아저씨가 약을 먹지 못하고 쓰러지자 그 아이가 그때를 틈타 여자아이와 함께 도망친 거야. 그러다 우리를 만난 거야.”
반장 진호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강인에게 말했다.
“도망쳤는데 왜 다시 연구실로 돌아간 거야. 그것도 우리랑 같이?”
강인이 답했다.
“아마도 … 그 아이는 연구소를 불 지르고 싶었던 거 같아. 걔도 납치돼서 이곳으로 온 거잖아. 화가 잔뜩 났겠지.
먼저 여자아이를 안전한 곳에 숨기고 불을 지르려고 했는데 우리를 만난 거야.
우리가 동철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연구소로 같이 간 거야. 그리고 계획대로 불을 지른 거 같아.”
윤호가 강인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급히 말했다.
“그러면 불을 지른다고 미리 말해줘야지! 걔는 우리도 죽이려고 했어! 우리는 아무런 잘못이 없잖아. 동철을 찾으러 온 게 무슨 잘못이야!”
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맞는 말이야. 그 아이는 이상한 아이야. 종잡을 수 없는 아이 같아. 긴 머리 여자아이는 끔찍이 아껴서 안전한 곳에 숨겼지만, 다른 사람은 모두 죽이려 했어.”
“정말 황당하다.”
“뭐 이런 아이가 다 있어!”
윤호와 반장 진호가 화를 참지 못했다. 반면 강인은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 아이는 자기 말대로 동철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어. 불을 지르기 전 비밀번호를 가르쳐주고 피하라고 말했어.
따지고 보면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어. 대신 우리를 시험한 거 같아. 불 속에서 동철을 구해서 나올 수 있는지 시험한 거 같아.”
반장 진호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뭐? 시, 시험이라고?”
“응!”
강인이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윤호가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가 말했다.
“걔는 선생님도 아닌데 우리를 시험했다고?”
“그런 거 같아.”
강인의 말에 아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더벅머리 소년은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운명을 걸고 소년 탐정단을 시험했다.
이제 상황 파악이 끝냈다. 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산은 그 어떤 곳보다 해가 빨리 떨어졌다. 어두워지기 전에 산에서 벗어나야 했다.
강인이 말했다.
“이제 산에서 내려가야 해. 어서 서두르자. 날이 곧 어두워질 거 같아.”
“그래, 그래! 산이라면 이제 지겹다. 어서 빨리 산에서 내려가 집에 가자! 내 방에서 푹 쉬고 싶어.”
윤호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소년 소녀들이 사이좋게 물을 나눠마셨다. 그리고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
연구소 입구에서 이어지는 산길은 무척 좁았다. 능선은 굽이쳤다.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등산객들이 다니는 넓은 등산로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제대로 가는 게 맞아?”
윤호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강인이 이건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산속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졌고 수목은 갈수록 빽빽해졌다. 우거진 숲이라 가까운 곳만 보였고, 먼 곳은 보이지도 않았다. 습기도 점점 높아졌다.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여기가 대체 어디지?”“글쎄!”
강인이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여기가 어디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명덕산은 큰 산이었다. 산이 깊고 험했다. 계곡만 많았다.
“길을 잃은 거 같은데 ….”
반장 진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아이들은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
잠시 후 저녁 무렵처럼 날이 어두워졌다. 곧 해가 떨어질 거 같았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산속은 무척이나 위험했다. 야생 동물이 갑자기 튀어나와 아이들을 공격할 수 있었다.
“이를 어떡하지?”
윤호가 벌벌 떨며 말했다. 아이들이 강인만 쳐다봤다.
강인이 대답 대신 산세를 잠시 살폈다.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단을 내렸다.
“일단 밑으로 내려가자. 산길을 따라가지 말고 무조건 산 밑으로 내려가자!”
“뭐? 아래로 무작정 내려가자고?”
윤호가 놀란 표정으로 산 밑을 내려다봤다. 산세가 무척이나 험했다. 내려가는 길은 없었다. 굽이치는 계곡을 따라서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는 위험한 일이었다.
강인이 앞장섰다. 그가 말했다.
“여기는 산 중턱이 분명해. 조금만 더 내려가면 산 밑으로 내려갈 수 있어. 힘을 내자. 내려가는 길은 없지만, 조심해서 천천히 움직이면 돼.
깜깜해지면 움직일 수도 없어. 밤에 꽤 추울 거야. 얼어 죽을 수 있어. 아빠가 그랬어. 산에서 강풍이 불면 사지가 얼어서 움직일 수 없다고. 그래서 산에서 얼어 죽은 사람이 많다고 말씀하셨어.
아빠도 혼자 산에 갔다가 강풍에 한쪽 무릎이 얼어서 겨우 산에서 내려왔다고 하셨어.”
“아이고!”
밤새 얼어 죽는다는 말에 아이들이 기겁했다. 동철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내가 내려가는 길을 뚫을게. 나를 따라서 내려와. 이제 힘이 나! 내가 힘이 제일 세니, 내가 앞장설게.”
“그래, 알았어. 동철만 믿을게.”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동철이 앞장섰다.
그렇게 아이들이 산에서 내려갔다. 길은 없었지만, 계곡을 따라 내려가며 어떻게든 길을 뚫었다.
나뭇가지에 옷이 찢기고 여기저기 상처가 났지만, 쉴 수가 없었다. 해가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기가 점점 심해졌다. 습도도 높아서 땀도 많이 났다.
“어서 서두르자!”
동철이 힘을 냈다. 반장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둘이 맨 앞과 맨 뒤를 책임졌다. 강인과 윤호, 진주는 중간에 있었다.
10분 후 앞장서서 내려가던 동철이 걸음을 멈췄다. 평평한 곳에 도착했다. 저 앞에 산길이 보였다.
동철이 산길을 보고 급히 말했다.
“여기에 길이 있어. 그런데 두 갈래 길이야. 어디로 가야 하지?”
“그래?”
강인이 그 말을 듣고 앞으로 나왔다. 두 갈래 길을 확인하고 사방을 살폈다. 여기는 수풀이 우거진 공터 같은 곳이었다.
이제 날이 어두워졌다. 길이 희미하게 보였다. 두 갈래 길 모두 깊은 숲속으로 향했다. 깊은 숲속은 숯처럼 새까맸다.
“아아! 추워!”
진주가 몸을 벌벌 떨었다. 심한 한기를 느낀 게 분명했다. 그녀가 강인에게 말했다.
“강인 오빠! 너무 추워. 몸이 막 떨려!”
강인이 서둘러 말했다.
“점퍼가 있으면 진주에게 줘.”
“알았어.”
윤호가 답을 하고 가방에서 점퍼를 꺼냈다. 점퍼를 진주에게 건넸다. 진주가 급히 점퍼를 입었다.
숲속 한기는 무서운 동장군과 같았다. 그 한기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갈 수 있었다.
강인이 두 갈래 길에서 갈피를 못 잡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잠시 서 있었을 때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거기서 뭐 하냐?”
“응?”
강인이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목소리는 두 갈래 길 중 오른쪽 길에서 들린 거 같았다.
“누구야?”
강인이 크게 외쳤다. 그 소리가 공터에서 크게 울렸다.
이윽고 발소리가 들렸다. 두 갈래 길 중 오른쪽 길에서 들렸다.
조용한 공터라 그 소리가 크게 들렸다.
“누구지?”
발소리를 듣고 강인이 긴장했다. 양 입술에 침을 잔뜩 묻혔다. 바로 그때
숯처럼 새까만 숲속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소년이었다.
소년 탐정단에게 양갱을 권하고 비밀 연구실에 불을 지른 더벅머리 소년이었다.
그가 다시 등장했다. 두 갈래 길 중 오른쪽 길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헉!”
강인이 다시 등장한 더벅머리 소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윤호와 반장 진호도 더벅머리 소년을 보고 놀란 나머지 몸이 굳어버렸다.
더벅머리 소년이 실실 웃기 시작했다.
“흐흐흐!”
그 웃음소리가 소름이 끼쳤다. 강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공터에 긴장감이 넘치기 시작했다.
동철도 더벅머리 소년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뒤로 두 발 물러섰다.
더벅머리 소년은 채찍과 사탕을 든 두 얼굴의 사육사 같았다. 그가 소년 탐정단과 동철, 진주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강인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렇게 정신 차렸다.
실실 웃던 더벅머리 소년이 웃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용케도 거기에서 살아나왔구나. 잘했어. 사실, 그건 다 내 덕이었지. 내가 비밀번호를 가르쳐줬잖아.”
“뭐, 뭐라고?”
강인이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더벅머리 소년은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불을 지르기 전 비밀번호를 가르쳐준 건 맞지만, 소년 탐정단을 사지로 내몬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불 속에서 소년 탐정단은 겨우 살아남았다.
그런 짓을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덕분에 소년 탐정단이 살았다고 자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