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_17_다시 시작된 검은 피 저주

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by woodolee

“미정이가 뭐라고 말했다고? 또 싫다고 했겠지. 또 널 찼겠지!”


“아니, 이번에는 날 좋아한다고 말했어.”


“진, 진짜야?”


“그럼, 내가 비싼 술 먹고 거짓말하겠냐?”


“그 말을 도저히 못 믿겠다. 미정이가 널 받아주다니 … 헛소리도 이런 헛소리가 없다.

도도하신 얼음공주님이 절대 그럴 리 없어. 거짓말 좀 그만해!”


“진짜라니까!”


“이놈 뻥치는 건 우리 엄마도 잘 알아. 얘 별명이 초특급 울트라 뻥쟁이잖아. 신경 쓸 거 없어.

하도 많이 뻥을 쳐대서 숨 쉬는 거 빼고 믿을 게 하나도 없어.”


“이것들이! 이번에는 진짜라니까!”


“그래, 그래. 알았어. 진짜로 칠게. 그렇게 믿어줄게. 됐지? 술이나 계속 빨자. 술은 역시 낮술이 최고야!”


“맞아! 낮술이 최고지. 대낮부터 취하면 기분이 그만이잖아. 기분이 알딸딸할 게, 세상이 다 내 꺼 같아.”


“그렇기는 하지만, 부작용이 있어. 땅이 마구 흔들리고 전봇대가 막 걸어오더라고.”


“그래서 전봇대랑 한판 붙었잖아.”


“그랬지. 전봇대한테 원투를 날리고 다리를 걸어서 넘어트리려고 했지.”


“하하하! 오늘도 전봇대랑 한판 붙어봐! 치료비는 내가 낼게. 자, 건배!”


남자 넷이 왁자지껄 떠들었다. 모두 20대 후반이었다. 흥이 겨운지 커다란 잔을 들고 쨍! 부딪혔다. 피쳐 잔이었다. 맥주 1리터가 가득 차 있었었다.


“캬악!”


“쥑인다! 역시 이 맛이야!”


“그치. 여기 생맥주는 다른 곳과 차원이 달라, 다른 곳은 맹물이잖아. 여기는 아주 진한 맛이야. 최고지. 목 넘김이 아주 제대로야!”


“맞아! 맞아.”


넷이 계속 술을 마셔댔다.


뚱뚱한 청년이 앞에 있는 마른 청년에게 말했다.


“명세야. 참 오랜만이다. 이젠 술도 잘 먹네. 몸이 좋아진 거야.”


“그럼! 이제 다 나았어!”


마른 남자가 크게 소리치고 맥주잔을 쭉 들이켰다. 그렇게 1리터의 반을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크하하하!”


명세라 불린 남자가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그는 이명세였다. 키가 크고 말랐다. 검은 테 안경을 쓴 모범생이었다. 아이보리색 스웨터와 네이비색 바지를 입었다.


이명세가 고소한 먹태를 먹으며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병이 다 나은 거 같아.”


선생님이라는 말에 친구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누구야? 네 병을 고친 사람이야?”


“그런 용한 선생님이 있었어? 어떻게 찾은 거야?”


이명세가 아! 하며 입을 크게 벌렸다.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먹태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을 이었다.


“그분은 … 신과 같은 분이야. 그분 덕분에 많은 사람이 병을 고쳤어. 나도 그중의 하나야. 은인이지. 한마디로 커다란 은인이야! 신을 만났어.”


“뭐? 신이라고? 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친구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이명세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이명세가 남은 술을 쭉 들이켰다. 그가 말했다.


“너희는 선생님을 잘 몰라. 그분은 아픈 사람을 무상으로 고쳐주고 진실의 길로 인도하는 분이야.

너희 같은 놈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분이지. 그분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모두 그분의 제자가 됐어. 나도 마찬가지야. 그분의 뜻을 따르기로 했어.”


“명세야!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말하는 거 보니까, 무슨 사이비 종교에 빠진 거 같은데 ….”


“맞아, 그런 냄새가 나는데 ….”


사이비라는 말이 들리자, 이명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굴이 커다란 분노로 일그러졌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크게 외쳤다.


“이것들이! 감히 선생님을 모함하다니! 선생님을 사이비라고? 어디에서 감히 그런 개소리 하냐? 이는 천벌 받을 일이야!”


“며, 명세야? 왜 이래?”


“갑자기 몸이 좋아졌다고 들었는데 … 애 성격이 이상해졌네. 머리가 돈 거 같아.”


“맞아, 예전 명세 같지 않아.”


이명세가 고개를 마구 흔들어댔다. 그가 다시 크게 외쳤다. 목소리에 분노가 쩔었다.


“나는 선생님 덕분에 몹쓸 병을 고쳤어. 그동안 어떤 의사도 고치지 못한 병이었어. 그분은 내 은인이고 내가 진정으로 따르는 선생님이야.

감히 네놈들이 선생님을 모함하다니 … 너희는 오늘부터 내 친구가 아니다!

이 빌어먹을 놈들 모두 날벼락을 맞아서 뒤질 놈들! 하늘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군.

선생님은 하늘이 내린 분이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구세주야! 말 그대로 신이라고!”


“뭐, 뭐라고?”


“명세가 진짜 이상해졌다.”


“사이비에 빠진 게 분명해. 큰일이다.”


친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명세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고 여겼다.


“너희들 진짜!!”


친구들이 수군거리자, 이명세가 분을 참을 수 없었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옆 테이블에 있는 흰색 파카 확 잡더니 옷을 서둘러 입었다. 옷을 다 입자, 친구들에게 삿대질하며 외쳤다.


“오랜만에 만나자고 해서 나왔더니, 감히 나를 무시해! 아니 선생님을 무시해!

괜히 나왔어. 정말 괜히 나왔어. 앞으로 너희 같은 놈들은 상종하지 않겠다. 수준 떨어지는 저질은 폐기처분이 정답이지. 어리석은 놈들!”


이명세가 등을 획 돌리고 출입문를 향해 걸어갔다. 씩씩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윽고 쾅! 하며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이명세가 화를 참지 못하고 출입문을 냅다 걷어 차버렸다.


출입문이 열리자,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어두컴컴한 계단이었다.


이명세가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명세가 화가 단단히 난 거 같은데 ….”


“우리가 너무 심하게 말한 거 같아.”


“맞아, 예전과 달리 몸이 좋아진 건 분명해. 선생님이란 자한테 도움을 받은 거 같아.”


“명세는 고질병이었잖아. 고칠 수 없는 병인데 … 선생님이란 자가 그 병을 고쳤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야?”


“고쳤으니 … 술을 그렇게 마셨겠지. 예전에는 술을 입에도 대지 못했잖아.”


“그런데, 말하는 걸 보면 사이비 종교에 빠진 거 같아.”


“이제 명세가 사이비에 의존하는 거야? 아무리 아파도 사이비는 아니지. 그건 아니야.”


친구들이 다시 술을 마셨다. 이명세가 화를 내고 사라지자, 술맛이 나지 않는 듯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그중의 하나가 말했다.


“우리가 너무 심했던 거 같다. 명세를 달래주자.”


“그래, 그래. 그게 좋겠다. 그동안 아팠던 명세가 멀쩡해 보였어. 몸이 좋아졌으니 잘된 일이잖아.”


“알았어. 내가 잘 달래서 데리고 올게.”


뚱뚱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입문으로 걸어갔다.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이명세에게 전화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신호음이 울렸지만, 이명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뚱뚱한 남자가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 그가 중얼거렸다.


“제발, 전화 좀 받아라!”


뚱뚱한 남자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이명세가 단단히 화가 난 거 같았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15개였다. 뚱뚱한 남자가 계단을 올랐다. 어두컴컴한 계단 위로 밝은 지상이 보였다. 강한 햇빛이 작렬했다.


밖은 아주 환했다. 아주 화창한 날이었다.


뚱뚱한 남자가 지상에 올랐다.


“아이고!”


뚱뚱한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상에 오르자, 강한 햇빛에 눈이 부셨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삐리릭!



그건 핸드폰 벨 소리였다.


“이 소리는?”


뚱뚱한 남자가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소리는 왼쪽에서 들렸다.


“명세 핸드폰 소린가? 그럼, 근처에 있다는 말인데 ….”


뚱뚱한 남자가 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가 잔뜩 난 이명세가 멀리 가지 않고 근처에 있다면 전화를 받아야 했다. 퉁명부리며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닌가?”


뚱뚱한 남자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핸드폰 벨 소리가 뚝 그쳤다.


“명세가 이 근처에 있구나! 그런데 왜 전화를 안 받지? 아직도 삐졌나? 아주 단단히 삐진 거 같은데 … .”


뚱뚱한 남자가 다시 이명세에게 전화 걸었다. 신호음이 들리자 핸드폰 벨 소리도 들렸다.



삐리릭!



핸드폰 벨 소리가 계속 울렸다. 벨 소리만 들릴 뿐 이명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명세야!”


뚱뚱한 남자가 크게 외치고 걸음을 옮겼다. 벨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서 걸어갔다.


인도를 따라서 걸어가자, 벨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10초 후 뚱뚱한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왼쪽에 있는 골목에서 벨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여기에 있나?”


뚱뚱한 남자가 골목 앞에서 기웃거렸다. 이곳은 술집 옆에 있는 작은 골목이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으슥한 곳이었다. 건물들 사이에 있어 깊은 그늘이 졌다.



삐리릭!



핸드폰 벨 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 소리가 아주 선명했다.


“명세야! 거기 있으며 답을 해줘!”


골목에서 어떤 답도 없었다. 핸드폰 벨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거, 이상하네.”


뚱뚱한 남자가 골목 앞에서 머뭇거리다 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골목 안이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둠 속에 뭔가가 웅크리고 있는 거 같았다.


환한 대낮과 어두운 골목의 대비가 극단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뚱뚱한 남자가 무척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명세야? 거기 있니?”


여전히 아무런 답이 없었다.


대신 핸드폰 벨 소리만 들렸다.



삐리릭!



벨 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상하네.”


뚱뚱한 남자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


깊은 어둠 속에서 음산함이 더해갔다. 대낮이었지만, 이곳은 밤 9시 같았다.


저 앞에 커다란 음식물 쓰레기통이 있었다. 고약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뚱뚱한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냄새가 역겨운 거 같았다. 그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지나쳤을 때,


“헉!”


뭔가가 보였다. 음식물 쓰레기통 밑으로 신발이 보였다. 새로 산 운동화였다.



삐리릭!



그곳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이명세가 여기에 있는 게 분명했다.



삐리릭!



벨 소리가 아주 크게 울렸다. 무척 다급한 소리 같았다.


“명세야!”


뚱뚱한 남자가 급히 움직였다. 음식물 쓰레기통 뒤편으로 이동했을 때, 바로 그때!


“앗!!”


뚱뚱한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커다란 음식물 쓰레기통 뒤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하얀색 파카를 입은 남자 이명세였다.


근처에 검은 테 안경이 떨어져 있었다. 이명세의 입에서 뭔가가 흘러나왔다. 그건 검디검은 검은 피였다. 시커먼 피가 이명세의 한쪽 얼굴을 검게 물들였다.


“악!”


골목에서 커다란 비명이 들렸다.


이명세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죽기 전 엄청난 고통을 느낀 듯 두 눈을 감지 못했다. 그 고통을 대변하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명세야!”


큰 소리가 들렸다. 다급한 외침이었다.


30초의 시간이 지났다.


뚱뚱한 남자가 으슥한 골목에서 뛰어나왔다. 급히 지하 술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지상 출입구로 술집 주인과 손님 넷이 나왔다. 그들이 으슥한 골목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명, 명세야!”


“사람이 죽은 거 같아요!”


“빨리 119에 신고해요!”


“어찌 이런 일이!!”


환한 대낮에 큰일이 벌어졌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2분 후 경찰차 한 대가 골목으로 달려왔다. 뒤이어 119구급차도 모습을 보였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 둘이 시신을 확인했다. 시신은 으슥한 골목 음식물 쓰레기통 뒤편에서 많은 검은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


경찰이 급히 상부에 사망자를 보고했다.


“사망자가 있습니다! 계상구 동산동 브라보 호프집 옆 골목에서 20대 남자, 이명세가 검은 피를 대량으로 토하고 죽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인천에서 한 남자가 검은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는 젊은 남자였다. 지병이 있었지만, 그렇게 쉽사리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1996년 명덕산 비밀 동굴에서 지남철 박사가 검은 피를 토하고 죽은 후 29년이 지났다.


검은 피의 저주가 다시 시작됐다. 시작은 인천이었다. 다음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처참한 저주가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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