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_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 그럼 이상으로 말을 마칩니다. JS 그룹의 부회장 송상하, 저를 지켜봐 주세요.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습니다.
이제 세상은 JS의 시대입니다. 감사합니다. NEW & FRESH!”
송상하 부회장이 연설을 마치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
“송상하!”
“송상하!”
“와아!!”
손님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보냈다. 행사장이 떠날 거 같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도 들렸다.
커다란 소리 속에서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앞에 있는 단을 향해 유강인이 계속 걸음을 옮겼다. 우레 같은 소리가 그의 심장을 압박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상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인 JS 그룹이었다. 박수 소리가 끝날 무렵 단 앞에 섰다.
“응?”
두 팔을 들고 환호성에 답례하던 송부회장의 두 눈이 커졌다. 단 아래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가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 사람은!”
사회자가 깜짝 놀랐다. 느닷없이 불청객이 나타났다. 이에 서둘러 단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 이어폰으로 소식이 전해졌다.
“유강인 탐정님이 단 아래에 있습니다. 부회장님께 할 말이 있답니다.”
“뭐? 유강인 탐정이라고?”
사회자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기업 행사장에 범인을 쫓는 탐정 유강인이 등장했다.
유강인 앞에 걸음을 멈춘 사회자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가 당황하고 있을 때, 유강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큰 목소리였다.
“저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오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손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그들도 유강인 이름 석 자를 잘 알고 있었다. TV에서 봤던 유강인을 직접 보자, 너도나도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이 유강인이야?”
“맞아, 그런 거 같아.”
“그런데 여기에 왜 온 거지?”
“축하하러 온 거겠지.”
“그런데 이건 좀 예의가 없는 거 같은데 ….”
진실을 찾는 유강인이 등장하자, 송상하 부회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어서 자리를 피하고 싶은 거 같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게 분명했다.
그 모습을 보고 유강인이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담판을 져야 했다. 송부회장이 자리를 피하기 전에 담판을 져야 했다. 박재영을 대신해 진실을 밝혀야 했다.
유강인이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상하 부회장님! 박재영씨를 아시나요?”
“뭐라고요? 그, 그게 ….”
박재영이라는 말에 송상하 부회장이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범행을 자백하는 꼴이었다.
유강인이 씩 웃었다. 그가 손뼉을 짝 쳤다.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리자, 유강인이 들어왔던 뒷문이 다시 열렸다. 형사 둘이 한 명을 호위했다. 휠체어에 탄 사람이었다.
바로 박재영이었다. 박재영은 의식을 회복한 후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아침이 되자, 식사도 할 수 있었다.
휠체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을 향해서 천천히 움직였다.
송부회장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박재영의 얼굴이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아버지를 보는 듯했다. 젊은 날의 아버지 모습이었다.
“헉!”
송상하 부회장이 비틀거렸다. 마치 못 볼 걸 본 거 같았다.
얼굴이 붓고 피멍이 든 박재영이 이를 악물었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했지만, 그의 분노는 천장을 뚫고 하늘로 올라갈 기세였다.
유강인이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휠체어를 타고 오신 분은 박재영씨입니다. JS 그룹 송해성 회장님이 이분을 직접 찾아서 친자 검사까지 했습니다. 회장님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친. 친자 검사라고?”
“이게 대체 뭔 소리야? 저 사람이 회장님 아들이란 말이야?”
“아들은 송해성 부회장님밖에 없는데 … 밑으로는 다 여동생뿐이잖아.”
친자 검사와 잃어버린 아들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동요했다. 이 말은 회장한테 다른 아들이 있다는 말과 같았다.
“으으으~!”
송상하 부회장이 급히 넥타이를 풀었다. 순간, 숨이 막혔던 거 같았다.
유강인이 추상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늘 한 가지를 요청하겠습니다. 그건 송해성 회장님과 박재영씨 사이의 친자 검사입니다.
앞서 조사를 했지만, 그 결과가 석연치 않습니다. 그래서 정확하면서도 공정한 추가 조사가 필요합니다.
회장님이 힘드시면 형님이신 송상하 부회장님이나 여동생들과 과연 형제인지 유전자 검사하고 싶습니다.”
“불일치라고! 결과는 불일치였어!!”
송부회장이 급히 소리쳤다. 그도 결과를 잘 알고 있었다.
유강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말했다.
“그 결과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불일치 결과가 나온 후 박재영씨는 납치되어 고문을 받고 죽을 뻔 했습니다. 죽기 전 간신히 구출했습니다.
박재영씨를 납치하고 고문을 가한 자들의 정체는 … 놀랍게도 JS 그룹 경호팀이었습니다.
그룹 자체에서 엄청난 일을 저질렀습니다. 이에 그룹을 책임지는 부회장님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회장님은 현재 와병 중이라 들었습니다. 회장님을 직접 만나고 싶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지금 뭐 하는 거야? 저놈을 쫓아내! 어서!!”
송상하 부회장이 길길이 날뛰었다.
유강인이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재조사를 거부한다면 …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하겠습니다. 소송에 응하지 않으면 패소입니다. 바로 박재영씨가 회장님 친자로 인정됩니다!”
“헉!”
송부회장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흔들거렸다. 그러다 폐부에 칼이 찔린 듯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유강인이 주변을 둘러봤다.
커다란 대강당에서 성대한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마치 부회장이 회사의 실세이고 그가 회장이 될 거라는 걸 기정사실화하는 거 같았다. 일종의 예비 대관식이었다.
유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지. 박재영씨는 … 아버지를 찾아야 해. 반드시! 그게 정의다.
그 누구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어. 그게 다른 아들일지라도 ….”
유강인의 등장으로 JS 그룹의 NEW & FRESH 행사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송상하 부회장이 급히 자리를 피했다. 사회자가 다시 단으로 올라왔다. 그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이, 이상으로 행사를 마칩니다. 귀빈 여러분 자리를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다과회는 취소합니다. 양해 부탁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러게 말이야?”
“JS 그룹에 무슨 큰일이 생긴 거 같은데 ….”
“친자 검사라니 … 회장님한테 다른 아들이 있다는 말이야? 휠체어를 타고 온 남자가 회장님 아들인 거야?”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왈가왈부하기 시작했다. 굴지의 대기업 JS 그룹이 졸지에 가십 거리가 되고 말았다.
박재영이 두 눈에서 눈물을 철철 흘렸다.
그는 당장 휠체어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걸을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왜 나한테 이런 짓을 저질렀냐며 따지고 싶은 거 같았다.
유강인이 박재영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박재영씨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진실을 곧 밝혀질 겁니다. 조금 더 기다리세요. 이제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유강인 탐정님.”
박재영이 힘들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제 박재영은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오늘은 JS 그룹에 그의 존재를 드러낸 날이었다. 그가 친자가 맞는다면 송씨 가문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
유강인과 조수 둘, 백정현 형사, 정찬우 형사가 급히 걸음을 옮겼다. 대강당에서 나와서 복도에서 상황을 살폈다.
그때 한 사람이 씩씩거리며 걸어왔다. 바로 김돈국 비서였다. 그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왜 어떤 언질도 주지 않고 이런 짓을 벌였죠? 이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김돈국 비서의 말에 유강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JS 그룹은 박재영씨에게 사전에 통보하고, 납치해서 고문했나요? 생매장할 거라고 사전에 알렸나요?”
“네에? 그, 그건 ….”
김비서가 말을 잇지 못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JS 그룹 경호팀이 박재영을 납치해서 고문하고 살해하려 한 건 사실이었다.
“왜 답을 못하시죠? 박재영씨는 모진 고문을 받고 죽을 뻔했습니다. 그는 아내와 자식이 있는 가장입니다. 그 사람이 당한 고통은 별거 아니고 송상하 부회장이 당한 망신은 대단한 건가요?”
김비서가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유강인에게 따졌다.
“송부회장님은 … JS 그룹을 이끌 차기 리더이고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인재입니다. 타임지에도 곧 실린 분입니다. 그분에게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송부회장은 철저한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박재영씨 납치에 관여했는지 그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
“아닙니다!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부회장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저는 30년 넘게 회장님을 보필하면서 부회장님을 어릴 때부터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부회장님은 언제나 인자했고 자상했습니다. 남을 해칠 분이 아니란 말입니다!”
유강인이 지지 않고 맞섰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합니다. 정황상 송부회장이 이 모든 일을 지시한 게 유력합니다.”
“으으으~!”
김돈국 비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입을 꾹 다물었다. 유강인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거 같았다.
JS 그룹은 그가 성인이 된 후 줄곧 몸담은 곳이었다. JS 그룹이 무너지면 그 자신도 무너지는 거 같았다.
그때 다른 비서들이 김비서를 향해 달려왔다. 비서들이 크게 외쳤다.
“비서실장님, 기자들이 몰려왔습니다. 행사 취재가 아니라 이젠 회장님 친자에 관해 물어보고 있습니다.”
“벌써 인터넷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비서 하나가 핸드폰을 김돈국 비서에게 건넸다. 유명 유튜버 라이브왕이 속보를 전달했다.
“시청자 여러분, JS 그룹 NEW & FRESH 행사장에 나온 라이브왕입니다.
뜻밖의 소식이 있습니다. JS 그룹 회장님한테 다른 아들이 있다고 합니다. 정황상 혼외자식 같습니다.
유강인 탐정님이 갑자기 행사장에 나타나서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한다고 말했습니다.
혼외자식으로 보이는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경찰과 함께 행사장에 나타났습니다. 얼굴이 엉망인 것으로 보아 모진 구타를 당한 거 같았습니다. 그 사람을 누가 때렸을까요? 그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돌아가는 상황상 누가 때렸는지 짐작이 갑니다.”
“뭐, 뭐야? 제기랄!! XXXXX!”
김비서가 분을 참지 못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마구 내뱉었다.
유강인이 한 발 앞으로 나갔다. 더욱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