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이 모든 일은 유전자 검사를 다시 하면 끝날입니다. 협조해주시죠. 협조하지 않으며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자 확인 소송이라는 말에 김돈국 비서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가 잠시 몸을 떨었다. 머릿속에서 해결책을 찾는 듯했다. 그러다 고개를 끄떡였다. 여기에서 물러서 수 없다는 눈치였다.
김비서가 강한 어조로 유강인에게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유전자 검사는 정확했습니다. 저는 그 검사 결과를 박재영씨에게 통보한 거뿐입니다.
그런데 경호팀 중 일부가 결과를 착각하고 박재영씨를 납치한 겁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억측은 말아주세요!”
“억측이라고요? 경호팀이 유전자 검사 결과를 착각했다고요? 불일치를 일치라고 오인했다고요?”
“조사 결과가 … 그, 그렇습니다.”
“제가 바보로 보이나요? 정녕 그렇게 생각합니까?”
“…….”
김돈국 비서가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생각해도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유전자 검사 결과를 착각한 경호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박재영을 납치하고 죽이려 했다. 이건 너무나도 간 큰 행동이었다.
항상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는 경호팀이 그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이런 짓을 벌였다는 건 그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김비서님, 막무가내로 우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박재영씨 유전자를 회장님이나 회장님 자식 유전자와 비교 분석하면 친자인지 친형제인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
김돈국 비서가 할 말이 없는 듯 답을 못했다.
유강인이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곳곳에서 JS 그룹 직원들이 허둥대고 있었다. 한마디로 비상사태였다.
“으휴~!”
김비서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사태를 대충 무마하려고 했지만, 일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유강인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김비서님, 회장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회장님이 직접 박재영씨를 지목했습니다. 회장님을 조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회장님이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하셨죠. 그 점이 매우 수상합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으려 하자, 불상사가 생겼습니다. 이점도 면밀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회장을 만나야 한다는 말에 김비서가 급히 말했다.
“회장님은 원래 몸이 편찮으셨습니다. 그래서 언제 쓰러지셔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면회 불가입니다.”
“김비서님, 지금은 비상 상황입니다. 박재영씨가 회장님이 찾는 아들이라면 어떡하실 겁니까?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회장님과 박재영씨는 유전자 검사를 다시 해야 합니다.
회장님을 반드시 만나야겠습니다. 만약 조사를 거부하면 관련자들을 싹 다 소환 조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 소환 조사요?”
“네, 현재 박재영씨 납치 사건과 천일수씨 살인 사건을 한 사건으로 묶어서 수사 중입니다. 이 일이 살인 사건하고도 관련될 수 있습니다.”
“사, 살인 사건이요? 그런데 천일수씨라고요?”
“네, 영화감독 천일수씨가 살해당했습니다. 그 사건에 JS 경호팀이 연관된 거 같습니다. 천일수씨를 살해한 자가 경호팀과 같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김돈국 비서가 깜짝 놀랐다. 그도 천일수를 아는 듯했다. 살인 사건이라는 말에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눈동자가 급히 이리저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자기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머리를 굴리는 거 같았다.
잠시 후 김비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회장님께 연락하겠습니다. 유강인 탐정님이 회장님과 면회가 가능한지 알아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서둘러 주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JS 그룹에 악영향일 뿐입니다.
박재영씨 납치, 살인 미수 사건에 JS 그룹 경호팀이 연루된 게 밝혀졌습니다.
이는 개인의 일탈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경찰에 잡힌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여섯 명이나 체포됐습니다. 그중에 경호팀장도 있습니다.”
“자그마치 여섯 명이라고요?”
김돈국 비서가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그는 두 명만 체포됐다는 축소 보고를 받았었다.
“둘이 아니라 여섯이라고요?”
김비서가 몇 초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기도 이용당했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다급한 상황을 깨달은 거 같았다.
여기저기서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웅성거리는 소리, 급할 발소리가 섞여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휴우~!”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의도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오면서 파란을 일으키기로 마음먹었다. 병원을 찾아온 김돈국 비서한테 박재영이 곧 죽을 거라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김비서는 정보통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김돈국 비서한테 거짓 정보를 들은 부회장이 안심한 틈을 타 그의 허점을 찔렀다. 갑자기 박재영이 등장하자, 부회장은 놀란 나머지 크게 당황했다.
예상대로 회사에 큰 소란이 일었다. 적들이 우왕좌왕하는 게 눈에 선했다.
한바탕 큰 폭풍이 쓸고 간 거 같았다. 그가 생각했다.
‘송해상 회장을 반드시 만나야 해. 그래야 사건의 진상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
10분의 시간이 흘렀다.
유강인이 초조한 표정으로 김돈국 비서의 연락을 기다렸다.
삐리릭!
백정현 형사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가 급히 전화 받았다. 김비서의 전화였다.
“네, 백정현 형사입니다.”
“유탐정님을 바꿔주세요.”
“알겠습니다.”
백형사가 핸드폰을 유강인에게 건넸다. 유강인이 핸드폰을 받고 말했다.
“네, 탐정 유강인입니다.”
“유탐정님, 부회장님이 면회를 허락했습니다. JS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병원 특급실에 회장님이 입원해 있습니다.”
“그렇군요. 김비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죠?”
“저는 사태를 수습해야 합니다. 부회장님이 특별 지시를 내렸습니다. 회사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 상황에서 자신이 나서기는 힘들다며 제가 주축이 돼서 상황을 정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본사에 남아서 사장단과 함께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병원에 이미 연락했습니다. 병원에 가시면 병원장님이 회장님 병실을 안내할 겁니다.”
“병원은 어디에 있죠?”
“서울 근교에 있습니다. 성남입니다. 여기에서 멀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병원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형사들에게 말했다.
“지금 JS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모두 병원으로 출동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정찬우 형사와 백정현 형사가 씩씩하게 답했다.
**
JS 병원은 유명한 종합 병원이었다.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대형 병원이었다.
서울 강남구에 인접한 성남시에 있었다. 20층 높이 하얀 건물이 여러 채가 저 멀리에 보였다.
탐정단 밴과 경찰차 두 대가 병원으로 향했다.
운전하던 황수지가 병원 건물을 보고 말했다.
“저기에 병원이 보이네요. 10분 이내에 도착할 거 같습니다.”
“길도 막히지 않고 일이 일사천리로 풀리네요.”
황정수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선임 조수의 말대로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덫을 놓은 교활한 악인들을 잡을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한 사람은 아버지를 죽였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경찰에 잡혔고 다른 사람은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으려고 유전자 검사에 응했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죽을 뻔했다.
둘 다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선량한 사람들이 지옥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차들이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따라서 쾌속 질주했다.
잠시 후 병원 앞에 도착했다.
차를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탐정단과 수사팀이 차에서 내렸다. 그들이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회장이 입원한 병실은 본관 20층이었다. 20층에 특급 병실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신속하게 위로 올라갔다.
1층 2층 3층 …… 10층
유강인이 초조함을 느낀 듯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회장은 현재 위독한 상태였다. 회장이 죽으면 진실을 밝히기 어려울 거 같았다. 그가 살아있을 때 진실을 밝혀야 했다.
그가 시시각각 변하는 엘리베이터 숫자를 보면서 생각했다.
‘천지호 살인 사건과 박재영 납치 사건은 그 계획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의 솜씨가 아니야. 전문가의 냄새가 풍겨.
부회장이 친위대인 경호팀을 움직였겠지만, 재벌 3세로 왕자 대접을 받으며 살아온 그가 이런 계획을 짜기는 힘들어.
계획을 짠 놈은 따로 있을 거야. 그놈도 반드시 잡아야 해. 그놈이 가장 악랄하고 악독한 놈이야.
억울한 사람을 두 명이나 만들려고 했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그놈의 고약한 심보를 두고 볼 수 없어.’
그때 땡! 소리가 들렸다. 20층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열렸다.
유강인이 서둘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앞에 병원장과 부원장이 그를 마중 나왔다.
병원장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JS 병원 병원장 엄탁호입니다.”
유강인도 인사하고 말했다.
“병원장님, 회장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엄원장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회장님을 보시는 건 가능합니다. 현재 의식불명 상태라 면담을 할 수는 없습니다.”
“계속 의식불명 상태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상태가 위중합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병원장이 살아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후계자 부회장 송상하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어머니가 다르지만, 형제일 수 있는 박재영을 죽이려 했다.
그런 인물이라면 병약한 아버지도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눈 한 번 깜박하지 않고 무자비한 짓을 벌일 수 있었다.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유강인이 서둘러 움직였다. 50년간 잃어버린 아들을 찾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진 점이 무척이나 수상했다. 회장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 같았다.
특급 병실은 복도 끝에 있었다. 엄원장이 출입문 가까이 가자,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보안실에서 병원장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특급 병실은 무척이나 화려했다. 특급 호텔을 방불케 했다. 병실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스위트룸 같았다.
최고급 침대와 최고급 장,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널찍한 뷰가 화려했다. 커다란 통창문 너머로 먼 산이 보였다.
침대에 한 노인이 누워있었다. 병원장이 말대로 의식불명 상태 같았다.
꼼짝없이 누워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바이탈 사인(환자 감시장치) 모니터에서 맥박, 체온, 혈중 산소 농도 등을 표시했다.
그래프가 움직이는 거로 봐서 살아있는 게 분명했다.
유강인이 침대 앞에 서서 환자를 살폈다. 딱 보기에도 고령이었다. 피부가 하얀 게 병약해 보였다. 얼굴과 몸에 살집이 많았다.
“음!”
유강인이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엄원장이 입을 열었다.
“회장님은 현재 안정 상태입니다.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할 거 같습니다. 언제 깨어나실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돌려 통창문 밖을 내다봤다. 먼 산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형사, 그분을 모셔와.”
“네, 알겠습니다.”
정찬우 형사가 답을 하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분이라니요? 또 다른 분이 오기로 했나요?”
엄원장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이 말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5분 후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정형사가 50대 남자와 함께 병실에 들어왔다. 50대 남자가 유강인을 향해 걸어갔다.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경비팀장님, 이분이 회장님이 맞나요?”
정찬우 형사가 데려온 사람은 JS 그룹 본사 경비팀장이었다. 20년간 본사 경비를 책임진 인물이었다. 침대에 누운 환자를 유심히 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이분은 회장님이 아닙니다. 제가 20년 이상 회장님을 매일 봐왔습니다. 회장님은 항상 정문으로 출근하셨습니다. 비가 눈이 오나 변함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회장님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입니다. 외모가 비슷한 사람입니다.”
경비팀장의 말에 유강인이 고개를 획 돌렸다. 이를 악물고 엄원장을 찾았다.
“아~, 그, 그게 ….”
엄원장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결국, 왼쪽 무릎이 꺾이고 주저앉고 말았다.
유강인이 크게 외쳤다.
“원장님! 지금 나랑 장난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