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유강인이 동료들에게 말했다.
“병아리 2는 다른 아이들처럼 동굴 속에 갇혔던 아이입니다. 지남철 박사가 납치한 게 분명합니다.
병아리라는 이름은 실험체 별칭이고 2는 실험체 순서 같습니다. 병아리 2는 두 번째로 납치된 아이를 가리키는 거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 아이가 성인이 돼서 큰일을 저지르는 거군요. 어릴 적 큰일을 당해서 정신이 이상해진 거 같아요.”
황정수의 말에 원창수 형사가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거 같습니다. 납치돼서 실험 쥐 신세였으니 …. 정신이 이상해질 만한 상황입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황정수와 원형사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그가 원형사에게 말했다.
“원형사님, 29년 전 지남철 박사의 죽음은 인천의 사망자 셋과 양상이 같습니다. 셋의 죽음이 사이토카인 폭풍이라고 하셨죠?”
원창수 형사가 답했다.
“네, 맞습니다. 셋 다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사망했습니다. 이명세씨 부검 결과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사이토카인 폭풍!”
유강인이 사이토카인 폭풍을 읊조렸다.
원형사가 부검의한테 들은 사이토카인 폭풍을 설명했다.
“사이토 카인 폭풍은 급성 면역 이상 반응입니다. 면역 세포가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내전 상태입니다.
그 증세가 심하면 패혈증과 패혈성 쇼크가 발생해 사망할 수 있습니다. 패혈(敗血)은 말 그대로 피가 썩는다는 뜻입니다.”
유강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가 급히 말했다.
“그렇다면 검은 피가 바로 썩은 피였군요. 부패한 피가 밖으로 나온 거 군요.”
“네, 그런 거 같습니다. 자세한 건 부검의 정밀 부검이 필요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이었다.
“정황상, 지남철 박사도 심한 자가면역질환을 앓다가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사망한 거 같습니다. 썩은 피인 검은 피를 토해내고 그 자리에서 죽은 게 확실합니다.
인천 사망자들과 같은 죽음입니다. 따라서 29년 전 사건과 이번 사건의 공통점은 자가면역질환입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당시 지박사는 큰 병을 앓으며 연구를 했던 겁니다.
누가 죽인 게 아니라 그 지병 때문에 죽은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지박사 시신 옆에 약병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약병에서 알약이 튀어나와 사방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약이라고요?”
약이라는 말에 동료들이 생각했다.
황수지가 아! 하며 말했다.
“혹 지남철 박사가 … 자기 지병을 고치려고 무슨 연구를 한 게 아닐까요?”
“맞아, 그런 거 같네. 그래서 아이들을 납치까지 한 거 같아. 자기가 살려고 그런 짓을 한 거야.”
황정수가 맞장구쳤다.
유강인도 이에 동의했다. 바닥에 흩어져 있던 약은 지남철 박사의 지병인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약이 분명해 보였다.
“음!”
유강인이 한번 헛기침하고 29년 전 일을 떠올렸다. 지남철 박사의 최후를 상상했다. 머릿속 상상의 극장에 불이 들어왔다. 동굴 속 비밀 연구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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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자, 지남철 박사가 비밀 연구실에 있었다. 그가 갑자기 휘청거렸다. 입에서 검은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윽! 안돼!!”
지박사가 급히 움직였다. 책상으로 걸어가 책상 위에 있는 약병을 꽉 잡고 들어 올렸다.
그가 서둘러 약병 뚜껑을 열었다. 그러다 급한 나머지 약병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이런!”
약병이 바닥에 떨어졌다. 뚜껑이 활짝 열리며 하얀 알약이 쏟아져나왔다.
“젠장!”
지남철 박사가 약을 집으려 몸을 굽혔다. 그때 병세가 폭풍처럼 심해졌다. 사이토카인 폭풍이 시작됐다.
“윽!”
지박사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검은 피를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검디검은 검은 피를 토하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으으으~!”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렸다.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구실에 한 명이 더 있었다. 그는 두 번째 실험체 병아리 2, 더벅머리 소년이었다.
지남철 박사가 쓰러지자, 소년의 눈빛이 번쩍이며 빛났다. 소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움직이자, 뭔가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쇠사슬을 끄는 소리였다. 소년의 발목에 족쇄가 있었고 손목에 수갑이 있었다.
“아하!”
소년이 쓰러진 지남철 박사를 보고 쾌재를 불렀다.
“제, 제발! 살려줘! 약을!!”
지남철 박사가 병아리 2에게 제발 살려달라며 간청했다. 소년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지박사가 남아있는 힘을 자아냈다. 약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손가락 끝에 약이 닿지 않았다.
“흐흐흐!”
병아리 2가 비웃음을 흘리며 지남철 박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아저씨! 나쁜 아저씨.”
병아리 2가 지남철 박사를 불렀다.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지박사 앞에 걸음을 멈추더니 지박사의 몸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10초 후 열쇠를 꺼내더니 만족한 듯 쓱 미소를 지었다.
그 열쇠로 그동안 자신을 옥죄던 수갑과 족쇄를 풀었다. 그렇게 자유의 몸이 돼서 연구실 문 앞에 섰다.
“4592.”
병아리 2가 사전에 숙지한 비밀번호를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숫자 패드에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문이 활짝 열렸다.
“안녕, 지남철 박사님!”
병아리 2가 지남철 박사에게 안녕을 고하고 밖으로 나갔다.
“하하하!”
병아리 2가 크게 웃었다. 동굴 밖으로 나가서 간절히 바랐던 자유를 누렸다. 그러다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첫 번째 실험체인 병아리 1을 구해서 같이 동굴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후 병아리 2는 커다란 암석 위에 있었다. 동철을 찾아서 샛길을 걷는 소년 탐정단을 보고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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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인이 상상을 마쳤다. 극적인 단편 영화가 끝났다. 그럴듯한 시나리오였다. 그 시나리오를 동료들에게 말했다.
동료들이 그 얘기를 듣고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그럼, 병아리 2는 지남철 박사를 살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이잖아요.”
“병아리 2와 지남철 박사는 정말 악연이네요. 한쪽은 납치범이고 다른 한쪽은 죽어가는 사람을 방치했으니 ….”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분명, 지남철 박사와 병아리 2는 악연이었다.
그때 지박사는 죽었지만, 병아리 2는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았다. 그 병아리 2가 현재 성인이 됐다.
유강인이 말했다.
“그 병아리 2가 29년이 지난 후, 긴 잠을 깨고 활동하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을 꾸미는 게 같습니다. 배후 조종자는 병아리 2입니다.
병아리 2는 복수의 화신이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자입니다. 지남철 박사가 죽은 후, 병아리 2는 연구실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때 동철을 찾으러 나선 소년 탐정단이 연구실에 갇혔습니다. 병아리 2는 불을 지르기 전 소년 탐정단에게 문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를 가르쳐줬습니다.
그 비밀번호를 외우지 못했다면 소년 탐정단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을 겁니다. 병아리2는 선과 악이 공존한 야누스였습니다.”
“이거, 정말 미친놈이 나타난 거 같아요.”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미쳐도 단단히 미친 거 같습니다. 어릴 적 충격이 무척 컸던 거 같아요.”
유강인이 잠시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가 전열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어제 병아리 2가 택배를 보냈습니다. 그건 양갱 선물 세트였습니다. 양갱은 29년 전 일과 관련이 깊습니다.
29년 전 소년 탐정단이 병아리 2를 처음 만났을 때 병아리 2가 양갱을 권했습니다.
따라서 어제 집에 온 양갱은 병아리 2가 자기 정체를 밝힌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한판 붙어보자는 도전장입니다. 그 판은 병아리 2가 다 짜놓은 판입니다.”
황수지가 그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그녀가 급히 말했다. 다 짜 놓은 판이라는 말에 오금이 저렸다.
“탐정님, 그래서 어떡하시려고요?”
유강인이 씩 웃고 답했다.
“대결에 응해야지. 아주 불리한 상황이지만, 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인 만큼 피할 수 없어.”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동료들을 쭉 둘러봤다. 그가 정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제 지시에 잘 따라주세요.”
“이건 정말 불리한 싸움이잖아요! 이를 어째!”
황수지가 크게 말했다. 커다란 두려움을 느낀 듯 두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여태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그녀가 불안감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병아리 2라는 자가 이미 판을 다 짜 놨잖아요. … 어떻게 하시려고요? 너무나도 불리한 싸움이에요!”
“맞아요. 이건 불공정해요. 병아리 2가 유리한 위치에서 우리를 갖고 놀 것만 같아요. 뒤만 졸졸 따라가다가 끝나면 어떡해요!”
황정수도 이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유강인이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 짜진 판이라도 물러설 수 없어. … 병아리 2는 벌써 세 명이나 죽였어. 앞으로 몇 명이 더 죽을지 알 수 없어.
실종된 다섯도 조만간에 시체로 발견될 수 있어. 병아리 2는 자신을 납치했던 지남철 박사의 길을 뒤 따라가고 있어.
제2의 지남철 박사가 등장한 거야. 실험 쥐였던 병아리 2가 다른 사람을 실험 쥐로 이용하고 있어.”
“헉! 세상에!”
“이건 자기가 당했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일이잖아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말을 이었다.
“그렇지. 그래서 놈을 하루라도 빨리 잡아야 해. 놈이 벌이는 살인 게임에 뛰어들어 그 허점을 찾아야 해.
사람이 짠 판이라면 당연히 그 허점이 있기 마련이야. 분명 우리가 불리한 건 맞지만, 잘하면 이길 수 있어.”
“판을 뒤집을 방법이 있을까요?”
황정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강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건 … 신속이야! 신속하게 주어진 사건을 풀면서 놈을 뒤쫓아야 해.
놈의 계획은 단순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일 거야. 우리가 뒤쫓아올 때마다 어려운 문제를 던질 게 뻔해.
그 문제는 인명이 걸린 문제일 거야. 우리는 진상을 밝히기 위해 그 문제를 풀 수밖에 없어.
그렇게 우리보다 앞서 한 발 나갈 거야. 마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탐정님!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없잖아요!”
유강인이 힘을 주어 말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어. 우리의 전략은 단 하나야! 놈의 예상보다 한발 앞서서 사건을 풀며 달려야 해.
그렇게 하나하나 단서를 잡아야 해. 그러면 기회가 있을 거야. 놈의 예상보다 빨리 움직이는 거야.
토끼와 거북이 우화에서도 토끼가 방심할 때 거북이가 앞질렀어.
놈이 달리면 우리는 뛰어올라 하늘 높이 날아야 해! 그렇게 놈을 따라잡아서 놈의 최종 목표를 막아야 해!”
“아. 그렇군요.”
동료들이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한 줄기 희망은 있었다.
유강인이 여느 때처럼 자신감을 내비쳤다. 동료들은 그 자신감을 믿고 유강인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사건의 범인은 병아리 2가 확실해졌다. 중요한 건 병아리의 2의 정체와 그의 진짜 계획이었다.
유강인은 병아리 2를 29년 전에 만났었다. 하지만 워낙 오래전 일이라 병아리 2가 현재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병아리 2가 치밀하게 짠 계획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짙은 안갯속에 가려있었다.
유강인이 다짐했다.
‘그래, 병아리 2! 네 도전을 받아주마. 네 정체를 낱낱이 밝히고 네가 짠 계획을 만천하에 드러내겠다!’
유강인이 동료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이것으로 회의를 마칩니다. 집에서 푹 쇠고 내일 아침부터 본격적으로 수사에 매진하겠습니다. 내일부터 쉴 틈이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내일부터 전력 질주하겠습니다!”
“병아리 2 너는 죽었어. 저스티스 원창수 형사님의 불꽃 주먹맛을 보여주마!”
원창수 형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원형사다운 패기였다.
유강인이 그 소리를 듣고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유강인은 병아리 2와 대결을 시작했다. 병아리 2가 미리 짜놓은 판이었지만, 주저하지 않고 그 판에 뛰어들었다. 그래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밤이 점점 깊어졌다. 유강인이 숙소에 도착했다. 몸을 씻고 피곤을 풀었다. 그때 다른 곳에도 긴장감이 넘쳤다.
서울 강동구, 인광 연구소 10층 소장실에 불이 환했다. 환한 불빛과 함께 바람 소리도 들렸다. 커다란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