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소장실에 한 남자가 있었다. 찬 바람을 맞으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연구소 책임자, 지단길 박사였다.
지박사의 훤한 이마가 반짝거렸다. 조명을 받아서 구두의 광처럼 빛났다. 그가 금테 안경을 고쳐 썼다.
그때 딩동댕! 하며 인터폰 소리가 들렸다.
지단길 박사가 몸을 일으켰다. 책상으로 가서 인터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소장님! 박동철 경비 팀장님 오셨습니다.”
“어서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지박사가 입술에 침을 묻혔다. 혀를 날름거렸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거구의 남자가 소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경비 팀장 박동철이었다.
박동철이 지단길 박사를 보고 넙죽 절했다.
지박사가 입을 열었다.
“특별한 일이 있나요?”
“특별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유강인 탐정의 전화가 왔습니다.”
“유탐정이 먼저 전화했다는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무슨 용무였죠?”
“저번 축하 파티에 왜 초청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대답했죠?”
“소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전했습니다. 소장님이 유강인 탐정의 팬이라고 말했습니다.”
“하하하! 그렇군요. 유강인 그 작자가 그 말을 믿는 거 같았나요”
“제가 볼 때 못 미더워하는 거 같았습니다.”
“그렇겠죠. 지금쯤이면 내가 누구인지 잘 알 테니 …. 머리가 비상하다고 들었으니 29년 전 일을 기억할 겁니다.
유탐정한테 전하세요. 내가 만나고 싶다고 공손히 요청하세요. 약속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연락하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박동철이 공손히 인사하고 소장실 밖으로 나갔다. 문 닫는 소리가 들리자, 지단길 박사가 혀를 날름거리고 미소를 지었다.
그가 창문으로 걸어갔다. 창문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얼굴로 맞으며 혀를 계속 날름거렸다. 그가 생각했다.
‘그래, 유강인. 한번 만나보자고.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군. 그동안 네 말을 듣고 싶었어. 너는 아버지의 최후를 목격한 목격자야.
네 진술은 네 책임이 전혀 없다는 거였어. 네가 연구실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가 이미 죽었다고 말했어.
그런데 다른 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더군. 네 말이랑 완전히 달라. 유강인 네놈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했어.
누구의 말이 과연 진실일까? 난 단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야. 바로 너 너처럼!’
지단길 박사가 생각을 마치고 창문을 쾅 닫았다. 돌처럼 굳은 얼굴로 소파로 향했다. 그가 소파에 앉았을 때 인터폰이 다시 울렸다.
지박사가 인터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석 연구원님과 홍보팀장님 찾아오셨습니다.”
“오! 그래. 어서 들어오시라고 해.”
곧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 둘이 소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30대 여자들이었다. 둘의 외모가 비슷했다.
둘 다 키가 크고 말랐다. 긴 얼굴이었다. 헤어스타일만 확연히 다를 뿐이었다. 수석 연구원은 단발머리였고 홍보팀장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였다.
둘이 자매처럼 보였다. 지단길 박사가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 동생들이 왔군. 어서 자리에 앉아.”
여자 둘이 고개를 끄떡였다. 둘이 소파에 앉았다.
둘은 인광 연구소 수석 연구원과 홍보팀장이었다.
수석 연구원이 입을 열었다.
“오빠, 유강인을 만나려고요?”
홍보팀장도 입을 열었다.
“오빠, 유강인을 굳이 … 직접 만날 필요가 있을까요?”
지박사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수석 연구원이 뭔가가 불만인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옆에 앉은 홍보팀장을 째려봤다. 그녀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어디에서 오빠라는 말을 입에 담아? 넌 소장님이라고 불러! 하찮은 너에게 홍보팀장 자리를 줬더니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아,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홍보팀장이 안절부절못했다. 고양이 앞에 있는 쥐 같았다.
수석 연구원이 홍보팀장을 경멸하는 눈초리로 계속 째려봤다. 수석 연구원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첩의 자식 주제에!”
그 소리를 듣고 홍보팀장이 앞니를 꽉 깨물었다. 턱이 떨렸다.
“하하하!”
지단길 박사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고양이와 쥐 같은 둘의 모습을 보면서 참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 동생들, 싸우지 말아. 우리는 남매야. 엄마만 다를 뿐이지, 같은 아버지의 자식이야. 싸울 필요 없어.”
수석 연구원이 그래도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단길 박사가 말을 이었다.
“유강인 그자를 만나서 직접 물어볼 거야. 아버지 죽음에 관련이 있는지?”
수석 연구원이 급히 말했다.
“혹 유강인이 아니라 병아리 2라는 자가 아버지를 죽인 게 아닐까요? 병아리 2를 믿을 수 있나요?”
지단길 박사가 실실 웃었다. 그가 말했다.
“병아리 2는 우리에게 플로피 디스켓 5개를 보낸 자야. 그 디스켓 때문에 바이오클린 완성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어.
전임 수석 연구원님 연구는 사실 반쪽에 불과했어. 불이 난 연구실에서 가져온 자료는 아버지 연구의 핵심이 빠져 있었어.
병아리 2라는 자가 보낸 디스켓에 그 핵심이 있었어.
병아리 2는 디스켓을 보내서 우리 연구를 도운 자야 그런 자가 거짓말을 했을까?
병아리 2에게 큰 돈을 보냈어. 그렇게 그자와 계산이 끝났어.”
“그 병아리 2가 아버지 실험 쥐였다면서요?”
“그렇지.”
“실험 쥐라면 아버지를 원망하고 우리를 원망할 거 같은데, 정말 그자가 보낸 디스켓이 제대로 된 자료가 맞나요?”
“또 그러는구나. 전임 수석 연구원께서 다 확인한 사안이야. 그분은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는 조수였어.
그래서 아버지 연구를 누구보다 잘 알아. 디스켓 다섯 개는 분명히 아버지의 연구였어. 아버지의 유산이야.
그 연구 덕분에 바이오클린이 완성 단계에 온 거야. 이제 임상실험만 통과하면 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그렇군요.”
수석 연구원이 고개를 끄떡였다.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
지단길 박사가 홍보팀장에게 말했다.
“수미야, 몸은 괜찮아? 약 부작용은 없고?”
홍보팀장이 답했다.
“억제제 덕분에 지금은 괜찮습니다. 아직 부작용은 없습니다. 매일 상태를 체크하고 있습니다.”
홍보팀장의 이름은 지수미였다. 지단길 박사의 이복동생이었다. 그녀 옆에 있는 여자는 이복 언니이자 수석 연구원인 지정혜였다. 지단길과 지정혜는 친 남매사이였다.
지단길 박사가 이를 꽉 깨물었다. 그가 동생들에게 말했다.
“수미한테 병이 발병했어. 앞으로 우리도 어떻게 될지 몰라. 아버지처럼 검은 피를 토하고 죽을 수 있어.
삼촌들과 고모도 예전에 그렇게 돌아가셨어. 막내 삼촌은 현재 행방불명 상태야. 그분도 검은 피를 토하고 죽었을 거야.
우리에게 바이오클린은 마지막 희망이야. 우리가 이 저주를 끊어야 해. 우리 자식들도 우리 신세가 될 게 뻔해. 이제 바이오클린 완성이 코앞이야.
바이오클린을 반드시 성공해야 해.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죽어!”
“알겠습니다.”
동생들이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둘이 서로 쳐다봤다. 언니가 동생에게 미안한 듯했다. 아픈 동생에게 심한 말을 했다.
지단길 박사가 소파에 몸을 편히 기대고 말했다.
“이제 저주를 끊을 수 있어. … 저주를!”
**
밤이 더욱 깊어졌다.
인천에 아주 깊은 어둠이 내렸다. 모두가 깊이 잠들 밤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이 있었다.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처럼 깊은 밤에 꿈틀거리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은 넓은 방이다. 그 규모가 작은 강당 같았다. 조명은 밝지 않았다. 천장 조명이 무척이나 희미했다. 촛불을 매단 거 같았다. 다른 이의 인상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곳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활짝 열린 출입문으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후드가 달린 검은색 롱패딩을 입었다. 커다란 후드를 모두 뒤집어썼다.
발소리가 계속 들렸다. 신발을 벗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바닥은 시멘트였다. 모두 신발을 신고 안으로 들어왔다. 공사 중인 건물 같았다.
출입문으로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다. 대략 20명 정도의 사람이 들어오자, 문이 쾅! 하며 닫혔다. 그 소리가 컸다. 조용한 실내라 위압적인 소리였다.
사람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바닥에 방석이 없었다. 딱딱한 바닥이라 발과 다리가 아플 게 뻔했지만, 그들은 이를 개의치 않았다.
20여 명 사람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뭔가를 외우기 시작했다. 그건 기도문 같았고 주문 같았다.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계속 읊조렸다.
“맑게 갠 하늘 청천. 그날이 곧 오리라. 하늘의 뜻을 받든 신의 아들, 궁인이 오시네!”
“청천!”
“청천!!”
“거룩한 궁인의 뜻을 받들라!”
읊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들이 청천을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청천!!”
“청천!!”
그때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무척 높은 어조였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궁인이 곧 입장하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궁인에게 예를 갖추세요.”
“알겠습니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서둘러 일어났다. 그들이 몸을 뒤로 돌렸다. 저 앞에 보이는 출입문을 향해 허리를 공손히 굽혔다.
“궁인이시여!”
궁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출입문이 끼익! 하며 천천히 열렸다. 한 사람이 등장했다.
다른 사람처럼 롱패딩을 입고 커다란 후드를 뒤집어썼다.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었다. 그건 패딩의 색깔이었다.
그는 백옥처럼 새하얀 패딩을 입고 있었다. 바지도 마찬가지였다. 새하얀 북극곰이 그 모습을 드러낸 거 같았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남자였다. 그가 바로 궁인이었다.
궁인이 걸음을 옮겼다. 허리를 굽히는 사람들을 지나, 맨 앞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한 여자가 따랐다. 그 여자도 궁인처럼 하얀색 패딩을 입었다. 역시 커다란 후드를 뒤집어썼다.
궁인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뒤로 돌렸다. 신도들이 여전히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궁인이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무척 굵은 목소리였다. 화장실이나 목욕탕에서 울리는 목소리 같았다.
“여러분, 곧 그날이 옵니다. 우리의 고통은 그날이 오면 깨끗이 사라질 겁니다.”
신도들이 그 소리를 듣고 허리를 폈다. 그들이 누구라고 할 거 없이 울기 시작했다.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슬픔의 울음이 아니라 기쁨의 울음이었다.
궁인이 잠시 그 소리를 들었다. 그는 청천의 교주였다. 신도들은 그를 궁인이라고 불렀다.
궁인(窮人)은 궁극(窮極) 도를 깨달은 사람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었다. 그 옆에 있는 여자는 부교주였다. 궁녀(窮女)라 불렸다.
궁인이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두 팔을 더욱 높이 쳐들었다. Y자를 그리며 크게 외쳤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낙인이 찍힌 해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모진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이제 그 고통을 끝낼 때가 왔습니다. 저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이 고통을 끝낼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날은 천둥 번개가 치는 날이었습니다. 벼락이 수없이 떨어지는 광야에서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깨달았습니다. 제 능력이 무언인지 …
이제 마지막 절차가 남았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작은 기적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몸이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이건 완전한 게 아니었습니다. 일시적인 거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완전한 몸이 되기 위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죽을 거 같은 고통을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이 고통을 끝내기 위해 누군가는 희생해야 했습니다.
이 희생은 값진 것이며 찬양받아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최근에 세 분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제비뽑기로 뽑힌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으로 완전한 약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그분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면 안 됩니다. 이제 여러분의 고통을 끝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처럼 마음껏 뛰어다니고 놀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겁니다! 신세계입니다. 수십 년간 괴롭혔던 고통의 사슬을 단칼에 끊어낼 수 있습니다!”
신도들이 모두 울음을 멈췄다. 그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부교주, 궁녀가 크게 외쳤다.
“맑게 갠 하늘이 이제 곧 다가옵니다. 궁인의 말에 절대 복종하세요! 이제 끝이 다가왔습니다.
궁인께서 기적의 약을 주실 겁니다. 기적의 약은 총 세 번을 먹어야 합니다. 오늘이 그 첫 번째 날입니다.
그 약을 믿고 맑게 갠 하늘을 기대하세요! 그날이 곧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