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유강인이 무척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이비 종교 단체 청천이 현대에 걸맞게 임상실험 단체로 변모했습니다.”
“유탐정님,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사이비 종교 단체가 임상실험 단체와 연결되다니요? 임상실험은 제약회사와 병원에서 하는 일이에요.”
원창수 형사의 말에 유강인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답했다.
“인간은 … 돈과 권력에 눈이 멀기 쉽습니다. 그리고 도달할 수 없는 꿈인 영생에 집착하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고질병을 극복하는 건 영생에 한 걸음 다가가는 겁니다.”
“영생이요?”
영생이라는 말에 동료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영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꿨지만,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와 같았다.
사이비 종교 단체들은 영생을 약속했다. 지상천국이나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보장했다. 이는 최고의 보험과 같았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사망자 셋과 실종자 다섯은 새날 카페에 올라온 임상실험 게시물을 본 겁니다. 그 임상실험은 합법적이고 획기적인 임상실험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 임상실험에 참여했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다른 사람들도 임상실험에 참여했다는 말인가요?”
원창수 형사가 급히 말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그렇죠. 그중에서 고른 사람이 바로 여덟입니다. 비밀을 철저히 지킬 사람만 골라서 포섭했을 겁니다. 병을 확실히 고칠 수 있다며 여덟을 유혹했을 겁니다. 대신 조건은 비밀 엄수입니다. 그 유혹에 넘어간 여덟이 새로운 임상실험에 참여한 겁니다. 그 실험은 사이비 종교와 관련된 게 분명합니다. 여덟이 그렇게 사이비 종교, 청천에 빠진 겁니다.”
“아 그렇군요. 아주 치밀한 자들이네요.”
“아귀가 딱딱 들어맞네요.”
동료들이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아울러 청천의 교활함과 악랄함에 혀를 내둘렀다. 청천은 실로 대단한 조직이었다. 치밀했고 아주 뻔뻔했다. 한마디로 철면피였다. 얼굴에 3m 두께의 철판을 두른 거 같았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원형사님! 올해 인천에서 있었던 임상실험을 모두 조사하세요. 자가면역질환과 관련된 걸 찾아야 합니다. 그 임상실험 단체가 새날 카페를 통해 실험 참가자를 모집했을 겁니다. 실종자 다섯은 새날 카페 회원으로 확인했습니다. 사망자 셋도 새날 카페 회원인지 어서 확인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군요. 생각지도 못한 전개입니다.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도 없습니다.”
원창수 형사의 목소리가 마구 떨렸다. 그는 베테랑 형사였다. 그의 수많은 경험 속에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사이비 종교 단체가 임상실험 단체와 한 몸인 적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는 과학과 종교의 결합이었다. 나머지 형사 둘도 마찬가지였다.
유강인의 추리에 황정수가 큰 충격을 받은 듯 얼이 빠졌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입만 크게 벌렸다.
황수지는 머리가 정전된 듯, 두 눈에 초점이 없었다.
유강인이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을 내려보다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눈에서 커다란 분노가 일었다. 산을 태우는 산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이 분노는 다름 아닌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자신의 어리석음 탓하는 분노였다.
전율을 느낀 듯 몸을 부르르 떨며 유강인이 생각했다.
‘내가 치밀하게 짜진 판에 나도 모르게 들어온 거야. 이건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야!
인광 연구소 축하 파티에 초청받고 연구소에 간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어. 사전에 다 계획된 거였어. 인천에서 온 의뢰인을 만나서 인천에 온 것도 마찬가지야. 집에 택배로 온 양갱도 그렇고.
분명! 누군가가 나를 이 사건에 끌어들였어. 이는 29년 전 일과 관련된 게 분명해. 29년 전 일을 기억하라고 나를 계속 자극하고 있어.
보기 좋게 꼼짝없이 말려들었어.’
“으으으~!”
유강인이 커다란 분노를 참지 못했다. 누군가가 유강인을 꼭두각시처럼 갖고 놀고 있었다. 그가 생각을 이었다.
‘지남철 박사는 29년 전, 그때 죽었어. 그의 죽음은 분명한 사실이야. 그렇다면 남은 건 … 양갱을 맛있게 먹던 그 아이야. 그 아이, 병아리 2가 이 모든 일을 계획한 거야. 그놈밖에 없어. … 그놈밖에!’
유강인이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더벅머리 소년 병아리 2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 장기 말에 불과했어. 병아리 2가 만든 장기판에 나도 모르게 끌려 들어오고 말았어. 놈이 이 모든 걸 계획했어.
제기랄! 내가 장기 말에 불과했다니 … 내가 자만했어. 모든 걸 의심했어야 했어. 우연이 겹치면 그건 필연이야!’
유강인의 눈빛이 한 사람을 향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박동철이었어. 박동철! 그놈이 나를 인광 연구소 축하 파티에 불렀어. 이는 분명 이유가 있어. 29년 전 사건을 기억하라고 나를 부른 거야. 29년 전 비참하게 죽은 지남철 박사의 아들 지단길 박사를 만나라고 나를 부른 거야!
박동철! … 너는 내 친구였는데, 네 정체가 대체 뭐야!!’
유강인이 핸드폰을 꽉 잡았다. 전화번호부에서 박동철의 번호를 찾았다. 그가 옛 친구에게 전화 걸었다. 그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
신호가 세 번 가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인아.”
인광 연구소 경비 팀장, 박동철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를 확인한 유강인이 잠시 뜸을 들였다.
“강인아.”
박동철이 더 큰 목소리로 옛친구를 불렀다.
“…….”
유강인이 침묵을 지켰다.
“강인아, 어서 말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강인이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그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동철아.”
“그래 강인아.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그게 ….”
“지금 바쁘거든 … 할 말이 있으면 빨리 말해. 급히 할 일이 있어.”
“그렇구나.”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동철아, 인광 연구소 축하 파티에 … 왜 나를 부른 거지?”
“아, 그거 … .”
“나는 인광 연구소와 관련이 없었어. 굳이 나를 초청할 필요가 없었어. 그런데도 나를 일반 손님도 아니고 귀빈으로 초대했어. 대체 왜 그런 거지?”
“그야, 좋은 식사 자리가 있어서 … 내가 초청한 거야. 강인이는 유명 인사니 충분히 초청할만했고. 무엇보다 소장님이 네 팬이셔. 그래서 찬성하셨어.”
“그거뿐이야?”
“그거뿐이지.”
“확실해?”
“확실하지.”
“다시 한번 말한다. 확실한 거야?”
“어?”
박동철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유강인이 그 떨림에 주목했다.
박동철이 급히 말했다.
“강인아, 왜 그래? 그때 식사가 별로였어? 먹고 체했어?”
“아니, 식사는 최고였어.”
“그럼, 잘 된 거잖아.”
“동철아, 물어볼 게 있어.”
“그게 뭔데? 어서 말해.”
“인광 연구소에 언제 취직했지?”
“아, 그건 20년 전에 취직했어.”
“20살 때 취직했다고?”
“알바부터 했어. 주말 경비 알바.”
“그렇구나. 그러다 경비 팀장이 된 거고?”
“그렇지. 학교를 졸업하고 정식으로 취업했어. 팀원으로 있다가, 팀장으로 승진했어.”
“그렇구나, 알겠다.”
“그럼, 된 거지?”
“응.”
“강인아. 그럼, 끊는다. 지금 바빠.”
“그래.”
박동철이 전화를 끊었다.
유강인이 핸드폰을 꽉 잡고 서 있었다. 박동철과의 통화에서 한가지 주목할 게 있었다. 그건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이었다. 박동철이 무엇에 놀란 듯 목소리를 떨었다.
행동은 심정을 대변하기 마련이었다. 뭔가를 감추는 게 분명했다.
유강인이 생각했다.
‘동철이가 분명 이상해, 소장, 지단길 박사도 마찬가지야. 지단길 박사가 내 팬이라고? 그건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야.
나는 그자 아버지의 죽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어. 그런데도 내 팬이라니 … 난 그때 지남철 박사의 만행을 경찰에 진술했어. 아이들을 납치한 자는 지남철 박사였어. 그래서 경찰이 수사에 나섰어.
혹 지단길 박사가 아버지 죽음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건가? … 설마 그럴 리가? 그렇게까지 아버지 죽음에 관심이 없다고? 아버지를 천재 중의 천재라며 그렇게 존경하면서 ….
신문과 방송에 목격자인 내 말이 실렸어. 그리고 경찰 수사만 살펴도 내가 목격자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어. 지단길 가문은 대단한 가문이야. 내가 목격자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어.’
유강인이 이를 꽉 깨물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형사 셋과 조수 둘이 유강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유강인이 친구한테 전화 걸더니 끓어오르는 분을 참지 못했다.
“어, 이상하네?”
황정수가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 그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탐정님, 왜 그러세요? 친구분한테 전화한 거 같은데, 무슨 문제가 있어요?”
유강인이 대답 대신 동료들을 쭉 둘러봤다. 동료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강인을 바라봤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무척 무겁고 굳은 목소리였다.
“여러분 … 유감스럽게도 수사팀이 잘 설계한 함정에 빠진 거 같습니다.”
“네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죠?”
“우리가 잘 설계한 함정에 빠졌다고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동료들이 유강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것 역시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유강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가 말을 이었다.
“범죄의 판을 짠 자가 저를 사건에 끌어들였습니다. 이는 아주 의도적인 행동입니다.”
“네에?”
“뭐, 뭐라고요?”
동료들이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회의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유강인의 말은 누군가가 뒤에서 사건을 조종하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유강인의 수사도 조종자의 계획이라는 말과 같았다.
원창수 형사가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건이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게 흘러갔다. 이런 사건은 처음이었다. 계속 예측에서 벗어났다.
난데없이 사이비 종교 청천이 등장하더니 그 청천이 임상실험 단체와 한 몸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설계한 자가 따로 있다는 말이었다. 유강인의 수사 참여도 그자의 계획이었다.
원형사가 급히 말했다.
“유탐정님,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누군가가 탐정님을 사건에 끌어들였다고요? 이 모든 게 누군가의 기획이라는 말인가요? 어서 말씀해주세요.”
“맞아요. 어서 말해주세요!”
황정수도 급히 말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답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 그런 거 같습니다. 좀 더 확실해지면 배후 조종자가 누구인지 말하겠습니다. 아주 치밀한 배후 조종자가 이 모든 일을 꾸민 거 같습니다. 이는 도박판 게임과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놈이 짠 판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놈이 치밀한 판을 짜고 우리를 농락하고 있습니다. 사망 실종자 여덟도 그렇게 당한 거 같습니다.
놈의 의도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뭔가를 노리는 게 분명합니다”
“배, 배후 조종자라고요?”
유강인의 입에서 배후 조정자가 튀어나왔다. 이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간이 배 밖에 툭 튀어나오지 않은 이상, 유강인을 상대로 이런 일을 할 수 없었다.
이는 최고의 탐정 유강인과 한번 붙겠다는 말과 같았다. 이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동료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배후 조종자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했다. 최고의 탐정 유강인한테 대적하는 자가 누구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자도 대단한 자임이 분명했다. 넘치는 자신감이 없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다.
“아, 또 다른 캣헌터인가?”
원창수 형사가 캣헌터를 떠올렸다. 캣헌터는 ‘생또라이 변태 싸이코 살인마’였다. 그 캣헌터는 유강인에게 은밀히 도발했다. 그런데 그 행동은 아주 소극적이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변태성으로 유강인에게 도발했다.
그런데 이번에 등장한 놈은 캣헌터와 확연히 달랐다. 사건을 치밀하게 짠 다음에 유강인을 확 끌어들였다. 머리가 비상한 게 분명했다. 뛰어난 지능으로 유강인에게 도전했다.
“으으으! 이거 정말 보통 일이 아니네.”
원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쭉 흘러내렸다. 유강인에게 도전할 정도라면 엄청난 놈이 분명했다.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던 황정수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탐정님, 배후 조종자가 누구인지 어서 말해주세요! 궁금해 죽겠어요.”
“맞아요. 말해주세요! 그자가 누구인지 어서 말해주세요. 다 알고 계시잖아요.”
황수지도 유강인에게 재촉했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양 입술에 침을 묻혔다.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심증이 가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그 사람은 29년 전 명덕산에서 만났던 아이입니다. 양갱을 맛있게 먹었던 아이였습니다. 회색 체육복을 입고 머리가 길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 사람의 이름이 뭐죠?”
유강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름은 모릅니다. 이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 또래임은 분명합니다. 자기를 병아리 2라고 소개했습니다.”
“네에? 병아리 2라고요?”
“병아리 2가 대체 뭐죠?”
“병아리 2는 ….”
유강인이 배후 조종자, 병아리 2를 떠올렸다. 병아리 2는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아이였다. 선과 악이 공존해서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그는 29년 전 명덕산에 있었던 비밀 연구소와 관련이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