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유강인이 힘을 주어 말했다.
“실종자 다섯은 새날이라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습니다. 사이비 종교가 그 카페를 이용한 거 같습니다.”
하진석 형사가 급히 말했다.
“유탐정님, 카페 조사 결과, 이렇다 할 건 전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평범한 카페였습니다. 회원들이 서로 아픔을 공유하고 치료법을 찾았습니다. 범죄나 가출 계획 등을 모의하지 않았습니다.”
유강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형사님, 카페 게시물을 … 포렌식 하셨나요?”
하형사가 그 말을 듣고 움찔했다. 그가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아, 아니요. 하지 않았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카페 게시물 포렌식이 필요합니다. 이를 신청하세요. 이 사건에는 배후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배후는 사이비 종교로 보입니다. 그 사이비 종교는 빈틈없는 조직입니다. 다섯이 가출하기 전, 조직과 관련된 게시물과 댓글을 모두 삭제했을 겁니다. 그래서 카페 서버를 포렌식으로 조사해야 합니다.”
하진석 형사가 아이쿠! 하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삭제된 게시물과 댓글을 놓쳤군요. 조사에 빈틈이 있었습니다.”
유강인이 커피 캔을 들었다. 커피를 쭉 마셨다. 캔을 말끔히 비우고 말했다.
“카페 게시물보다 더 중요한 건 … 거리 CCTV입니다. 사망자 주변에 누가 있었을 겁니다. 사이비 종교 관련자가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을 겁니다.”
“네에? 사망자들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고요? 왜 그런 짓을 하죠?”
원창수 형사의 말에 유강인이 답했다.
“사이비 종교에서 감시는 기본입니다. 신도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철저히 감시합니다. 그래서 CCTV 조사 범위를 최대한 확대해야 합니다. 사망자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사망자를 감시하던 자를 잡아야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다 마신 커피 캔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다 테이블에 탁! 내려놨다. 그 소리가 회의실에 크게 울렸다. 캔 소리로 주위를 환기했다.
동료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회의실에 침묵이 흘렀다.
유강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잘 간 칼처럼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중요한 말을 할 거 같았다.
형사들이 침을 꿀컥 삼켰다. 그렇게 유강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10초 후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제가 볼 때 … 사망자 셋은 희생양입니다. 그들은 사이비 종교의 제물이 된 거 같습니다.”
“네에? 제, 제물이라고요?”
“헉!”
형사 셋과 조수 둘이 유강인의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인간을 제물로 쓴다는 말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그런 일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때는 양심과 정의, 법이 정비되기 전이었다. 현대에서도 벌어지기는 하지만, 그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회의실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현재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이비 종교가 신도를 제물로 바치며 무지막지한 짓을 벌이는 거 같습니다.”
“서, 설마요? 그럴 리가요?”
원창수 형사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참담한 마음을 달래고 입을 열었다.
“사이비 종교는 … 그 구조상 모두가 망하는 파국으로 향합니다. 이를 필연입니다.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현재 벌어지는 사건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아주 악랄한 사이비 종교와 관련됐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제물로 쓰다니 … 이는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원형사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유강인이 낮지만,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간절함이 클수록 더욱더 매달리기 마련입니다. 그게 파국을 낳은 겁니다. 사망자, 실종자 여덟은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치유라는 염원이 간절했습니다. 그 간절함을 사이비 종교가 이용한 겁니다.”
“아, 그렇다면 … 가능할 수도 있겠네요. 실종자와 사망자 모두 지푸라기도 잡고 싶을 심정이었을 테니 … 그 간절함이 독이 됐군요.”
“원형사님, 내일 아침 일찍, 사망자 셋이 죽은 사건 현장에 가겠습니다. 그곳 담당자들에게 협조를 구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협조를 구하겠습니다.”
“사건 현장을 다시 한번 말해주세요.”
“사건 현장은 총 세 군데입니다. 첫 번째 사망자인 이민희씨는 컴퓨터 학원을 다녔습니다. 학원 강의실에서 수업을 준비하다가 검은 피를 토하고 죽었습니다.
두 번째 사망자인 김동화씨는 헬스클럽을 다녔습니다. 벤치프레스 운동하다가 검은 피를 토하고 사망했습니다.
마지막 사망자인 이명세는 지하 호프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마셨습니다. 밖으로 나갔다가 근처 골목에서 검은 피를 토하고 죽었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뭔가를 확인하려는 표정이었다.
“이명세씨가 … 청천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셨죠?”
원창수 형사가 얼른 답했다.
“네, 이명세씨 어머니가 영안실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명세씨가 날이 맑게 개었다며 청천에 간다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종일 우중충한 날이었습니다.”
“청천! … 청천이라?”
유강인이 청천에 집중했다.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청천의 뜻이 뭐죠? 뜻을 알아내셨나요?”
“네. 국어사전을 살핀 결과, 청천에 세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명세씨가 말한 청천은 맑게 갠 하늘을 뜻하는 거 같습니다.”
유강인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말했다.
“새로운 날이라는 새날과 날이 맑게 개었다는 청천은 … 서로 일맥상통하는 뜻이 있습니다. 바로 환자들의 염원입니다. 완쾌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그 이름에 담겨있습니다. 새날은 인터넷 카페 이름입니다. 청천도 어떤 단체의 이름 같습니다. 염원이 듬뿍 담긴 단체의 이름이라면 … 종교 단체 이름입니다. 청천이 바로 사이비 종교 이름입니다!”
“네에? 청천이 사이비 종교 이름이라고요? 우리는 클럽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 아이고! 제가 어이없는 생각을 했네요. 자칫했다간 클럽이나 뒤집고 다녔을 뻔했습니다. 유탐정이 계셔서 천만다행입니다.”
김기동 형사가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클럽에서 청천을 찾으며 쓸데없는 짓을 할 뻔했어요.”
유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서 쉬어야 했다. 내일 할 일이 많았다. 아침 일찍부터 사건 현장 세 군데를 돌아다녀야 했다.
그가 형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고 고개를 숙였을 때!
누군가가 그의 발목을 잡는 거 같았다. 발목을 꼭 잡고 놓지 않는 거 같았다.
‘응?’
유강인이 고개를 들었다. 머릿속에 사이비 종교 희생양, 제물이 계속 맴돌았다.
‘사이비 종교!’
유강인이 사이비 종교를 떠올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이비 종교의 핵심은 교주야. 교주가 가장 강조하는 건 제물이고 신도들에게 제물을 강요하기 마련이야. 그 제물은 재산이나 노동이 될 수 있고 아니면 성적인 것도 될 수 있어. 그리고 사람의 목숨도 요구할 수 있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야.
제물은 … 간절한 걸 이루기 위해 소중한 걸 바치는 거야. 이 사건에는 분명 간절함이 깔려 있어. 그 간절함을 이용하는 자들이 있고’
유강인이 두 주먹을 꽉 쥐고 두 눈을 두 배로 크게 떴다. 사건의 겉이 아닌 속을 투시하기 시작했다. 수박의 겉이 아니라 그 속을 살폈다. 잘 익은 붉은 속살인지. 아니면 설익은 속살인지, 씨가 많은지, 씨가 적은지 살폈다. 그렇게 베일에 가린 사건 이면을 살폈다.
그가 생각을 이었다.
‘지금은 2025년이야. 실종자 다섯과 사망자 셋은 모두 나이가 많지 않아. 최연장자가 50대 초반이었어. 나머지는 이, 삼십 대가 대부분이었고. … 여덟의 나이로 볼 때 전통적인 방법보다는 현대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포섭한 거 같아. 현대적인 방법이라면 그게 어떤 방법일까? 고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 방법이 대체 뭘까? 이 사건에서 특이한 건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병원이나 약국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점이야.’
유강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 거 같았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을 때
어린 양이 울부짖으며 제단에 올려져 있었다. 그 희생양 뒤에서 누가 웃고 있었다. 그건 지남철 박사였다. 지박사가 입에서 검은 피를 줄줄 흘렸다. 그리고 그 옆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양갱을 맛있게 먹는 더벅머리 소년이었다.
둘이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한 손까지 흔들어댔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유강인! 아직도 모르겠어? 정신 차려! 유강인.”
“네가 그러고도 최고의 탐정이냐? 하하하!”
그 소리가 유강인의 귓가에 울렸다. 이는 환청이었다. 둘이 유강인에게 계속 외쳤다. 자기들을 바라보라며 아우성치는 거 같았다.
지남철 박사와 양갱을 먹는 소년, 병아리 2가 망령처럼 유강인 머릿속에 있었다.
유강인이 침을 꿀컥 삼켰다. 그건 마른 침이었다. 그가 급히 생각했다.
‘그래! 지남철 박사, 검은 피, 양갱의 등장은 우연이 아니야. 셋이 이 사건과 관련이 있어!’
유강인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앞니도 셔터처럼 꽉 다물었다. 바로 그때, 아! 하며 탄성을 질렀다.
유레카였다.
‘양갱을 먹던 아이, 병아리 2는 동굴에 갇혔던 아이야. 동철과 진주처럼 피를 뽑혔을 거야. 지남철 박사는 아이들 피를 이용해 무슨 실험을 했어 … 그렇다면 병아리 2는 실험 쥐야. 실험 쥐와 희생양은 일맥상통하는 게 있어. 둘은 모두 이용당하는 존재야.’
“헉!”
유강인이 매우 놀랐다. 두 눈의 초점이 딱 맞았다.
포커스!
실험 쥐가 떠오르자, 한 사람의 말이 더 떠올랐다. 그는 지단길 박사였다. 지남철 박사의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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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클린은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가능성을 세계에서 인정받았습니다.
앞으로 합법적인 임상실험을 통해 그 안정성을 인정받겠습니다.
임상실험이 끝나면 곧바로 상용화 단계에 이를 예정입니다. 그러면 아주 값싼 값으로 치료제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보다 많은 사람이 삶의 족쇄와 같은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획기적인 일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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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단길 박사가 말한 말 중, 네 글자가 심상치 않았다. 네 글자가 유강인의 머리를 강타했다. 인정사정없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노란 별이 보이며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그건 ‘임상실험’이었다.
유강인이 임상실험을 떠올리고 몸을 마구 떨었다. 몸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다.
29년 전 사건이 천천히 머릿속에 떠올랐다. 현재 사건과 오버랩됐다. 영화처럼 두 사건이 포개졌다. 두 사건에서 공통점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 실종된 다섯이 임상실험에 참여한 건가? 그래서 병원이나 약국에 가지 않은 건가? 그렇구나! 계속 약을 처방받고 있었던 거야. 아주 비밀리에 … 아, 맞아! 그렇구나!’
드디어 29년 전 사건이 현재 사건과 연결됐다. 그 연결고리가 보였다. 둘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자 사건의 실마리가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검은 피를 토하며 죽는 무시무시한 병
지남철 박사의 생체 실험
실험 쥐이자 희생양이었던 병아리 2와 양갱
이 모든 것들이 29년이 지난 후 그 모습을 인천에 드러냈다.
사건의 윤곽이 드러났다.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카페에서 누군가가 임상실험을 홍보했을 수 있습니다. 여덟이 임상실험에 참여한 거 같습니다. 그렇게 사이비 종교에 포섭된 겁니다!”
“네에? 임상실험이요?”
형사 셋과 조수 둘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원창수 형사가 급히 말했다.
“아니, 아까는 사이비 종교라고 하셨잖아요. 사이비 종교가 여덟을 포섭한 거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갑자기 임상실험은 뭐죠?”
유강인이 서둘러 답했다.
“사이비 종교 단체, 청천이 임상실험 단체와 연결된 거 같습니다. 둘은 다른 듯하지만, 한 몸입니다!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뱀, 히드라처럼 몸 하나에 머리가 여러 개입니다.”
“뭐, 뭐라고요? … 히드라라고요? 헉!”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히드라라니?”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유강인의 말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말이었다.
형사 셋과 조수 둘이 매우 놀란 나머지 아래턱을 툭! 떨어트렸다. 중력이 없어진 거 같았다.
인천에 히드라가 등장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사이비 종교 단체, 청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