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_23_검은 피, 지남철, 양갱

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by woodolee

친구 하나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하자, 마구 화를 냈어요. 우리한테 날벼락 맞아서 뒤질 놈들이라고 저주를 퍼부었어요. 아주 심한 말이었어요.

명세가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그날 너무나도 많이 변했어요.”

“정말 그렇게 말했나요?”

“네, 우리 모두 그렇게 들었어요. 얘들아 맞지?”

다른 친구들이 모두 동의했다.

“맞아. 명세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우리가 수준 낮은 저질이라면 다시는 우리랑 상종하지 않겠다고 말했어. 그런데 진짜로 그렇게 되고 말았어. 으으으~!”

친구들이 모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들은 이명세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아픈 이명세를 오랫동안 불쌍히 여기며 그의 완쾌를 빌었다.

그러다 이명세의 상태가 호전됐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파팀 겸 술집에서 모였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이명세가 갑자기 선생님 운운하며 사이비 종교에 빠진 거처럼 행동하자, 친구들이 그를 말렸다.

그러자 이명세가 발끈했다. 신과 같은 선생님을 모욕한다며 친구들에게 버럭 화를 내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후 근처 골목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친구들은 이 모든 일이 자기들 탓인 양 가슴 아파했다.

원창수 형사가 목격자 진술을 듣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들이었다.

목격자 입에서 하늘이 내린 분, 신, 선생님, 제자, 날벼락, 천벌이 튀어나왔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원형사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아! 그렇구나.”

원창수 형사가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야 감을 잡은 거 같았다. 이명세가 남긴 말은 사회적인 용어가 아니라 종교적인 용어였다.

원형사가 친구들에게 말했다.

“혹 이명세씨가 무슨 종교에 가입했다고 말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그런 소리는 한 적이 없었어요. 그냥 우리끼리 명세가 사이비에 빠졌다고 수군거렸어요.”

“맞아요. 명세가 사이비에 빠진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걱정했어요.”

“그 이후에 어떻게 됐죠? 이명세씨가 호프집에서 나간 후, 어떻게 됐는지 상세히 말해주세요.”

친구들이 한 사람을 쳐다봤다. 그는 뚱뚱한 남자였다. 이명세의 시신을 발견하고 이를 친구들에게 알린 가장 중요한 목격자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친구들이 명세를 달래주자고 해서, 제가 건물 밖을 나가서 명세를 찾았어요.”

뚱뚱한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건물 출입구에 서서 명세한테 전화 걸었어요. 그런데 근처에서 벨 소리가 났어요.

그래서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찾아갔는데 … 근처 으슥한 골목이었어요. 골목 안에 커다란 음식물 쓰레기통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벨 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다가갔는데 거기 뒤편에 명세가 검은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었어요.”

“그렇군요.”

원창수 형사가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뭔가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고질병이 있다 하더라도 젊은 사람은 갑자기 죽기는 힘들었다. 이는 무척 희귀한 일이었다.

이명세는 육안상 칼에 찔린 거나 매를 맞은 자국이 없었다.

부검의가 1차 부검을 준비했다. 부검 결과는 오늘 중 나올 예정이었다.

10분 후 이명세 사망 사건 목격자 조사가 끝났다.

목격자들인 친구들은 모두 혐의가 없어 보였다. 브라보 호프집 술집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거리 CCTV를 면밀하게 확인한 결과, 이명세는 지하 호프집에서 나와서 혼자 으슥한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이명세보다 앞서 골목 안으로 들어가 골목 안에서 머무른 사람은 없었다. 이명세가 죽은 후 골목에서 나간 사람도 없었다.

이명세는 혼자 골목 안으로 들어가 음식물 쓰레기통 뒤편에서 검은 피를 토하고 죽은 게 분명했다.

“심상치 않군.”

원창수 형사가 심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조사 내용을 정리하고 조사실에서 나왔다.

원형사가 참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현재 세 건의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사망자들은 모두 이삼십대 젊은이들이었다. 그들한테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자가 면역 질환을 앓고 있었다.

젊은 사람 셋이 며칠 사이에 갑자기 죽었다는 점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의심스러웠지만, 아직 어떤 단서도 없었다.

앞서 죽은 두 명의 부검 결과는 이미 나왔다.

부검 결과, 둘 다 흉기에 찔리거나 매를 맞은 자국은 전혀 없었다. 독을 먹은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죽고 말았다.

사인은 다음과 같았다. 몸에서 과도한 염증 반응이 급격하게 일어나는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으로 결론 났다.

사망자 둘 다 폭풍처럼 발생한 급성 면역 반응을 통제하지 못하고 쇼크사했다. 그 과정에서 검은 피를 입에서 엄청나게 쏟아냈다. 이는 격렬한 알레르기 반응과 같았다.

격렬한 알레르기는 가장 힘이 센 삼손, 헤라클레스도 단번에 쓰러트릴 수 있었다. 이는 몸에서 내전이 일어난 것과 같았다.

“또 사이토카인 폭풍인가? 이명세씨도 그렇게 죽은 건가? 그게 연달아 세 번이나 일어났다고?”

원창수 형사가 참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

강력반 사무실 안으로 유강인과 조수 둘, 하진석 형사가 들어왔다. 하형사가 원형사에게 말했다.

“선배님, 조사가 다 끝났나요?”

원창수 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응, 다 끝났어.”

“그럼, 휴게실로 가시죠. 유탐정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제 사건과 선배님 사건을 개별적으로 수사하는 게 아니라 하나로 묶어서 수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흐흐흐!”

원창수 형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선배님, 휴게실에 가서 음료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죠.”

“좋고, 말고! 아주 잘 됐어!”

원창수 형사가 쾌재를 불렀다. 그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역시 우리 유탐정님이 오시니 일이 착착 풀립니다.”

유강인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직 제가 특별히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닙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습니다. 유탐정님이 오셔서 수사를 시작하셨으니, 진상의 반은 이미 밝힌 거나 매한가지입니다.

어서 가시죠! 휴게실에서 제 사건을 브리핑하겠습니다.”

“네, 수고해 주세요.”

탐정단과 형사 둘이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은 본관 1층에 있었다. 다섯이 계단을 내려가서 직원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다.

휴게실은 넓고 한산했다. 총 20개 테이블이 있었다. 두 테이블에 사람이 있었다. 사면 중 외벽에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창문은 환했다. 따뜻한 햇볕이 안으로 들어왔다.

“저기로 갑시다. 저기가 햇볕이 잘 듭니다.”

원창수 형사가 창가 자리로 안내했다. 탐정단이 창가 자리에 앉았다.

하진석 형사가 자판기에서 캔을 뽑아서 창가 자리로 걸어왔다.

하형사가 캔을 돌리며 말했다.

“자, 여기 산 이슬 음료입니다. 유탐정님이 좋아하시는 음료라 들었습니다.”

황정수가 캔을 받고 말했다.

“다행이네요. 산 이슬 음료를 팔아서 ….”

하진석 형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서장님이 유탐정님 기사를 보시고 내린 특단의 조치입니다. 기사 중에 유탐정님이 산 이슬 음료를 좋아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서장님이 바로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휴게실에 산 이슬 음료를 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유탐정님처럼 산 이슬 음료를 마셔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다음날부터 휴게실에 산 이슬 음료를 팔기 시작했고 이후 경찰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료가 됐습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흐뭇한 표정으로 산 이슬 캔을 받았다.

황정수가 산 이슬 캔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그도 유강인과 함께 다니면서 산 이슬 음료를 좋아하게 됐다. 산 이슬 음료는 샴페인 같은 느낌이 있었다.

“과자 먹으며 얘기해요.”

황수지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등에 멨던 가방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가방을 열었다. 곧 여러 과자를 꺼냈다. 유강인이 사랑하는 초콜릿 과자와 새우 맛 과자, 소라 과자였다.

소라 과자를 보고 원창수 형사가 말했다.

“어, 저 소라 과자는 옛날에 먹던 과자잖아요. 전통의 과잔데.”

황수지가 소라 과자 봉지를 북 뜯으며 답했다.

“네, 전통의 과자죠. 탐정님이 한 달 전에 드시고 맛있다고 하셔서 많이 사 왔어요.

어서 드세요. 제가 먹어봐도 맛있더라고요. 바삭하고 달콤해요. 땅콩 맛이 좋아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형사 둘이 소라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맛이 있는 듯 둘 다 과자 삼매경에 빠졌다.

유강인이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초콜릿 과자 봉지를 들었다. 봉지를 힘껏 북 뜯었다.

초콜릿 과자를 입에 넣고 그 맛을 음미했다. 그렇게 달콤한 초콜릿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원형사님, 사건 브리핑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원창수 형사가 먹던 과자를 꿀컥 삼키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12월 17일, 19일, 20일 세 명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첫 번째 시신은 32세 여성 이민희씨였습니다. 두 번째 시신은 29세 남성 김동화씨였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시신은 28세 남성 이명세씨였습니다.

세 분 모두 다량의 검은 피를 토하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휴게실에서 검은 피라는 말이 들렸다.

‘거, 검은 피라고’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가슴에 비수가 팍 꽂힌 거 같았다.


검은 피 ….


검은 피가 다시 등장했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유강인의 몸이 돌처럼 굳기 시작했다. 검은 피는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 기억이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이게 대체! 갑자기 검은 피라니?’

유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급히 말했다. 목소리가 매우 떨렸다.

“원형사님, 지금 뭐라고 하셨죠? 검은 피라고 하신 거 같은데 ….”

원창수 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맞습니다. 사망자 셋이 다량의 검은 피를 토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거, 검은 피라고요? 사망자 셋이 다량의 검은 피를 토했다고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요?”

“네, 맞습니다.”

“헉!”

유강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검은 피가 다시 등장했다. 그 피를 쏟고 세 사람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으으으~!”

유강인이 신음을 내뱉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두 눈을 볼링공처럼 크게 떴다.

머릿속에 검은 피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한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검은색 피였다. 그 피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남자는 다량의 검은 피를 토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검은 피!’

유강인이 오래전 일을 떠올렸다. 그건 29년 전 일이었다.

명덕산 비밀 연구실 바닥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다량의 검은 피를 토해냈다. 검디검은 검은 피가 입에서 계속 흘러내렸다.

그는 지남철 박사였다.

소년 탐정단은 동철을 찾으려 비밀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쓰러진 지박사를 확인하고 당황했다.

그때 한 남자가 연구실 안을 뛰어 들어왔다. 그는 지박사의 조수로 보였다.

그 조수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지남철 박사라고 불렀다. 연구도 이어서 하겠다고 말했다.

‘… 헉! 지남철!’

유강인이 순간!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지 남 철


그 이름 석 자가 머릿속에 아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이름은 ‘인광 생명 공학 유전자 연구소’ 소장 지단길의 아버지 이름이었다.

지단길 박사가 축하사 중 말했었다. 아버지 지남철 박사는 지씨 집안이 낳은 천재 중의 천재였다고 … 지남철 박사는 획기적인 유전자 치료제, 바이오클린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다고도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이 이렇게 연결되다니 ….”

유강인이 매우 놀란 나머지 입을 하마처럼 크게 벌렸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올랐다. 그건 양갱이었다.


양갱!


양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양갱은 어제 어머니가 받은 택배였다. 택배 안에 양갱 선물 세트가 들어있었다.

양갱은 명덕산 비밀 동굴과 관련이 있었다.

더벅머리 소년이 양갱을 맛있게 먹었다. 주머니에서 양갱을 꺼내서 소년 탐정단에게 권했다. 더벅머리 소년은 자신을 병아리 2라고 말했다.

더벅머리 소년은 동철, 진주처럼 동굴 속에 갇혀있었던 아이 같았다.

유강인이 급히 생각했다.

‘지금 지남철, 검은 피뿐만 아니라 양갱까지 등장했어. 이게 대체! 이건 우연이 아니야. 우연일 리 없어. 누군가가 의도한 일 같아!’

유강인이 당황한 나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29년 전 겪었던 일들이 현재와 연결됐다. 우연한 일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공교로웠다.

“어?”

원창수 형사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이 갑자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형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유탐정님,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원창수 형사의 말에 황수지가 급히 유강인의 안색을 살폈다. 유강인의 낯빛이 창백했다. 그녀가 서둘러 말했다.

“탐정님, 어디 아프세요?”

“휴우~!”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심적 충격을 달랬다. 그가 초콜릿 과자 하나를 급히 들었다. 과자를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마음을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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