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귀빈실은 경찰서 본관 3층, 복도 오른쪽 끝에 있었다.
탐정단과 원창수 형사, 하진석 형사가 복도를 걸었다. 귀빈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어서 들어가시죠.”
원형사의 말에 유강인이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귀빈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조수 둘과 원창수 형사, 하진석 형사가 따랐다.
귀빈실 안에 경찰서장이 있었다. 상석에 앉아서 유강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유강인이 들어오자, 경찰서장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무척 공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이고, 유강인 자문위원님. 어서 오십시오. 제가 직접 마중 나갔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탐정님이 그러실 필요 없다고 하셔서 귀빈실에서 탐정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찾아뵙는 자리입니다. 제가 당연히 인사드려야죠.”
유강인이 공손히 말하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경찰서장이 급히 맞절했다.
탐정단과 형사 둘이 자리에 앉아, 비서가 차를 내왔다. 결명자차였다. 경멸자차는 눈이 맑아지는 차로 유명했다.
차를 마시던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이 차 이름이 뭐죠? 예전에 마셨던 차 같습니다.”
경찰서장이 찻잔을 내려놨다. 그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결명자차입니다. 눈이 맑아지는 차죠. 수사를 잘하려면 눈이 맑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직원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는 차입니다.”
“아! 그렇군요.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수사를 잘하려면 일단 눈이 맑아야죠. 아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탁월한 선택입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차를 쭉 들이켰다. 그렇게 눈을 맑게 하고 말을 이었다.
“어제 인천에서 오신 의뢰인들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가면역질환을 앓은 다섯이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경찰의 수사 상황을 듣고 싶습니다.”
경찰서장이 참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맞습니다, 유탐정님. 다섯이 갑자기 실종됐습니다. 실종 신고를 받고 다섯의 행방을 뒤쫓았는데 … 말 그대로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경찰에서도 심상치 않을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단순 가출이 아니었습니다.
수사를 계속 진행했지만, 난항이었습니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을 때, 실종자 가족 중 한 분이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강력히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내부 회의 끝에 자문위원이신 유강인 탐정님을 추천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게 해서 의뢰인들이 저를 찾아왔군요.”
“네, 그렇습니다. 경찰서에서 자문위원님의 도움을 받는 거 당연한 일이니까요.”
경찰서장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담당 형사인 하진석 형사를 쳐다봤다. 하형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유탐정님, 실종자 다섯을 수사한 결과, 모두 새날이라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습니다. 그 카페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습니다.
새날 카페는 자가면역질환자들이 서로의 고충을 털어놓는 인터넷 공간이었습니다.
그 카페에서 다섯이 만난 거로 결론이 났습니다. 카페 게시물에서 서로 글을 주고받은 걸 확인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렇게 해서 다섯이 만났군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그때, 원창수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지금 사건 수사 중입니다. 사망자 가족과 목격자들을 조사해야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원형사가 양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가 말을 이었다.
“유탐정님, 제 사건도 자가면역질환자 사건입니다. 그런데 사망 사건입니다.”
“네? 자가면역질환 환자 사건인데 … 사망 사건이라고요?”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원창수 형사가 말을 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자가면역질환자 세 명 모두 검은 피를 토하고 죽었습니다. 지금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뭐, 뭐라고요?”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현재 인천에 큰일이 벌어졌다. 자가면역질환자 셋이 사망했고 다섯이 실종됐다.
“아이고!”
경찰서장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갑자기 큰일이 생기자, 마음이 꽤 무거운 거 같았다. 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유탐정님, 두 사건 다 자가면역질환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건이 서로 연관된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건이 서로 연관됐다면 이는 무척 큰일입니다. 고명하신 유강인 탐정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 인천에 온 이유를 알 거 같았다.
탐정단이 인천에 온 건 의뢰인의 사건 의뢰였지만, 실은 경찰서장이 부른 것과 같았다.
인천에 어려운 사건이 연달아 생기자, 경찰 서장이 의뢰인의 손을 빌어 유강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잘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수사하겠습니다.”
유강인이 씩씩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목소리를 듣고 경찰서장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천군만마 같은 유강인이 인천에 와서 그 앞에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경찰서장이 고개를 공손히 숙이며 말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유강인 탐정님.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네, 성심껏 수사하겠습니다.”
유강인도 맞절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원창수 형사가 말을 마치고 귀빈실에서 나갔다. 경찰서장도 그 뒤를 따랐다. 다음 일정이 있었다.
귀빈실에 탐정단과 하진석 형사만 남았다.
하형사가 본격적으로 사건 브리핑을 시작했다.
“실종자 다섯은 넉 달전, 거의 같은 시기에 집에서 나갔습니다. 마치 짠 거 같았습니다.”
유강인이 심상치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거의 같은 시기라면 하루 이틀 차이인가요?”
하형사가 답했다.
“길어도 하루 정도 차이입니다. 그래서 실종 신고를 받았을 때 동반 가출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수사를 어떻게 진행하셨죠?”
“먼저 실종자 명의의 교통카드, 신용카드, 체크 카드 조회와 핸드폰 위치 추적을 했습니다. 애석하게도 다섯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핸드폰 통화 기록에도 별다른 게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현금만 사용한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가출 전에 현금을 대량으로 뽑아야 하는데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실종 삼 일 전에 몇만 원을 뽑은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수사 초기에는 동반 자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고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같이 죽으려고 집에서 나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모텔, 여관, 펜션 등을 조사했는데 역시 단서를 잡지 못했습니다.
숙박업소에서 사망했으면 신고가 들어와도 벌써 들어 왔어야 했는데 어떤 신고도 없었습니다.”
“다섯이 감쪽같이 사라졌군요.”
“네, 맞습니다. 바닷가나 강에 빠져도 시신을 발견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강인이 브리핑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사건이 예사롭지 않았다. 사건이 예사롭지 않다는 말은 수면 아래에 뭔가가 있다는 말과 같았다.
감쪽같은 사건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누군가가 철저히 기획한 게 분명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푹 숙이고 왼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다섯이 넉 달 전에 감쪽같이 사라져서 어디에서도 그 행방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인데 … 현금을 뽑은 기록이 없다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 거지?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데 …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야. 누가 돈을 대 주거나 아니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거야.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 넉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 무척 수상해.
자살하는데 시신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어.
이는 넷이 배를 타고 먼바다로 가서 깊은 바다에 뛰어들어야 가능한 일이야.
다섯이 배를 타고 먼바다에 가면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
유강인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생각을 이었다.
‘다섯이 정말로 죽었다면 … 단체로 자살했거나 아니면 누가 죽였다는 말인데 … 한두 명도 아니고 다섯이 감쪽같이 죽을 수는 없어.
이는 현실적으로 무척 힘든 일이야. 그렇다면 가능성은 … 누가 돈을 대주는 거야. 그래서 멀쩡히 살아있는 거야.
맞아! 의뢰인이 그랬어. 실종되기 전 실종자들이 기뻐했다고 했어. 다섯의 가출은 절망의 가출이 아니야. 희망의 가출이야.
희망의 가출이라면 ….’
유강인이 생각을 정리했다. 희망의 가출을 떠올리자, 한가지가 퍼뜩 떠올랐다. 그건 빛과 같은 한 사람을 따르는 거였다. 불나방들은 불빛을 보고 몰려들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사건 수사는 항상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다섯은 인터넷 카페에서 만났다. 이는 경찰이 게시물과 댓글로 확인한 사안이었다.
유강인이 하진석 형사에게 말했다.
“실종자들이 가입한 카페 이름이 … 새날이라고 들었습니다. 새날의 뜻이 정확히 뭐죠?”
“새로운 날이라는 뜻입니다. 아픈 환자들이 새로운 날을 기약하는 뜻이랍니다. 카페 운영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새날이라!”
유강인이 새날을 가슴속에 새겼다. 환자들의 염원을 품은 말이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진석 형사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수사를 어떻게 진행하실 건가요?”
유강인이 답했다.
“실종자 수사를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전에 먼저 살필 게 있습니다. 원창수 형사님이 맡으신 사망자 사건을 살피겠습니다.”
“아, 그렇군요.”
“사망자들도 자가면역질환자라고 들었는데 맞죠?”
“네, 맞습니다. 그 점에서 실종 사건과 사망 사건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차이점은 시기입니다. 실종자 사건은 넉 달 전이고 사망자 사건은 이삼일 전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두 사건을 동시에 다루어야 합니다. 따로따로 다루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원형사님과 공동 수사를 하겠습니다. 그게 좋을 거 같습니다.”
황정수가 ‘따로따로’라는 말을 듣고 따로 국밥집을 생각했다. 그가 말했다.
“맞는 말이네요. 이번 사건은 따로국밥이 아니라 국에다 밥을 잘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비유가 참 좋다.”
유강인이 엄지척하며 말했다.
“흐흐흐!”
황정수가 기분이 좋은지 실실 웃었다.
“자, 나가시죠.”
하진석 형사가 앞장섰다. 출입문이 열렸다. 탐정단과 하진석 형사가 2층 강력반 사무실로 향했다.
귀빈실에 나간 원창수 형사는 강력반 조사실에 있었다. 목격자 조사를 하고 있었다.
조사실에 사망자 이명세의 친구 셋이 있었다. 셋은 사건 목격자였다.
원창수 형사가 목격자들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명세씨를 오랜만에 만나 같이 술을 마셨다는 말이죠?”
“맞습니다. 맞아요. 참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친구들이 답했다.
“이명세씨한테 지병이 있었다고요?”
“네, 명세는 자가면역질환이 있었어요. 수시로 아팠어요. 몸이 스스로 자신을 공격했어요. 그래서 항상 수심이 가득했어요.”
“그 고통이 심했나요?”
“네, 너무 심할 때는 응급실에 실려 가서 진통제를 맞고 나왔어요.”
“그렇군요. 어제 보셨을 때 이명세씨 상태가 어땠나요? 괜찮았나요?”
“네, 몸이 좋아졌다고 해서 불렀습니다. 딱 보기에도 멀쩡해 보였습니다.”
“어떻게 몸이 좋아진 거죠? 이명세씨가 무슨 말을 했나요?”
“무슨 선생님을 만나서 병을 고쳤다고 했어요. 신과 같은 분이라고 했어요.”
“… 네에? 신과 같은 분이라고요?”
“네, 하늘이 내린 분이라서 그분의 제자가 됐다고 했어요. 믿기 힘든 말을 정색하고 말했어요.”
원창수 형사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