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천천히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둘 다 노인이었다.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녀였다.
둘이 문을 열고 걸음을 멈췄다. 쭈뼛대며 사방을 살폈다.
“아, 오셨군.”
유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뢰인 정기호씨와 송영희씨죠?”
“네, 맞습니다. 제가 정기호입니다.”
한 노인이 답했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남자였다. 정기호 옆 노인도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유강인 탐정님. 저는 송영희입니다.”
송영희는 작고 아담한 여성이었다.
“탐정 유강인입니다.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의뢰인 둘이 소파에 앉았다.
의뢰인들이 자리를 잡자, 황정수가 커다란 쟁반에 커피잔을 담아서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커피 드시면서 편히 이야기하세요.”
“네, 잘 마시겠습니다.”
의뢰인 둘이 커피잔을 들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술에 침을 묻혔다. 둘 다 커피잔을 든 손을 떨었다.
동시에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어느 보석보다도 소중한, 한 몸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참담한 얼굴이었다.
유강인이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실종자가 현재 다섯이라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정기호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맞습니다. 총 다섯입니다. 그중에서 김희애가 제 딸입니다.”
송영희도 입을 열었다.
“저는 이민영이 제 딸입니다. 막내딸이에요.”
“그렇군요.”
유강인이 질문을 이었다.
“실종자 가족 대표로 두 분이 오셨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맞습니다. 우리 둘이 실종자 가족 대표입니다. 다른 분들은 지금 경황이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입니다. 두 분은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딸을 잃어버려서 가슴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렸습니다. 사는 게 죽는 거 같습니다.”
정기호가 말을 마치고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그가 말을 이었다.
“유탐정님, 우리 딸이 뭐에 홀린 거 같았어요. 어릴 적부터 몸이 좋지 않았는데, 몇 달 전부터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꽃이 피웠어요.
그러다 갑자기 사라졌어요. 아무런 말도 없이 …. 마치 연기와 같았어요.”
송영희도 마찬가지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딸도 마찬가지예요. 지병이 있어서 항상 집 안에만 있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몸이 좋아졌어요. 밖에 오랫동안 머물러도 아주 멀쩡했어요.
정말 특이한 일이었어요.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어요. 백약이 무효였어요.
그래서 기쁘면서도 이게 뭔 일인가 하고 의아해했어요. 그래서 딸한테 그 이유를 물어봤는데 딸이 입을 꾹 다물었어요.
비밀인 거 같았어요. 말하면 안 되는 거 같았어요.
그러다 어느 날, 정기호씨 따님처럼 딸이 사라졌어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어요. 그날 이후 본 적이 없어요. 벌써 넉 달이나 지났어요.”
“그렇군요.”
유강인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실종자들한테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실종자 두 분 다 몸이 좋지 않았군요. 무슨 병이 있었나요?”
정기호가 답했다.
“태어날 때부터 몸에 심한 염증이 있었어요. 희귀 자가면역질환이라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평생 약을 먹으며 힘들게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항상 아팠습니다. 제 탓인 거 같아 딸에게 늘 미안했습니다. 바로 저 때문에 딸이 아픈 거 같았어요.”
송영희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우리 딸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릴 적부터 자가면역질환이 있었어요. 면역 세포가 정상 세포를 막 공격했어요. 그래서 온몸이 쑤시고 아팠어요.
자다가도 비명을 질러댔어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병원에 실려 간 적도 많았어요. 진통제를 맞아야 겨우 잠이 들었어요.
그렇게 힘들게 살아갔어요. 참 눈물겨운 삶이었어요.”
실종자 대표 둘이 말을 마치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렇군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유강인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다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실종자들은 아픈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약을 매일 먹어야 했다. 그런데 넉 달 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사라졌을 때 넉 달 치약을 챙겼을 거 같지는 않았다.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실종자들이 약을 챙기고 사라졌나요?”
의뢰인 둘이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아니요. 약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맞아요. 약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약은 일주일 치만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말은 의미하는 바가 컸다.
실종자들이 병원이나 약국을 찾았다면, 그들의 행방을 뒤쫓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했다.
이 말은 실종자들이 병원이나 약국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았다.
이건 세 가지를 의미했다. 몸이 좋아져서 약이 필요 없거나, 약을 누군가한테 받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저세상 사람일 가능성이 있었다.
“음!”
유강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질문을 이었다.
“다른 실종자분들도 마찬가지 상황인가요?”
정기호가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경찰한테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실종자 다섯 모두 자가면역질환자라고 들었습니다. 다 중증 환자였습니다. 모두 비슷한 시기에 실종됐습니다.”
“다들 몸이 좋아진 후 가출했나요?”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왼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이 사건은 일반적인 실종 사건과 그 결이 달랐다. 한가지 기묘한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실종자들의 몸 상태였다.
실종자들은 자가면역질환을 앓으며 평생을 고통에 시달렸다. 그런데 몇 달 전 갑자기 몸이 좋아졌다.
이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몸이 좋아지자, 모두 짠 듯이 집을 가출해 버렸다.
자가면역질환은 난치병이거나 난치병에 가까웠다. 그렇게 쉽게 좋아질 병이 아니었다.
유강인이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 수사에 진척이 있나요?”
송영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수사가 신통치 않은 게 분명했다. 그녀가 말했다. 무척 실망한 목소리였다.
“경찰이 핸드폰 위치 추적을 했지만, 아들딸들을 찾지 못했어요. 병원이나 약국 기록도 다 뒤졌지만, 어디에서도 실종자를 찾을 수 없다고 했어요.
집 근처 CCTV 분석도 소용이 없다고 했어요.
다섯이 연기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찾기 어렵다고 … 큰 기대를 걸지 말라고 말했어요. 이미 죽은 거 같다는 말도 했어요.
몸이 좋아진 게 아니라 좋아진 척을 한 거 같다고 그렇게 말했어요.”
“음, 그렇군요.”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찰의 수사에 허점이 있는 거 같지는 않았다. 경찰도 성심껏 수사한 거 같았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혹 실종자들 사이에 공통점 같은 게 있나요?”
의뢰인 둘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20초 후 정기호가 말했다.
“아! 그게 있어요. 모두 자가면역질환 카페, 새날에 가입했다고 들었습니다.”
“카페라고요? 그 카페 이름이 새날인가요?”
“네, 맞아요.”
“경찰이 새날 카페를 수사했나요?”
“네, 수사했습니다. 카페 게시물과 운영진을 조사했는데, 별다른 게 없다고 했어요. 다들 혐의점이 없대요.”
“아, 그렇군요.”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자가면역질환 카페, 새날이 등장했다.
카페는 사람이 모이는 인터넷 공간이었다. 실종자 다섯이 그 카페에 모두 가입했다면 이는 중요한 단서였다.
‘분명 평범한 사건이 아니야. 정황상, 느낌상 뭔가가 있어.
다섯의 몸이 갑자기 좋아졌다는 게 중요해. 다섯이 짜고 쇼를 한 거 같지 않아.
아픈 사람이 안 아픈 척을 한다는 게 말이 쉽지 매우 어려운 일이야. 이건 꾀병이 아니야. 그 반대지.
넉 달 동안 약을 먹지 않은 점도 무척 이상해.
그래, 분명 뭔가가 있어. 뒤에 큰 게 있는 거 같아. 큰 거라면 … 그게 뭔지 무척 궁금하군. 이걸 넘어갈 수 없지. 밝혀야지. 그게 뭐가 댔든 ….’
생각을 마친 유강인이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사건을 접수하겠습니다. 사건에 기묘한 점이 있습니다. 그 기묘한 점을 푸는 게 사건 해결의 관건인 거 같습니다.
의뢰인들의 상심을 덜기 위해 최대한 빨리 해결하겠습니다.”
유강인의 말은 아주 컴컴한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정기호가 급히 말했다. 무척 기쁜 목소리였다.
“유강인 탐정님! 사건을 맡아주실 건가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수사에 착수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인천으로 가겠습니다. 인천으로 가서 조사하겠습니다.
실종자들이 사라진 벌써 넉 달이나 지났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은 거 같지 않습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이겠습니다.”
“아~!”
정기호가 기쁜 나머지 입을 크게 벌렸다. 그가 감격한 얼굴로 말했다.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유강인 탐정님! 유강인 탐정님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사건을 맡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 오면서 노심초사했습니다. 유강인 탐정님이 우리를 외면할 거 같아 마음이 떨렸습니다. 우리 말을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송영희도 감격한 얼굴로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유강인 탐정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제발 아픈 딸을 찾아주세요!
꿈속에서 딸이 울고 있었어요. 엄청난 고통 속에서 온몸을 바르르 떨었어요. 유강인 탐정님만 믿겠습니다.”
유강인이 걱정하지 말라는 얼굴로 답했다.
“두 분께 약속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실종자들은 모두 아픈 사람들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불상사를 막을 수 있습니다. 제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유강인이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꽉 막혔던 속이 확 뚫리는 말이었다.
“역시! 유강인 탐정님이야. 정말 잘 찾아왔어!”
“맞아요. 정말 기쁜 일이에요. 이제 우리 아들딸들을 찾을 수 있겠네요.”
의뢰인 둘이 이제 살았다며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들의 두 눈에 희망이 보였다. 작은 희망이 아니라 커다란 희망이었다. 드디어 유강인이 움직였다.
유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희망을 현실화해야 했다. 어서 움직여야 했다.
정기호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착수금을 드리겠습니다. 빨리 일해야 하니까요.”
착수금이라는 말에 유강인이 황수지를 찾았다.
“수지!”
“네, 알겠습니다.”
황수지가 서둘러 움직였다. 그녀가 말했다.
“제 책상으로 가시죠.”
“네, 어서 갑시다.”
의뢰인 둘이 서둘러 황수지 책상으로 걸어갔다.
황수지가 말했다.
“착수금은 5백만 원입니다. 사정이 어려우시면 분할 납부도 가능합니다.”
“한 번에 지급하겠습니다.”
정기호가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황수지가 그 말을 듣고 빙긋 웃었다.
실종자 대표 둘이 착수금을 계좌 이체했다. 실종자 가족이 모은 돈이었다.
잠시 후 의뢰인 둘이 사무실에서 떠났다.
유강인이 인천으로 떠나기 전, 코코아와 초콜릿 과자를 즐겼다. 그렇게 에너지를 충전하고 손뼉을 짝 쳤다. 아주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인천으로 가자고!”
황정수가 명랑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깨끗한 모텔입니다. 나름 유명한 곳이에요. 짭조름한 인천 바닷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죠.”
“좋았어. 렛츠고!”
유강인이 옷걸이로 걸어갔다. 코트를 입고 큰 걸음으로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는 오늘 새로운 사건을 맡았다. 한시가 급한 사건이었다. 몸이 불편한 다섯이 실종되었다. 실종된 지 벌써 넉 달이나 지났다. 어서 빨리 찾아야 했다.
탐정단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밴을 타고 건물에서 나왔다. 곧장 인천으로 향했다.
다행히 도로가 한산했다. 인천에 빨리 갈 수 있었다.
탐정단이 서울을 떠난 후 시간이 흘러갔다.
1시간 후, 서울 거리가 어두컴컴해졌다.
유강인 탐정 사무소도 어둠에 잠겼다.
탐정 사무소는 사거리에 있었다. 이곳은 회사가 밀집한 곳이었다. 직원들이 퇴근하며 인적이 드물었다.
사거리가 어둠과 고요 속에 잠겼을 때 차 소리가 들렸다.
차 소리가 한 건물 앞에서 그쳤다. 그 건물은 유강인 탐정 사무소가 있는 건물이었다.
차는 검은색 외제 세단이었다. 최고급 차였다.
차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쳐들었다. 건물에 붙어있는 간판들을 살폈다.
그중에서 2층에 있는 간판을 주시했다. 간판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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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인 탐정 사무소 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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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비열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가 한동안 계속됐다.
어두운 사거리에 느닷없이 악한이 등장한 거 같았다. 살기와 음침함이 넘쳐 흘렀다. 주체할 수 없는 광기가 사거리를 잠식했다.
그 광기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주체할 수 없는 욕망 그리고 꺼지지 않는 승부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