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발소리가 들리자, 형제가 고개를 들었다. 앞에 지단길 박사와 동생들이 서 있었다.
형인 고창석이 한 손을 들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고창석은 50대 초반으로 180cm가 훌쩍 넘는 키였다. 몸은 매우 말랐다. 기다란 갈치같은 몸이었다. 얼굴은 허옇고 이목구비는 작았다. 눈썹은 없는 것처럼 아주 희미했다.
옆에 있는 동생 고영수는 형과 자못 달랐다.
고영수는 40대 중반으로 170cm 키였다. 살이 찐 통통한 몸이었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눈썹이 진했고 두꺼웠다. 코가 커서 서양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단길 박사가 유족을 위로했다.
“이렇게 아저씨가 돌아가시다니,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마음이 너무나도 아픕니다.”
“지박사님!”
“지박사님!!”
형제가 지단길 박사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울먹였다. 어미를 잃고 주인 앞에서 우는 강아지 같았다.
지단길 박사 동생들도 슬픔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렸다.
지단길 남매한테 고인, 고두영은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고두영은 집사였지만, 일찍 죽은 지남철 박사를 대신해 남매를 잘 돌봤다.
고두영은 이런 행동은 첫 번째 주인 지인광은 유언 때문이었다.
지인광은 죽기 전 고두영에게 유언을 남겼다 아버지를 잃은 손주 남매를 잘 돌보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에 고두영은 옛 주인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그렇게 남매의 아버지이자, 충실한 심복으로 살았다.
“부검 때문에 장례도 못 치른다고요?”
수석 연구원 지정혜가 비서 고창석에게 물었다. 고창석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살인 사건이라서 … 그렇답니다. 여기 경찰서가 아니라 인천 북부경찰서에서 사건을 맡아서 수사한다고 들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고! 부검하면 시신이 온전치 못할 텐데 ….”
지단길 박사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비서 고창석에게 말했다.
“고비서, 아저씨가 검은 피를 흘린 게 맞나요?”
비서 고창석이 고개를 끄덕이고 답했다.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동생이 목격자입니다.”
지단길 박사가 동생 고영수를 바라봤다. 요리사 고영수가 급히 답했다.
“박사님, 제가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아버지가 칼에 맞으셨는데 입에서 검은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그래요?”
지단길 박사가 참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잠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아저씨는 우리 집안 핏줄이 아닌데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러게 말이에요.”
수석 연구원 지정혜도 참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검은 피를 토하고 죽는 건 지씨 집안의 유전병이었다.
고두영은 지씨 집안 집사지 가족이 아니었다. 그는 지씨 집안과 어떤 혈연관계도 없었다.
그런 그가 검은 피를 토하고 죽었다.
지단길 박사가 질문을 이었다.
“아저씨가 칼 맞았다고 하셨죠? 자세히 말해보세요.”
비서 고창석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맞습니다. 범인이 칼을 휘둘렀습니다. 아버지는 90세가 넘으셨는데 그런 연로한 노인을 칼로 무참하게 찔렀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습니다. 지갑이나 핸드폰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경찰이 귀띔 해 줬습니다. 정황상 강도 살인은 아니고 누가 아버지에게 원한을 품고 잔인하게 죽인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한 거죠? 아버지는 존경받는 분이신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요?”
지단길 박사가 미간을 찌푸리고 두 눈을 실처럼 가늘게 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가 아는 고두영은 무척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다른 이에게 원한을 살 거 같지는 않았다.
형제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형제가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했다.
10분 후, 지단길 박사 남매가 특실에서 나왔다. 셋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차로 향했다.
날이 더 깜깜해졌다.
어둠과 아스팔트가 혼연일체가 된 거 같았다. 흰 주차선과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없다면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셋이 차 앞에 다다랐을 때
운명의 여신이 남매한테 다가왔다.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 그건 무시무시한 저주였다. 저주가 그 끝을 보려는 거 같았다.
“으윽!”
지단길 박사가 갑자기 신음을 내뱉었다. 그가 갑자기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치 급체한 거 같았다. 그러다가 뭔가를 서둘러 뱉어냈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바닥에 쏟아졌다.
그건 다름 아닌 검은 피였다.
“거, 검은 피!”
지단길 박사가 바닥에 떨어진 검은 피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검은 피의 저주가 결국, 그에게도 덮쳤다.
“오빠!”
수석 연구원 지정혜가 크게 외쳤다. 바닥에 떨어진 검은 피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가 무척 놀란 눈으로 오빠를 쳐다봤다.
잠시 침묵이 흘러내렸다.
주차장에 저승사자가 내려온 거 같았다.
그때! 그녀가 갑자기 메스꺼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윽고 그녀도 뭔가를 토해냈다.
그것 역시 검은 피였다.
“헉!”
셋이 바닥에 떨어진 검은 피를 내려다봤다.
셋의 몸이 고목처럼 굳어졌다.
남매 모두한테 저주가 내렸다. 얼마 전 막내 지수미가 발병했다. 남은 둘도 검은 피를 내뱉고 말았다.
“으으으~!”
지단길 박사가 한 손으로 입을 닦았다. 손바닥에 검은 피가 묻어있었다.
그가 커다란 충격에 빠진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눈에 가장 일찍 죽은 고모가 보였다. 그리고 삼촌, 아버지가 보였다. 그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거 같았다.
죽음의 공포가 남매를 덮쳤다. 이는 도망칠 수 없는 족쇄와 같았다.
1분의 시간이 지났다. 겨우 정신 차린 지단길 박사가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가 급히 어딘가로 전화 걸었다.
신호가 가자, 누군가가 전화 받았다. 지박사가 급히 외쳤다.
“박박사님!”
점잖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네, 소장님.”
지단길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바, 바이오클린은 어떻게 됐나요? 임상실험은 다 끝났나요?”
지박사의 눈이 점점 커졌다.
남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거의 다 끝났습니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마무리만 남았습니다. 마무리가 끝나면 바로 보고할 예정입니다. 하루 뒤면 마무리가 다 끝납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지금 급합니다! 당장 말해주세요! 결과가 어떻죠?”
지단길 박사가 생명줄을 잡은 듯 있는 힘껏 외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남매의 눈이 터질 듯이 커져만 갔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바이오클린이었다. 바이오클린은 유전병 치료제였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유전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바로 지씨 가문의 저주를 끊을 수 있는 특효약이었다.
남자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임상실험 결과는 … 대성공입니다.”
“저, 정말입니까?”
“네, 소장님. 드디어 기적을 이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버님이신 지남철 박사님이 소망하시던 꿈을 마침내 이뤘습니다. 이제 치료제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위대한 첫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크하하하!”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지단길 박사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크게 웃었다. 그가 전화를 끊고 이 기쁜 소식을 동생들에게 알렸다.
“바, 바이오클린이 … 드디어, 성공했어! 우린 살 수 있어! 살 수 있다고!!”
“저, 정말이에요?”
“지금 박박사님이 말씀하셨어. 오랜 연구가 드디어 빛을 발했어. 임상실험 결과가 대성공이야! 아버지의 꿈이 드디어 실현됐어! 이제 상용화할 수 있어! 우리가 먼저 그 약을 먹어야 해!”
“하하하!”
“정말 너무 잘 됐어요!”
남매가 솟구치는 기쁨을 참지 못했다. 좀 전까지는 검은 피를 내뱉고 커다란 충격에 빠진 사람 같지 않았다. 셋이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연구가 빛을 발했어요!”
남매는 어떻게든 유전병의 저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저주는 불시에 들이닥쳐 숨통을 꽉 조였다. 이제 그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 커다란 기쁨에 셋이 뒬 뜻이 기뻐했다.
차에 시동이 걸렸다. 고급 세단이 인주 병원을 빠른 속도로 떠났다.
아스팔트 바닥에 그들의 흔적이 있었다.
저주가 서린 검은 피가 남아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분주히 움직였다. 그는 하얀색 가운을 입고 있었다. 60세로 보였고 중간 키에 살이 많이 쪘다.
머리는 이마가 훤했다. 정수리가 분명히 보일 정도였다. 검은색 뿔테 안경을 썼고 수염이 길었다. 콧수염, 턱수염, 구렛나루가 얼굴의 반을 덮었다.
그의 이름은 박순후였다. 인광 연구소 전임 수석 연구원이었다.
그 옆에 40대 남자가 서 있었다. 마른 체격에 키가 작았다. 곱상한 얼굴이었고 이목구비가 수려한 미남이었다.
그는 박순후 박사의 조수 배기원이었다.
여기는 인광 연구소 지하 2층에 있는 제3 비밀 연구실이다.
이 연구실은 겉으로 볼 때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으로 CCTV 통제 센터 같지만, 그건 속임수였다. 다른 이의 눈을 속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인광 연구소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1순위 국책 연구소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그래서 비밀 연구를 많이 진행했다. 그중의 하나가 지하 2층 제3 비밀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제3 비밀 연구실, 연구 프로젝트는 바로 바이오클린이었다.
연구 책임자는 박순후 박사였다. 박박사는 고 지남철 박사의 조수였고 오른팔이었다. 지박사의 연구를 계승해서 바이오클린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지남철 박사가 죽고 29년이 지난 후, 드디어 그 연구가 결실을 맺었다. 바이오클린 임상실험이 대성공했다
박순후 박사가 지단길 박사와 통화한 후,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옆에 조수, 배기원이 서 있었다.
조수 배기원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박사님!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드디어! 오랜 연구가 빛을 발했습니다. 임상실험 참가자 몸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치솟던 염증 수치가 정상 수치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박순후 박사가 감개무량한 얼굴로 답했다.
“이제 바이오클린을 긴급 사용 목적으로 허가받을 수 있게 됐어. 아직 장시간 관찰이 필요하지만, 일단 큰불은 끈 거야.
지남철 박사님이 만들었던 억제제는 임시방편이었다면, 바이오클린은 확실한 치료제야! 우리가 드디어 큰일을 해낸 거야. 기적을 이뤘어.”
“맞습니다.다 박사님 덕분입니다. 박사님이 29년 동안 모든 힘을 다해 노력한 연구 결과입니다. 정말 감축드립니다.”
“하하하!”
박순후 박사가 크게 웃었다. 그가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나가자고. 자축해야지. 맥주를 실컷 마시자고!”
“네, 알겠습니다.”
조수 배기원이 기쁜 표정으로 출입문 앞에 섰다. 지문 인식과 홍채 인식을 하자, 강철 문이 스르륵 열렸다.
조수가 나가자, 박순후 박사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가 열린 문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맥주를 어서 빨리 마시고 싶은 거 같았다.
신호음이 가자,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박박사님.”
“병아리 2! 드디어 성공했다. 다 네 덕분이다. 디스켓 5개가 큰 도움이 됐어.”
“하하하! 잘 됐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디스켓 다섯 개뿐만 아니라 제 연구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큰 역할이라고?”
“제가 지남철 박사님이 풀지 못한 마지막 퍼즐을 풀었습니다. 그걸 마지막 디스켓에 첨부했습니다.”
“오우! 그랬어.”
“지남철 박사님이 죽기 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자료를 거꾸로 분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박사님은 그걸 마치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그걸 제가 해냈습니다.”
“잘했어. 그걸 어떻게 한 거야?”
“다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도움이 컸습니다.”
“오! 아내의 도움을 받은 거군. 유명한 과학자들이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던데. 자네도 처복을 타고난 모양이야.”
“하하하!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럼, 다음에 보죠.”
“좋았어!”
박순후 박사가 전화를 끊었다. 아주 기쁜 표정으로 비밀 연구실에서 나갔다. 그가 강철 출입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