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포섭한 신도한테 세뇌작업을 했나요?”
유강인의 질문에 장동숙이 격하게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무엇보다 궁인이 말을 참 잘했어요. 신도들이 궁인의 말에 정신없이 빠져들었어요. 그렇게 신도들을 홀렸어요. 신도들이 궁인을 맹목적으로 따랐어요.”
“포섭한 신도들에게 약을 먹이고 주사를 놨는데, 그게 어떤 약물인지 아시나죠?”
“그건 신도들이 앓고 있는 자가면역질환을 고치는 약이었어요. 궁인과 궁녀, 궁모님이 만든 궁극의 약인데 기적의 약이라고도 불렀어요.”
“기적의 약이라고요? 그걸 셋이 만들었다고요?”
“네, 저도 처음에는 그 약의 효능에 대해 반신반의했어요. 신도들은 하나같이 불치병과 난치병을 앓았어요. 보통 병이 아니었어요.
그걸 고치는 걸 불가능해 보였어요. 현대 의학으로도 어림 없는 일이라고 들었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신도들이 그 약을 먹자, 정말 놀랍게도 병세가 확 좋아졌어요. 그래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약 기운이 도는 동안에는 병세가 확실히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신도들이 너도나도 환호성을 질렀어요. 약 효능이 좋다가 기뻐했어요. 여태까지 이런 약은 없었다고 감탄했어요.”
“정말입니까? 무슨 속임수를 쓰는 거 아닙니까?”
유강인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볼 때 그 약은 분명 효능이 있었어요.”
“무슨 마약이나 진통제 같군요. 통증을 교묘하게 감추는 ….”
“아, 그건 아니에요. 신도 중에서 몇몇이 치료 목적으로 의료용 모르핀을 복용했어요. 그 사람들이 말했어요. 이건 마약이 아니라고 했어요. 진짜 약이라고 했어요.”
“마약이 아니라는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이건 조사가 더 필요합니다.”
장동숙이 자기 말이 진짜라며 계속 힘을 주어 말했다.
“약을 먹은 신도들이 궁인을 하늘처럼 떠받들기 시작했어요. 살아있는 신이라고 불렀어요. 제발 병을 말끔히 없애 달라고 간청했어요.
그러자 궁인이 신도들에게 장담했어요. 자신이 궁극의 약을 만들어 신도들의 고통을 말끔히 없애겠다고, 기적을 눈앞에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했어요.
신도들이 그 말을 듣고 기쁨의 눈물을 막 흘렸어요. 저도 그게 실현될 거 같아서 눈물을 막 흘렸어요. 뭐가 댔든 병을 고치면 되는 거잖아요.”
유강인이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건 사기였다. 신도들은 궁극의 약을 만들기 위한 실험 쥐에 불과했다.
그가 청천의 교주를 상상했다. 교주가 신도들 앞에서 신이 나게 떠들었다. 곧 마음껏 뛰놀 수 있다고 신도들의 마음에 커다란 희망을 심어줬다. 뱀의 혓바닥 같은 감언이설로 신도들을 울리고 웃기며 그 간절한 마음을 홀렸다.
‘그렇군. 아주 교활하고 뻔뻔한 놈이야. 네가 신도들의 병을 고친다고 실험 쥐가 아니라? 아주 괘씸한 놈! 천벌 받아 마땅한 놈!’
유강인이 화를 꾹 참고 질문을 이었다.
“궁극의 약을 셋이 만들었다고 하셨죠?”
“네, 궁인, 궁녀, 궁모님이 만들었어요. 그것도 아주 비밀리에 만들었어요. 저는 옆에서 심부름만 했어요. 그래서 궁극의 약을 어떻게 만드는지 전혀 몰라요.”
유강인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뭔가가 이상한 거 같았다. 그가 말했다.
“셋이 약을 만들었다고요? 그 약은 보통 약이 아닌 거 같은데 … 셋이 의료나 연구와 관련된 일을 했나요?”
“제가 볼 때 궁인과 궁녀는 무슨 연구하는 사람 같았어요. 그런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풍겼어요.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걸 우연히 들었어요.”
“궁모는 무당인데 … 어떻게 약 제조에 관여했죠?”
최숙자가 냉큼 답했다. 그 질문을 기다렸던 거 같았다.
“어머니는 굿을 하는 무당이지만, 실은 대단한 재주가 있었어요. 병자를 고치는 약을 곧잘 잘 만들었어요. 그 효능이 끝내줬어요.
그래서 제가 못 참고 그 약이 뭔지 물어봤는데 … 어머니가 고개를 가로저으셨어요. 저는 둔해서 알 필요가 없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만드는 약에 대해 잘 몰라요.
어머니는 신명 나는 굿과 함께 그 약으로 환자들을 고쳤어요. 검붉은 액체가 효험이 참 좋았어요.”
유강인이 의심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 사기 아닙니까?”
장동숙이 정색하고 크게 외쳤다.
“아니에요! 사기는 아니에요. 그 약을 먹고 대부분 상태가 나아졌어요. 다시 나빠진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그 약을 누가 먹었는지 기억이 나나요?”
“많은 환자가 어머니가 만든 약을 먹었어요. 심하지 않은 병은 다 고쳤던 거 같아요.”
“심하지 않은 병이라 … 병을 고치지 못한 사람은 누구죠? 병을 고치지 못해서 원망을 산 적이 있나요?”
장동숙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한 달 전에 하신 말씀이 있었어요. 궁극의 약을 한 손에 들고 이제 소원을 이뤘다고 하셨어요. 오래전에 고치지 못했던 병을 이제는 고칠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셨어요.”
유강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가 침을 꿀컥 삼켰다. 점점 진실에 다가가는 거 같았다. 어린아이가 사탕 앞에서 재촉하듯이 말했다.
“자세히 말해 주세요. 어서!”
장동숙도 침을 꿀컥 삼켰다. 그녀가 비밀을 털어놓듯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검은 피를 흘리며 죽어 가던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어머니가 그 아이를 위해 약을 만들고 마당에서 성대한 굿을 했어요.
그 굿은 제가 신딸이 된 후 두 번째로 참여한 굿이었어요. 60년도 더 된 일이에요. 아주 거창한 굿이었죠. 그 집 주인이 돈이 아주 많은 거 같았어요.”
“뭐, 뭐라고요? 여자아이가 검은 피를 흘렸다고요? 그것도 60년 전에!”
느닷없이 검은 피가 다시 등장했다.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장동숙에게 물었다.
“그곳이 어디였죠? 기억이 나나요?”
장동숙이 먼 과거를 회상하며 답했다. 두 눈에 뭔가가 어렴풋이 보이는 거 같았다.
“그곳은 나무가 아주 울창했어요. … 제가 신딸이 된 후 처음으로 참여한 굿은 작은 집이었어요. 초가집이었죠. 그런데 두 번째로 참여한 집은 남달랐어요. 아주 으리으리한 집이었어요. 그래서 그게 기억에 남았어요. 동쪽 강원도인 거 같아요. 기와집인데 청기와집이었어요.”
“청기와집이라고요?”
“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청기와가 기억나요. 그게 꽤 인상 깊었거든요. 그런 고급 기와는 본 적이 없었어요.”
“청기와!”
유강인이 청기와를 생각했다. 어디선가 들은 거 같았다. 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생각했다.
‘청기와? 어디선가 들은 거 같은데 … 이걸 어디에서 들었더라?’
유강인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오른 손바닥으로 오른 무릎을 탁! 쳤다. 그가 급히 외쳤다.
“양갱!”
어머니가 택배로 받은 양갱이 바로 청기와집 양갱이었다. 그 양갱은 배후 조종자 병아리 2가 보낸 게 분명했다.
유강인이 급히 생각했다.
‘청기와랑 양갱이 연결됐어. 그렇구나! 병아리2와 청기와집이 깊은 관련이 있구나!’
유강인이 급히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어머니에게 전화 걸었다. 신호가 네 번 가자, 어머니가 전화 받았다.
늦은 밤이라 어머니가 자고 있었던 거 같았다. 그녀가 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강인아. 늦은 시간인데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어머니! 택배로 양갱을 받았다고 하셨잖아요. 그 양갱이 청기와집 양갱이라고 하셨는데 맞나요?”
“양갱? 아, 맞아, 청기와집 양갱이 맞아. 그게 뭐? 그게 중요한 거야?”
“네, 아주 중요한 겁니다. 회사 주소가 있으면 문자로 보내 주세요.”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두 손바닥을 쓱쓱 비비기 시작했다. 사건을 풀 실마리가 하나둘씩 그 모습을 드러냈다.
1분 후, 문자가 왔다.
유강인이 청기와집 양갱, 회사 주소를 확인했다. 회사는 강원도 진향리에 있었다. 강원도가 일치했다. 강원도 진향리에 청기와집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제 청기와집으로 달려가서 그 진상을 밝혀야 했다.
유강인이 원창수 형사에게 말했다.
“조사를 여기에서 끝냅시다.”
“네에? 밤샘 조사하는 거 아니었어요?”
원창수 형사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유강인이 답했다.
“내일 일찍 강원도로 가야 합니다. 먼 길이니 가기 전에 좀 쉬어야 합니다.”
“아, 그렇군요. 내일 멀리 가는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서둘러 퇴근해야겠네요.”
“그렇죠. 푹 자야 합니다.”
유강인이 몸을 일으키며 답했다.
그렇게 장동숙 조사가 끝났다.
수사팀이 집과 숙소로 향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강원도로 가야 했다. 쉴 수 있을 때 푹 쉬어야 했다.
밤이 깊어만 갔다.
수사팀이 곤히 잠들었을 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강원도 한 병원에 드리워졌다.
새벽 2시. 고급 세단 한 대가 강원도 인주 병원 앞에 도착했다. 인주 병원은 강원도에서 유명한 대형 병원이다.
고급 세단에서 세 사람이 내렸다. 그들이 안내판을 보고 걸음을 옮겼다. 장례식장 방향이었다. 발걸음 소리가 무척 무거웠다.
셋은 지단길 남매였다. 지단길 박사가 앞장섰고 동생들이 그 뒤를 따랐다.
장례식장에 특실이 있었다. 특실은 빈소를 차리기 전 대기하는 곳이었다. 그곳에 두 사람이 울고 있었다. 둘은 형제였다.
지단길 박사 남매가 특실 안으로 들어갔다.
울고 있는 형제는 지씨 집안과 관련이 깊었다. 형은 지단길 박사의 비서 고창석이고 동생은 지박사의 식사를 책임지는 요리사 고영수였다.
고인은 형제의 아버지였다. 고인의 이름은 고두영이었다. 그는 지씨 가문 집사였다.
집사 고두영은 60년이 넘은 세월 동안 지씨 가문을 위해 봉사했다.
그는 젊은 시절, 고아라 가진 게 없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지씨 집안에 들어가 말단 하인이 되었다. 허드렛일을 하며 농사일과 집안일을 도왔다.
그러다 주인의 눈에 들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충성심과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집안 대소사를 관리하는 집사 자리까지 올랐다.
지씨 집안은 한마디로 대단한 가문이었다.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졌다. 그래서 집사의 위세도 엄청났다. 시장도 지씨 집안 집사에게 깍듯이 대할 수밖에 없었다. 4성 장군을 보좌하는 부관과 같았다.
집사 고두영은 두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지씨 가문을 위해 봉사했다.
어젯밤 고두영이 죽었다. 그는 갑자기 청기와집이 보고 싶었다. 이에 둘째 아들 고영수와 함께 청기와집을 찾았다.
요리사 고영수는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에 주방을 정리하고 아버지와 함께 청기와집을 찾았다.
고두영은 93세였다. 아주 고령이었다. 그는 청기와집 대문인 커다란 솟을대문을 보면서 옛 주인인 지인광을 떠올렸다. 그렇게 감회에 젖었다.
옛 주인 지인광은 그의 은인이었다.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출세의 기회를 줬다. 그렇게 말단 하인에서 집사로 출세한 고두영은 주인 지인광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게 은혜를 갚는 길이라 여겼다.
옛 주인을 그리워하던 고두영이 청기와집 앞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을 때 예기치 못한 비극이 닥치고 말았다.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가 갑자기 등장했다.
살수였다.
살수가 인정사정없이 칼을 휘둘렀다.
고두영은 그 칼에 맞고 쓰러졌다. 이후 입에서 검은 피를 쏟아내고 죽고 말았다.
현재 고두영의 시신은 부검 준비 중이었다. 그는 붉은 피와 함께 검은 피를 흘렸다.
검은 피가 등장하자, 대한민국 경찰청이 바짝 긴장했다. 급히 이 사건을 유강인이 있는 인천 북부경찰서에 맡겼다.
사건을 인계받은 인천 북부경찰서는 유족에게 정밀 부검을 예고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장례식을 치를 수 없었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두 형제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특실에서 울고만 있었다.
“참 안됐어요.”
수석 연구원 지정혜가 입을 열었다. 그가 오빠를 바라봤다.
지단길 박사도 참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막내 동생, 홍보팀장 지수미도 마찬가지였다.
셋이 무거운 마음을 안고 울고 있는 형제에게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