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01편 <행운 빌라 살인 사건>
“강선애씨! 부친께서 남긴 책을 알고 싶습니다.”
유강인이 간곡한 어조로 강선애에게 말했다.
강선애가 멈칫했다.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쳤다. 가느다란 손가락도 흔들렸다. 손에 든 커피잔이 폭풍우에 빠진 돛단배처럼 흔들거렸다.
흔들리는 커피잔에서 커피가 넘쳤다. 바닥을 향해 주르륵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커피는 선혈 같았다. 심한 내상을 입은 사람이 흘리는 피 같았다.
“강선애씨! 괜찮으세요?”
유강인이 바닥에 떨어진 커피를 보고 급히 말했다. 그는 강선애가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셋이 침묵을 지켰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미동조차 없었다.
“형, 형사님!”
강선애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얼굴이 심하게 요동쳤다. 억울하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눈썹과 입꼬리가 아래로 축 처졌다. 극심한 심적 고통을 대변하는 거 같았다.
3초 후 강선애가 힘들게 말을 이었다.
“한참 동안 … 생각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제 결론은 … 여기서 그만 사건을 끝내고 싶어요. 재조사는 의미가 없는 거 같아요. 책은 신경 쓰지 마세요.”
“네? 뭐라고요?”
강선애의 말에 유강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강선애는 분명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그런데 지금은 눈물을 삼키며 사건을 덮으려 했다. 그것도 자기 손으로!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이죠? 분명 병실에서 책이 있다고 했잖아요. 사고 나기 일주일 전 아버지가 주신 ….”
“…….”
강선애가 답을 하지 않았다. 순간! 격양된 표정을 짓고 윗니로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입술에 상처가 난 듯, 붉은 피가 보였다.
형사 둘이 피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방에 침묵이 흘렀다.
유강인이 말없이 강선애를 바라보다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제발 아는 사실을 말해달라고 눈빛으로 간절히 호소했다.
하지만 강선애는 요지부동이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는 거 같았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유강인이 두 손을 꽉 쥐었다. 이제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강선애의 마음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강선애씨!”
유강인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타는 목소리가 들리자, 강선애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부모님과 동생을 생각하세요. 그리고 사건을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걸고 수사에 임한 저를 보세요. 당신이 믿는 성연모는 봉사 단체가 아닙니다. 사람을 이용하고 죽이는 사이비 종교 단체입니다. 제가 당신을 경호하다 당한 걸 잊은 건 아니겠죠? 테러범 독고승, 김만호는 행운 빌라 마을 사람들이었고 성주라는 교주를 모시는 장로들이었습니다. 제 말이 틀렸나요?”
“제발, 제발! 그만!!”
강선애가 더는 듣기 싫은지 크게 울부짖었다.
유강인은 그 소리에 흔들리지 않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독고승, 김만호는 당신이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어릴 적부터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겉보기에 친절한 이웃이었습니다. 그건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스토커 박기정을 죽이고 나까지 죽이려 했습니다. 이건 당신도 아는 사실입니다. 이제 성연모라는 단체에서 벗어나세요. 그들이 부모님과 동생을 죽였을지 모릅니다. 저에게 해코지했던 거처럼 만행을 저질렀을 수 있습니다. 이제 깨어나세요! 그리고 아는 사실을 다 말하세요.”
“흐흑!”
강선애가 울음을 터뜨렸다. 십 년 넘게 굳게 믿어왔던 믿음을 깨고 싶지 않은 거 같았다. 그녀에게 이 믿음은 그동안 삶을 지탱해온 전부였다. 만약 이 믿음이 사라진다면 … 그 충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강선애가 몸을 떨었다.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지금 사실을 말해야 당당히 살 수 있습니다. 커다란 의심을 가슴 속에 품고 계속 사실 겁니까? 그러면 지금보다 더한 고통이 찾아올 겁니다. 부모님과 동생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결국 죽이는 짓입니다. 부모님과 동생을 생각하세요!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세요! 행운은 어디에서 굴러오는 게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믿어야 행운이 찾아옵니다. 자기 목소리에 귀 기울이세요. 다른 사람 말을 듣지 마세요! 이 사건을 해결할 사람은 강선애씨, 바로 당신입니다. 제가 아닙니다. 당신이 유일한 사람입니다!”
유강인이 간절히 호소했다. 강선애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그녀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강선애 양손으로 귀를 꼭 막았다. 가녀린 두 손으로 유강인의 음성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저는 재수 없는 여자예요. 그냥 이렇게 살게요. 더는 더는 ….”
강선애가 힘껏 소리쳤다. 그녀의 고백은 무시무시한 가시덤불 속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연약한 사슴 같았다.
날카로운 가시에 찔릴 거 같아, 그 두려움에 몸으 떨며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거 같았다.
“지금이 재조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제발!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세요. 보고 싶은 거만 보지 말고!”
“헉!”
강선애가 비명을 지르고 바닥에 쓰러졌다.
“아이고, 이런!”
두 형사가 급히 강선애에게 달려갔다.
유강인이 급히 강선애를 안았다.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눈동자가 초점을 잃어갔다.
“강선애씨! 강선애!”
5분 남짓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자, 강선애가 정신 차렸다.
“아!”
강선애가 탄성을 질렀다. 유강인 품에서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얼굴이 상기되었다.
“괜찮으세요?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유강인의 다급한 말에 강선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시 멍하니 뭔가를 생각했다. 그러다 벌떡 일어났다. 안방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철컥!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강선애가 문을 잠가버렸다.
“이, 이런.”
유강인과 차수호 형사가 할 말을 잊었다. 둘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돌처럼 굳어버린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에 돌이킬 수 없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10년간 굳어버린 관성이 변화를 용납하지 않았다.
유강인이 굳게 닫힌 방 앞에서 무척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으시죠? 강선애씨,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다그쳐서.”
“…….”
강선애가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 싸늘함이 감돌았다.
그렇게 10분이 흘렀다.
유강인은 10분 동안 문 앞에 있었다.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문이 열리 기미가 없었다. 그가 차수호 형사에게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이제 돌아가죠.”
“그래, 그래야겠다. 오늘은 아닌 거 같아.”
차수호 형사도 실망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유강인이 다시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강선애씨 마음이 바뀌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수호 형사와 같이 현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갔다.
그때 강선애의 울먹이는 소리가 작게나마 들렸다.
“잘 돌아가세요.”
강선애의 목소리가 들리자, 둘이 괴로운지 머리를 마구 긁적였다.
둘이 어두운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밖에서 동정을 살피던 이호식 형사가 후배들을 맞이했다.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소득이 있었어? 책은? 책은 어떻게 됐어?”
“그게, 휴우~.”
유강인이 차마 답을 하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차수호 형사가 답답한 표정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마음이 변한 거 같았는데 … 아침에 통화했을 때 협조할 거 같았는데 … 이거 참!”
이호식 형사가 상황을 파악했다. 그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래? 이거 참 쉽지가 않군. 마음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군. 이랬다저랬다 하는군.”
이형사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가 잠시 안타까워하다가 고개를 들고 말을 이었다.
“하긴 성연모와 관련이 깊으니 쉽게 말할 수는 없겠지. 그럼, 이만 돌아가자고. 나중에 생각이 바뀔 수 있잖아.”
“알겠습니다. 선배님.”
유강인이 힘없이 답했다.
세 형사가 맥이 빠진 표정으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10여 분의 시간이 지났다.
“어!”
힘없이 걷던 유강인이 뭔가가 생각이 난 듯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급히 말했다.
“분명, 아침에 강선애가 협조할 뜻이 있었어요. 그런데 몇 시간에 뒤에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게 이상해요. 아, 맞아! 집에 들어갈 때 빵집 주인이 갑자기 나왔어요. 케이크를 배달한다고 중얼거렸어요.”
“뭐? 빵집 주인? … 아, 그 사람!”
이호식 형사가 손뼉을 짝 치며 맞장구쳤다. 그가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니 빵집 주인이 우리를 보고 허둥거렸어. 대로로 들어갔다가 몇 분 있다가 돌아왔는데 빵을 그대로 들고 있었어.”
“선배님, 배달 갔는데, 빵을 그냥 들고 돌아왔다고요?”
“응!”
“그렇다면 ….”
유강인이 급히 생각했다. 빵집 주인의 정체를 의심스러웠다.
이호식 형사가 매우 수상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사람이 나를 계속 힐긋 쳐다보는 거 같았어. … 지금 생각해보니 빵집 주인이 좀 수상해.”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급히 외쳤다.
“그럼, 선배님. 빵집 주인이 혹 성연모 사람 아닐까요?”
“성연모 사람이라고!”
“성연모 사람이라면?”
세 형사가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말이 뚝 멈췄다.
몇 초의 정적이 흘렀다.
“이, 이런!”
유강인이 자기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급히 움직였다. 강선애 집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왜 그래? 유형사!”
차수호 형사가 유강인에게 크게 소리쳤다.
“책! 책을 뺏으려는 거 같아요!”
“뭐, 뭐라고?”
그 말을 듣고 두 형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들도 달리기 시작했다. 유강인을 따라서 강선애 집을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
“제발! 전화 받아라! 제발!”
유강인이 달리면서 강선애에게 계속 전화 걸었다. 신호가 갔지만, 전화를 받는 이가 없었다.
“큰일이다! 빨리 가야 해. 빨리!”
유강인이 소리치고 내달렸다. 저 앞에 강선애 집이 보였다. 숨이 턱까지 올라왔지만 이를 악물고 계속 뛰었다.
1층 ‘둘이 함께 과자점’ 간판이 보였다.
유강인이 재빨리 빵집 안으로 들어가 가게를 살펴봤다. 안에 아무도 없었다. 조리실까지 샅샅이 살폈지만, 사람이 없었다.
“큰일이다.”
유강인이 재빨리 빵집에서 나와 공동 출입문으로 달려갔다.
이호식 형사와 차수호 형사는 공동 출입문 인터폰에서 301호 초인종을 계속 눌렀다.
딩동! 딩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걸 어떡하지?”
유강인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다른 집을 누르세요.”
차수호 형사가 이호식 형사에게 말했다.
“알았어.”
이호식 형사가 재빨리 201을 입력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제발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딩동! 딩동!
201호에 사람들이 없는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런!”
유강인이 오른손으로 목을 곽 감쌌다. 숨이 턱턱 막히는 거 같았다. 그러다 뭔가가 생각이 난 듯 급히 움직였다. 건물에서 떨어져 강선애가 사는 집을 올려다봤다. 3층 창문이 약간 열려있었다.
“선배님! 절 위로 올려 주세요. 3층으로 올라가겠습니다.”
“뭐라고?”
“급해요! 지금 시간이 없어요! 강선애씨가 위험할 수 있어요.”
유강인의 다급한 말에 선배들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둘이 정신 차리고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그러다 누구라 할 거 없이 두 손을 모았다.
“손을 밟고 위로 올라가!”
이호식 형사가 외쳤다.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선배들의 손에 오른발을 올렸다.
“영차!”
선배들이 있는 힘껏 그를 위로 올렸다. 2층에 발코니 난간이 있었다. 창문을 열고 화분을 놓는 곳이었다. 간혹가다 새들이 쉬는 안식처이기도 했다.
유강인이 손을 뻗쳐 난간을 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몸을 잡아당겼다.
“조심해! 위험해!”
차수호 형사가 크게 소리쳤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2층 발코니 난간 위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휴우!”
유강인이 전력을 다해 2층 발코니 난간 위로 올랐다. 한 번 숨을 골랐다. 이윽고 3층 발코니 난간으로 오르기 위해 몸을 최대한 수그렸다.
투툭!
그때, 2층 발코니 난간이 심하게 흔들거렸다. 난간은 성인 남자 체중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나사가 풀리기 시작했다.
“어?”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바닥이 꺼지는 거 같았다. 그가 재빨리 점프하고 오른손을 높이 올렸다.
탁! 소리가 들렸다.
천만다행으로 오른손이 3층 난간을 잡았다.
유강인이 오른 손가락에 온 힘을 집중했다.
그때 2층 발코니 난간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흙이 가든 담긴 화분이 아래로 추락했다.
와장창!
화분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2층 난간에서 떨어진 화분이 산산 조각났다.
“아이고!”
이호식, 차수호 형사가 서둘러 화분을 피했다. 산산 조각난 화분에서 흙과 화분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차수호 형사가 유강인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난간이 무너질 수 있어. 어서 빨리 올라가! 빨리!”
“알겠습니다. 으싸!”
유강인이 젖먹던 힘을 짜냈다. 그렇게 3층 발코니 난간으로 올라갔다. 그는 평상시 턱걸이 운동을 많이 했다. 강한 손아귀 힘과 어깨 힘이 있었다. 덕분에 몸을 번쩍 위로 끌어올렸다.
유강인이 3층 발코니 난간 위로 올라갔다.
우당탕!
그때 열린 창문 사이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큰일이다!”
유강인이 사태가 심각함을 깨달았다. 3층에서 일이 벌어지는 게 분명했다. 그가 급하게 창문을 활짝 열었다.
드르륵! 창문이 열렸다.
“어?”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복면을 쓴 남자가 집을 쿵쾅거리며 돌아다녔다. 한쪽 구석에 강선애가 쓰러져 있었다. 테이프 재갈을 물린 채 꽁꽁 묶여 있었다. 그녀가 살려달라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애타게!
“젠장!”
유강인이 크게 소리치고 창문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응?”
거실을 뒤지던 괴한이 고개를 돌렸다. 활짝 열린 창문 앞에 유강인이 이를 악물며 서 있었다.
“헉!”
괴한이 유강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괴한이 이내 정신 차렸다. 품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이 유강인을 향했다.
“야아!”
괴한이 괴성을 질렀다. 번개처럼 유강인에게 달려들었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었다.
번쩍이는 칼이 유강인의 목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왔다.
휙! 거친 바람소리가 들렸다.
칼날이 지척으로 다가왔을 때
그 순간! 유강인이 몸을 굽히고 앞으로 굴렀다.
“이놈이!”
괴한이 나이프를 휘둘렀다.
나이프가 유강인의 등판을 스쳐 지나갔다.
“윽!”
유강인이 칼날의 감촉을 느꼈다. 섬뜩하면서도 차디찬 금속 기운이었다. 순간, 이마에서 식은땀이 뚝 떨어졌다.
괴한이 다시 공격 자세를 취했다.
유강인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적과 정면 대결은 무리였다. 적은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저 앞에 있는 장식장으로 달려갔다.
괴한도 장식장으로 달려갔다. 도망갈 틈을 주지 않았다.
유강인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상황을 살폈다. 그때마다 괴한의 칼날이 시선을 가로막았다.
“넌! 끝장이다!”
괴한이 크게 소리치고 칼을 높이 쳐들었다. 공포 영화에서 보던 그 장면이었다. 높이 쳐든 칼끝이 반짝이는 점으로 보였다.
그때! 유강인이 장식장 문을 열었다. 안에서 종 모양 사기그릇을 꺼냈다. 이 그릇은 강선애가 수집품이었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애지중지 모은 소장품이었다.
유강인이 사기그릇을 꺼내서 괴한에게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바람 소리와 함께 사기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쟁그랑! 와장창!
“젠장!”
괴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아오는 사기그릇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유강인이 괴한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재빨리 사기그릇 두 개를 동시에 던졌다.
“아야!”
사기그릇 하나가 괴한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다. 괴한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다. 이마가 쭉 찢어지고 말았다. 선혈이 이마를 따라서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칼을 든 손을 왼발로 걷어 차버렸다.
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 계단 쪽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호식, 차수호 형사가 결국, 공동 출입문을 열고 위로 올라왔다.
“이놈이!”
괴한이 이마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고함을 질렀다. 분을 참을 수 없는지 유강인을 향해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엉켜서 싸우기 시작했다.
난투극이었다.
유강인은 몸이 아직 정상이 아니었다.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더군다나 건물을 기어오르며 체력이 바닥이 났다.
퍽!
“윽!”
유강인이 괴한의 주먹을 턱을 맞고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쾅! 쾅!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강선애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을 막은 테이프 때문에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그녀 앞에 유강인이 쓰러져 있었다. 그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었다.
강선애가 이를 악물었다. 죽기 살기로 몸을 일으켰다. 비록 밧줄에 몸이 묶였지만, 기어서 움직일 수는 있었다.
괴한이 바닥에 떨어진 칼을 다시 쥐어 들었다. 쓰러져 있는 유강인을 향해 칼을 높이 쳐들었다. 이번에는 끝낼 요량이었다.
강선애의 두 눈이 수박처럼 커졌다. 그녀가 몸을 바닥에 굴렸다. 괴한을 향해 데구루루 굴러갔다.
“아이고!”
강선애의 몸에 괴한의 발이 걸렸다. 괴한이 중심을 잃고 앞으로 나동그라졌다. 얼굴을 바닥에 쾅! 찧고 고통을 참을 수 없는지 울부짖었다. 칼이 손에서 떨어졌다.
강선애가 몸을 구르자, 입을 막았던 테이프가 반쯤 벗겨졌다. 그녀가 고개를 들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3512! 번호가 3512예요!”
현관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3512! 알겠습니다.”
1초 후
삐리릭!
덜컹!
현관문이 활짝 열렸다. 문 앞에 이호식, 차수호 형사가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다.
“어?”
두 형사가 등장하자, 괴한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한 손으로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고 형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주먹과 발을 마구 날리기 시작했다.
“이, 이놈이!”
이호식 형사가 날아오는 발길질을 피하며 크게 소리쳤다.
괴한은 난동을 멈추지 않았다.
괴한의 주먹이 이호식 형사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이형사가 뛰어난 반사 신경으로 고개를 싹 돌려 주먹을 피했다. 재빨리 몸을 움직여 괴한의 왼쪽 손목을 꽉 잡았다. 벽 쪽으로 강하게 밀었다.
쿵!
“아야!”
괴한의 이마가 벽에 부딪혔다. 그곳은 사기그릇에 맞은 곳이었다. 맞은 곳을 또 얻어맞았다. 쓰라린 고통에 얼굴이 오만상이 되었다. 이마가 너덜너덜해졌다.
“넌 끝이다. 이놈아!”
이호식 형사가 이를 악물고 괴한의 손목을 팍 꺾었다.
“아이고! 아야!”
괴한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발을 동동 굴렀다.
철컥!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차수호 형사가 괴한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상황이 종료됐다. 이호식 형사가 괴한을 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괴한이 멱살이 잡힌 채 질질 끌려갔다. 산에서 내려와 난동을 부리던 멧돼지를 잡은 거 같았다.
차수호 형사가 급한 숨을 내쉬었다. 그가 집안을 서둘러 살폈다. 유강인과 강선애가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바닥에 서슬 퍼런 나이프가 덩그러니 있었다.
“괜찮아? 유형사!”
차수호 형사가 유강인에게 달려가 부축했다. 유강인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냥 한 대 맞은 거뿐입니다. 요즘 들어 많이 얻어맞네요. … 아야!”
유강인이 턱이 아픈지 인상을 찌푸렸다.
“으으으!”
그때 강선애의 신음이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유강인이 급히 일어났다. 그는 고갈된 체력과 몰려오는 통증에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