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01편 <행운 빌라 살인 사건>
궁극지상 12금계 책을 살피던 유강인이 책을 덮었다. 그 책을 차수호 형사에게 건넸다. 차형사가 책을 펼치고 내용을 살폈다.
유강인의 손에 궁극지상 12계가 들려있었다. 이 책이 금계보다 중요했다. 강선애 아버지, 강후식이 죽기 전에 딸에게 준 책이었다. 이 책은 교단의 일인자인 성주만이 가질 수 있는 대단한 책이었다.
유강인이 침을 꿀컥 삼켰다. 이 책에 무슨 비밀이 있을 거 같아 가슴이 떨렸다. 그가 강선애에게 말했다.
“이 책을 살펴보셨나요?”
강선애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답했다.
“교단에서 신성시하는 책이라, 볼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성녀가 된 후, 궁극지상 12금계만 탐독했어요. 이 책은 아버지 유품이라 잘 보관만 하고 있었어요. 몇 년 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잠시 열어보기는 했지만 … 처음 몇 장만 보고 책을 닫았어요. 저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서.”
“그렇군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궁극지상 책 두 권은 모두 작은 소설책 크기였다. 페이지 수도 200페밖에 되지 않았다. 하얀 표지에 커다란 궁서체로 궁극지상 12계, 궁극지상 12금계라 적혀 있었다. 겉보기에 무협 소설에 나오는 무공비급 같았다. 규화보전, 구음진경과 같은 ….
유강인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궁극지상 12계 책은 10년 전 끔찍한 살인 사건과 깊숙한 관련이 있는 거 같았다. 그래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럼 펼쳐보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떨리는 손으로 책 표지를 열었다. 그리고 재빨리 페이지를 넘겼다.
서장은 음양의 원리와 일체의 조화를 설명했다.
책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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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陰陽)은 원래 하나다. 정의할 수 없는 완전체(完全體)다. 이를 도(道)라 부를 수 있다. 도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부르는 명칭일 뿐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신묘(神妙)한 것이다. 도는 서로 잡아당기며 미는 성질이 있으며 도가 갈라지면서 음양이 생성됐다. 서로 떨어진 음양은 서로 그리워하며 다시 합치는 성질이 있으며 이를 일체(一體)라 부른다. 음양이 일체를 이룰 시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궁극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음양이 서로 믿지 못하고 갈라지면 다시 개별적인 존재하며 각각 제한된 음과 양의 기운만을 가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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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던 유강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한 종교의 원리가 아니라 철학 서적을 보는 거 같았다. 그가 페이지를 계속 넘겼다.
본론은 음양 일체(陰陽 一體)라는 궁극 지상(窮極 至上)을 위해 남자가 해야 할 12개의 계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건 겸양(謙讓), 자비(慈悲), 극기(克己), 순결(純潔), 청빈(淸貧) 등 12개의 선을 나열하고 그 실천방안이 있었다.
유강인이 페이지를 재빨리 넘겼다. 그렇게 후루룩 넘겼다. 맨 마지막에 저자, 성동 황보술의 당부의 말이 있었다.
‘궁극지상 12계를 통달해 매일 빈틈없이 실천한다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러면 거짓의 세계에서 진실의 눈을 뜬다.’
“이게 끝인가?”
유강인이 실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책은 종교철학 그 자체였다.
차수호 형사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왜 그래? 유형사? 책에 뭐라고 적혀 있는데?”
유강인이 실망한 표정으로 답했다.
“말 그대로 종교 서적이네요. 책 자체는 별거 없는 거 같아요.”
“그래? 이 책을 교단에서 매우 중요시한다고 했잖아! 무슨 비급처럼.”
“그렇긴 한데, 이번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차지하려고 참극이 일어났다는 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요. 사람을 죽일 만큼 의미가 있는지 ….”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차수호 형사에게 책을 건넸다. 궁극지상 12계가 단서가 될 거 같았는데 그런 거 같지 않았다. 그가 난감하다는 표정을지었다.
차수호 형사가 책을 받고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다. 그 역시,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차형사가 책을 훑어보고 닫았다. 그가 말했다.
“이 책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데 …. 이게 세 사람을 죽일 정도로 중요한 책이라고?”
차수호 형사가 말을 마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 답답함을 참을 수 없는지 책을 마구 흔들었다.
그때! 운명의 여신이 성큼 다가왔다.
흔들리는 책 속에서 뭔가가 보였다. 책 중간에 종이 한 장이 삐죽 튀어나왔다.
책이 흔들릴수록 종이가 그 모습을 확실히 드러냈다. 책처럼 빛깔이 누런 종이었다.
“어?”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흔들리는 책 속에서 점점 튀어나오는 종이를 보고 두 눈이 대문짝만큼 커졌다.
책에서 튀어나오던 종이가 책에서 빠져나왔다. 공중에 붕 떠 있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종이는 반으로 접혔다. 세 사람이 모두 깜짝 놀랐다. 갑자기 나타난 종이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대체 뭐지?”
유강인이 급히 몸을 숙여 종이를 집었다. 감촉이 책 종이와 달랐다.
“이건 책 종이가 아니야!”
유강인이 크게 소리쳤다. 큰 소리에 차수호 형사가 급히 말했다. 뭔가를 깨달은 거 같았다.
“종이를 빨리 열어봐! 유형사! 빨리. 이게 단서 같아!”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쳤다. 두 눈을 크게 뜨고 글씨를 읽었다.
“아, 아니! 이럴 수가!”
유강인이 매우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입술이 당혹감에 심하게 떨렸다. 차수호 형사도 종이를 살폈다. 차형사가 그 내용을 읽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기 눈을 믿을 수 없는지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 떴다.
차수호 형사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그렇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된 거구나! 세상에!”
차수호 형사가 기막혀했다.
그 모습을 보고 강선애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유강인에 서둘러 걸어갔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종이에 뭐라고 적혀 있는데요? 형사님! 어서 말해주세요.”
“그, 그게 ….”
유강인이 말을 잇지 못했다. 강선애의 눈을 피하며 말을 잇지 못 했다.
강선애가 깨달았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챘다.
잠깐의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형사들이 여전히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들이 강선애 시선을 회피하며 주저했다.
강선애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유강인이 들고 있던 종이를 꽉 붙잡았다. 진실을 갈구하는 뜨거운 시선이 유강인의 두 눈에 꽂혔다.
유강인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선애가 고개를 흔들었다. 보고 싶다고 눈빛으로 말했다. 가녀린 손이 종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종이를 둘러싸고 둘이 대치했다.
강선애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종이에 뭐가 적혀 있는지 알고 싶어요. 사건과 관련된 거라면 제가 반드시 알아야 하잖아요!”
강선애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직감이 그녀에게 말했다. 이 종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10초 후 유강인이 항복했다. 강선애의 뜨거운 시선을 외면할 수 없었다. 유족은 사건의 진실을 알야야 했다. 그가 종이에서 손을 뗐다.
강선애가 종이를 받았다. 그녀가 참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뭔데 그러세요?”
유강인이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강선애가 유강인을 한 벌 힐긋 쳐다보고 종이를 읽었다. 종이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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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서>
음양일체교 성주 황보술은 장로 강후식에게 다음을 서약한다.
황보술은 성동 교통과 성동 재단에 이중장부를 사용해 60억 원을 횡령한 사실을 인정한다. 이 사실을 무마하는 대가로 강후식에게 궁극지상 12계를 금일 넘기고 사흘 뒤 8월 26일에 현금 10억 원을 지급한다. 아울러 한 달 뒤 9월 23일에 현금 20억 원을 강후식에게 추가 지급하기로 서약한다.
이 사실을 우리 사이의 영원한 비밀로 감추기로 서로 동의한다.
2000년 8월 23일 성주 황보술 인, 장로 강후식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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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갈겨 쓴 글씨에 두 사람의 지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유강인이 이 각서를 읽고 온몸이 굳었다.
강선애가 이 각서를 읽으며 큰 충격을 받을 게 분명했지만, 이를 막을 수 없었다. 사건의 피해자에게 진실을 숨길 수 없었다.
각서를 읽어가던 강선애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얼굴에 핏기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두 눈이 점점 새하얘졌다. 공포에 질린 듯 흰자가 크게 보였다. 입술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듯 다물지 못했다.
잠시 후 손에 힘이 풀리며 각서가 바닥으로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이윽고 비명이 들렸다.
“아악!”
처절한 비명이 응급실 건물 앞에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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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서울지방경찰청 강력반 조사실이다.
이호식 형사가 무서운 표정으로 ‘둘이 함께 과자점’ 주인 정일권을 노려봤다. 이형사가 주먹으로 책상을 쾅! 치고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말해! 황보술이 시켜서 강선애를 해한 거지? 빨리 말하라고!”
“…….”
정일권이 눈을 꼭 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죽어도 말할 수 없다는 거 같았다.
“네가 계속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핸드폰은 대포폰이지만, 메일은 진짜더군. 네 컴퓨터에서 증거가 다 쏟아져나왔어. 정일권 당신은 강선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어. 강선애를 경호하던 유형사 사진도 다량으로 나왔어. 이래도 말하지 않을 거야? 큰 죄를 혼자 뒤집어쓰려고 그러는 거야? 대체 뭣 때문에!”
정일권이 더는 듣기 싫은 듯 고개를 마구 흔들어댔다. 두 손으로 귀를 꽉 막았다.
그때 조사실 문이 열렸다. 유강인과 차수호 형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둘은 각서를 읽고 매우 놀란 강선애를 입원시켰다. 중요 증거인 각서와 궁극지상 12계 책을 들고 강력반 사무실로 돌아왔다.
둘이 정일권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둘은 조사실로 들어오면서 이호식 형사의 호통을 똑똑히 들었다.
유강인이 강경한 목소리로 정일권에게 말했다.
“정일권! 나를 알아보겠지. 나를 죽이려 했잖아.”
정일권이 유강인을 보고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유강인이 크게 외쳤다.
“정일권! 10년 전 행운 빌라 일가족 살해 사건 증거가 나왔다. 당신이 그토록 숭배하는 황보술, 그 작자가 쓴 각서가 나왔다고! 황보술이 60억을 횡령했고 감사였던 강후식이 이를 알아챘어. 황보술은 강후식에게 궁극지상 12계와 30억을 주는 조건으로 폭로를 막았어. 이후 황보술은 분을 참을 수 없는지 강후식 일가를 해쳤어. 모든 진상이 드러났어.”
“뭐, 뭐라고?”
정일권이 유강인의 말에 너무 놀란 나머지 급히 고개를 들었다.
유강인이 차디찬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이 숭배하는 성주란 자가 그런 자다. 세상에 둘 다 없는 천사와 같은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왜 그런 자에게 충성하지? 그자는 아주 파렴치한 자다. 당신에게 몹쓸 짓을 시켰어. 강선애 집에 쳐들어가 책을 강제로 뺏으라고 사주했어. 그런 파렴치한 자를 왜 보호하려 하지? 어서 사실대로 말해. 그러면 죄가 감형될 수 있어. 당신은 여성을 납치하고 무단 침입했어.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물건까지 훔치려 했지. 이게 얼마나 큰 죄인 줄 모르는 거야? 어서 말하라고! 황보술 그자가 시켰다고! 배후에 그자가 있다고!”
유강인의 서슬 퍼런 호통을 쳤다.
그 말을 듣고 정일권이 오금이 저린지 벌벌 떨었다.
유강인 뒤에 서 있던 이호식 형사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유형사가 말을 참 잘했네. 여성에게 폭력 행사한 건 아주아주 큰 죄지. 거기다가 독고승, 김만호와 메일로 연락했더군. 유형사 사진을 그들에게 보냈어. 그러면 형사 테러에 가담한 셈이지. 죄가 꽤 늘어난 거야. 경찰 폭행에다 경찰 살인 미수 가담이라니, 이건 감옥에서 아주 오래 살아야 할 거야!”
“으악!”
정일권이 더는 견딜 수 없는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우는 소리로 크게 외쳤다.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 성주님이 명령하셔서 어쩔 수 없었어요. 성주님은 저의 은인입니다. 살아갈 용기를 잃은 저에게 희망을 주셨어요. 그래서 거역할 수가 없었어요. 그가 뭐가 됐든, 잘 해결하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하셨어요, … 흑!”
정일권이 말을 마치고 크게 울기 시작했다. 어리석음 깨달은 한 남자의 처절한 울음이 조사실에 크게 울려 퍼졌다.
이호식 형사가 추상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정일권, 당신은 황보술에게 사주받았다는 거를 인정하는 건가? 어서 말해!”
정일권이 크게 숨을 내쉬고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맞아요. 황보술이 시켰습니다. 전 그대로 따른 거뿐입니다. 강선애 집으로 가서 책을 뺏으라고 지시받았습니다.”
“됐어! 아주 잘 됐군. 독고승과 김만호는 어떻게 됐지? 그 조사는 우형사에게 맡겼잖아?”
이호식 형사가 차수호 형사에게 물었다. 차형사가 빙긋 웃으며 답했다.
“다행히 우형사가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그들도 황보술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성녀를 지키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 단 폭행은 자기 맘대로 한 거라고 진술했습니다. 황보술은 폭행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고 그냥 잘 해결하라는 말만 했답니다.”
“뭐, 뭐라고? 이것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황보술을 두둔해! 참, 어이가 없군.”
이호식 형사가 어이가 없는지 혀를 찼다.
그때!
“앗!”
유강인이 뭔가를 생각이 난 듯 입을 크게 벌렸다.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뭔가가 풀리지 않은 듯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눈짓으로 선배들에게 신호했다. 같이 밖으로 나가자고 ….
“왜 그래, 유형사?”
선배 형사들이 유강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유강인은 묵묵부답이었다. 유강인이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두 형사도 따라서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