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01편 <행운 빌라 살인 사건>
행운 빌라 사건 재조사 32일 차,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강력반 조사실.
유강인이 조사실에 홀로 앉아 자료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는 아침 일찍 출근해 살인 피의자 김철수 보고서를 점검했다.
보고서는 그가 만 하루 반 동안 잠들어 있을 때 이호식, 차수호 형사가 작성한 보고서였다.
유강인이 출근하자, 강력반 형사들이 너도나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사건의 마무리를 당부했다.
이에 유강인이 힘을 냈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마지막 조사에 임했다.
조사실 문이 열렸다. 차수호 형사가 커피잔을 들고 들어왔다.
“유형사. 벌써 다 봤잖아. 뭘 세 번이나 보고 있어. 어서 김철수를 조사해야지. 보고서를 마무리 짓는다며!”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보고서를 다시 훑어본 후 파일을 탁 덮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김철수를 불러오세요.”
차형사가 씩 웃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행운 빌라 사건, 살인 피의자 김철수가 조사실 안으로 들어왔다. 차수호 형사도 조사실 안으로 들어왔다.
김철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지 초췌해 보였다. 한마디로 불쌍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유강인은 냉정한 자세를 유지했다. 꽁꽁 언 얼음보다도 차디찬 어조로 말했다.
“김철수씨! 자리에 앉으세요.”
차디찬 말에 김철수의 낯빛이 하옇게 질렸다. 가슴에 비수가 박혔는지 꼼짝도 못 했다.
차수호 형사가 그를 강제로 자리에 앉혔다.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김철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듯 보였다. 아무리 빌어도 소용없고, 무릎 꿇고 사정해도 용서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거 같았다.
유강인은 사로잡힌 흉악범을 보고 생각했다. 가시 우리에 갇힌 사나운 맹수가 앞에 있는 거 같았다.
앞에 있는 맹수는 차디찬 마음과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 그렇게 난폭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무력화됐다. 우리에 갇혀 초라해 보였다.
아무리 발톱과 이빨이 날카롭고 단단해도 진실의 우리에서는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김철수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양심이 아는 진실의 우리에서 옴짝달싹 못 했다.
유강인이 한 번 헛기침 했다. 김철수의 눈을 바라보았다.
김철수가 유강인의 시선을 회피했다. 한동안 벽만 바라다봤다. 멍한 표정이었다. 이제는 세상일에 관심 없다는 거 같았다.
“김철수씨!
“…….”
아무런 답이 없었다.
답답한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다.
침묵이 계속되자, 차수호 형사가 짜증이 났는지 조사실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무서운 표정으로 김철수에게 성큼 다가갔다.
“선배님.”
유강인이 한 손을 들어 선배의 행동을 제지했다.
차형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었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때, 유강인이 두 주먹을 꽉 쥐고 입을 열었다.
“김철수씨, 당신의 뒷배인 황보술도 체포됐습니다. 확실한 물증을 잡은 이상, 황보술은 살인 교사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
“당신이 한 짓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특별한 사정이 있었겠지요. 이유 없는 행동은 없으니까요.
왜 그런 짓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속사정을 속 시원히 말해보세요. 묵비권을 행사하면 세상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
김철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그는 계속 유강인의 시선을 피하며 속내를 감췄다.
자신이 저지른 부끄러운 행동에 할 말이 없어서 유구무언인지 아니면 다 뒤집어쓰게 돼서 억울한 건지 그 속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떨리는 손은 속마음을 대변했다. 속마음이 요동치는 거 같았다. 거센 풍랑에 흔들리는 돛단배처럼 마구 흔들리는 거 같았다.
유강인이 떨리는 손가락을 지켜봤다. 그러다 간곡히 호소했다.
“당신에겐 부인과 자식이 있습니다. 지금 그들에게 부끄러운 남편과 아버지가 되고 말았지만, 당신이 그들을 위해 여태껏 열심히 살아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고아원 출신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살아온 거는 사실이니까요.
당신은 강후식 일가를 자발적으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황보술의 사주로 그 명을 따를 거뿐입니다.
그간 사정을 속 시원히 털어놓는다면 다른 사람들을 몰라도 부인과 자식들은 당신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겁니다.”
“흑!”
김철수가 울음을 터뜨렸다. 머릿속에 아내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아내는 황보술이 소개해준 여자였다. 너무나도 예쁜 여자였다. 그래서 한눈에 반해버렸다.
김철수는 젊은 시절에 아내를 만났다. 첫 만남 이후 동고동락했다. 힘들 때 같이 울고 기쁠 때 같이 껴안으며 기쁨을 나눈 연인이자 친구였다.
김철수의 머릿속에 과거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1년 후, 둘은 결혼식을 올렸다. 성동연합모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그들의 결혼을 축하했다.
2년 후, 첫 아이가 태어났다.
김철수는 아이 얼굴을 보고 감동했다. 그는 부모 얼굴조차 몰랐다. 그런 그가 아버지가 됐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자기를 버린 부모와 달리 훌륭한 아버지가 되기로 다짐했다.
‘은혜야! 미안해, 은혜야!’
김철수가 속에서 울부짖었다. 부인의 이름을 연달아 불렀다. 15여 년간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아내를 간절히 보고 싶었다.
“김철수씨, 왜 그날 강후식을 찾아갔죠?”
유강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김철수에게 물었다.
“그, 그건 ….”
“김철수씨, 어서 말해주세요. 그날의 진실을 말해주세요. 그래야 남은 인생을 편히 살 수 있습니다. 설령 내일 죽을 운명이라 해도 오늘 하루만큼은 마음 편안히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 오늘만큼은 ….”
김철수가 자신을 돌아봤다. 현재 일가족 살인혐의로 구속수감 되었다. 빠져나갈 구멍은 전혀 없었다. 오직 법의 엄정한 심판과 집행만이 남은 상태였다.
그에게 하루하루는 지옥 같았다. 차라리 빨리 법의 심판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잡힌 이후, 한시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거 같았다.
하지만 유강인의 말대로 여기서 다 털어놓는다면 홀가분해질 거 같았다.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거 같았다.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 둘도 없는 후레자식이라고 손가락질해도 마음의 짐만큼은 덜고 싶었다. 훨훨!
김철수의 인상이 점점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사방을 쭉 둘러보다가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떡였다.
유강인이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굳게 닫혔던 입이 열렸다. 김철수가 아주 천천히 말했다.
“드디어, 말할 때가 됏네요. 10년 동안 감추었던 진실을, 이제는 ….”
차수호 형사가 급히 자리에 앉았다. 귀를 쫑긋하며 피의자의 말을 경청했다.
“10년 전,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축하받으러 성주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성주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여태껏 못 봤던 심각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무슨 일이 있는지. 그랬더니 주춤하셨어요.”
김철수가 그날을 회상하다 목이 메는지 물을 찾았다.
차수호 형사가 서둘러 물 한잔을 건넸다.
김철수가 떨리는 손으로 물컵을 잡았다. 컵이 흔들리자. 물이 튀었다. 소매가 젖었지만, 그는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철수가 물을 단번에 깨끗이 비우고 다시 말을 이었다.
“성주님께 계속 물어봤습니다. 제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주님이 힘들게 입을 여셨습니다. 고향 동생이자 친구인 강후식 그놈에게 협박당했다고 ….
그 소리를 듣고 순간 분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성주님과 강후식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습니다. 교단과 재단이 날로 성장하면서 둘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강후식이 그자가 무척 교만해졌습니다.
성주님은 무례한 강후식을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자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말을 들어보니 김철수씨는 황보술과 보통 사이가 아닌 거 같군요. 성주인 황보술을 어떻게 알게 됐죠?”
유강인이 넌지시 김철수와 황보술의 인연에 대해 물어봤다.
“전 고아원 출신입니다. 거기에서 도식이, 이도식과 만났습니다. 우리는 형제처럼 지냈습니다. 도식이가 다른 놈에게 맞으며 제가 그놈을 혼쭐 내줬습니다.
옛날에는 그때가 지옥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때가 그립습니다. 그때는 나쁜 놈들을 내 손으로 혼 내준 던 때였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다 도식이가 입양됐습니다. 그때 제가 신신당부했습니다. 거기 가서 잘살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파양되고 말았습니다.
도식이가 양부모에게 얻어맞았는지 얼굴과 몸에 커다란 멍이 있었습니다. 둘이 부둥켜안고 한동안 울었습니다.
그때 사회에 나가서 꼭 성공하자고, 돈도 많이 벌자고 … 그래서 멸시당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김철수가 옛일을 회상하며 눈시울 붉혔다.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떨리는 손으로 닦았다.
차수호 형사가 고개를 돌렸다. 살인자의 눈물을 보기 싫은 거 같았다.
김철수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회 나가보니 고아원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배운 거도 없고 기술도 없어서 허드렛일만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이걸 풀겠다고 술을 많이 먹어서 간도 망가졌습니다. 위궤양이 심해 참 힘들 시절이었습니다.
도식이는 영양실조였어요. 결핵에 걸려서 누런 가래와 피를 토했습니다. ”
“그렇군요. 힘든 삶을 사셨군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며 피의자의 말을 경청했다.
“20대 시절, 멸시란 멸시를 다 받으며 고생만 했습니다.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욕도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별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했어요.
그러다 아주 우연히 성주님을 만났습니다. 성주님이 저랑 도식이를 딱히 여기고 일자리를 줬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기술 학원도 보내줬습니다. 덕분에 좋은 일자리도 얻었고 돈도 벌었어요.”
“황보술이 은인이었군요.”
“네! 제 은인입니다. 성주님이 한 여자도 소개했습니다. 교단 직원의 사촌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보고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청혼했습니다. 청혼했을 때 은혜가 싫다고 해서 낙담했습니다.
성주님이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은혜의 마을을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게 성공해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행운 빌라 101호로 신혼집을 차습니다.
집 살 돈이 부족했는데 성주님이 흔쾌히 돈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보금자리를 장만했습니다.”
“그렇군요.”
“성주님은 저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은인이기도 하고요. 도식이도 저랑 마찬가지로 성주님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서 성주님을 거역하는 강후식을 용서할 수 없었군요.”
“네! 맞습니다. 강후식 그자는 처음 볼 때부터 기분이 나빴어요.
제가 처음 교단에 들어갔을 때 회식 자리가 있었습니다. 강후식 그자가 성주님께 버릇없이 굴었습니다. 성주님이 그걸 다 받아줬습니다. 그래서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둘은 고향 친구였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성주님에게 반말하는 자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유강인이 생각했다.
사람 사이의 감정이란 예측 불가였다. 그 끝도 알 수 없었다. 때로는 열렬한 사랑이 불꽃처럼 타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타오르기도 했다.
유강인은 세파에 시달려 꺼져가는 촛불이었던 김철수가 황보술을 만나 되살아났지만, 무자비한 폭풍이 된 것만 같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