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01_47_김철수의 자백2

탐정 유강인 01편 <행운 빌라 살인 사건>

by woodolee

김철수가 크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강후식 그자는 성주님 최측근이라는 이점을 이용했습니다. 이사회에서 감사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자기 부인까지 총무 자리에 올렸습니다.

총무는 재단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돈을 관리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성주님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강후식이 이사들을 구워삶았고 성주님까지 설득해서 총무 자리에 자기 부인을 냉큼 앉혔습니다. 이는 완전 패착이었습니다.”


“김철수씨는 다른 사람을 추천했나요?”


“우리는 부동산 주인 하연수를 밀었습니다. 하연수는 교단과 재단의 홍보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일을 아주 잘 해냈습니다. 충성심이 높은 자였습니다.

우리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하연수가 총무 자리에서 떨어졌습니다.

그 이후, 강후식과 그자의 부인이 재단에서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나중에는 성주님도 버거워하셨습니다.”


“강후식의 힘이 점점 커지는 게 불안했군요.”


“네, 맞아요. 두려웠어요. 우리는 그동안 강후식과 대립했습니다. 그자가 실권을 장악하면 교단과 재단에서 배척받을 게 뻔했습니다.”


“강후식과 대립한 사람들이 누굽니까?”


“저와 도식이, 하연수, 라미경 등 행운 빌라 마을 사람들 주축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강후식을 싫어했습니다. 이웃이었지만 그자의 뻔뻔함과 오만방자함에 다 치를 떨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렇게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갔는데 설상가상으로 그자의 딸이 선녀 중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차기 성녀 감으로 뽑혔습니다.

그자의 딸이 너무 예쁘고 고상해서 이건 이견이 없었습니다. 이사회와 장로단, 신도 대표들도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더 두려웠습니다.

교단의 2인자인 성녀 자리까지 강후식 일가가 차지하면 재단과 교단을 다 차지할 게 자명했습니다.”


“강후식이 예전부터 눈엣가시였군요.”


“맞아요. 눈에서 빼고 싶은 아주 깊은 가시였습습니다.”


“황보술이 강후식 살해 명령을 내리자, 강후식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 명령에 군말 없이 따른 거군요. 이번 기회에 그를 제거하기 위해서.”


“네! 맞아요, 형사님. 성주님이 저에게 더는 참을 수 없다면 은밀히 그자를 해치 울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부동산에 모여서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리도 강후식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강후식의 어린 아들까지 해쳤나요?”


“그 아이를 살려두면 … 나중에 사실을 알고 복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걔를 보면서 살 자신도 없었습니다.”


“딸 강선애는 왜 살려준 거죠?”


“강선애는 차기 성녀였고 교단에서 걔를 대체할 인물이 없었습니다. 교단과 재단의 미래를 위해 강선애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걔만 있으면 교세를 지금보다 배로 늘릴 수 있다고 모두 생각했습니다. 예상대로 성녀가 되자, 임무를 잘 수행했습니다. 교세가 많이 확장됐습니다. 여성 신도들이 대폭 늘었습니다.”


“그래서 강선애를 살려준 거군요.”


“솔직히 강선애를 볼 때마다 괴로웠어요. 걔가 엄마를 많이 닮았어요. 엄마도 대단한 미인이었어요.”


김철수가 괴로운지 한 손을 들고 가슴을 쿵쿵 내리쳤다. 그는 10년 동안 강선애를 보면서 무척 괴로웠다. 가슴 깊은 곳에서 양심의 칼날이 요동치면서 곳곳에 상처를 냈다.


유강인이 질문을 이었다.


“사건 당일 황보술은 남해안에서 개최한 수련회에 참석했습니다. 사건 현장에 황보술이 없었던 게 맞나요?”


“네! 맞습니다. 성주님은 지방에 계셨습니다. 모든 일을 우리가 꾸몄습니다. 나중에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계획을 짜고 일을 진행했나요?”


“계획은 우리 중에서 가장 똑똑한 하연수가 잤습니다. 하연수는 그동안 홍보 일을 참 잘했습니다. 머리가 좋았고 수완도 좋았습니다.

하연수가 며칠 고민하더니 완벽한 계획이라고 우리를 불러 모았습니다. 범죄 시나리오를 설명하고 각자 역할을 암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연수!”


유강인이 평화 부동산 주인 하연수를 떠올렸다. 그녀는 평범한 여인처럼 보였지만 장사 수완이 대단히 좋은 사람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세 치 혀로 갖고 노는 데 능수능란했다.


유강인이 쓴웃음을 지고 다시 말을 이었다.


“맨 처음 CCTV에 찍힌 사람이 누구죠?”


“그 사람은 편의점 주인 독고승입니다. 우리 중에서 가장 체격이 평범해서 그를 택했습니다.”


“그렇군요. 범행 계획에 따라서 독고승이 먼저 행동을 개시했군요.”


“네, 계획한 대로 독고승이 움직였습니다. 일부러 CCTV 아래를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행운 빌라로 왔습니다. 독고승이 행운 빌라에 오자ㅡ 다음 계획을 진행했습니다.

도식이랑 같이 301호로 올라갔습니다. 발소리를 최대한 줄였습니다. 열쇠로 문을 열었습니다.

도식이한테 열쇠가 있었습니다. 빌라 친목 모임 때 301호 열쇠를 몰래 훔쳐서 복제했습니다. 그래서 문 여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문을 열고 제가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각서와 책, 돈을 회수해서 라미경을 기다렸나요?”


“네, 일을 마치고 라미경을 기다렸습니다. 라미경이 301호로 올라와 계획대로 문을 열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비명이 결국, 연기였던 거군요.”


“그렇죠. 모두 계획된 겁니다.”


“비명이 들리자, 확보한 각서와 책, 돈다발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각서와 책은 라미경에게 주고 돈다발은 도식이에게 줬습니다. 1층으로 냅다 뛰어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비명이 나고 몇 초 후에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 거군.”


유강인이 중얼거렸다. 그가 401호 증인 홍은희의 말이 떠올렸다. 비명이 들리고 몇 초가 지난 후,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는 진술이었다.


이 진술이 사건 해결의 첫 단추였고 재조사의 시작이었다. 10년 동안 경찰이 놓쳤던 사소하지만, 핵심적인 단서였다.


김철수가 말을 이었다.


“황급히 1층으로 내려가서 신발을 벗었습니다. 1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독고승이 피 묻은 신발을 신고 공동 출입구에서 나갔습니다. 빌라 앞 CCTV를 향해 뛰어갔습니다.

저는 집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옷에 피가 너무 많이 묻었습니다. 그래서 빨리 벗어야만 했습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경찰이 이전에 작성한 행운 빌라 사건 보고서에 의하면 독고승은 부동산에 있었다. 비명을 듣고 부동산에서 나온 자였다. 행운 빌라에서 튀어나온 괴한을 목격한 자이기도 했다. 이는 잘못된 보고서였다.


독고승은 행운 빌라에 들어왔다가 도망치는 범인 역할이었다. 그는 부동산에 있지 않았다. 부동산에서 나온 셋 중에 독고승이 있을 리 없었다.



유강인이 말했다.


“경찰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독고승은 부동산에 있었습니다. 비명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고 진술했습니다. 부동산에서 셋이 있었는데 그중에 가짜 독고승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네, 그때 부동산에 있던 사람은 독고승이 아니었습니다. 같이 공모한 빌라 사람이었습니다.

독고승은 근처에 있다가 옷을 갈아입고 사람들 사이에 섞였습니다. 그렇게 독고승의 알리바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군요. 경찰이 왔을 때 다들 현장에 있었습니다. 다들 감쪽같이 연기한 게 맞죠?”


“네, 맞습니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현장에 있었습니다. 이도식, 라미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둘의 대화를 묵묵히 듣던 차수호 형사가 분을 참을 수 없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현장에 범인이 버젓이 있었는데도 경찰들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말이잖아! 하아! 정말, 어이가 없네! 범인을 코앞에 두고도 잡지 못하다니!”


차형사가 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아주 치밀하면서도 교활한 범죄였다. 경찰을 농락한 범죄 집단을 용서할 수 없는 듯 김철수를 매섭게 노려봤다.


유강인이 차수호 형사에게 말했다.


“선배님! 자중하세요. 자리에 앉으세요.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알았어. 대장님 말을 들어야지.”


차수호 형사가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며 자리에 앉았다.


유강인이 김철수에게 말했다.


“책과 각서, 돈을 어떻게 처리했죠”


김철수가 한숨을 푹 쉬고 물 잔을 다시 들었다. 갈증이 심한지 물을 입에다 쏟아부었다.


이제 치밀한 계획의 허점을 말해야 했다.


김철수가 소매로 입을 닦고 말했다.


“경찰이 돌아간 후 이도식, 라미경과 같이 근처 공사장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었습니다.

공사장 건물 안에 커다란 드럼통이 있었습니다. 인부들이 드럼통에 나무를 태우곤 했습니다. 그 드럼통에 옷과 신발, 책, 각서를 넣고 은밀히 태웠습니다.


“그런데 그 책과 각서가 복사본인 줄 몰랐던 거군요.”


“네, 그렇죠. 늦은 밤이라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워낙 급하게 일을 처리하느라 서두른 점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각서는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고 태웠습니다. 책도 내용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라미경이 시간이 없다며 표지만 보여주고 급하게 드럼통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래서 책만 남은 거군요.”


“그렇죠. 라미경, 그자가 책에 욕심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라미경이 꼼꼼히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책 표지도 궁극지상 12계가 맞아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돈은 어떻게 처리했죠?”


“돈은 마을 사람들이 나눠서 출근했습니다. 재단 사람들이 손님이나 방문객으로 위장했습니다. 재단 사람들에게 돈을 넘겼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다. 행운 빌라 살인 사건의 진상이 오늘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10년간 감춰졌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이 사건의 브레인은 평화부동산 주인 하연수였다. 그녀는 비상한 머리를 가진 자였다. 그녀의 계획에 따라 주범과 공범들이 착실히 움직였다. 그렇게 감쪽같이 경찰을 속이고 범행을 완성했다.


“참! 무서운 사람들이군.”


차수호 형사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치밀하면서도 잔혹한 성동연합모임을 보면서 소름이 확 돋았다.


그는 10여 년 동안 경찰 생활하면서 이렇게까지 치밀하고 조직적인 범죄자들을 본 적이 없었다.


차수호 형사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10년 동안 사건을 풀 수 없었던 거였군. 역시 등잔 밑이 어두웠어. 바로 옆에 범인이 있는데도 잡지 못하다니 ….”


그 말을 듣고 유강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진실이라는 차갑지만 밝은 진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유강인이 마지막 남은 한 가지 생각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강선애 스토커였던 박기정도 성연모에서 죽인 겁니까?”


“그건, 성녀 수호단에서 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성녀 수호단이라고요?”


“네, 강선애에게 스토커가 생기자 성주님의 명으로 성녀를 수호하는 조직을 비밀리에 운영했습니다. 독고승, 김만호, 정일권이 핵심 멤버였습니다. 여러 명이 더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편의점 주인 독고승, 정육점 주인 김만호, 빵집 주인 정일권을 말하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그들이 성주의 명으로 스토커 박기정을 죽인 게 확실합니까?”


“그렇게만 들었습니다. 제가 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증이 나는지 앞에 있는 물 잔을 들고 입에다 들이부었다. 시원한 물이 위장을 적셨다.


그렇게 물을 다 마시고 유강인이 차수호 형사를 바라봤다.


“왜?”


차형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김철수에게 말했다.


“자! 이제 나갑시다. 김철수씨.”


차수호 형사가 김철수를 데리고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조사실 안에는 유강인 혼자만 남았다. 조명이 어두웠다. 한 남자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보였다.


썰렁하기 그지없는 조사실에서 유강인이 생각했다.


그는 삭막한 공기보다 훨씬 차디차고 비정한 인간의 욕망과 분노를 느꼈다. 조금만 아량을 베풀었다면 피할 수 있는 범죄였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의 욕망과 분노가 러시아워 병목현상처럼 좁디좁은 목에 갇혔다. 그곳에서 갈피를 못 잡고 이성을 잃고 말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조금 더 힘을 내자!”


유강인이 나지막하게 말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황보술 일당 재판만 남았다.


유강인은 흉악한 범죄자들에게 준엄한 법의 심판을 가해야 했다. 이를 위해 마지막 보고서 작성을 마쳐야 했다.


유강인이 출입문을 활짝 열었다.


행운 빌라 살인 사건이 활짝 열린 출입문처럼 10년 만에 진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이는 정의의 문을 연 것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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