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01편 <행운 빌라 살인 사건>
서울지방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 강력반은 행운 빌라 살인 사건과 박기정 스토커 살인 사건 혐의자를 모두 체포했다.
형사들은 밤샘 조사를 통해 그들의 혐의를 모두 입증했다.
사건이 정리되자, 재조사 총 책임자인 서울지방경찰청 이광호 형사과장이 기자 회견을 열었다. TV로 생중계됐다.
시민들이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방송을 시청했다. 경찰 발표에 집중했다.
시간이 되자, 이광호 형사과장이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났다. 그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브리핑 시작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다.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 이광호입니다. 10년 미제 사건인 행운 빌라 살인 사건의 범인들이 드디어 잡혔습니다.
주범은 복지 재단인 성동연합모임의 이사장이자 사이비 종교 음양일체교의 교주 황보술이었습니다.
황보술이 범행을 지시했습니다. 부하들이 그 명에 따라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범행을 실행했습니다.”
이광호 형사과장이 사건을 소상히 설명했다. 발표를 듣고 시민들이 경악했다.
브리핑이 끝난 후 언론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10년 만에 밝혀진 행운 빌라 가족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특집 방송과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시민들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끔찍했던 사건을 다시 떠올렸다. 치밀하면서도 잔혹한 범행에 치를 떨었다.
아울러 유명한 봉사 단체에 저런 추악한 내면이 숨어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했다.
어떤 기자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간의 양면성을 성찰하게 됐다며 씁쓸한 논평을 내기도 했다.
다음으로 뜬 기사는 다음과 같았다.
‘선행과 봉사라는 탈을 쓴 황보술의 추악한 진실’이라는 특집 기사가 연달아 넷과 지면에 달궜다.
불우한 이웃과 고아, 노인들을 위해 선행을 베풀었던 황보술이 어떻게 악마가 되었는지 소상히 밝힌 기사였다.
언론들을 행운 빌라 사건 유일한 생존자인 강선애를 인터뷰했다.
강선애는 검은 옷 대신 흰색 옷을 입었다.
하얀 옷이 눈부실 정도였다. 그녀는 선녀처럼 고왔고 아름다웠다. 칠흑처럼 검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허리까지 내려왔다. 창백한 얼굴에 흰옷이 더해지자, 더욱 하얗게 빛났다.
강선애가 입을 열었다.
“저는 10년 전, 하늘나라로 떠나신 강후식, 이미자의 딸이자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강경호의 누나 강선애입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눈물을 흘렸다.
“저는 그날 이후, 세상에 정의가 사라지고 고귀한 양심을 쓰레기통에 던진 악인들이 설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다다를 수 없는 헛된 희망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원망하고 망상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저를 일깨워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부모님과 동생을 죽인 살인범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그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분은 행운 빌라 사건 재조사를 담당하신 형사님입니다.
형사님은 목숨을 걸고 저를 지켜주셨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거악과 맞서 싸우셨습니다.
여태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강선애가 잠시 뜸을 들였다. 안구에 습기가 가득했지만, 울지 않았다. 이제는 울지 않기로 했다. 인생을 똑바로 살기로 다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높이 쳐들고 천천히 말했다.
“전에는 혼자서 울었습니다. 세상에 나 혼자만 살아남았다고 울면서 지냈습니다.
간혹 겉으로 웃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세상을 원망했고 다 같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다가갈 수 없는 세상만 꿈꾸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아름답게 꾸며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게 주어진 힘을 세상을 위해 쓰기로 다짐했습니다.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봉사가 아니라 진짜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하늘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림이 되겠습니다.”
강선애의 말에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이 모두 기원했다. 강선애가 험한 세상을 누구보다도 잘 헤쳐나가기를 바랐다.
행운 빌라 사건 담당 검사, 황인식은 황보술의 구속 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결정적인 증거인 녹음과 각서, 궁극지상 12계, 공범들의 진술을 법원에 제출했다.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황보술은 구속수감되었다.
진실을 말하는 증거 앞에서 황보술의 뒷배는 소용이 없었다.
경찰은 성동연합모임과 음양일체교와 관련된 모든 재단과 법인, 단체를 압수 수색했다. 추가 범죄를 밝히려 총력을 다했다.
수사를 통해 추가 범죄가 드러났다.
황보술이 복지 재단과 종교 단체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각종 지원금을 불법적으로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아울러 불법적으로 학교와 회사를 운영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에 경찰은 회계 장부 확보하고 회계 관련자를 소환해서 실제 수입과 지출을 철저히 분석했다.
그 결과 수백억 대의 횡령 혐의를 찾아냈다. 10년 전 강후식이 밝혀낸 비리보다 훨씬 컸다.
결국, 커다란 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황보술 일당은 300억 넘는 금액의 후원금과 각종 정부 지원금을 착복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사를 계속하면 횡령금액이 더욱 커질 게 분명했다.
황보술 일당은 조 단위의 돈을 벌고 해산하기로 약조했다. 그동안은 청빈하고 청렴하게 사는 척하며 세상을 속이자고 서약한 사실도 드러났다.
황인식 검사는 300억 배임 횡령 혐의도 공소장에 추가했다.
한 달 후 황보술 일당의 1심 재판이 열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이 열렸다. 하영석 재판장을 비롯한 3인의 판사가 심리를 담당했다.
기소와 공판은 황인식 검사가 담당했다. 황보술 일당의 변호는 박영기 변호사가 맡았다.
심리가 진행되자, 검사 측이 유리했다. 검사가 확실한 물증과 증언을 제시했다. 황보술 일당에게 중죄가 내려질 것이 뻔했다.
박영기 변호사가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재판을 뒤엎고 싶었지만, 심신미약만 주장할 뿐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박변호사는 고심 끝에 묘수를 생각했다. 성동연합모임의 선행을 이용해 각계각층에서 탄원서를 받았다. 황보술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였다.
황보술이 수십 년 동안 뿌린 씨앗의 힘인지 금방 천여 장의 탄원서가 모였다.
박영기 변호사는 천장이 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세상엔 어둠이 있으면 밝은 낮도 있기 마련입니다.
피고인은 봉사 활동으로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일념으로 세상을 살다 보니 많은 오해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피고인의 삶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많은 배신을 겪었고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피고인이 고향 친구이자 동료인 강후식의 배반에 이성을 잃고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저지른 겁니다.”
황인식 검사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 크게 헛기침했다.
큰 헛기침 소리를 듣고 박변호사가 황검사를 째려봤다.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시 피고인은 어느 때보다도 매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피고인에게 있어 누나는 부모님과 같았습니다. 피고인은 부모님을 일찍 잃었습니다. 누나가 피고인을 돌봤습니다.
그 누나가 중병에 걸려 돌아가실 지경이었습니다. 부부 관계도 성격 차이로 파탄이 나, 본의 아니게 이혼도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마저 자금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피고인의 정신 상태가 온전치 못했습니다.
그 엄청난 고통을 잊기 위해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궁여지책으로 손대지 말아야 할 재단의 돈에 손을 대고 만 겁니다. 이 사실을 감사 강후식이 알아채고 협박을 했습니다.
피고인은 믿었던 사람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에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피고인도 큰 잘못을 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때 방청석에서 “우우우~!” 하며 야유하는 소리가 쏟아졌다.
재판관이 방청객에 정숙을 요구했다. 그러자 재판정이 잠잠해졌다.
느닷없는 방청객의 야유에 박영기 변호사의 얼굴이 뻘게졌다. 그가 이를 악물고 변호를 재개했다.
“일가족 몰살이라는 큰 잘못 이후, 피고인은 대오각성하고 선행을 베풀며 살아왔습니다.
커다란 잘못을 속죄하려고 누구보다도 더 많은 선행과 봉사를 했습니다.
유족인 강선애에게도 최고의 대우를 했습니다. 대학 등록금, 유학 자금, 살 집, 해외여행 경비 등 물질적으로 크게 도움을 줬습니다.
물론 이는 가족을 모두 잃은 강선애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강선애에게 최고의 대우를 했다는 사실은 사실입니다.
여기에 천여 장이 넘는 탄원서가 있습니다. 피고를 선처해 달라는 간절한 외침입니다!”
“저도 탄원서를 쭉 훑어봤습니다. 각계각층에서 왔더군요.”
하영석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천여 장의 탄원서는 피고인의 인생을 그대로 반영하는 증거입니다. 이는 피고인의 형량 감형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입니다.
피고인이 10년 동안 얼마나 반성하며 살았는지 바로 알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금 피고인은 자기의 죄를 뼈저리게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주십시오.
다시 사회에 나와서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십시오.
죄는 미워도 사람은 용서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디 선처하셔서 사회에 다시 나와서 속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박영기 변호사가 하영석 재판장에게 공손히 절했다. 그렇게 변론을 마쳤다.
이제는 황인식 검사의 차례가 되었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방청석 맨 구석에 강선애가 있었다. 그녀가 윗니로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박영기 변호사의 말을 들었다. 예전 같으면 화를 참을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의연해 보였다.
강선애가 황인식 검사를 바라봤다. 고개를 천천히 끄떡였다. 황검사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황인식 검사가 강경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변호인과 다르게 생각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이 있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죄 자체는 용서할 수 있지만, 사람 자체가 구제 불능이면 그 사람은 용서 불가라 생각합니다.”
“재판장님! 지금 검사가 신성한 재판장에서 변호인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박영기 변호사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영석 재판장이 황검사에게 말했다.
“검사는 언행에 신중하세요. 변호인을 자극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재판장님. 주의하겠습니다.”
황인식 검사가 고개를 숙이고 답했다. 그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재판장님! 지금 변호인은 천여 장의 탄원서를 들고 선처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과연 대단한 양이라 생각합니다. 여태까지 저렇게 많은 탄원서를 본 적이 없습니다.”
박영기 변호사가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어깨를 으쓱했다.
“저에게는 저처럼 많은 탄원서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탄원서보다도 중요한 한 장의 탄원서가 있습니다.”
황인식 검사가 말을 마치고 품에서 한 장의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방청객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한 장의 종이에 집중했다.
“그 탄원서는 뭡니까? 검사.”
“재판장님, 이 탄원서는 피고인 황보술을 엄벌에 처해 달라는 탄원서입니다. 피해자 강선애씨가 친필로 쓴 글입니다.”
“오! 그래요.”
재판장이 관심을 보이며 탄성을 질렀다.
“재판장님, 지금 이 자리에서 강선애씨의 탄원서를 읽어도 되겠습니까?”
“한 장뿐이니 상관없을 거 같군요. 허락합니다.”
하영석 재판장의 말에 황인식 검사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황검사가 한번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지금부터 탄원서를 읽겠습니다. 재판장님과 판사님, 방청객들은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인식 검사의 말이 끝나자, 재판장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침을 꿀컥 삼켰다. 탄원서 내용이 궁금했다. 그들이 황검사의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강선애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녀가 속으로 기도했다. 며칠에 걸쳐 온 정성을 다해 쓴 탄원서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길 바랐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판사님, 저는 행운 빌라 사건 유족 강선애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불행한 사람이 됐습니다.
저를 낳아주시고 사랑으로 길러주신 부모님과 제가 돌봐야 할 어린 동생을 영원히 잃고 말았습니다.
황보술은 부모님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황보술을 비리를 찾아냈습니다. 이에 황보술은 원한을 품었습니다. 비리를 영원히 감추기 위해 심복인 김철수 등을 사주해서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황보술은 부모님뿐만 아니라 동생까지 죽였습니다. 동생이 뒷날, 이 사실을 알고 복수할까 봐 두려워, 12살 아이를 해쳤습니다.
황보술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악인입니다. 제가 산 것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교단의 성녀로 이용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저는 무려 10년 동안 황보술의 꼭두각시로 살았습니다.”
황인식 검사가 말을 끊고 재판장을 둘러보았다. 판사와 방청객들이 숙연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가 다시 편지를 읽었다.
“황보술 일당은 완전 범죄를 도모했습니다. 경찰을 철저히 기만했습니다.
행운 빌라와 마을 사람 십여 명을 포섭해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치밀하면서도 악독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는 국민을 대신해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경찰을 철저히 농락한 행위입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짓입니다.
후일을 위해서도 법의 엄중한 집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잔혹하면서도 계획적인 범죄의 재발을 막아야 합니다.”
강선애가 두 눈을 떴다. 두 주먹을 꼭 쥐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세상에 조용히 소리쳤다.
“세상에 정의가 있다고 믿고 싶어요. 저들에게 엄중한 벌을 내려 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황인식 검사가 강선애의 작지만 커다란 마음의 소리를 들은 듯 계속 탄원서를 읽어 내려갔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얼마 전부터 황보술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가 모인다고 들었습니다.
황보술이 운영한 재단에서 선행을 베푼 건 사실입니다. 제가 그 활동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봉사 활동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악행을 감추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합니다. 그는 막대한 후원금과 각종 지원금을 노리고 온갖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모든 비용은 선량한 후원자와 자원봉사자가 담당했습니다. 황보술은 파렴치하게도 그 공은 가로챘습니다. 모든 비용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겼습니다.
황보술은 이사장이라는 직책을 철저히 이용했습니다. 후원자와 봉사자를 기만했습니다.
재단 사무처조차 후원금과 지원금의 정확한 액수를 알 수 없었습니다. 사무처장이었던 저도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허수아비 총무이자 사무처장에 불과했습니다.
회계 관련 쪽 일은 베일에 가려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많은 탄원서를 보고 봉사 활동만큼은 진실이라고 믿었는데 현실은 정반대라는 사실에 어이가 없는지 혀를 차기 시작했다.
“자! 조용히 해주세요.”
하영석 재판장이 한 손을 들고 말했다. 다시 조용해졌다.
“자, 계속하시죠. 검사.”
“알겠습니다. 재판장님.”
황인식 검사가 말을 이었다.
“성동연합모임에서 행한 모든 선행은 후원자와 봉사자가 한 것이지 황보술이 한 게 아닙니다.
황보술은 모든 공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착복한 돈으로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었습니다.
돈을 물 쓰듯 뿌리며 영향력을 확대했고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하찮게 여기며 잔혹한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제 부모님과 어린 동생, 스토커였던 박기정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비밀 경호했던 유강인 형사님마저 스토커로 오인해서 죽이려 했습니다.
거기에다 제가 10년 동안 갖고 있었던 책도 뺏으려 했습니다. 그 책에는 각서가 있었습니다. 각서는 사건을 진상을 밝힐 수 있는 핵심 증거였습니다.
황보술은 그 책을 빼앗기 위해 저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전 세상에 정의가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정의가 무너진 세상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악한의 농간으로 정의가 무너졌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부터는 선량한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험한 세상에, 사람들에게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황보술 일당에게 범의 엄중한 심판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계획적이고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황보술 일당에게 선처라는 법의 관용이 아니라 천인공노할 악인에게는 어떠한 용서도 없다는 정의롭고 용감한 판결을 내리시길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행운 빌라 사건 유족 강선애 올림.”
황인식 검사가 편지를 다 읽고 판사들을 향해 걸어갔다. 재판장에게 편지를 넘겼다. 하영석 재판장이 크게 숨을 내쉬고 편지를 받았다.
하영석 재판장의 마음은 엄중한 법의 집행이라는 판사로서의 사명과 천여 장의 탄원서와 공과 과를 따져야 한다는 얄팍한 계산에 흔들렸었다.
하지만 편지를 받는 순간, 그의 마음이 정해졌다.
하재판장이 편지를 봉투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재판에 최종 선고를 하겠습니다.”
강선애가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멀리 사라지는 판사들을 보면서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