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01편 <행운 빌라 살인 사건>
오늘은 황보술 일당 1심 최종 선고일이다.
유강인이 말끔히 차려있고 재판장으로 향했다. 오늘만큼은 정장을 입고 멋있는 신사로 변모했다.
오전 11시쯤 유강인이 버스에서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앞이었다. 누구를 기다리는지 정문 앞에서 서성였다.
잠시 후, 택시가 서울중앙지법 앞에 도착했다.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강선애가 차에서 내렸다. 유강인이 그녀에게 달려갔다. 숨을 고르고 말했다
“오셨군요. 어서 들어갑시다.”
강선애가 고개를 끄떡였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유강인을 따랐다.
재판정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카메라와 노트북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취재 열기가 후끈했다.
10년 미제 사건인 행운 빌라 살인 사건은 세간이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었다. 방송국들이 이에 발맞췄다. 재판 결과를 생중계했다.
강선애가 등장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그녀는 눈이 부셨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강인과 함께 재판정으로 들어갔다.
재판 시간이 되자, 방청석이 꽉 찼다.
방청객들이 침을 꿀컥 삼켰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준엄한 법의 심판이 나올지 아니면 솜방망이 처벌이 나올지 가늠할 수 없었다.
30분 후 운명의 종이 울렸다.
피고인 황보술, 김철수, 이도식, 라미경, 독고승, 김만호, 하연수, 정일권이 재판정으로 들어왔다. 그들 모두 구속 수감됐다. 수감복을 입고 있었다.
그 중 황보술이 성난 표정으로 씩씩거렸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부당하다며 매일 같이 교도관들에게 하소연했다.
자신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며 고난이 다가올수록 더욱더 강해진다며 악을 썼다.
이에 반해 김철수, 이도식 등은 사면초가라는 사실을 깨닫고 풀이 죽었다. 최대한 감형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피고인이 모두 들어오자, 황인식 검사와 박영기 변호인이 들어왔다.
검사와 변호인이 자리에 앉자, 판사들이 들어올 차례가 되었다.
잠시 후, 하영석 재판장과 판사 2인이 재판정으로 향했다. 그들은 심리를 끝내고 모두 모여서 판결문을 작성했다.
판결문은 하영석 판사가 주도해서 일사천리로 작성했다. 다른 판사들도 모두 합의했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판사 3인이 상기된 표정으로 재판정 안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황보술 일당 1심 재판 선고가 시작되었다.
자리에 앉은 하영석 재판장이 판결문을 들었다. 이 종이 한 장에 황보술을 비롯한 악인들의 운명이 결정됐다.
황보술이 침을 꿀컥 삼켰다. 판결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옆에는 박영기 변호사가 있었다.
박변호사는 선처되리라 믿고 재판부를 향해 슬쩍 미소를 지었다.
반면 황보술은 안절부절못했다.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거 같아 며칠 전부터 한숨도 자지 못했다.
“피고인 라미경과 하연수!”
“헉!”
라미경과 하연수가 자기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둘이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둘은 행운 빌라 일가족 살인 사건에 공모했다. 살인 행위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하연수는 완전 범죄를 위한 치밀한 계획을 주도적으로 잤고 라미경은 각본에 따라서 경찰을 속이는 결정적인 허위 진술을 했을 뿐 아니라 증거를 은닉했다.
이는 수사를 명백히 방해한 행위며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다. 이에 본 법정은 라미경, 하연수에게 살인에 대한 공모죄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증거인멸죄로 각각 징역 20년을 선고한다.”
징역 20년 선고에 라미경과 하연수의 맥이 탁 풀렸다. 둘은 엄한 벌을 받을 거라 예상했지만, 형량이 너무나도 높았다.
“이, 이거 말도 안 돼! 난 그냥 시키는 대로 움직인 거뿐이야!”
라미경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먹였다.
잠시 충격에 빠졌던 하연수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체념을 넘어 달관한 표정을 지었다.
“피고인 독고승, 김만호, 정일권!”
셋의 이름이 연달아 불리자, 셋이 모두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성녀 수호단이었다.
“독고승, 김만호는 행운 빌라 일가족 살인 사건에 공모했다. 둘은 각본에 따라서 허위 진술했고 증거 인멸에 참여했다.
아울러 강선애 스토커였던 박기정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게다가 강선애를 비밀 경호하던 유강인 형사마저 흉기로 죽이려 했다.
이는 재고의 여지가 없는 중죄다. 이에 살인죄, 살인에 대한 공모죄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증거인멸죄, 살인미수죄를 적용하여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무, 무기징역이라고? 늙어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으라고?”
독고승, 김만호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이 서로를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정일권은 독고승, 김만호 함께 스토커 박기정을 죽이는데 공모했고 강선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아울러 황보술의 교사로 강선애의 집을 무단침입해서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고 증거물을 빼앗으려 했다.
그 과정에서 이를 제지하는 유강인 형사에게 흉기를 들고 죽이려 했다. 비록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 죄가 무겁다 할 수 있다.
이에 본 법정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살인에 대한 공모죄, 증거인멸죄, 특수상해죄, 무단침입죄, 살인미수죄를 적용하여 징역 30년을 선고한다.”
“세상에!”
정일권이 크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래도 형량이 가벼울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30년이라는 형량에 아연실색했다.
“피고인 김철수, 이도식!”
행운 빌라 살인 사건의 진짜 살인범과 그 살인범을 옆에서 도왔던 둘의 이름이 호명됐다.
“김철수는 황보술의 교사로 강후식 일가 세 명을 잔인하게 칼로 살해했다. 그리고 증거 인멸에도 참여했다.
고작 열두 살이었던 어린 소년까지 인면수심의 마음으로 해치며 인륜을 철저하게 유린했다.
이는 어떤 경우라고 용서받을 수 없는 커다란 죄다. 이에 본 법정은 김철수에게 살인죄, 증거인멸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다.”
김철수가 판결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사형을 예상했었다. 그 누구도 자신을 옹호할 수 없음을 알기에 그 죄를 달게 받아들였다.
“이도식은 김철수를 옆에서 도우며 강후식 일가를 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허위 진술로 경찰 수사를 교란했다. 아울러 증거 인멸에도 참여했다.
이에 본 법정은 이도식에게 살인에 대한 공모죄, 증거인멸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징역 30년을 선고한다.”
“말도 안 돼!”
이도식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는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차례가 되었다. 이 모든 사건의 배후이자, 범죄를 사주한 황보술! 그 이름이 호명될 차례였다.
하영석 재판장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가 크게 숨을 내쉬고 마음을 다잡았다.
재계와 정계에 두둑한 인맥을 가진 황보술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판결문을 작성했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피고인 황보술!”
황보술이 고개를 들었다. 그 옆 박영기 변호사가 있었다.
박변호사가 그동안 황보술을 지키려 애썼다. 다른 피고인들은 모두 포기하더라도 자기 주인인 황보술만큼은 10년 형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해 변론했다.
이제 첫 번째 관문인 1심 재판 결과가 나올 차례였다.
“황보술은 김철수, 독고승 등에게 강후식 가족과 스토커 박기정을 살해하고 증거 인멸 및 허위 진술을 하도록 교사했다.
이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인명을 경시하는 반인륜적, 반사회적 행위다. 피고에 의해 무참히 죽은 소중한 생명은 되살릴 수 없으며 이는 전적으로 피고의 책임이다.
아울러 피고는 300억이 넘은 공금을 횡령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현재 횡령 금액이 정확하게 얼마인지 추산할 수 없는 지경이다.”
하영석 재판장이 잠시 말을 멈췄다. 잠시 천장을 바라봤다. 이윽고 준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양의 탈을 쓴 늑대의 심정으로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속이고 마음대로 돈을 사용했다. 이는 후원금과 정부 지원금의 그 의도를 철저히 무시한 행위다.
이에 본 법정은 양심을 가진 인간이라면 저지를 수 없는 극악의 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 피고인에게 어떤 정상참작도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이 들리자, 황보술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박영기 변호사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판결문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피고인 황보술에게 살인교사죄 및 증거 인멸,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과 배임 횡령죄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다.”
재판이 모두 끝났다. 법원에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재판장의 판결문을 숨죽이고 듣고 있었다. 이제 재판이 끝났지만,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추상같은 판결문에 압도됐다.
그때 갑자기 고함이 들렸다.
“이거 다 무효야! 무슨 재판이 이렇게 개판이야! 나 황보술이야! 세상에 선행을 행하는 선각자야! 한번 실수한 거 갖고 이렇게 판결을 해! 뭐 법정 최고형이라고!”
황보술이 벌떡 일어나 분을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에 법정 경비요원들이 달려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입이 막힌 황보술이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이내 법정 밖으로 끌려갔다.
“항소하겠습니다!”
박영기 변호사가 얼굴이 벌게진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판장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하영석 재판장과 판사들은 박병호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듯 그를 외면한 채 법정에서 퇴장했다.
박영기 변호사는 자신을 무시하는 판사들을 보고 분을 참을 수 없는지 주먹으로 책상을 쿵! 내리쳤다.
“좋다! 그래 한번 해보자! 끝까지 가보자.”
박변호사가 씩씩거리며 분을 참지 못했다. 2심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서류를 가방에 막 쑤셔 넣고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박변호사님!”
박영기 변호사가 누구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뒤로 돌렸다.
유강인이 빙긋 웃으며 서 있었다.
“아, 아니! … 당신은?”
“행운 빌라 살인 사건 재조사 담당 형사 유강인입니다.”
박영기 변호사가 이를 악물었다. 그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 때문에 나를 부르는 겁니까?”
유강인이 천천히 말을 받았다.
“경찰 조사를 받으신다고 들었는데 ….”
“뭐라고?”
“저번에 보니 조사받으러 들어오시던데.”
“뭐, 뭐라고? 이것이!”
박영기 변호사가 크게 소리를 지르고 한 손을 높이 쳐들었다.
“변호사님, 지금 폭력을 행사하려는 겁니까?”
유강인의 말에 박변호사 슬그머니 올렸던 손을 내려놓았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 시선이 따가운지 얼굴이 벌게졌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유강인에게 말했다.
“유강인,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내가 누군지는 알고 덤비는 거냐?”
“잘 알고 있습니다. 검찰청 차장까지 지내신 박영기 변호사님이시잖아요. 여러 번 말씀하셔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이, 이걸 그냥!”
박영기 변호사가 더는 참을 수 없는지 유강인 코앞까지 달려왔다. 거친 숨소리가 유강인의 뺨에 닿았다.
“유형사님! 저 사람은 무시하세요.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강인 뒤로 하얀색 옷을 입은 여자가 걸어왔다. 그녀는 강선애였다. 천천히 유강인 옆으로 다가오더니 박영기 변호사를 보고 매섭게 쏘아붙였다.
“고약한 오물을 먹으면서도 자기 속이 썩어들어가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지요.”
“뭐, 뭐라고? 오물!”
오물이라는 말에 박영기 변호사가 발끈했다.
“변호사님한테 한 말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마치 누구와 아주 비슷한 ….”
박변호사가 강선애의 말에 치를 떨었다. 그러다 몸을 떨었다. 치부를 들킨 듯 어쩔 줄 몰라 했다.
강선애가 유강인에게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사님! 나가시죠. 오늘 같은 날 그냥 지나갈 수 없어요. 수고하신 형사님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겠습니다. 시간 되시죠?”
“그럼요. 좋습니다.”
유강인이 흔쾌히 응했다. 둘이 다정하게 밖으로 나갔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박영기 변호사가 손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아, 박영기도 이제 성질이 많이 죽었구나. 저런 애송이에게 꼼짝도 못 하다니 … 이런 젠장!”
박변호사가 끓어오르는 분을 더는 참을 수 없는지 발을 동동 굴렸다. 그리고 씩씩거렸다. 그러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저러니 황보술 같은 자를 변호하지. 쯧쯧쯧!”
“못난 놈!”
“돈이 그렇게 좋냐? 그럼, 돈을 껴안고 돈을 처먹어.”
“헉!”
박영기 변호사가 그 말을 듣고 순간 부끄러움을 느꼈다. 마치 옷이 홀랑 벗겨진 거처럼.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혐오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
박변호사는 돈과 권력을 얻을 수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어떤 일이라도 감수했다. 돈과 권력만 있다면 누구보다 당당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의를 바라는 사람들의 서릿발 같은 시선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