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1_02_회식과 카르멘의 폭력

탐정 유강인 21편 <죽음의 거미줄, 카르멘>

by woodolee

배우 인사가 끝나자, 무대 옆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극단폭풍의 단장이자, ‘호세와 카르멘’ 연출자, 장철수였다.


장철수 단장은 40대 초반 남자였다. 키가 크고 말랐다. 동안 외모라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날카로운 턱선에 조화로운 이목구비가 돋보였다.


장단장이 두 손을 모았다. 환호하는 관객을 향해 연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와아아!”


“브라보!”


환호성이 끝나지 않았다. 뜨거운 성원이었다.


단장과 배우들 그리고 뒤에서 묵묵히 일했던 무대 감독과 스태프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연극 공연은 순탄치 않기 마련이었다. 항상 돈에 쪼들렸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이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1,000석이 꽉 찼다. 연극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이 전국에서 몰려왔다. 다음 주 공연도 다다음 주도 매진이었다.


연극 애호가들은 ‘호세와 카르멘’을 매우 기대했다. 그 기대는 한 사람에게 쏠렸다. 그 사람은 최지나 배우였다.


최지나는 한국 연극의 희망이자, 유명 배우였다. 그녀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에 연극 애호가들이 환호했다.


최지나 배우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오늘 팜므파탈 연기를 누구보다 잘했다. 카르멘이 한국에 환생한 거 같았다.


살랑거리는 몸짓과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

애간장을 녹이는 목소리,

붉은 장미같은 얼굴이


우리가 상상하는 카르멘 그 자체였다.


그렇게 첫 번째 공연이 성황리에 끝났다.


장철수 단장이 최지나 배우에게 말했다.


“역시 최지나 배우님이 최고입니다. 최고의 연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다 단장님과 훌륭한 단원들, 무대 감독님, 수고하시는 스태프 덕분이죠. ”


최지나 배우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무척 겸손한 모습이었다.





연극 공연이 끝난 후, 밤 11시 10분


1회 공연 후, 자축 파티가 열렸다. 단원들이 근처 식당에 모였다. ‘강천 마포 갈빗집’이었다. 장철수 단장이 한턱을 냈다.


숯불에 갈비가 지글지글 익어갔다. 갈비가 익어가면 냄새가 요동쳤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향이었다.


강천 마포 갈빗집은 이 일대에서 유명한 맛집이었다.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맛집 중의 맛집이었다. 갈비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바로 옆에 ‘영광 갈비’라는 경쟁 업체가 있지만. 이 집의 인기는 꺾을 수가 없었다. 전통의 맛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 비결은, 오랜 세월 이어온 손맛과 한결같이 찾아오는 손님 그리고 같이 늙어가는 허름한 집이었다. 이 세 개가 하나가 되어 맛의 정점을 이루었다.


이는 사람의 연륜과 같았다. 연륜의 맛은 탁월한 안정감과 조화로움이었다. 그 안정감과 조화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하하하!”


배우와 단장이 파안대소했다. 모두 즐거워했다. 잘 익은 고기를 싹싹 집어 먹고 술과 음료를 마셨다. 고기와 술들이 순식간에 비워졌다.


“좋구먼!”


“항상 이랬으면 좋겠어요.”


단원들이 건배하며 기쁨을 나눴다.


오늘 회식에 참석한 단원은 총 20명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단원이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단역 배우 양진석이었다. 그는 60대 초반 남자였다. 키가 작고 몸이 통통했다.


“역시 카르멘이 제일 중요해. 카르멘의 목소리와 연기가 관객의 애간장을 태웠어. 그것도 활활!”


“맞습니다. 카르멘이 없으면 시체죠. 다 카르멘을 보려고 오는 거잖아요.”


단원들이 맞장구쳤다.


양진석 배우가 말을 이었다.


“다음 카르멘은 이유리인데 … 최지나 배우님만큼 잘할 수 있을까?”


단원들이 그 말을 듣고 이유리 배우를 찾았다. 이유리는 최지나 배우 옆에 있었다. 두 배우는 나이와 외모에서 차이가 있었다.


최지나 배우는 30대 중반 여자였다. 키가 크고 날씬했다. 이목구비가 아주 조화로웠다. 전형적인 미인 얼굴로 인상이 강했다.


커다란 웨이브를 준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왔다. 연기에 물이 오른 베테랑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대배우였다.


반면 이유리 배우는 20대 후반 여자였다. 중간 키에 통통한 몸매였다. 청순한 얼굴에 단발머리였다. 하얀 비누처럼 깨끗한 인상이었다.


그녀는 이제 경력 5년 차였다. 단역을 거쳐 주연으로 올라섰다. 주연급으로는 신예였다.


“음~!”


고기를 맛있게 먹던 이유리 배우가 젓가락을 내려놨다. 부담스러운 듯 입을 꼭 다물었다.


그때, 오늘의 주인공인 최지나 배우가 빙긋 웃었다. 그녀가 말했다.


“유리는 떠오르는 신예예요. 경험이 부족하지만, 패기가 있어요.”


“선배님.”


이유리 배우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선배에게 말했다.


최지나 배우가 말을 이었다.


“우리 유리가 겉보기에 조용해 보이지만, 안에 열정이 넘쳐요. 열정이 마그마처럼 끓어오르고 있어요.

같이 연습하면서 그 패기와 열정을 느꼈어요. 그게 유리의 장점이에요. 그래서 잘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지? 유리?”


선배의 격려에 이유리 배우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단원들이 너도나도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잘할 겁니다.”


“당연하죠. 연습 때처럼 연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유리는 신입 단원일 때부터 쭉 지켜봤습니다. 분명 잘합니다.”


선배들의 격려에 이유리 배우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공손한 모습이었다.


두 배우를 잠시 조용히 지켜보던 장철수 단장이 입을 열었다.


“단원 여러분, 최지나 배우님이 먼저 카르멘은 이것이다! 라고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유리가 이를 똑똑히 지켜봤습니다. 최지나 배우님의 장점을 스펀지처럼 흡수할 겁니다.

다음 공연은 유리가 카르멘입니다. 최지나의 카르멘이 아니라 이유리의 카르멘이 탄생할 겁니다. 아주 색다른 카르멘일 겁니다.”


“그렇죠. 맞습니다.”


“단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최지나 배우가 기쁜 표정으로 잔을 들었다. 그녀가 이유리 배우에게 말했다.


“유리야, 다음 공연을 부탁해.”


“알겠습니다, 선배님. 최선을 다할게요.”


이유리 배우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장철수 단장이 씩 웃었다. 그가 술을 쭉 마셨다.


극단폭풍 40주년 작 ‘호세와 카르멘’은 여주인공이 더블캐스팅이었다.


최고 배우인 최지나와 신예 배우인 이유리가 카르멘 역을 나눠 맡았다.


남주인공 호세 역은 더블 캐스팅이 아니었다. 장호일 배우 혼자서 호세 역을 다 맡았다.


한 남자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장철수 단장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호세 역 장호일 배우였다. 장단장 친동생이었다.


장호일 배우는 30대 후반 남자였다. 키가 크고 체격이 듬직했다. 얼굴이 형과 자못 달랐다. 턱선이 강렬한 오각형 얼굴이었다.


장단장이 동생에게 말했다.


“호일아, 오늘 연기 아주 좋았다.”


“하하하! 형이 칭찬해주니 아주 기분이 좋은데요.”


장호일 배우가 고기를 집어 먹으며 기뻐했다.


“호일아, 다음 공연 때 유리를 잘 이끌어줘. 처음이라 긴장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세요, 형. 우리는 호흡이 잘 맞아요. 최지나나 이유리 모두 호세의 카르멘이에요. 호세는 바로 저고요.”


장호일 배우가 말을 마치고 두 여배우를 바라봤다. 도화지에 퍼지는 수채물감처럼 미소가 확 번졌다. 그의 두 눈에 최지나와 이유리가 담겼다. 탐스러운 사과를 바구니에 담은 듯했다.


회식이 끝에 다다랐다. 모두 고기를 배불리 먹었다. 술도 많이 마셨다. 배부름과 취기가 함께 돌았다.


배우들이 후식으로 달콤한 믹스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회식을 마무리할 때



삑!



문자 오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 배우가 문자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그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젊은 배우가 몸을 일으켰다. 옆에 있는 동료 배우에게 말했다.


“형, 화장실에 갔다 올게요.”


“그래.”


젊은 배우가 급히 움직였다. 식당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거 같았다. 식당 출입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때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무척 성난 목소리였다.


“어서 이리 와. 짜식아!”


“헉!”


그 말을 듣고 젊은 배우의 목이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그가 황급히 움직였다. 소리가 들린 쪽은 식당 옆 으슥한 골목이었다.


젊은 배우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무척 어두워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었다. 그가 어둠 속에서 주춤하고 있을 때 뭔가가 흐릿하게 보였다.


순간,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흰자가 번들거렸다.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무지막지한 주먹이 번개처럼 날아왔다.



퍽!



커다란 타격음이 들렸다. 타격음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연달아 들렸다.


“억!”


젊은 배우가 순식간에 몰매를 맞았다. 인정사정없는 주먹세례였다.


“입 다물어! 소리 지르지 마! 소리 지르면 죽는다!”


검은 그림자가 거칠게 말을 내뱉으며 주먹을 계속 휘둘렀다.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아주 또렷한 목소리였다.


“으으으~!”


젊은 배우가 그 지시를 따르는 듯 얻어맞으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흠씬 두들겨 맞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어둠 속에서 다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네놈의 오늘 연기는 한마디로 최악이었어. 더 연습해라. 잠이나 쳐 자지 말고! 이건 … 카르멘의 뜻이다.”


“죄, 죄송합니다. 분발하겠습니다.”


젊은 배우가 몹시 죄송한 듯 머리를 조아렸다. 이마가 땅바닥에 탁 붙었다.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땅바닥을 정으로 내리치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가 점점 사라졌다.


“으으으~!”


젊은 배우가 몸을 일으켰다.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닦았다.


1분 후, 젊은 배우가 으슥한 골목에서 나왔다. 그가 식당 출입문으로 향했다. 몸이 휘청거렸다.


그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식당 출입문이 활짝 열리고 단원들이 하나둘씩 식당 밖으로 나왔다. 모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매를 흠씬 두들겨 맞은 젊은 배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걸 써.”


젊은 배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한 배우가 모자를 건넸다.


젊은 배우가 모자를 건네받고 깊이 눌러썼다.


단원들이 모두 식당 밖으로 나오자, 장철수 단장이 앞으로 나왔다. 그가 활력이 넘치는 얼굴로 단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 내일 쉬면 좋겠지만, 내일도 오후에 연습이 있습니다.”


“아이고, 단장님. 하루 정도는 푹 쉬고 싶어요.”


“맞아요.”


장철수 단장이 고개를 흔들고 답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연기는 칼처럼 자주 갈아줘야 녹이 슬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연습이 좋은 연기의 초석입니다. 오전까지 푹 쉬고 내일 오후에 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단장님.”


“단장님, 잘 들어가세요.”


단원들이 장단장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장철수 단장이 엄지척했다. 그가 환하게 웃었다. 단원들이 자랑스러운 거 같았다.


매를 흠씬 두들겨 맞은 젊은 배우도 환하게 웃었다. 비록 매를 얻어맞았지만, 개의치 않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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