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1편 <죽음의 거미줄, 카르멘>
“그렇군.”
유강인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가 심상치 않은 거 같았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이진환 형사가 말을 마치고 분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신기훈 형사가 따랐다.
형사 둘의 발소리가 분장실에 들렸다.
신형사가 분장실 불을 켰다.
팟! 하며 불이 켜졌다. 불이 켜지자, 분장실이 환해졌다. 벽지와 천장이 새하얬다. 흰 눈이 내린 듯했다. 바닥은 검은색이었다. 흑백의 대비가 강했다.
벽을 따라 나무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책상마다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책상과 의자 모두 고급 제품이었다.
유강인이 양 입술에 침을 묻혔다. 잠시 출입문 앞에서 분장실 안을 둘러보다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조수 둘이 그 뒤를 따랐다.
사건 현장은 왼쪽 끝자리였다. 흰색 페인트가 한눈에 보였다. 책상과 의자, 바닥에 칠해져 있었다.
이진환 형사와 신기훈 형사가 왼쪽 끝자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형사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여기가 사건 현장입니다. CCTV에서 보셨듯이 피해자, 장호일 배우는 이 자리에 앉아서 통화 중이었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문제의 자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사건 당시 분장실은 피해자를 빼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피해자가 한창 통화에 집중할 때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바로 조인수입니다.
조인수가 피해자 앞에 서자, 피해자가 통화를 멈췄습니다. 전화를 끊었습니다.”
간단한 브리핑이 끝나자, 유강인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근처 자리를 쭉 살펴봤다. 특별한 건 없었다. 심하게 파손되거나 바닥에 떨어진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군.”
유강인이 짧게 말하고 고개를 내렸다. 바닥에 동그랗게 칠한 페인트 자국이 있었다. 그 면적이 컸다. 그 자국은 책상 바로 아래였다.
유강인이 이진환 형사에게 말했다.
“바닥에 있는 동그란 페인트 자국은 … 피가 떨어진 곳인가요?”
“맞습니다. 피가 떨어져서 모인 곳입니다.”
이진환 형사가 답했다.
유강인이 쪼그리고 앉았다. 동그랗게 칠한 페인트 자국을 면밀하게 확인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탐정이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진환 형사와 신기훈 형사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상외로 유강인이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분장실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그 적막감 속에 긴장감이 있었다. 진실을 밝히려는 순간이었다.
1분 후, 유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분장실 CCTV 영상은 어떻게 됐죠? 선명하게 처리한 영상이 있나요?”
신기훈 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화질을 선명하게 처리한 영상을 오늘 아침 받았습니다. 태블릿 PC에 영상이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신형사가 말을 마치고 태블릿 PC를 들었다. 해당 영상을 찾았다. 영상을 찾은 후 태블릿 PC를 유강인에게 건넸다.
유강인이 태블릿 PC를 받고 영상을 플레이했다. 원본의 선명도를 높여 화질이 아주 깨끗했다.
유강인이 찬찬히 영상을 살폈다. 영상을 보다가 정지했다. 피해자가 앉은 자리를 살폈다. 그렇게 CCTV 영상과 사건 현장을 철저히 비교하고 있을 때
“응?”
유강인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장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말다툼하는 장면이었다.
피해자, 장호일이 인상을 팍 쓰고 소리를 질렀다. 조인수는 계속 뒷모습만 보였다. 그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장호일이 뭔가를 계속 말했다. 입 모양으로 보아 쌍스러운 욕 같았다.
욕지거리를 내뱉던 장호일이 고개를 내렸다. 뭔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낮은 곳이었다.
유강인이 장호일의 시선을 따라갔다.
시선이 향한 곳은 조인수의 왼쪽 바지 주머니와 왼손이었다.
‘… 왼손에 뭔가가 있는 거 같은데?’
유강인이 영상을 정지하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시신경을 풀가동했다.
조인수는 양손에 물건을 들었다. 오른손은 칼을 잡았고 왼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을 꽉 쥐었다.
칼날이 천장 조명을 받아 번쩍거렸다. 광채가 아주 강했다.
유강인이 조인수의 왼손을 아주 유심히 살폈다. 그러다 손 뒤로 튀어나온 납작한 물체를 보고 아! 하며 외쳤다. 그가 급히 말했다.
“조인수 왼손에 납작한 게 있습니다. 아마도 … 핸드폰 같습니다.”
“핸드폰이라고요? … 아, 핸드폰을 들고 있었군요.”
이진환 형사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핸드폰은 현대인의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영상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유강인의 두 눈이 점점 커졌다. 앵두에서 자두가 되더니 복숭아가 됐다. 그가 급히 말했다.
“선명한 영상을 보니 확실히 알겠습니다. 피해자는 조인수와 대화한 게 아닙니다. 핸드폰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대화한 겁니다.
조인수는 통화 중이었습니다. 핸드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 겁니다. 스피커폰이 확실합니다.
피해자는 조인수와 대화하지 않았습니다. 스피커폰의 소리를 듣고 크게 화를 낸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이진환 형사와 신기훈 형사가 깜짝 놀랐다. 둘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네에? 그, 그런 건가요?”
“조인수의 핸드폰이 단서군요. 그런데 조인수 핸드폰은 범행 시각에 통화한 적이 없습니다. 저 핸드폰은 대포폰 같습니다.”
“대포폰! 역시 ….”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포폰까지 등장했다. 그의 예상대로 극단폭풍은 평범한 극단이 아니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유강인이 피해자 자리를 살폈다. 그가 이진환 형사에게 말했다.
“피해자가 사건 당시 누구랑 통화했죠? 통화 내용이 나왔나요?”
“나왔습니다. 카르멘역 배우인 최지나 배우와 통화했습니다. 최지나 배우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CCTV 영상 시각과 통화 시각을 철저히 비교한 결과, 피해자가 전화를 끊은 다음, 조인수를 성난 표정으로 바라봤습니다. 너는 뭐야? 라는 입 모양이었습니다. 그 이후 다툼이 생겼습니다.”
카르멘 최지나 배우라는 말에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카르멘 최지나 배우랑 통화했다고요?”
“맞습니다.”
이진환 형사가 담담한 목소리로 답하고 말을 이었다.
“당시 최지나 배우는 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참고인 조사 대상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건 직전까지 피해자와 통화했습니다. 이에 참고인으로 불렀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왼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잠시 매만지다가 고개를 위로 들었다. 위에 강한 조명이 있었다. 조인수가 든 칼이 이 조명을 받아서 광채를 발했다.
분장실은 다른 곳보다 조명이 강했다. 꼼꼼한 분장을 위한 조치였다.
“그렇군.”
유강인이 뭔가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생각했다.
‘하필 최지나 배우랑 통화하더니, 호세가 카르멘과 통화했어. 연극대로 일이 흘러가고 있어. 카르멘과 엮이는 자는 파멸이야.
그리고 이 조명이 심상치 않아. 조명이 아주 강렬해. 칼은 두 자루였어.’
유강인이 생각을 마치고 신기훈 형사에게 말했다.
“신형사님, 서에 연락해서 확보한 칼 두 자루를 강한 조명에 비추라고 하세요.”
“네에?”
“지금이요. 어서 연락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확보한 칼 두 자루를 강한 조명에 비추라는 말이죠?”
“네, 맞습니다. 확인할 게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신기훈 형사가 강천 경찰서 강력반에 연락했다. 유강인의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이에 형사들이 급히 움직였다. 확보한 칼 두 자루를 빛이 강한 스탠드에 비췄다.
신형사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칼 두 자루를 강한 조명에 비췄습니다.”
유강인이 칼처럼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칼의 광채를 확인하라고 하세요. 두 칼의 광채가 같은지 다른지 확인해야 합니다.”
“광채요? 알겠습니다.”
신기훈 형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두 칼은 소품용 칼과 진검이지만, 광채는 똑같았다. 신형사가 머리를 긁적이다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김형사님, 두 칼의 광채가 같은지 다른지 확인해보세요.”
“OK!”
강천 경찰서 형사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칼 두 자루의 광채를 확인했다. 그러다 한 형사가 급히 말했다.
“어? 광채가 다르네?”
“뭐라고?”
“진검에 붉은색 기가 있고 소품용 칼은 푸른색 기가 있어.”
“듣고 보니 정말 그러네? 광채가 달라!”
강천 경찰서에 형사들이 급히 이 사실을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신기훈 형사가 급히 말했다.
“진검은 광채에 붉은색 기가 있고 소품용 칼은 푸른색 기가 있답니다.”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장호일 배우가 왜 화를 냈는지 알 거 같았다.
장호일은 칼 두 자루의 주인이었다. 누구보다 칼에 대해 잘 알았다.
조인수가 칼을 들고 분장실에 들어오자, 장호일은 그 칼이 자기 칼이라는 걸 금방 알아챘다. 그 칼이 강한 조명 아래에서 붉은색 기를 드러내자, 소스라치게 놀란 게 틀림없었다.
붉은색 기는 진검이었고 푸른색 기는 소품용 칼이었다.
조인수가 들고 있는 칼은 붉은색 광채를 내뿜었다. 진검이었다.
그 광채를 보고 장호일이 벌컥 화를 냈다.
유강인이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피해자, 장호일 배우는 조인수가 든 칼을 보고 칼의 정체를 바로 알아챘습니다. 바로 자기 칼이었습니다.
조인수가 소품용 칼로 장난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자기가 했던 것처럼.
그런데 그 칼은 강한 조명 아래에서 붉은색 광채를 내뿜었습니다. 그걸 보고 장호일이 아차! 했을 겁니다. 조인수가 소품용 칼이 아니라 진검을 들고 바로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조인수의 핸드폰에서 목소리가 들린 겁니다. 아마도 그 목소리의 주인은 장호일과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장호일이 불같이 화를 낸 겁니다.
그래서 장호일의 시선이 조인수의 얼굴이 아니라 핸드폰을 든 왼손으로 향한 겁니다. 핸드폰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집중한 게 분명합니다.”
“그렇군요. 일이 그렇게 흘러가는군요. 진상이 점점 밝혀지네요.”
이진환 형사가 손뼉을 짝 쳤다. 그가 고개를 들어 위의 조명을 살폈다. 조명이 아주 강렬했다. 그 조명을 칼의 정체를 드러냈다. 소품용 칼이 아니라 진검이었다.
“역시, 유탐정님이십니다. 수사 속도가 F1 그랑프리 급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맞습니다! 감탄했습니다! 저는 동네 따릉이에 불과해요.”
두 형사가 이구동성으로 유강인을 칭찬했다. 둘이 존경하는 눈빛으로 유강인을 바라봤다.
유강인은 그 시선에 우쭐하지 않았다. 급한 건 사건 해결이었다.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 억울함을 풀어야 했다.
“탐정님.”
황정수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그의 손에 피로회복제 병이 들려 있었다. 유강인에게 피로회복제를 건네고 말했다.
“쭉 드시고 다음 조사에 임하세요. 어젯밤 극본을 보느라 늦게 주무셨다고 하셨잖아요.
피로는 제때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쌓이지 않아요. 쌓였다가 무너지며 큰일 나요. 산사태, 눈사태죠.”
“좋았어. 피로는 제때 풀어야지.”
유강인이 시원하게 답하고 피로회복제를 쭉 마셨다. 오랜만에 마시는 피로회복제였다. 피로회복제를 마시자, 정신이 더욱더 맑아졌다. 각성 효과가 있는 거 같았다.
유강인이 빈 병을 황정수에게 건네고 형사 둘에게 말했다.
“자, 이제 참고인 조사를 하겠습니다. 배우, 스태프에게 전달하세요. 무대 위로 모두 모이라고 하세요.
전체를 한 번에 조사하겠습니다. 단체 조사입니다. 이후에 유력한 자들을 골라서 개별 면담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이진환 형사가 씩씩하게 답을 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유강인이 걸음을 옮겼다. 분장실 현장검증을 마쳤다. 이를 통해 사건 당시의 진상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
첫째, 장호일은 조인수가 든 칼의 정체를 금방 알아챘다.
둘째, 장호일이 대화한 사람은 조인수가 아니라 핸드폰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야 했다. 그자가 바로 꼭두각시 조인수를 조종한 자였다.
셋째, 장호일은 당일 공연장에 없었던 카르멘 최지나와 마지막으로 통화했다. 그때 분장실에 있던 배우는 모두 무대로 나가야 했다.
이는 공연의 모든 걸 책임지는 무대 감독의 지시였다. 나이 많은 선배가 어서 나가라고 충고도 했다. 그런데 장호일은 그걸 무시하고 최지나와 통화했다.
호세 장호일과 카르멘 최지나 사이에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연극 ‘호세와 카르멘’에서 호세와 카르멘은 사랑하는 사이였다가 갈라섰다.
유강인이 불안감을 느꼈다. 사건이 연극처럼 흘러가는 거 같았다. 당장이라도 사람을 미혹하는 자와 미쳐서 날뛰는 자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뒤에서 이를 조종하는 자가 있는 거 같았다.
보이지 않는 죽음의 거미줄이 사람들을 꼼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