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1편 <죽음의 거미줄, 카르멘>
“제가 잘 아는 여배우가 있는데 … 소개해 드릴까요?”
최지나 배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외모도 출중하고 성품이 좋은 아이예요. 탐정님과 아주 잘 어울릴 거 같아요.”
“그게 ….”
유강인이 머뭇거렸다.
최지나 배우가 쇠뿔도 단김에 빼려는 듯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는 여배우에게 전화하려는 거 같았다.
유강인이 그 모습을 보고 급히 말했다.
“연애는 … 때가 되면 하겠죠. 배려 감사합니다. 최지나 배우님, 조사에 응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분장실로 이동하세요.”
그 말을 듣고 최지나 배우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네에? 벌써 다 끝난 거예요.”
“이번 조사는 여기까지입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하면 연락하겠습니다.”
추가 조사라는 말에 최지나 배우가 그건 아니라는 듯 두 손을 마구 흔들어댔다. 그녀가 급히 말했다.
“유탐정님! 제발 추가 조사는 하지 말아주세요. 전 바쁜 몸이에요.”
“그건 … 장담할 순 없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거, 참!”
최지나 배우가 삐진 듯 유강인을 흘겨봤다. 그러다 토라진 모습으로 뒤로 휙 돌아섰다. 급한 발걸음으로 분장실로 향했다.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적막한 무대에 크게 울렸다.
이제 단역 배우 세 명만 남았다. 셋이 서로 쳐다봤다. 무척 긴장한 모습이었다.
유강인이 단역 배우 셋을 호출했다.
“세 분 다 앞으로 나와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단역 배우 셋이 앞으로 나왔다.
무대에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최지나 배우를 조사할 때와 자못 다른 긴장감이었다. 셋이 고개를 푹 숙였다. 뭔가를 감추는 거 같았다.
유강인이 이진환 형사를 불렀다.
“이형사님,”
“네, 유탐정님.”
이진환 형사가 유강인 앞으로 달려왔다. 유강인에게 그에게 말했다.
“분장실로 가서 스태프 한 명을 불러주세요. 분장을 깨끗이 지울 세정제, 물티슈 등이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헉!”
분장을 지울 세정제라는 말에 단역 배우 셋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들이 누구라 할 거 없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음~!”
유강인이 한번 헛기침했다. 성난 표정이었다. 앞에 서 있는 단역 배우들의 얼굴을 차례대로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첫 번째 단역 배우 앞을 지나쳤을 때
“으으으~!”
두 번째로 서 있는 단역 배우 하나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 소리를 듣고 유강인이 걸음을 멈췄다.
유강인이 차디찬 목소리로 단역 배우 셋에게 말했다.
“여러분, 왜 제 지시를 따르지 않았죠? 왜! 분장을 얼굴에 남겼나요?”
“그, 그게 ….”
“죄송합니다.”
“저도 죄송합니다.”
단역 배우 셋이 큰 죄를 지은 듯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잠시 후, 스태프 하나가 무대로 돌아왔다. 손에 클렌저와 물티슈 등이 있었다.
유강인이 스태프에게 말했다.
“스태프님, 앞에 있는 배우님들 얼굴에 분장이 남아있습니다. 분장을 아주 꼼꼼히, 깨끗이 지워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스태프가 답했다. 유강인의 지시에 따랐다.
5분 후, 스태프가 일을 마치고 유강인에게 말했다.
“배우분들 얼굴 분장을 깨끗이 지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유강인이 고개 숙여 스태프에게 감사를 표하고 단역 배우 셋을 향해 걸어갔다. 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유강인의 눈빛이 조명을 받아 번쩍였다. 공중을 나는 매가 지상을 매섭게 쏘아보는 거 같았다.
10초 후,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그렇군.”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도 악다물었다.
스태프가 단역 배우 셋의 얼굴에 클렌저를 바르고 물티슈로 얼굴을 꼼꼼히 닦자, 감춰졌던 비밀이 드러났다.
단역 배우 셋의 얼굴에 뭔가가 보였다. 그건 푸른색 멍이었다. 폭행의 흔적으로 보였다.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게 분명했다. 다들 눈두덩에 멍 자국이 있었다.
멍의 색은 진하기도 했고 연하기도 했다. 최근에 맞은 사람과 이전에 맞은 사람이 있는 거 같았다.
분장으로 감췄던 멍 자국이 드러나자, 단역 배우 셋이 모두 고개를 푹 숙였다. 유강인을 볼 면목이 없는 거 같았다.
잠시 무대에 괴로운 침묵이 흘렀다.
밝히기 싫은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극단 내에 심각한 폭행이 있었다. 피해자는 모두 단역 배우들이었다. 약자들이었다.
성난 표정을 짓던 유강인이 인상을 풀었다. 그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고개를 드세요. 여러분은 모두 피해자입니다. 누군가에게 심하게 얻어맞은 거 같은데 … 이 사실을 감추려고 분장을 지우지 않은 거죠?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
단역 배우 셋이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침묵으로 이를 인정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단역 배우 세 명의 얼굴에 커다란 멍 자국이 있다는 건 우연한 일치가 아닙니다. 그것도 눈두덩이에 동일하게 멍자국이 있습니다.
이는 극단 내에 심각한 폭력이 있다는 증거와 같습니다. 어서 말하세요. 누가 여러분을 때렸죠?”
“…….”
단역 배우 셋이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말하기 곤란한 거 같았다.
그러자, 유강인이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어서 진실을 말하세요! 그래야 합니다. 최근에 벌어진 장호일, 조인수 살인 사건은 폭력과 관련이 깊습니다.
조사 결과, 살인 사건 피해자인 장호일 배우가 평상시 짓궂은 장난을 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소품용 칼로 단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장난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당하는 사람에 따라 심각한 폭력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장난도 그 정도가 심하면 폭력입니다.
장호일 배우를 죽인 조인수는 극단 뒷산에서 매 맞아 죽었습니다. 그는 폭력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입니다.”
“휴우~!”
단역 배우 셋이 모두 크게 숨을 내쉬었다. 유강인의 수사망에 걸린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걸 이제야 안 거 같았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이 일로 미루어 극단폭풍 안에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어서 진실을 말해주세요. 그래야 살인 사건과 여러분이 당한 폭력 사건의 전모를 밝힐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범인으로 모는 게 아닙니다. 단지 극단의 진상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험한 일을 당한 피해자입니다.”
“… 어, 어쩔 수 없네요.”
“유탐정님,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단역 배우들이 입을 열었다. 입술이 달그락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진실을 말할 시간이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셋 중 군인 2역이 먼저 입을 열었다. 20대 중반 남자였다. 키가 크고 듬직한 체격이었다. 왼쪽 눈두덩이가 파랬다. 최근에 얻어맞은 거 같았다.
군인 2역이 무척 떨리는 목소리로 유강인에게 말했다. 목소리에 억울함이 서려 있었다.
“호세가 … 저를 때렸습니다. 연기가 서투르다며 … 원숭이가 연기해도 저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호세라고요?”
유강인이 호세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난데없이 호세가 등장했다.
호세는 ‘호세와 카르멘’ 연극의 남주인공이었다. 그 배역은 죽은 장호일 배우가 맡았다.
유강인이 급히 군인 2역에게 물었다.
“호세라면 … 혹 죽은 장호일 배우님을 말하는 건가요?”
군인 2역이 고개를 격하고 끄떡이고 답했다.
“맞습니다. 호세, 장호일 배우님이 … 저를 아니, 우리 모두를 때렸습니다. 맞은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젊은 남자들을 다 맞았을 겁니다.
연기가 서투르다면, 그것도 연기냐며, 으슥한 곳으로 불렀습니다. 이후 마구 때렸습니다. 인정사정없었습니다.
마구 때린 후 카르멘의 뜻이라고 전했습니다.”
호세이 이어 카르멘이 등장했다. 유강인이 급히 물었다.
“호세, 장호일이 여러분을 때렸는데 … 그게 카르멘의 뜻이라고요?”
단역 배우 셋이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호세와 카르멘!’
유강인이 속으로 연극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침을 꿀컥 삼켰다. 극단폭풍의 비밀이 드러났다. 그건 약자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그 중심에 살인 사건 피해자, 호세 장호일이 있었다.
유강인이 호세 장호일을 떠올렸다. 그가 알기로 장호일은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 이렇다 할 구설수가 없었다.
“음~!”
유강인이 무척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급히 조수 둘과 이진환 형사를 불렀다.
“조수님들, 이진환 형사님 어서 오세요. 긴히 상의할 게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셋이 유강인 앞에 서자, 유강인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장호일의 평판에 관해 물었다.
황수지가 답했다.
“장호일 배우님은 인품이 좋다고 들었어요.”
황정수도 거들었다.
“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사람을 때리거나, 음주 운전을 했거나,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어요.”
이진환 형사도 말했다.
“저도 장호일 배우님을 건실한 배우로 알고 있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다고 들은 적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역 배우 셋의 말이 맞는다면 그동안 장호일은 가면을 썼다. 선한 척, 점잖은 척하며 대중을 기만했다.
극단 내에서 무소불위의 폭력을 행사하는 폭군이지만, 이를 잘 감춘 위선자였다.
마침내 오랫동안 감췄던 진실이 드러나자, 단역 배우 셋이 너도나도 입을 열었다. 봇물이 터진 거 같았다.
“유탐정님, 그건 다 잘 감춘 사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극단폭풍을 떠날 수 없어서 그동안 맞기만 했습니다.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못했습니다.
극단폭풍은 정말 좋은 곳이었습니다. 다른 극단과 비교 불가였어요. 매를 맞더라도 다른 곳으로 가기 싫었습니다.”
“맞아요.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면 극단폭풍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꾹 참았습니다.
장호일 배우님이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서 때렸다고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장호일 배우님은 단장님 친동생이라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단장님은 매우 훌륭하신 분입니다. 단장님은 극단을 위해 모든 걸 바치셨습니다. 단장님을 생각해서 동생의 만행을 참았습니다. 단장님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셋의 말에 유강인이 두 눈에 새파란 분노가 치밀었다.
장호일 배우는 단장의 친동생이었다. 단장의 동생이라는 점을 악용해 힘없는 단원들을 학대했다.
“그렇군.”
유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장호일 배우가 그동안 위선의 가면을 쓴 게 분명했다. 그는 악역을 찰지게 연기해 칭송받았다. 그런데 그 연기가 연기가 아니라 실제 모습이었다.
대중에게 좋은 사람처럼 보였던 장호일은 실제로는 후배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폭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