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1편 <죽음의 거미줄, 카르멘>
유강인이 화를 가라앉히고 단역 배우 셋에게 말했다.
“이 사실을 … 경찰 조사에서 밝힐 수 있나요?”
단역 배우 셋이 서로 쳐다봤다. 그들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장호일이 죽었으니 … 이제 말할 수 있습니다.”
“네, 말하겠습니다. 이제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요.”
“맞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장호일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이제 때가 됐습니다. 단장님도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극단폭풍의 첫 번째 사망자 장호일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는 극단 내에서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는 군기 반장이었다.
장호일은 후배들을 인정사정없이 때린 후, 카르멘의 뜻이라고 전했다. 이는 카르멘의 지시를 따랐다는 말과 같았다. 때리고 싶어서 때렸다는 말이 아니었다. 장호일도 지시를 받았다.
‘카르멘!’
유강인이 카르멘을 생각했다. 카르멘은 연극 ‘호세와 카르멘’의 여주인공이었다. 연극 내에서 호세를 조종하는 자였다.
‘그렇군. 배후 조종자가 카르멘이었군. 사건이 연극대로 흘러가고 있어.
호세는 카르멘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어. 약혼녀를 버렸고 직업도 버렸어. 상관과 칼부림까지 했어. 군인이었다가 밀수꾼이 된 자야.
마지막에는 연적인 투우사 에스카미요와 결투까지 하려고 했어.’
“음!”
유강인이 무척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왼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아침에 면도했지만, 수염이 느껴졌다.
1분 후, 유강인이 단역 배우 셋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호세 장호일 배우가 언급한 카르멘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단역 배우 셋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이 답했다.
“우리는 카르멘이 누구인지 전혀 모릅니다. 장호일이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맞아요. 카르멘이 누구인지 전혀 모릅니다. 우리도 카르멘이 누구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수소문했지만, 누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카르멘은 극단 내 유령 같았습니다.”
“… 생각해보니 재작년부터 카르멘을 언급한 거 같아요.”
재작년이라는 말에 유강인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가 말했다.
“재작년이라고요? 카르멘을 최초로 언급한 게?”
“네, 그런 거 같아요.”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극단 내 유령 같은 카르멘은 재작년부터 등장했다.
단역 배우들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이진환 형사가 입을 열었다.
“카르멘이라면 … 최지나 배우와 이유리 배우잖아요. 둘 중에서 한 명이 폭력을 사주한 카르멘이 아닐까요?”
황정수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형사님, 이름상 두 배우 중에서 한 명 같기는 한데 … 최지나 배우는 극단폭풍 소속이 아니잖아요. 수사 기록에서 확인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진환 형사가 입술에 침을 묻혔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습니다. 최지나 배우는 객원 단원입니다. 그렇다면 … 이유리 배우밖에 없습니다. 이유리는 오랫동안 극단폭풍에 속해 있었습니다.”
“네에? 폭력을 사주하는 카르멘이 이유리 배우라고요?”
황수지가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녀가 그럴 리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댔다.
이는 그럴 만 했다. 이유리 배우는 나이가 많지 않았다. 20대 후반에 불과했다. 그런 그녀가 극단의 폭행을 사주했다는 말은 믿기 힘들었다.
황수지가 말했다.
“이유리 배우는 호세 장호일 배우의 한참 후배인데 … 선배를 조종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는 하네요.”
“맞는 말이네요.”
이진환 형사와 황정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지나 배우와 이유리 배우를 떠올렸다. 둘 다 카르멘이었다. 팜므파탈 역할이었다.
30초 후, 유강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안은 조사를 통해 명백히 밝혀야 합니다. 극단폭풍 내 베일에 싸인 카르멘이 있습니다. 카르멘은 폭행을 사주하는 자입니다.
그자가 누구인지 반드시 알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사건을 풀 수 있습니다.
카르멘은 장호일, 조인수 모두 조종한 거 같습니다. 장호일을 이용해 극단 내 단역 배우들을 컨트롤했고 조인수를 이용해 장호일을 혼내주려 했습니다. 아니 죽여버렸습니다.
장호일의 죽음은 의도한 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네에?”
“그게 무슨 말이죠?”
수사팀이 유강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유강인의 말은 극단 내 정체를 알 수 없는 실력자, 카르멘이 장호일과 조인수를 모두 조종했고, 그 과정에서 장호일이 죽었다는 말이었다.
장호일의 죽음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의도한 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장호일의 칼, 소품용 칼과 진검이 각각의 가능성을 대변했다.
먼저, 의도적인 살인이라면, 카르멘은 진검의 존재를 알아야 했다. 그 진검을 조인수에게 건넸다면 의도적인 살인이었다.
의도적인 살인이 아니라면, 카르멘은 진검을 존재를 몰라야 했다. 진검을 소품용 칼로 착각하고 조인수에게 건넸다면 이는 실수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카르멘은 정황상 극단 내 실력자가 분명합니다. 실력자 중심으로 수사하겠습니다.”
이진환 형사가 실력자라는 말을 듣고 말했다.
“극단 내 실력자라면 누구일까요? 극단 책임자인 단장, 사무장일까요? 아니면 후원자일까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답했다.
“후원자는 외부인입니다. 극단 내부 사람들 먼저 조사하겠습니다.
극단을 책임지는 단장님, 극단 사무를 총괄하는 사무장님, 카르멘 배우 둘 그리고 극단에 오랫동안 계셨던 배우나 스태프 중심으로 조사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이진환 형사가 답을 하고 손뼉을 짝 쳤다. 그리고 참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사 대상자가 확 줄어들었다. 사십 명이 넘는 인원에서 예닐곱 명으로 간추려졌다.
유강인이 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이진환 형사에게 말했다.
“이형사님, 오늘 배우들이 사건 당일처럼 분장했습니다. 사건 당일처럼 똑같이 재현하라고 지시했나요?”
이진환 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그렇게 지시했습니다. 현장 검증이라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배우들이 분장을 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군요.”
“네, 그렇죠.”
“누구한테 지시했죠?”
“단장님과 사무장님께 지시 사항을 전달했습니다.”
“단장님과 사무장님이라면 ….”
유강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진환 형사가 무척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유강인에게 물었다.
“저, 유탐정님. 극단 내 구타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죠?”
유강인이 씩 웃고 답했다.
“두 개의 살인 사건 다 극단 내 폭력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극단폭풍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체 경기나 단체 예술 활동은 호흡이 잘 맞아야 해서 군기를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구타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생각하고 배우들의 얼굴을 조사한 겁니다.”
“아! 그렇군요. 역시 유탐정님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하시는군요. 한 수 배웠습니다.”
이진환 형사가 무척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강인이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답했다.
“도움이 되셨다니 잘됐네요. 이형사님, 단장님과 사무장님, 고참 배우들을 조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진환 형사가 답을 하고 뭔가가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높이 들었다. 2층 무대 지휘실을 올려다봤다. 그가 고개를 내리고 말했다.
“유탐정님, 무대 감독님도 불러올까요? 무대 감독님은 공연을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입니다. 무대 연습 때부터 무대 감독님이 모든 걸 책임집니다.”
무대 감독이라는 말에 유강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대 감독은 극단 단원이 아니었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그 공연을 책임지는 연출 전문가였다.
유강인이 생각을 마치고 말했다.
“무대 감독님을 극단 단원이 아닙니다. 일단 조사에서 제외하겠습니다. 제가 말한 분들을 어서 불러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진환 형사가 씩씩한 목소리로 답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돌렸다. 앞에 있는 단역 배우 셋에게 말했다.
“배우님들은 분장실로 돌아가세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겠네요. 겉보기에 좋은 극단이지만, 그 안에 무자비한 폭력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
“네, 알겠습니다.”
단역 배우 셋이 유강인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들이 서로 쳐다봤다. 모두 홀가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감춰왔던 비밀을 유강인에게 속 시원히 털어놨다. 마음의 짐을 던 거 같았다.
상황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수사의 방향이 극단 내 실력자이자, 베일에 싸인 카르멘으로 향했다.
카르멘이 바로 배후 조종자였다. 두 건의 살인 사건과 관련된 거 같았다.
“음~!”
유강인이 헛기침을 한번 하고 침을 꿀컥 삼켰다. 사건의 진상이 점점 밝혀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장철수 단장이 바쁜 걸음으로 무대로 들어왔다. 뒤에 양진석 배우가 있었다.
양진석은 극단 내 최고령배우로 40년 경력을 자랑했다. 후배들한테 선생님으로 불렸다.
장단장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대 끝에 유강인과 조수 둘이 서 있었다.
장철수 단장이 유강인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뒤따라 오던 양진석 배우도 걸음을 멈췄다.
“휴우~!”
숨을 길게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장철수 단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유강인에게 말했다.
“유탐정님, 최지나 배우와 단역 배우들을 왜 조사한 거죠? 무슨 문제가 있나요?”
유강인이 답했다.
“그분들을 호명해서 따로 조사한 건, 극단과 공연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아, 그런 거군요.”
“단장님, 사무장님은 극단 사무실에 계시죠?”
“네, 그렇습니다. 10분 전에 통화했습니다. 사무장님은 사무실에 있습니다.”
“그럼, 극단으로 갑시다. 극단 사무실로 가서 단장님, 사무장님, 배우님 세 분을 조사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양진석 배우가 깜짝 놀랐다. 그가 서둘러 말했다.
“유탐정님! 저도 조사 대상자라고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단장님, 사무장님, 배우님은 극단 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입니다. 심층 조사가 필요합니다. 협조해주세요.”
“저는 그냥 배우인데요, 경력만 많은 단역 배우에 불과해요.”
양진석 배우가 하소연했다.
유강인은 요지부동이었다.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진석 배우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유탐정님 지시니 … 따라야죠.”
극단 내 원로 배우인 양진석 배우가 의기소침하자, 장철수 단장이 양진석에게 말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참고인 조사일 뿐입니다.”
장단장의 말에 양진석 배우가 고개를 끄떡였다. 조카 같은 단장의 말에 안도한 거 같았다.
유강인이 장철수 단장에게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이후 단원들 일정은 어떻게 되죠?”
장철수 단장도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연습이 있습니다. 배우들이 모두 모인 김에 공연 리허설을 하기로 했습니다.”
“연습이라고요?”
연습이라는 말에 유강인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