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2편 <죽음의 거미줄, 카르멘>
잠시 후 유강인이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유리 배우에게 말했다.
“몸은 괜찮으시죠?”
이유리 배우가 힘들게 침을 삼키고 답했다.
“좀 힘들지만, 버틸 만해요. 많이 좋아졌어요.”
“그렇군요, 그럼 몸조리 잘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이유리 배우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렇게 조사가 끝났다. 조사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수사팀이 병실에서 나왔다. 그들이 한동안 얘기를 나눴다.
황정수가 말했다.
“탐정님, 이유리 배우 상태가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황수지도 거들었다.
“맞아요. 예상보다 괜찮은 거 같아요.”
“맞습니다. 저 정도면 내일이나 모레면 퇴원할 거 같습니다.”
이진환 형사도 동의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5인실을 향해 걸어왔다.
유강인이 고개를 돌렸다. 둘은 장철수 단장과 김두희 사무장이었다. 이유리 배우를 면회하러 왔다. 둘의 면회 시간은 10분이었다.
장철수 단장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유강인에게 물었다.
“이유리 배우 상태는 어떤가요?”
유강인이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쁜 상태는 아닙니다. 어서 들어가세요.”
“네, 알겠습니다. 다행이네요.”
장철수 단장과 김두희 사무장이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장단장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이유리 배우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유리야!”
장철수 단장이 크게 외쳤다. 그 소리를 듣고 이유리 배우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장단장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무척 반가운 거 같았다.
“유리씨, 괜찮아요?”
김두희 사무장도 입을 열었다.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 거의 아프지 않아요.”
이유리 배우가 답했다. 목소리에 생기가 있었다. 단장과 사무장을 보고 힘이 난 거 같았다.
“참, 다행이네요.”
김두희 사무장이 안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불행 중 다행이야.”
장철수 단장이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장단장은 요즘 심경이 괴로웠다. 극단폭풍에 느닷없이 거센 폭풍이 불고 있었다. 호세와 카르멘 연극을 시작하자, 느닷없이 넷이 죽고 한 명이 의식불명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조명 추락 사건 피해자, 이유리 배우는 경상이었다. 조만간 퇴원할 거 같았다.
“단장님!”
이유리 배우가 오른손을 들고 장단장을 불렀다. 목소리가 다정했고 간절했다.
“그래, 유리야. 정말 괜찮은 거 같구나.”
장철수 단장이 답을 하고 이유리 배우를 향해 걸어갔다.
이유리가 계속 환히 웃었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수사팀은 여전히 병실 앞에 있었다.
황정수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탐정님, 이제 가시죠.”
유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말했다.
“단장님과 사무장님이 병실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네? 굳이 그럴 필요가 ….”
유강인이 대답대신 병실 출입문을 매섭게 쳐다봤다. 두 눈에서 광채가 빛났다. 출입문을 뚫고 안을 들여다보는 거 같았다.
1분 후, 유강인이 이진환 형사에게 말했다.
“이형사님, 무대 감독 한창완을 조사하고 싶습니다.”
이형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
“유탐정님, 한창완이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사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묵비권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유강인이 괘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창완 감독은 큰일을 저질러놓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유강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그래도 만나겠습니다. 그자가 입을 열지 않더라고 그 분위기를 파악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서에 조사를 준비하라고 연락하겠습니다.”
“이형사님, 한창완 감독의 신상 명세를 보고 싶습니다.”
“한감독 신상 기록은 태블릿 PC 안에 있습니다. 그걸 보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잘 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병실 출입문이 천천히 열렸다. 면회를 마친 장철수 단장과 김두희 사무장이 병실에서 나왔다. 둘의 표정은 밝았다. 병실에 들어갈 때와 확연히 달랐다.
유강인이 장단장과 김사무장의 표정을 잠시 살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이유리 배우님 면회를 잘 마치셨나요?”
김두희 사무장이 답했다.
“네, 유리 상태가 어제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활짝 웃었어요. 예전 미소를 되찾았어요.”
“미소를 지었다고요?”
“네. 예전의 상큼한 미소였어요.”
“누굴 보고 미소를 지었죠.”
“그건 ….”
김두희 사무장이 말을 하다가 옆에 있는 장철수 단장을 힐긋 쳐다봤다.
“음~!”
장단장이 헛기침을 한번 했다.
유강인이 그 헛기침을 듣고 뭔가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철수 단장이 약간 거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수사팀은 강천 경찰서로 갑시다. 장단장과 김사무장님은 극단으로 돌아가실건가요?”
“네, 극단으로 가겠습니다.”
장철수 단장이 답했다.
“알겠습니다. 극단에서 대기해주세요. 추가 조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장철수 단장이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유강인이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수사팀이 그 뒤를 따랐다.
**
탐정단 밴과 강력반 밴이 강천 경찰서 야외 주차장에 도착했다. 수사팀이 차에서 내렸다. 곧 급한 걸음으로 경찰서 본관 강력반 사무실로 향했다.
10분 후, 조사실 출입문이 열렸다. 유강인이 이진환 형사와 함께 조사실 안으로 들어왔다.
비교적 밝은 조사실이었다. 다른 경찰서 조사실보다 조명이 강했다.
조사실 안에 거구의 남자가 있었다. 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대 감독 한창완이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한감독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망연자실한 듯했다.
“음~!”
유강인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걸음을 옮겼다. 한창완 감독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이진환 형사는 유강인 옆자리에 앉았다.
잠시 조사실에 침묵이 흘렀다.
피의자와 탐정이 대치했다. 피의자는 잡힌 후, 그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기 싫은 거 같았다.
유강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창완 감독님, 저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제 얼굴을 알고 계시죠?”
“…….”
한창완 감독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여전히 말이 없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묵비권을 계속 행사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런가요? 맞는다면 고개를 끄떡이세요.”
한창완 감독이 고개를 들었다. 무척 슬픈 눈빛이었다. 그가 고개를 끄떡였다. 묵비권을 여전히 행사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양 입술에 침을 묻혔다.
잠시 시간이 더 흘렀다.
유강인이 성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창완 감독님은 조명 장치 추락 사건의 주범이 아닙니다. 카르멘이라고 불리는 극단폭풍의 실력자가 그 일을 사주한 걸 알고 있습니다. 제 말이 맞나요?”
한창완 감독이 더욱 입을 꾹 다물었다. 두 눈에 힘이 들어갔다.
유강인이 기습적으로 말했다.
“조사 결과, 극단폭풍의 실력자 카르멘이 장호일과 조인수뿐만 아니라 당신의 공범인 최상일, 윤미래도 가차 없이 죽였습니다. 카르멘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입니다.”
“뭐, 뭐라고?”
한창완 감독이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유강인이 그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어젯밤, 조명 스태프 최상일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시신은 극단폭풍 뒷산인 진봉산 산비탈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윤미래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역시 진봉산 산비탈에 있었습니다. 낙엽 더미 속에 두 손을 모으고 죽어있었습니다. 둘 다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으으으~!”
한창완 감독이 그 말을 듣고 어금니를 있는 힘껏 꽉 깨물었다. 둘의 죽음을 예상치 못한 거 같았다.
유강인이 말했다.
“다행히, 한창완 감독님은 현재 멀쩡한 상태입니다.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했지만, 경찰이 체포해서 그 죽음을 막았습니다.
왜 그런 짓을 하셨죠? 죄책감을 느끼셨나요?”
“으으으~!”
한창완 감독이 얼굴을 붉혔다. 자기 행동이 부끄러운 거 같았다. 그가 고개를 다시 푹 숙였다.
유강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극단폭풍의 실력자, 카르멘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자입니다. 지시를 충실히 따른 하수인들을 인정사정없이 죽였습니다. 그런 자는 보호할 가치가 없습니다.
한창완 감독님, 어서 아는 대로 말해보세요. 그래야 죄가 감형됩니다.”
한창완 감독이 대답 대신 두 눈을 꼭 감았다. 뭔가를 아는 게 분명했지만, 절대 말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무척 괴로운 거 같았다. 꼭꼭 감추고 싶은 심적 고통이 얼굴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눈꺼풀 속 안구가 요동쳤다.
두꺼운 눈꺼풀 속에서 커다란 구슬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거 같았다.
이진환 형사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유강인에게 말했다.
“유탐정님, 피의자가 여전히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는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진환 형사의 판단이 맞았다. 한창완은 그 태도가 완강했다.
“음~”
유강인이 헛기침을 한번 하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다 뭔가가 생각이 난 듯 입을 열었다.
“한창완 감독님, 혹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건가요?”
그 말을 듣고 한창완 감독이 깜짝 놀라서 두 눈을 번쩍 떴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여기 오면서 한창완 감독님 신상 기록을 살펴봤습니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더군요. 형제도 없었습니다. 미혼이라 처자식도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외로운 분이셨더군요. 혹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을 지키려고 입을 꾹 다무는 건가요?”
한창완 감독이 화들짝 놀랐다. 다시 두 눈을 꼭 감았다. 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시인하지 않았지만. 몸이 자연스럽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이진환 형사가 조사실 문을 닫고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유강인에게 물었다.
“유탐정님, 방금 하신 말씀이 대체 뭐죠? 한창완 감독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고 입을 꾹 다물었다는 말인가요?”
“그런 거 같습니다. 느낌상 ….”
“느낌이라고요?”
“네, 명확하게 증언하지 않았으니 … 그냥 느낌일 뿐입니다.”
“그렇군요. 그 느낌이 뭐죠? 무척 궁금합니다.”
유강인이 대답 대신 잠시 하얀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고개를 내리고 답했다.
“한창완 감독은 부모 형제. 처자식이 모두 없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외로운 남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런 위험한 일에 걸려들었다는 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막대한 이권이나 다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막대한 이권이라는 말에 이진환 형사가 급히 답했다.
“네에? 막대한 이권이요? 그건 아닐 겁니다. 한창완 감독은 강남에 아파트 네 채가 있었습니다. 주식 가치도 상당했습니다.
거액을 상속받아서 젊은 나이에 부유한 자입니다. 그런 자가 돈을 벌려고 이런 무모한 짓을 벌였다고요? 그건 믿기지 않습니다. 이건 너무나도 명확히 드러나는 범죄였습니다.”
“이형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조명 장치 추락 사건으로 유명 배우 최지나씨가 크게 다쳤습니다.
그 대가로 돈을 받을 순 있지만, 한창완 감독은 부유한 사람입니다. 돈보다는 다른 이유로 이 일에 가담한 거 같습니다.”
“그 이유가 대체 뭐죠?”
유강인이 양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