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1편 <죽음의 거미줄, 카르멘>
“이형사님, 한창완 감독은 한마디로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갈구할 거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거 같습니다.”
“네에? 사랑하는 사람이라고요? 그 사람이 대체 누구죠?”
이진환 형사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자료를 살필 결과, 한창완 감독은 유능한 무대 감독입니다. 경력이 화려했습니다.
유명 극단인 극단폭풍과 많은 작품을 함께 했습니다. 극단폭풍 단장인 장철수씨와 동년배였고 친구였습니다.
공연을 책임지는 무대 감독으로서 극단폭풍을 자주 방문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극단폭풍을 오가다 단원 중 누군가를 흠모한 거 같습니다.
그의 눈빛이 그걸 증명했습니다. 제가 누구를 사랑하냐고 묻자,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깜짝 놀랐습니다. 서둘러 두 눈을 감고 당황한 눈빛을 감췄지만, 눈꺼풀 속에서 안구가 요동쳤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흠모라고요? 한창완 감독이 흠모하는 사람이 대체 누구죠?”
이진환 형사가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정황상 … 세 명 중 한 명입니다.”
“자그마치 세 명이나 된다고요? 그들이 대체 누구죠?”
“최지나 배우이거나 이유리 배우, 아니면 윤미래 배우입니다.”
“네에? 그 세 명이라고요?”
이진환 형사가 그건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급히 말했다.
“유탐정님, 최지나 배우는 아닐 겁니다. 그 사람은 조명 장치 추락 사건으로 크게 다친 사람입니다. 피해자입니다. 최지나 배우는 명단에서 빼야 할 거 같아요.”
유강인이 정색하고 답했다.
“이형사님, 사랑이 실패하면 복수심이 확 끓어오를 수 있습니다. 카르멘이 그 복수심을 이용했을 수 있습니다.”
“네에? 아! 그렇군요. 사랑의 실패, 복수심!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다음은 이유리 배우입니다. 한창완 감독이 이유리 배우를 흠모했을 수 있습니다. 이유리 배우의 외모는 최지나 배우 못지않았습니다. 그 스타일이 다르지만, 둘 다 아주 매력적인 여자들입니다.”
“맞습니다. 그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볼 때 한창완 감독은 최지나 배우보다는 이유리 배우를 흠모했을 거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창완 감독은 화려한 공연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그 반대급부로 청순한 매력의 이유리를 좋아했을 거 같습니다.
최지나 배우는 무대처럼 아주 화려한 여자입니다.”
“그런데 유탐정님, 한창완 감독이 이유리 배우를 흠모해서 최지나 배우 머리 위로 조명 장치를 떨어트렸다고요? 그건 왜 그렇죠?”
“이유리 배우가 카르멘이라면 가능한 일입니다.”
“네에? 이유리 배우가 카르멘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요? 이유리 배우는 나이가 너무 젊습니다. 20대 후반 나이에 극단폭풍을 좌지우지한다고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이형사님, 모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합니다. 이건 가능성일 뿐입니다. 단정이 아닙니다.”
“아,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윤미래 배우가 있습니다. 유서에 분명히 적혀있었습니다. 자신을 카르멘이라고 밝혔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윤미래의 뜻을 한창완 감독이 들어준 겁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가장 가능성이 적습니다. 정황상 윤미래 배우는 카르멘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마지막은 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합니다. 윤미래 배우는 카르멘이 아닌 게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두 가지네요.”
“네, 맞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에 실패한 한창완 감독의 분노입니다. 한감독은 최지나 배우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카르멘이 그걸 노린 겁니다. 절망에 빠진 한감독을 이용해 최지나 배우 머리 위로 조명 장치를 떨어트린 겁니다.”
“그렇군요.”
“두 번째는 한창완 감독이 이유리 배우를 사랑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그 청을 들어준 겁니다. 이유리의 소원대로 최지나 배우 머리 위로 조명 장치를 떨어트린 겁니다.”
“유탐정님,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두 번째 가능성이 맞는다면, 이유리 배우가 왜 선배인 최지나 배우를 해치려고 한 거죠?”
“최지나 배우에게 앙심을 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앙심이라? 그렇군요, 유탐정님 추리에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진환 형사가 말을 마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입을 열었다.
“유탐정님,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해봤을 때, 첫 번째 경우인 거 같습니다. 한창완 감독이 최지나 배우를 사랑한 거 같습니다.
한감독이 사랑에 실패해 낙담했을 때 카르멘이 그 점을 이용한 거 같습니다. 그렇게 카르멘을 도운 거 같습니다.”
“이형사님, 두 번째 가능성은 별로인가요?”
“네, 이유리 배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카르멘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너무 젊은 거 같습니다. 베일에 싸인 극단의 실력자 카르멘을 맡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렇군요. 나이가 젊군요. 그 점이 중요하군요.”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앞에 있는 이진환 형사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서울에서 알아주는 형사였다. 많은 경험이 있는 노련한 자였다. 그런 형사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는 없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20초 후, 입을 열었다.
“제가 봐도 카르멘은 나이가 많은 거 같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네, 맞습니다. 카르멘은 젊은 사람이 아닌 거 같습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 같습니다.”
“현재 극단폭풍에서 벌어지는 일은 심상치 않습니다. 범행을 위해 여러 사람을 동원한 흔적이 있습니다. 어떤 조직과 관련된 거 같습니다.”
“조직이라고요? 폭력 조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극단폭풍을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 극단폭풍은 역사가 오래된 극단입니다. 극단폭풍을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람을 찾아주세요. 그 사람을 통해 극단폭풍의 진면목을 파악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연극계 원로를 찾아보겠습니다.”
이진환 형사가 당찬 목소리로 답했다. 그가 급히 움직였다.
수사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극단 배우인 장호일과 조인수가 죽은 후, 유강인은 남은 배우들을 전수 조사했다. 그중에서 얼굴에 구타 흔적이 있는 단역 배우들을 찾아냈다.
단역 배우들은 유강인의 추궁에 입을 열었다. 그렇게 베일에 싸여있던 극단의 실력자, 카르멘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 이후, 상황이 다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조명 장치가 떨어져 배우 둘이 다쳤고 그 일과 관련된 윤미래 배우가 유서를 남기고 죽었다. 윤미래는 유서를 통해 자신이 카르멘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건 페이크가 분명했다. 황수지의 말대로 수사 책임자, 유강인을 한번 속여보겠다는 얄팍한 수였다. 그런 저급한 수에 넘어갈 유강인이 아니었다.
현재 극단의 실력자, 카르멘은 급한 나머지 허둥대는 거 같았다. 하수인을 카르멘으로 내세우고 도망치려는 거 같았다.
이번 사건은 우발적인 실수에서 비롯됐다. 장호일의 죽음은 한마디로 실수였다. 의도한 일이 아니었다. 진검을 소품용 칼로 착각했다.
철두철미한 카르멘이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이후 카르멘은 이를 덮기 위해 다른 사람이 죽이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적이 허둥거릴 때 허점이 보이기 마련이었다. 허둥거리는 움직임 속에 단서가 있었다. 그 단서를 꽉 잡아야 했다.
유강인이 두 손바닥을 쓱쓱 비볐다. 그가 고개를 끄떡였다. 여태까지의 추리를 정리해서 카르멘의 정체를 추리했다.
‘두꺼운 베일에 싸인 카르멘은 … 매력적인 외모의 이유리가 유력해. 하지만 이유리는 카르멘을 하기에는 역부족인 점이 있어.
그렇다면, 이유리는 … 그렇구나! 그림자 무사, 카게무샤(影武者)야. 진짜 카르멘이 그림자 무사, 이유리를 내세우는 거야. 자신은 그 뒤에 숨어있고.’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렇군. 이중 구조였어. 그래서 사건이 복잡했던 거야.”
유강인이 이제 카르멘의 흉계를 알 거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추리상, 이유리 배우도 카르멘의 하수인이었다. 단, 보통 하수인이 아니었다. 카르멘의 그림자 무사로 최측근이었다. 카르멘인척하며 대신 움직였다.
그림자 무사 이유리를 한창완 무대 감독이 예전부터 사모한 거 같았다. 한감독은 독신이었다.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카르멘이 그 점을 이용한 게 분명했다. 이유리를 이용해 한창완 감독에게 뭔가를 지시한 게 분명했다.
한감독은 사랑하는 이유리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묵직한 조명 장치 움직여 최지나 배우 머리 위로 떨어트렸다.
이후 한창완 감독은 쇼크에 빠졌다. 조명 장치 추락 사건으로 두 여배우가 병원에 실려 가자, 옥상에 올라가 자살을 시도했다.
한감독의 자살 시도로 미루어 이유리의 부탁을 해프닝인 줄 알았던 거 같았다.
조명 장치가 떨어질 때, 두 여배우가 바로 피할 거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자. 매우 놀란 게 분명했다.
한창완 감독은 현재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유리가 한감독에게 뭔가를 약속한 거 같았다. 그 약속을 믿고 이유리를 지키려는 거 같았다. 그건 사랑의 약속이 분명했다.
그 약속은 헛된 꿈인 거 같았다. 한창완 감독이 여전히 속고 있는 거 같았다. 어리석게도 ….
사랑에 눈이 먼 자는 두 눈을 뜨고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유강인이 생각에 잠겼다.
‘이유리가 남몰래 팜므파탈 카르멘 역을 하는 건 맞는 거 같군. 남자들을 홀리고 있어.
하지만 진짜 카르멘은 아니야. 진짜 카르멘은 따로 있어.
이번 사건에서 카르멘은 둘이야. 팜므파탈 카르멘 역을 하는 이유리와 그녀를 조종하는 진짜 카르멘이 있어. 진짜 카르멘을 어서 잡아야 해.’
유강인이 생각을 마치고 두 눈을 부릅떴다. 진짜 카르멘의 정체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좋다! 카르멘은 한번 붙어보자.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다.”
유강인이 나지막하게 말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이중으로 펼쳐진 죽음의 거미줄을 파헤치기 시작됐다.
다음날
운명의 여섯 번째 막
2026년 2월 7일 오전 10시 30분
탐정단 밴이 극단폭풍 야외 주차장에 도착했다. 탐정단이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에 강력반 밴과 세단 여러 대가 있었다.
탐정단이 고개를 들었다. 오늘 약속 장소는 극단폭풍 건물 2층 테라스였다.
2층 테라스에 네 사람이 있었다. 넷이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탐정단 밴이 도착하자, 넷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진환 형사와 신기훈 형사, 노인 둘이었다.
“유강인 탐정님!”
신기훈 형사가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 밝은 소리를 듣고 황정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신기훈 형사님은 파이팅이 참 좋아요. 젊은 사람이라 패기가 넘쳐요.”
“맞아요.”
황수지도 미소를 짓고 말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는 조수들과 달리 표정이 무거웠다. 오늘 극단폭풍의 진짜 모습을 살펴야 했다. 그 모습이 추악할 수 있었다.
유강인이 걸음을 옮겼다. 극단폭풍 건물 2층 테라스로 향했다.
5분 후, 탐정단이 2층 테라스에 도착했다.
오늘 날씨가 쌀쌀했다. 산에서 찬 바람이 계속 불어왔다.
노인 둘 옆에 전기 히터가 있었다. 전기 히터에서 뜨거운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