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1_34_초대 단장 장민국과 선행

탐정 유강인 21편 <죽음의 거미줄, 카르멘>

by woodolee

테라스에 푹신한 의자와 원형 테이블이 있었다. 테이블 위에 커피잔이 있었다. 커피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카페 라떼였다.


“유강인 탐정님, 조수님들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이진환 형사가 정중한 목소리로 탐정단에게 말했다. 탐정단이 빈자리에 앉았다.


총 일곱 명이 테라스에 자리 잡았다.


탐정단이 자리에 편히 앉자, 곧 발소리가 들렸다. 김두희 사무장이 커다란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쟁반 위에 머그잔이 있었다. 음료는 따뜻한 코코아였다.


김두희 사무장이 테이블 위에 코코아 석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따뜻한 코코아를 준비했으니 식기 전에 어서 드세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 제품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고 코코아 잔을 들었다. 달콤하고 진한 맛이었다. 외국제품이라 맛이 남달랐다. 코코아의 진수가 느껴지는 맛이었다.


잠시 코코아를 즐기던 유강인이 따끈따끈한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연신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맞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저 멀리에 한강이 보였다. 오늘도 변함없이 거대한 물결이 흘러갔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진환 형사가 입을 열었다.


“유강인 탐정님, 앞에 계신 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두 분 모두 극단폭풍의 단원이셨습니다. 김기호 선생님과 박창준 선생님입니다. 모두 연극계 원로이십니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두 원로 배우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극단폭풍 연쇄살인 사건을 맡고 있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 정중히 협조를 구합니다.”


두 노인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였다. 둘 다 70살이 훌쩍 넘었다. 한 명은 키가 크고 말랐고 다른 사람은 키가 작고 통통했다.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은, 연극계에서 멋쟁이 신사로 불리는 김기호 배우였다.


키가 작고 통통한 사람은, 연극계에서 맥가이버 팔방미인으로 손꼽히는 박창준 배우였다.


두 배우 모두 아주 유명한 인물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을 존경하고 따랐다.


둘은 젊은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무대에 올랐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서 활동량이 많이 줄어들었다.


김기호 배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이고, 유강인 탐정님. 그 존함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뵙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탐정님 덕분에 극단폭풍을 참 오랜만에 방문했습니다.

극단폭풍은 한마디로 말해, 수십 년 전 저의 파릇파릇한 젊음을 바친 곳입니다.

이곳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너무나도 슬픈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이진환 형사님 연락을 받았습니다. 수사 협조를 요청하셔서 흔쾌히 승낙하고 이곳에 왔습니다. 사건 해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박창준 배우도 말했다.


“맞습니다, 선배님. 저도 선배님처럼 극단폭풍 출신입니다. 이곳은 제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게 …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어제 이진환 형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명이 죽고 두 명이 다쳤다고 … 빨리 범인을 잡아야 합니다.

지금 너무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극단폭풍에 거대한 폭풍이 들이친 거 같습니다.

초대 단장님께서 말씀하신 게 있었습니다. 연극계의 혁신을 일으키는 폭풍이 되겠다고 다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폭풍이 연극계가 아니라 극단 내부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어요. 극단폭풍에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 이는 돌아가신 초대 단장님 명성에 폐를 끼치는 일입니다.”


박창준 배우가 말을 마치고 혀를 찼다. 참 안타까워했다.


유강인이 두 배우의 말을 듣고 참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극단폭풍 출신 두 원로 배우가 적극적으로 협조할 뜻을 내비쳤다. 사건 해결에 순풍이 부는 거 같았다.


“음~!”


유강인이 한 번 헛기침하고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 극단폭풍의 초창기 시절을 알고 싶습니다.”


박창준 배우가 선배인 김기호 배우를 바라봤다. 김기호가 고개를 끄떡이고 입을 열었다.


“극단폭풍은 설립한 지 정확하게 40년이 지났습니다. 올해가 40주년입니다.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호세와 카르멘 연극을 기획했다고 현 단장이신, 장철수 단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군요. 역사가 아주 깊군요. 극단폭풍 역사가 40년이나 되는군요.”


유강인이 40이라는 숫자를 말하며 감탄했다.


“극단폭풍은 사업가이자 연극 배우셨던 장민국 단장님이 사재를 털어서 설립하셨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작게 시작했습니다. 단원이 몇 명 없었습니다.

그러다 점점 몸짓이 커졌습니다. 현재는 한국을 대표하는 극단입니다. 40년 동안 대단한 발전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입단했던 그 옛날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박창준 배우가 먼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의 두 눈이 촉촉해졌다.


유강인이 질문을 이었다.


“두 분 선생님께 묻겠습니다. 극단 설립자이자 초대 단장이셨던 장민국씨는 어떤 분이셨나요?”


김기호 배우가 매우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분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입니다. 원래 사업하시던 분이셨는데 연극에 꽂혀서 연극을 위해 모든 걸 바치셨습니다. 참 대단하신 분인데 10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사업이라는 말에 유강인이 급히 물었다.


“장민국 단장님이 어떤 사업을 하셨죠?”


“주류 유통업을 하셨습니다. 술집에 술을 공급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어떤 술이죠?”


“양주였어요. 고급술을 주로 다뤘습니다.”


“그럼, 장민국 단장님이 부유하셨나요?”


“네, 부유하셨죠. 열심히 번 돈을 연극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들 감탄했습니다.”


“연극 공연을 통해 수입이 있었나요?”


그 말을 듣고 두 원로 배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박창준 배우가 답했다.


“그게 … 예나 지금이나 연극계는 배가 고픕니다. 그것도 아주 고프죠.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심했습니다. 그냥 자선 사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장민국 단장님은 참 대단하신 분이셨습니다. 힘들게 사업해서 번 돈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연극 환경 개선을 위해 돈을 아낌없이 쓰셨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재산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유강인이 속으로 생각했다. 초대 단장 장민국이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의 행동은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연극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같았다.


“장민국 단장님은 한마디로 말해 연극계의 은인과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젊은 시절, 연극 관람이 취미이셨습니다. 그러다 주말 공연에 참여하셨고 그렇게 배우가 되셨습니다.

배우가 되신 후, 좋은 환경의 연극 무대를 만들기 위해 애쓰시다가 사재까지 털어서 극단폭풍을 창단하셨습니다.”


김기호 배우가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장민국 단장님은 정말 훌륭하고 대단한 분이십니다. 그분 덕분에 많은 배우가 연극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에는 배우 일하며 막노동했는데 장단장님 덕분에 연극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극단폭풍의 대우가 아주 좋다고 들었습니다.”


박창준 배우가 고개를 끄떡이며 거들었다.


“제가 알기로 극단폭풍은 배우들 대우가 참으로 좋습니다.

말단 배우도 300만 원 상당의 월급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연극이 흥행하면 보너스도 있답니다.

이런 대우는 업계 최고입니다. 아니 세계 최고인 거 같습니다. 말단 배우까지 두둑이 챙겨주는 극단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이제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그래서 단역 배우들이 장호일한테 모진 매를 맞고도 꾹 참았구나. 극단폭풍의 대우가 정말 좋았구나.

말단 배우한테도 300만 원 월급이라면 연봉이 3,600만 원이야. 거기에다가 보너스까지 받으며 4,000만 원이 훌쩍 넘을 거야.’


박창준 배우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초대 단장님 아드님이시고 2대 단장이신 장철수 단장님도 정말 훌륭하신 분입니다. 선친의 뜻에 따라 선행을 베풀고 계십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는 옛말이 있듯이 장철수 단장님은 초대 단장님의 진정한 후계자입니다.

제가 볼 때 아버지보다 더 훌륭하신 거 같습니다. 우리 모두 장철수 단장님을 깊게 존경하고 있습니다.

장철수 단장님은 우리보다 나이가 한참 어리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연극계의 인재입니다. 창작 희곡을 직접 쓸 정도로 능력이 탁월합니다. 그 연극이 크게 히트했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부자가 대를 이어서 연극계를 이끌고 있군요. 현 단장이신 장철수씨도 아주 훌륭하신 분이시고요.”


김기호 배우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맞습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세 말하면 혼쭐나야 해요.”


유강인이 두 원로 배우의 두 눈을 살폈다. 그들이 허튼소리를 하는 거 같지 않았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 같았다.


두 원로 배우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황정수가 유강인에게 귓속말했다.


“탐정님, 제가 조사해보니 … 두 분 어르신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요. 어제 장철수 단장님 평판을 조사했어요. 조사 결과, 아주 좋았어요.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고 사람들이 존경했어요.”


“그렇구나. 잘했어.”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두 단장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혼신을 다해 극단폭풍을 운영했다. 그 선한 영향력에 많은 이들이 감복했다. 그들이 부자를 칭송했다.


“음~!”


유강인이 목을 한번 가다듬고 생각에 잠겼다.


‘연극계가 배고픈 곳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야. 그런 와중에 특출한 사람이 등장했어.

사업가 장민국이 사재를 털어서 연극인들을 먹여 살렸어 …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연극이 좋아도 자기가 가진 걸 그렇게 희생할 수 있을까?’


유강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가 이상한 거 같았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초대 단장이신 장민국 단장님 사업이 계속 번창했나요?”


김기호 배우가 답했다.


“네, 계속 번창했습니다. 사업에는 이상이 없는 거 같았습니다. 개인 재산만 줄어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명절 때마다 고급 양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유강인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아드님이신 장철수 단장님이 부친의 사업을 계승하셨나요?”


“그건 아닙니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 사업을 정리하셨습니다. 사업가 체질이 아니라 사업을 이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극단 운영을 어떻게 하는 거죠? 주 수입원을 아시나요?”


“그건 후원금을 받아서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후원금이라고요?”


“네. 극단폭풍을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장단장님이 그분들께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자주 뵈러 간다고 들었습니다.”


“후원자라!”


후원자라는 말에 유강인이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2대 단장부터 극단 운영이 확 달라졌다.


초대 단장은 사업을 통해 번 돈을 극단에 투자했다. 후계자인 2대 단장은 부친의 사업체를 정리하고 후원을 통해 극단을 운영했다.


후원은 안정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극단폭풍은 번창했다. 최고의 무대에 연극 공연을 올렸다. 이는 자금이 풍족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강인이 급히 생각했다.


‘극단 운영이 자연스럽지가 않아. 뭔가가 있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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