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1편 <죽음의 거미줄, 카르멘>
군인 4역이 말을 이었다.
“장호일 선배가 극단에서 나름 비밀 연애를 했지만, 그걸 완벽히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다 소문이 났습니다. 저도 밀회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맞아요! 저도 봤어요. 장호일 선배가 윤미래 배우를 꽉 껴안았어요.”
군인 2역이 크게 외쳤다.
단역 배우 3인이 진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고 양진석 배우와 박찬수 배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둘은 극단의 원로 배우이자 중견 배우였다.
둘이 고개를 푹 숙였다. 꼭꼭 감추고 싶은 치부가 드러난 거 같았다.
5분 후,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역 배우들의 증언에 따르면 장호일은 극단 내 많은 여자와 연애했다. 연애 기간은 아주 짧았다. 잠시 사귀다가 헤어지는 걸 반복했다.
“그, 그게.”
양진석 배우가 입을 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 호일이가 미혼이라서 그런 겁니다. 연애 정도는 마음껏 할 수 있잖아요. 문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찬수 배우도 거들었다.
“맞습니다. 장호일 배우님이 연애 자체를 즐기시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습니다. 헤어질 때 다 좋게 헤어졌습니다.”
원로 배우와 중견 배우가 장호일 배우 편을 들었다. 그러자 단역 배우 3인이 장호일을 다시 성토하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장호일 선배는 여자 후배를 농락하고 버린 자입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어느 날 여자 후배가 와서 하소연했습니다. 장호일이 자기를 매몰차게 버리고 다른 여자를 만났다고 울먹였습니다.”
“맞습니다. 장호일 선배는 평상시 행실이 올바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마구 때린 겁니다.
다른 극단이었으면 바로 경찰에 신고했을 겁니다. 극단폭풍이라 참았습니다.
이 세상에 극단폭풍처럼 대우가 좋은 극단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인 7역이 분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가 치를 떨었다. 장호일의 무분별한 연애 행각과 인정사정없는 구타에 분노를 드러냈다.
젊은 배우들의 계속되는 폭로에 박찬수 배우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 장호일 선배님이 좀 심하기는 했습니다. 매몰차게 버린 여배우들을 저도 몇몇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게 진실이군요.”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양진석 배우를 바라봤다. 양진석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이 양진석 배우에게 말했다.
“양진석 배우님, 아직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으신가요? 장호일 배우의 무분별한 애정 행각을 계속 옹호할 실 겁니까?”
“그, 그게 ….”
양진석 배우가 머뭇거렸다. 뻘게졌던 얼굴이 이제는 하얘졌다. 그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유강인 탐정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장철수 단장과 장호일 배우는 제 조카와 같았습니다. 돌아가신 단장님께서 생전에 당부하셨습니다.
자기가 없을 때 아들 둘을 잘 돌봐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호일이를 옹호했습니다.
호일이는 타의 모범이 되는 형과는 180도 달랐습니다. 차분하고 점잖은 형과 달리 막 나가는 데가 있었습니다. 많이 오만했습니다. 방송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그게 더 심해졌습니다. 한마디로 스타병에 걸렸습니다.
스타병에 걸리자, 자기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습니다. 하지만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삼촌 알겠습니다 라고 건성으로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양진석 배우가 자기 잘못을 탓하듯 말했다. 그의 두 눈에 눈물이 흥건하게 고이기 시작했다. 마치 아들을 잘못 키운 아버지 같았다.
“그렇군요. 그 심정 이해합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양진석이 장호일을 옹호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장호일은 초대 단장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래서 조카 같은 장호일을 어떻게든 지켜야 했다.
“잘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장호일은 한마디로 난봉꾼이었어. 여배우들을 농락했고 후배들을 두들겨 팼어. 형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야. 형제가 어떻게 저렇게 다를 수가 있지?
장철수 단장은 능력 있는 호인이야. 누구나 존경할 만한 인물이야.
장호일은 전혀 그렇지 않아. 그의 죽음은 막 나가는 언행 때문인 거 같아. 여배우 농락과 후배 구타가 사망의 중요 요인이야.
직접적인 원인은 여배우 농락 때문인 거 같아. 정황상 후배 구타는 아니야. 여기 있는 단역 배우들이 그걸 증명해. 모두 모진 매를 맞았지만, 이를 꾹 참았어. 극단폭풍만한 곳이 없다며 분을 삭였어.’
유강인이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가 계속 생각을 이었다.
‘결국, 여배우 농락 때문에 그가 죽었다는 말인데 … 군인 4역이 분명히 말했어. 장호일이 윤미래뿐만 아니라 이유리와도 사귀었다고.
두 여배우는 평범한 배우가 아니야. 베일에 싸인 카르멘의 하수인들이야. 그렇다면!’
유강인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파란 하늘을 보며 장호일의 죽음을 떠올렸다. 그의 머릿속에 동영상에 재생됐다. 장호일의 죽음이 담긴 분장실 CCTV 영상이었다.
조인수가 번쩍이는 칼을 들고 분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장호일이 깜짝 놀랐다. 그러다 갑자기 불같이 화를 냈다.
장호일이 화를 낸 대상은 칼을 든 조인수가 아니었다. 조인수 왼손에 들려있는 핸드폰을 보고 화를 냈다.
핸드폰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장호일이 불같이 화를 낸 게 분명했다.
유강인이 ‘그렇군!’ 하며 손뼉을 짝 쳤다. 이제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핸드폰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장호일을 자극했어. 그는 죽기 전, 최지나 배우와 사귀었어. 그때 전 애인이 있었고 그 전 애인과 좋게 헤어지지 못했다면, 이 일은 전 애인이 크게 분노할 일이야.
맞아! 애정 문제 때문에 장호일이 죽은 거야. 조인수 핸드폰에서 들렸던 목소리는 바로 전 애인의 목소리야.
전 애인의 분노가 이 모든 일의 시작이야. 전 애인을 어서 찾아야 해!
그 전 애인이 대체 누굴까? 단역 배우들 말대로 윤미래? 아, 윤미래 유서에 그 내용이 있었어. 장호일이 자기를 버렸다고 했어.
윤미래가 유력하지만, 그 유서는 조작된 거야. 신빙성이 없는 유서야.
장호일이 전 애인을 버린 건 맞지만, 그 상대가 윤미래는 아닐 거야. 윤미래는 카르멘이 쓰고 버리는 하수인에 불과해.
윤미래가 아니라며 이유리? 이유리는 카르멘의 그림자 무사야. 그림자 무사는 평범한 하수인과는 달라. 카르멘이 아끼는 사람일 거야. 그런 그림자 무사를 장호일이 매몰차게 버렸다면 카르멘이 화낼 수 있어.
그렇구나! 이유리가 유력해. 장호일이 이유리와 사귀다가 최지나를 만나면서 이유리를 매몰차게 버린 거야. 이에 이유리가 화가 단단히 났고 이 사실을 카르멘에게 알렸어.
카르멘이 이유리의 하소연을 듣고 장호일의 못된 버릇을 고쳐주려고 조인수를 사주한 거야.’
유강인이 양 입술에 침을 묻혔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카르멘, 이유리, 조인수 셋이 짜고 첫 번째 일을 벌인 거야. 장호일을 혼내주려고 했어. 그런데 실수가 있었어.
진검과 소품용 칼을 착각해서 장호일이 죽고 말았어. 장호일이 죽자, 카르멘은 그 책임을 하수인 조인수에게 돌렸어. 조인수를 구타해서 죽였어. 그렇게 입막음을 했어.’
유강인이 명쾌한 추리를 했다. 그렇게 장호일 살인사건의 진상이 드러났다.
유강인의 눈빛이 무섭게 빛나기 시작했다. 진실이 드러나자, 몸에 활력이 돌았다. 마치 메가도스 비타민을 먹은 거 같았다.
유강인이 단역 배우 3인에게 물었다.
“장호일 배우가 최지나 배우와 사귀기 전, 누구랑 사귀었는지 아시나요?”
단역 배우 3인이 서로 쳐다봤다. 군인 2역이 입을 열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최지나 배우와 만나기 전에 이유리 배우와 친했던 거 같아요.”
“아, 그런 거 같아요.”
“그렇군요.”
유강인이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추리가 딱 들어맞았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짓는 미소였다. 사건 해결에 한층 다가간 거 같았다.
역시 그의 예상대로 이유리가 중요했다. 카르메의 심복이 분명했다.
유강인이 밝은 표정으로 단역 배우 3인과 박찬수 배우에게 말했다.
“네 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양진석 배우님만 남고 다른 분들 조사를 마칩니다.”
그 말에 넷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 모두 살인사건 진상 조사가 달갑지 않았다. 유강인에게 서둘러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이제 양진석 배우 혼자만 남았다. 양진석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기 혼자만 남자, 많이 어색한 거 같았다.
유강인이 잠시 양진석 배우의 얼굴을 살폈다. 노배우의 떨리는 눈망울을 바라봤다.
1분 후, 유강인이 질문을 던졌다.
“양진석 배우님, 초대 단장이셨던 장민국씨와 오랜 인연이 있다고 하셨죠?”
양진석 배우가 서둘러 답했다.
“네, 맞습니다. 초대 단장님은 큰 형님과 같았습니다.”
“어떻게 인연을 맺었죠?”
“아주 오래전, 주말 공연에서 만났습니다. 초대 단장님께서 저를 눈여겨보시다가 말을 꺼냈습니다. 연극배우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선생 노릇을 잠시 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이후 의형제를 맺고 잘 지냈습니다. 다른 배우들과도 잘 지냈습니다.”
유강인이 질문을 이었다.
“초대 단장님께서 사재를 털어서 극단폭풍을 세우셨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네, 맞습니다. 초대 단장님께서 주류 유통업을 하셨는데 사업이 번창해서 남는 돈이 좀 있었습니다. 그 돈을 투자해서 극단을 세웠습니다.”
양진석 배우가 거짓 없이 조사에 임했다.
유강인이 계속 질문을 던졌다.
“10년 전, 초대 단장님이 지인과 함께 배를 탔는데 배가 엎어져서 실종됐다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네, 맞습니다. 그때 저는 뭍에 있었습니다. 배가 확 뒤집어지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배를 타고 급히 사고 현장으로 갔지만, 애석하게도 형님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119 구급대가 왔고 몇 시간 뒤 지인 시신만 찾았습니다. 그렇게 형님과 이별했습니다.”
양진석 배우가 침통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군요. 그 지인이 누구죠?”
“그 지인은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형님의 사업 파트너라고 들었습니다.”
“사업 파트너라고요?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양진석 배우님, 이것으로 조사를 마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양진석 배우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유강인에게 꾸벅 인사하고 테라스 밖으로 나갔다.
유강인은 자리에 계속 앉아만 있었다. 옆에 앉은 이진환 형사가 유강인의 안색을 살폈다. 유강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진환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2층 복도로 향했다. 복도에 조수 둘과 신기훈 형사가 서 있었다.
이형사가 조수 둘에게 말했다.
“지금 유강인 탐정님이 사색에 잠기셨습니다.”
“아! 그래요.”
황정수가 급히 답하고 황수지를 바라봤다.
황수지가 바삐 움직였다. 등에서 배낭을 내렸다. 초콜릿 과자, 실론 티를 들고 테라스로 달려갔다.
이진환 형사 말대로 유강인은 두 눈을 꼭 감고 사색에 잠겨 있었다.
황수지가 조용히 움직였다. 테이블에 초콜릿 과자 네 봉지와 실론 티 두 캔을 내려놨다. 공손히 유강인에게 인사하고 테라스 밖으로 나갔다.
발소리가 사라지자, 유강인이 두 눈을 천천히 떴다. 앞에 있는 과자 봉지를 들고 포장지를 북 뜯었다. 실론 티 캔 뚜껑을 따고 과자와 실론 티를 즐겼다.
와그작! 와그작! 과자 씹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무척 컸다.
30분이 지났다.
유강인이 과장 네 봉지와 실론 티 두 캔을 말끔히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테라스에서 나갔다. 복도 앞에 조수 둘이 서 있었다.
유강인이 침착한 목소리로 조수 둘에게 말했다.
“지금 할 일이 있어. 초대 단장 장민국씨가 했던 주류 사업과 강에서 죽었다는 사업 파트너를 조사해야 해. 정황상 주류 사업과 사업 파트너가 중요한 거 같아.
초대 단장 장민국과 사업 파트너의 죽음이 베일에 싸인 카르멘과 연결된 거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심상치 않은 사업을 한 거 같아. 그렇게 번 돈으로 극단을 운영한 거 같아.
헌신적인 투자는 쉬운 일이 아니야. 독버섯은 겉이 화려하기 마련이야. 헌신적인 모습 뒤에 사악한 카르멘이 숨어있을 수 있어.”
“네, 알겠습니다. 바로 조사하겠습니다.”
황정수가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