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화 김진사댁 조사와 훼방

포도청 수사관 윤진 01편 참수 장군

by woodolee

김진사댁은 까치고개에서 내려오면 멀지 않았다. 내리막길이라 빨리 갈 수 있었다.


윤진과 사또 일행이 서둘렀다. 이제 진상을 밝힐 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이방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윤진이 주막에서 이것저것을 조사했지만, 별 소득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인들 얼굴, 복장, 짚신 바닥만 자세히 살폈다.


이방이 누런 이를 드러내고 큭큭! 웃으며 생각했다.


‘윤진, 저놈이 오늘은 별수가 없는 거 같군. 그러길 왜 깝쳐. 매사 누울 자리를 보고 누워야 하는 거야. 그동안 참 좋았지?

전임 군수님이 널 총애했지만, 그 시절은 이제 끝났어. 신임 군수님은 내 손아귀에 있어. 흐흐흐!’


이방이 콧노래를 불렀다. 기분이 무척 좋은 거 같았다.


저 앞에 커다란 집이 보였다. 김진사댁이었다. 아주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김진사는 서산군에서 알아주는 지주였고 부호였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솟을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솟을대문 앞에 하인 둘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들은 사또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식경(30분) 전에 사령이 찾아왔다. 사또의 행차를 알렸다.


사또 일행이 솟을대문 근처로 오자, 하인들이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예를 표한 후, 크게 외쳤다. 그 소리가 집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나리, 사또께서 오셨습니다!”


“사또께서 행차하셨습니다!”


잠시 후, 사또 일행이 솟을대문 앞에서 멈췄다.


“사또 다 왔습니다.”


이방이 사또에게 말했다.


“아, 알았다.”


가마에서 꾸벅꾸벅 졸던 사또 김두수가 잠에서 깼다. 눈을 비비며 가마에서 내렸다. 그가 앞에 있는 커다란 솟을대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김두수가 생각했다.


‘우와! 정말 대단하군. 김진사가 손꼽히는 부자라 들었는데 … 그게 허언이 아니군.’


사또 김두수가 놀라움에 혀를 내둘렀을 때


“에험!” 하며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솟을대문 밖으로 나왔다. 그 뒤를 하인들이 따랐다.


집에서 나온 사람은 집주인 김진사였다. 김진사는 살이 많이 찐 비만이었다. 딱 봐도 항상 잘 먹는 거 같았다.


김진사는 50대 중반 남자였다. 얼굴에 게 기름이 넘쳐 흘렀다. 그가 8자 걸음을 걸으며 사또를 맞이했다. 사또에게 공손하게 예를 갖추고 입을 열었다.


“사또, 김진사입니다.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송구할 따름입니다.”


사또 김두수도 예를 갖추고 답했다.


“김진사 어르신, 그런 말씀 마시오. 본관은 목민관이요. 백성의 삶을 알뜰히 살피는 게 일이요.

의혹이 있다면 이를 밝히고 잘못한 게 있으면 이를 엄벌하는 게 본관의 임무요. 다 주상과 조정을 위하는 일이요.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오늘 이곳에서 추가 조사를 마치고 판결을 내리겠소.”


그 말을 듣고 김진사의 안색이 싹 바뀌었다. 심기가 불편한 거 같았다. 그가 사또에게 말했다.


“사또, 이방과 나졸이 조사를 이미 마쳤습니다. 추가로 조사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조사할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대체 뭐지 알고 싶습니다.”


“그건 ….”


사또 김두수가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윤진을 찾았다. 윤진은 죄인 동길 옆에 있었다. 사또가 윤진을 오른 중지로 가리키고 김진사에게 말했다.


“저기에 있는 윤생원이 사건을 명백히 밝히겠다며 이곳까지 오자고 했소. 그래서 그의 말을 따른 거뿐이오.”


“네에?”


그 말을 듣고 김진사가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윤진을 찾았다.


윤진이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윤진 뒤에 동길 어머니가 있었다. 동길 어머니가 김진사를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김진사가 보이자, 커다란 분노를 느낀 거 같았다.


윤진이 고개를 돌려 동길 어머니의 안색을 살폈다. 그리고 김진사의 안색도 살폈다. 둘의 모습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마치 오래 된 앙숙 같았다. 그가 생각했다.


‘분명, 김진사는 동길의 처를 뺏으려고 이 짓을 꾸민 거야. 동길 어머니를 돈으로 회유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래서 커다란 모멸감을 느낀 거야.

그 보복으로 동길이를 장독으로 죽여 버리고 그 처를 차지하려고 이 일을 꾸민 거야.

김진사는 아주 지독한 자야. 독사처럼 돈을 벌었다고 들었어. 고리대로 소문이 자자했어. 그리고 여색을 누구 보다 밝혔어.

이 자는 분명 실력자야. 내가 상대하기에 너무나도 버거운 자야. 하지만, 이 자 때문에 동길이 죽을 수 없고 그 처가 원치 않는 김진사의 첩이 될 수는 없어.

어떻게든 증거를 잡아서 동길의 무죄를 밝혀야 해.’


윤진이 각오를 다졌다. 그가 양 입술에 침을 묻혔다. 상대는 쟁쟁한 실력자였다. 그렇다고 기죽을 수는 없었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으으으~!”


김진사가 신음을 흘렸다. 얼굴이 점점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동길 어머니 앞에 윤진이 있었다. 윤진은 누구보다 총명한 자였다.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음~!”


김진사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사또 김두수에게 말했다.


“사또, 저자는 관리도 아닌데 무슨 조사를 한다는 말입니까? 일개 선비에 불과합니다. 윤생원 무슨, 정식 생원도 아닙니다. 복시에서 낙방한 자입니다. 한마디로 아둔한 자입니다.”


김진사가 윤진을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사또 김두수가 고개를 꺄우뚱했다. 그가 김진사에게 말했다.


“뭐라고요? 저 윤생원이 우리 군에서 쟁쟁한 인물이라고 들었는데 … 그게 아니라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건 다 헛소문입니다.”


김진사가 허리를 조아리고 사또에게 고했다.


“어라?”


사또 김두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옆에 있는 이방을 바라봤다.


이방이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김진사를 바라봤다. 김진사가 황당한 거짓말을 했다. 윤진은 누구나 인정하는 인재였다. 그건 김진사도 인정하는 일이었다.


김진사가 이방에게 눈짓했다. 신호를 보냈다.


이방은 눈치가 빨랐다. 그 신호를 알아챘다. 김진사의 뜻은 윤진을 어서 험담하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이방은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관아에서 사또에게 말했었다. 윤진은 서산군에서 알아주는 인재라고 이미 말했다. 지금 와서 말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체면이 깎일 뿐만 아니라 사또에게 거짓을 고한 일이기도 했다. 자기가 한 말을 빈대떡처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이방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가 김진사와 사또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을 때


한 무리 사람들이 김진사댁으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유향소 어르신들이었다. 어르신들이 가마를 타고 김진사댁으로 왔다.


어르신들은 읍내에 사는 양반들로 지방 행정에 관여했다. 주로 사또에게 자문하는 역할을 했다. 모두 쟁쟁한 사람들이었다. 정2품, 정3품 관직을 제수받은 자도 있었다.


“아이고, 어르신들이 드디어 오셨군.”


사또가 크게 외쳤다. 그가 기다리던 서산군 어르신들이었다.


어르신들이 가마에서 내렸다. 그들이 사또에게 예를 표하고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김진사댁에서 동길이 판결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명판결을 기대하겠습니다.”


“사또의 영민함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사또를 칭찬했다. 겉치레였지만, 그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신임 사또가 영민하기만을 바랐다.


수염이 허연 어르신 중 하나가 윤진을 보고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아이고, 윤생원님도 오셨군. 역시, 이번에도 송사에 참여하는군. 그동안 정말 수고했어. 전임 사또의 공명정대함은 다 윤생원 덕분이었어. 오늘도 부탁하네.”


다른 어르신이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그럼, 그렇지. 우리 윤생원이 왔으니 억울한 사람은 없겠군. 영민함이 하늘에 닿았어. 귀신도 울고 갈 정도지. 암!”


사또가 어르신들의 말을 듣고 김진사를 바라봤다. 김진사의 얼굴이 뻘게졌다. 그는 좀 전에 윤진이 아둔하다고 헛소리했었다. 그 헛소리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가 급히 말했다. 이 상황을 모면해야 했다.


“사또, 아, 그게 아니라 … 복시에서 떨어져 아둔한 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윤생원의 총명함은 장원급제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윤생원은 과거에 뜻이 없어서 급제하지 못한 거뿐입니다.”


“아, 그런 말이었소?”


사또 김두수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김진사에게 물었다.


김진사가 급히 말했다.


“그렇습니다, 사또. 제가 사또 앞에서 어찌 헛소리하겠습니까? 그건 사또를 욕보이는 일입니다.”


“그렇군. 하긴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그 뜻을 알 수 있지. 어서 안내하시오. 어르신들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겠소.”


“네, 알겠습니다.”


김진사가 다시 허리를 굽혀 예를 갖췄다. 그가 사또와 어르신들을 안내했다.


이방이 사또를 따랐다. 집에서 키우는 누런 개처럼 사또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사또 김두수가 고개를 끄떡이며 중얼거렸다.


“윤생원의 명성이 정말 대단하기는 하군. 영민함이 하늘에 닿고 귀신이 울고 갈 정도라니 … 그 실력을 오늘 볼 수 있겠군. 좋은 구경이 되겠어. 흐흐흐!”


사또 김민수가 그렇게 입맛을 다셨을 때


김진사가 사건 현장인 안채 마당으로 안내했다. 사또 일행과 어르신들이 마당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다.


사또 김두수가 고개를 돌려 사건 현장을 살폈다. 이곳은 안방에서 패물을 훔치고 나오던 도둑이 발각된 첫 번째 장소였다.


김진사가 급히 이방을 불렀다.


“이방, 이리 오게.”


이방이 그 말을 듣고 졸래졸래 김진사에게 달려갔다. 김진사가 작은 목소리로 이방에게 말했다.


“이방,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일을 속전속결, 일사천리로 처리한다고 했잖소?”


“네, 그렇게 말했죠.”


“그런데 윤생원 저자가 왜 송사에 끼어들었소?”


“그게 … 동길에게 매질해서 자백을 받으려는 찰나에 동길 어머니가 윤생원을 데리고 왔습니다. 사또가 윤생원의 소문을 듣고 그 실력을 보기로 했습니다.”


“뭐라고?”


김진사가 다시 한번 놀랐다. 그가 서둘러 말했다.


“자네에게 비단을 1필을 줄 테니 어서 사또를 관아로 돌려보내게.”


비단 1필이라는 말에 이방이 깜짝 놀랐다. 베 1필이 아니라 비단 1필이었다. 비단 1필이면 쌀 다섯 섬(144Kg)을 살 수 있었다.


“네에? 그, 그렇게 큰돈을 주신다고요?”


“응!”


이방이 재물 욕심에 침을 꿀컥 삼켰다. 눈앞에 곱디고운 비단 1필이 아른거렸다. 그가 급히 사또를 향해 달려갔다.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또! 사또!”


“왜 그러나 이방?”


사또 김두수가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이방에게 물었다.


이방이 겨우 숨을 돌리고 말했다.


“이만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뭐라고?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나졸이 이미 조사를 다 마쳤습니다. 김진사 나리를 다시 조사하는 건 예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뭐? 예법이라고? … 아니, 자네가 말했잖아? 윤생원 저자가 걸핏하면 송사에 관여하다고? 그래서 본관이 자네 말을 듣고 저자의 버릇을 고치려 여기까지 온 거야.

관아 조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명백히 밝히고 저 건방진 윤생원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거지.”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뭐?”


사또 김두수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주변을 둘러봤다. 근처에 유향소에서 온 어르신들이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대감, 영감으로 불렸다. 그만큼 높은 관직을 제수받았다.


그 사람들이 노구를 이끌고 김진사댁까지 왔는데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이 또한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사또 김두수가 잠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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