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화 윤진, 사랑채 담을 넘다

포도청 수사관, 윤진 01편 참수 장군

by woodolee

잠시 시간이 흘렀다.


사또 김두수가 생각을 마치고 이방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방, 이럴 거면 진작 말할 것이지 이제 와서 딴소리하면 어떡하나? 본관이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돌아간다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나?

저기에 대감과 영감님들이 있네. 지금도 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시는 분들이네. 본관이 김진사댁으로 오시라고 말해놓고 그냥 돌아가시라고 말하면 저분들이 나를 싱거운 자로 볼 게 아닌가? 그러면 내가 저분들 앞에서 얼굴을 들기 힘들어.”


“그렇지만 ….”


이방이 비단 1필에 눈이 어두워 사또를 계속 졸라댔다.


“제가 대감, 영감님들께 사정을 설명하겠습니다.”


사또 김두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말했다.


“보아하니 윤생원 저자가 똑똑하긴 해. 똑똑하다는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었어.

주막에서 하인들 짚신 바닥까지 보더군. 꼼꼼한 수사였어. 저자의 솜씨를 더 보고 싶어. 김진사댁에서 어떻게 할지 궁금해.”


“사또! 그만 돌아가시는 게 ….”


이방이 간곡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비단 1필을 포기할 수 없었다. 말 몇 마디에 비단 1필을 날로 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저리 물러가게.”


사또 김두수가 이방을 물리쳤다.


“알겠습니다.”


이방이 힘없이 답을 하고 김진사를 쳐다봤다. 실패했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어댔다.


김진사가 그 모습을 보고 ‘아이고!’를 외쳤다.


사또 김두수가 윤진에게 말했다.


“윤생원, 이제 조사를 시작하게.”


“네,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윤진이 공손히 답하고 걸음을 옮겼다. 안채 마당 한복판으로 걸어갔다. 그가 김진사에게 말했다.


“김진사 어르신. 그날 부인께서 안채에서 주무셨는데, 도둑이 안채로 들어와 패물을 훔쳐서 마당으로 나왔고 측간으로 가던 하인 둘이 그 도둑을 봤다는 말이지요?”


“윤생원, 맞소. 윤생원 말 그대로요.”


김진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목소리가 무척이나 퉁명했다. 알게 모르게 적의가 느껴졌다.


윤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인은 어디에 계시지요?”


“부인은 안채에 있소.”


“그럼, 부인께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뭐라고?”


김진사가 두 눈을 부라렸다. 그가 윤진에게 말했다.


“윤생원, 부인을 직접 보겠다는 말이요? 그건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오! 계집종에게 일을 시키시오.”


윤진이 공손한 얼굴로 답했다.


“김진사 어르신, 제가 어찌 예법에 어긋난 일을 하겠습니다. 안채 근처로 가서 부인께 여쭙기만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되겠지요?”


“좋소. 그건 예법에 어긋나지 않소.”


“감사합니다.”


윤진이 허리 굽혀 감사를 표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가 안채로 걸어갔다. 방문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고 큰 소리로 말했다.


“부인, 저는 윤진입니다. 사또와 함께 어젯밤 절도 사건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부인께 몇 가지 질문할 게 있습니다.”


윤진이 말이 끝나자, 안채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김진사의 후처였다.


“윤생원, 말하세요.”


윤진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질문을 던졌다.


“그날 부인은 안방에서 주무셨습니다. 곤히 주무셔서 도둑이 안방으로 들어오는 걸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네, 맞아요. 도둑이 들어오는 걸 몰랐어요. 나중에 큰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어요. 서랍이 활짝 열린 걸 보고 도둑이 들어왔다는 걸 알았어요.”


“도둑이 패물을 훔쳤다고 들었습니다. 그 패물이 어떤 것이죠?”


“옥 가락지, 노리개, 금은붙이 등에요. 비싼 물건이에요. 나리께서 주신 귀한 물건입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윤진이 조사를 마쳤다. 그가 김진사에게 말했다.


“도둑을 목격한 하인 둘을 불러주세요.”


“알겠소.”


김진사가 여전히 퉁명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가 옆에 있는 하인들에게 여종 둘을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


잠시 후, 하인 하나가 여종 둘을 데리고 왔다. 둘은 안채 마당에서 도둑을 목격한 하인들이었다. 둘 다 나이가 어렸다. 10대 후반이었다.


여종 둘이 윤진 앞에 섰다.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췄다.


윤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여종 둘에게 말했다.


“그날, 도둑을 봤다고?”


“네, 봤어요. 키가 매우 큰 남자였어요.”


“맞아요. 키 큰 남자였어요. 동길처럼.”


여종 둘이 입을 맞춘 듯 같은 말을 했다.


“그때 도둑의 얼굴을 봤니?”


윤진의 말에 여종 둘이 고개를 흔들었다. 둘 중의 하나가 말했다.


“복면을 써서 얼굴을 보지 못했어요. 패물을 들고 사랑채 쪽으로 뛰어갔어요. 그래서 소리를 질렀어요. 도둑이 들어왔다고.”


“그렇구나. 알겠다.”


윤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안채 조사가 끝났다. 다음은 사랑채였다. 사랑채는 마지막 조사였다.


김진사가 사또와 어르신들을 안내했다. 잠시 후, 사람들이 사랑채 마당으로 들어갔다.


사또 김두수가 윤진에게 말했다.


“자, 윤생원 조사를 시작하시오.”


“알겠습니다. 사또.”


윤진이 답을 하고 사랑채 마당을 쭉 둘러봤다. 그가 먼저 담을 바라봤다. 사랑채로 달려온 도둑이 담을 넘었다. 담을 넘고 몸을 일으켰을 때 세 사람이 그를 봤다.


도둑을 목격한 셋은 사랑방에 있던 김진사와 손님 둘이었다.


윤진이 김진사에게 말했다.


“어젯밤 손님 두 분과 같이 사랑방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김진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맞소. 친구들과 같이 오랜만에 바둑을 두며 즐겁게 놀았소.”


“친구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윤진의 말에 김진사가 하인들에게 말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손님들보고 나오시라고 전해라.”


“예이.”


하인 하나가 답을 하고 사랑채 안으로 들어갔다. 곧 김진사 친구인 박생원. 이참봉이 마당으로 나왔다. 그들이 사또에게 공손하게 예를 표했다.


“사또, 박생원이라고 하옵니다.”


“사또, 저는 이참봉이라고 하옵니다.”


“반갑소. 어르신들.”


사또가 흡족한 표정으로 답했다. 다들 사또에게 극진한 예를 표했다. 그가 둘에게 말했다.


“여기 윤생원이 추가 조사를 하고 있으니 협조하시오.”


“알겠습니다, 사또.”


박생원과 이참봉이 윤진을 바라봤다. 둘은 윤진을 잘 알고 있었다. 둘이 윤진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고 윤진이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진사는 여전히 화가 단단히 난 듯했다. 친구 둘과 달리 윤진에게 적의를 표했다. 그게 표정과 음성에서 다 드러났다.


윤진은 김진사를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전에는 친구 둘처럼 우호적이었다. 서산군의 인재라며 칭찬했다.


그런데 오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사건을 수사하는 윤진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


윤진이 김진사와 친구 둘을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박생원. 이참봉 어르신은 다행히 사건과 관련이 없는 거 같군. 그래서 진실을 말할 거야.’


윤진이 먼저 박생원에게 물었다.


“박생원 어르신, 도둑을 보셨다고요? 도둑이 어디에 있었고 어디에서 보셨나요?”


박생원이 한 손으로 사랑채 마당을 가리키고 말했다.


“윤생원, 밖에서 큰 소리가 나길래 사랑방에서 나와서 마루에 서 있었소. 그때 담 너머에 서 있는 도둑을 봤소. 키가 매우 큰 자였소.”


윤진이 박생원 옆에 있는 이참봉에게 물었다.


“이참봉 어르신도 그러하십니까?”


“그렇소.”


이참봉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윤진이 질문을 이었다.


“도둑이 서 있었던 담이 어디쯤입니까?”


박생원이 감나무 아래 담을 가리키고 말했다.


“저기 감나무가 있잖소. 저 감나무 아래에 도둑이 서 있었소. 키가 몹시 큰 자였소. 그래서 그자의 얼굴과 어깨가 담 위로 보였소.”


“감나무!”


윤진이 급히 감나무 아래 담을 살폈다. 담 바깥으로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그가 어젯밤 일을 상상했다.



늦은 밤, 감나무 아래에 키가 매우 큰 도둑이 담을 넘고 서 있었다.



“그렇군요.”


윤진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두 어르신께 질문을 이었다.


“도둑의 눈썹과 눈을 보셨다고요?”


어르신들이 답했다.


“그렇소. 복면으로 머리와 얼굴을 가렸지만, 눈과 눈썹이 보였소. 아주 진한 일자 눈썹이었소. 그래서 그게 기억이 나오.”


“맞소, 아주 진한 눈썹이었소. 눈에 확 띄는 …. 달빛이 좋아 잘 보였소.”


윤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두 어르신께 공손히 인사했다. 그렇게 조사를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문제의 감나무 아래 담으로 향했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발소리를 들으며 침을 꿀컥 삼켰다. 사랑채 마당에 발소리만 들렸다. 사건 해결이 곧 다가오는 거 같았다.


윤진이 감나무 아래, 담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담이 꽤 높았다.


평범한 키의 사람은 담 너머에 서 있으면 정수리도 보이지 않을 거 같았다. 도둑이 동길이처럼 키가 매우 큰 건 사실이었다.


담을 잠시 살피던 윤진이 김진사를 찾았다. 그가 김진사에게 말했다.


“담을 넘겼습니다. 발판을 갖고 오세요.”


“뭐라고? 담을 넘겼다고?”


김진사가 그 말을 듣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헛웃음을 흘리고 하인을 불렀다. 하인에게 담을 넘을 수 있는 발판을 갖고 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하인 하나가 잠시 생각하다가 윤진에게 말했다.


“윤생원님, 제 등을 밝고 올라가시지요.”


윤생원이 정색하고 하인에게 말했다.


“그럴 수는 없다. 사람의 등을 … 밟고 올라갈 수는 없다.”


하인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윤생원님, 그게 편합니다. 무거운 걸 들고 오는 것보다는 ….”


윤진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발판이 무거울 게 뻔했다. 그가 하인에게 말했다.


“그럼, 거적을 갖고 와라. 등에 거적을 깔고 위로 올라가겠다.”


“네, 알겠습니다.”


하인이 말을 마치고 광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커다란 거적을 들고 돌아왔다. 하인이 윤진에게 거적을 건네고 등을 구부렸다.


윤진이 하인의 넓은 등에 거적을 깔았다.


“그럼, 올라간다.”


하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윤진이 행동을 개시했다. 거적을 깐 하인의 등을 한 발로 밟고 담 위로 올라갔다. 그 모습이 무척 재빨랐다.


윤진의 몸이 위로 쑥 올라갔을 때 '얍!' 기합 소리가 들렸다.


윤진이 순식간에 담을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무척 재빠른 솜씨였다. 성난 호랑이가 담을 뛰어넘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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