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청 수사관, 윤진 01 참수 장군
“우와!”
“멋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글만 읽는 선비의 몸놀림이 전장의 장수처럼 민첩했다. 순식간에 담을 뛰어넘어 버렸다.
탁!
두 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한 윤진이 몸을 뒤로 돌렸다. 담 위를 두 손으로 잡고 사랑채를 살폈다. 두 눈에 사랑채가 훤히 보였다. 그가 까치발을 들었다. 그러자 얼굴에 담 위로 쑥 올라왔다.
윤진이 형방을 찾았다. 큰 소리로 말했다.
“형방은 이리 오시오.”
“알겠습니다.”
형방이 답을 하고 사랑채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는 담을 뛰어넘을 재간이 없었다. 문에서 나가 담을 빙 돌았다.
윤진이 형방을 부르고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자신이 밟고 서 있는 곳이 땅바닥이 아니었다. 평평한 바위 위에 서 있었다. 감나무 아래에 평평한 바위가 있었다.
“바, 바위?”
윤진이 서둘러 바위에서 내렸다. 바위는 평평한 상 같았다. 정강이 반쯤 높이였다. 그가 서둘러 생각했다.
‘여기에 바위가 있었구나! 그렇다면 ….’
윤진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도둑이 바위 위로 올라갔다면 동길이처럼 키가 커 보일 수 있었다. 그가 다시 바위 위로 올라갔다.
담의 높이는 두 눈보다 두 치 정도 낮았다. 두 치는 중지 손가락보다 조금 긴 길이였다.
윤진은 보통 사람보다 키가 컸다. 동길이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동네에서 그보다 키 큰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둑이 동길이보다 작을 수는 있지만, 키가 큰 건 분명해. 그것도 아주 커야 해. 그래야 담 위로 어깨가 보일 거야. 평평한 바위의 도움을 받더라도 키가 무척 커야 해.’
윤진이 생각을 마치고 바위에서 내려갔다. 그때 형방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윤진이 형방을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한 걸음을 뗐을 때
“응!”
윤진의 두 눈에 뭔가가 보였다. 그건 평평한 바위 근처에 떨어져 있는 작은 물체였다. 그 물체가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윤진이 급히 등을 굽혔다. 반짝이는 물체를 잡아 들었다. 그건 나무로 만든 작은 조각이었다. 어디에서 떨어져 나간 물체였다.
“응?”
윤진이 나무 조각을 두 눈을 크게 떴다. 물체의 정체를 가늠했다. 그러다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를 알 거 같다는 표정이었다.
“아이고, 숨차.”
형방이 윤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가쁜 숨을 골랐다. 그가 숨을 다 고르고 윤진에게 말했다.
“윤생원님, 시키실 일이 있나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윤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두 번째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고 형방이 아! 하며 입을 크게 벌렸다. 윤진이 뭔가를 알아낸 게 분명했다.
“하하하!”
윤진이 기쁨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형방이 덩달아 기뻐했다. 윤진이 나무 조각을 들어 올렸다. 그가 형방에게 말했다.
“형방, 이 조각이 여기 평평한 바위 근처에 떨어져 있었소.”
“조각이라고요? 아, 땅에서 주운 물건이 그거군요.”
형방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그는 달려오면서 윤진이 바닥에서 뭔가를 줍는 걸 봤다.
윤진이 양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가 급히 말했다.
“까치고개 주막에 수상한 자가 있었소. 그래서 그자를 감시하라고 한 거요.”
“그 키 작은 하인을 말씀하시는 거죠?”
“맞소.”
“윤생원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나졸들이 그자를 철저히 감시하고 있습니다.”
윤진이 말을 이었다.
“형방, 그자 미간에 회색빛이 감돌았소. 그건 먹칠을 했다는 증거요.”
“먹칠이라고요?”
윤진이 고개를 끄떡이고 말을 이었다.
“맞소. 얼굴에 먹을 칠하면 아무리 잘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소. 그래서 그 먹칠이 미간에 남았던 거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 먹칠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그자는 주막에서 일하는 하인이요. 먹과 붓과는 관련이 없는 자요. 그런데 그자의 얼굴에 먹칠이 있었소. 그것도 하필 미간 사이에 먹칠이 있었소. 그리고 그 먹칠을 지우려 했소.
이는 그자가 동길이처럼 보이려고 진한 일자 눈썹을 먹으로 그렸다는 증거요.”
“네에? 그자가 동길이처럼 보이려고 눈썹과 미간에 먹칠을 해서 진한 일자 눈썹을 만들었다는 말인가요?”
“그렇소.”
“헉! 그렇다면 그자가 동길이에게 누명을 씌운 자라는 말인데 … 그런데 말이 안 됩니다. 그자는 키가 매우 작은 자입니다. 동길이의 키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반 토막에 불과합니다.”
윤진이 그 말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형방의 말이 맞소. 그자는 머리가 크고 상체가 누구보다 우람하지만, 다리가 짧아서 키가 매우 작은 자였소. 그자의 키와 동길이의 키는 비교할 수 없소.”
“윤생원님, 그렇다면 미간에 먹칠이 있다는 이유로 그 자를 범인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 거 같습니다. 키가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윤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가 한 손으로 감나무 옆 평평한 바위를 가리키고 말했다.
“이 바위를 보시오. 도둑이 이 바위 위로 올라가 키가 큰 거처럼 위장했소.”
“네에?”
형방이 급히 감나무 아래 평평한 바위를 내려다봤다. 바위는 성인 정강이 중간 높이였다. 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다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의 눈이 담 위로 쑥 올라갔다.
그는 윤진과 비슷한 키였다. 그가 사랑채와 마당을 살핀 후 바위에서 내려왔다.
형방이 이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고 윤진에게 말했다.
“윤생원님, 도둑이 이 바위 위로 올라갔다고 해도 담 위로 어깨높이까지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 놓은 바위가 아닙니다.”
윤진이 빙그레 웃었다. 그가 한 손에 든 나무 조각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가 나무 조각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이 나무 조각은 상다리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이 분명하오. 도둑은 저 평평한 바위 위에 상을 올려놓고 그 위에 올라간 게요. 그렇게 하면 동길이처럼 키가 크게 보이게 할 수 있소.”
“네에? 도둑이 바위 위에다 상을 올려놓고 그 상 위로 올라갔다고요?”
형방이 화들짝 놀랐다. 그가 급히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흙과 잡초밖에 없었다. 특별한 거 전혀 없었다. 형방이 서둘러 윤진에게 말했다.
“그럼, 그 상을 찾아야 합니다. 도둑이 상을 갖고 있다면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상다리에서 저 나무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면 이를 대조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상이 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어디에서 상을 찾아야 하죠?”
윤진이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형방, 그 상은 까치고개 주막에 있을게요. 그 키 작은 하인이 바로 범인이요. 그자는 눈썹과 미간에 검은 먹을 칠해 진한 일자 눈썹을 만들었고, 평평한 바위 위에 상을 올리고 그 위로 올라간 게요. 그렇게 동길인 양 사람들을 속인 것이오.”
“아! 그렇군요. 일이 그렇게 돌아가는군요. 아주 그럴듯합니다.”
윤진이 순간, 괘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그래서 김진사가 동길이를 도둑으로 지목한 거요. 정황상 이방과 김진사는 긴밀한 사이 같소. 이방은 김진사의 뜻에 따라 움직였소. 사또를 부추켜 동길이의 자백을 받으려 했소. 그래서 모진 매질을 한 거요.
그렇게 사건 조사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일을 처리하려 했소.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요.”
“아! 그렇군요.”
“김진사가 사건 담당인 형방이 아니라 이방을 부른 것도 그런 속셈이었소. 자기 사람인 이방을 이용해 사건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해치우려는 계획이었소. 이방은 분명 김진사 사람이 분명하오.”
“그렇군요. 그래서 이방이 제 일에 간섭했군요. 이는 한마디로 월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은 아전의 수장이고 위세가 대단한 자라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임 사또가 출근하자, 이방이 절도 사건을 바로 고했습니다. 절도범 동길이 체포되어 옥에 있는데 범행 사실을 자백하지 않는다고 모진 매질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또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이방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방은 아부를 잘하기로 유명한 자입니다. 사또가 이방의 말만 듣고 오판을 한 거 같습니다.”
“맞소. 현 사또는 한 달 전에 부임한 신임 사또요. 하루라도 빨리 기강을 바로잡고 명성을 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을 거요.
그래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었던 거요.”
“아이고, 이건 한마디로 생사람 잡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미간에 먹칠했다고 범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직 범행에 사용한 상을 찾지도 못했습니다.”
윤진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잘 알고 있소. 이제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하오. 다행히 주막에 남은 나졸들이 키 작은 하인을 꽉 붙잡고 있소.
형방은 어서 나졸들과 함께 까치고개 주막으로 가시오. 가서 상다리가 부서진 상을 찾으시오. 그 상은 상다리가 길고 튼튼할 거요.
상을 특별히 맞춤 제작했을 수도 있소. 김진사가 배후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요. 아직 상을 처리하지 않았다며 그 상이 주막에 있을 수 있소.”
“네, 알겠습니다. 빨리 움직이겠습니다.”
“그리고 키 작은 하인 바지 아랫단과 짚신에 마른 진흙이 묻어 있었소. 아마도 젖은 땅에서 무슨 일을 한 거 같소.
주막을 둘러봤을 때 광 쪽에 젖은 땅이 있었소. 그곳을 파보시오. 혹 훔친 패물이 땅속에 있을 수 있소.”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나졸들을 최대한 많이 데려가야겠네요. 상을 찾고 땅을 파겠습니다.”
“좋소! 어서 서두르시오.”
“네!”
형방이 말을 마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휴우~!”
윤진이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사건 해결을 위해 숨 가쁘게 여러 조치를 했다. 이제 모든 걸 하늘에 맡겨야 했다. 운이 좋다면 동길의 억울함을 풀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동길은 옥에서 죽을 수 있었다.
윤진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담을 따라서 걸었다. 사랑채 문으로 향했다.
사랑채 마당에 사또, 유향소 어르신들, 이방, 김진사, 김진사 친구들이 서 있었다. 그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윤진을 기다렸다.
윤진이 담을 넘은 후, 한 다경(15분) 정도 소식이 없었다.
“윤생원은 담을 넘어서 대체 뭐 하는 거지?”
사또가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이방에게 물었다. 이방이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사또, 제 딴에 증거를 찾는다고 분주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게 없어서 난감하겠죠. 이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빡빡 우긴다고 없는 증거가 하늘에서 툭 떨어지거나 땅에서 팍 솟지 않습니다.”
“그래? 그런 건가? 그러면 실망인데 … 총명함이 땅으로 꺼져버린 건가? 바람에 꺼지는 촛불처럼 ….”
사또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오늘 좋은 구경을 하고 싶었다. 영민함이 하늘에 닿고 귀신이 울고 갈 정도라는 윤진의 솜씨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이는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여기까지 행차한 보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