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청 수사관 01편 참수 장군
김진사가 속으로 흐흐흐! 웃었다. 그가 생각했다.
‘윤진 네 이놈! 네 놈이 담 아래에서 평평한 바위를 봤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증거가 될 수 없다.
평평한 바위에 올라서봤자 그 누구도 동길이처럼 키가 클 수는 없어. 어깨가 담 위로 보이는 사람은 동길이 빼고는 아무도 없어.
그리고 하나 더 있지. 아주 진하디 진한 일자 눈썹은 동길이가 범인이라는 걸 가리켜. 동길이가 바로 범인이야! 이는 무조건이야! 놈이 차지한 절색은 이제 내 차지야!’
김진사가 생각을 마쳤을 때 윤진이 사랑채 마당으로 돌아왔다.
순간, 마당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윤진의 얼굴에 비장함이 있었다. 그가 마당에 서 있는 사람들을 쭉 둘러봤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 잠시만 기다리세요. 형방이 까치고개 주막으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형방이 돌아오면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뭐라고?”
김진사가 윤진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윤생원! …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도대체 무슨 사건을 해결한다는 말이오? 사건의 진상은 이미 다 밝혀졌소.
저기에 있는 동길이 바로 범인이오. 진하디 진한 일자 눈썹에 키가 아주 큰 자는 동길이밖에 없소! 이는 명백한 일이오.”
“김진사 어르신, 과연 그럴까요?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윤진이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이 서로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러내렸다. 이는 창과 방패의 싸움 같았다. 윤진이 창끝이 아주 날카로운 창을 들고 나왔다. 김진사는 두꺼운 방패로 이에 응수했다.
마당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뭔가가 조만간에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 정적을 한 사람이 참기 힘들었다. 그는 집주인 김진사였다.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윤생원. 그러면 증거를 대시오! 동길이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당장 대시오! 더는 기다릴 수 없소.”
윤진이 대답 대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참 여유 있는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본 김진사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윤진의 미소를 조롱으로 받아들인 거 같았다. 그가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윤생원,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소?”
침묵을 지키던 윤진이 입을 열었다.
“김진사 어르신, 말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김진사가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
“지금! 내 말과 친구들의 말이 거짓이라는 말이오? 윤생원은 나를 모함하고 있소. 동길이를 모함하는 파렴치한으로 나를 몰고 가고 있소!”
윤진이 고개를 흔들고 답했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어서 말하시요. 사건의 진상을, 그것도 명백하게!”
“김진사님, 좀 기다리세요. 형방이 돌아오면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습니다.”
“으으으~!”
김진사가 분을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숨통이 조여오는 거 같았다.
그의 주변에 유향소 어르신과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이 참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김진사를 바라봤다. 그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김진사가 이상하네. 왜 이리 서두르지.”
“그러게 말이야. 뭐가 있나?”
유향소 어르신들이 김진사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눈빛이 날카로운 자가 있었다.
그는 대감으로 불리는 자로 정2품 형조판서를 역임했다.
“으으으~!”
김진사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져만 갔다. 불안감이 그의 몸을 감쌌다. 두 다리가 떨려오고 입안이 바짝 말라 갔다.
윤진은 별말이 없었다. 형방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렸다.
대감으로 불리는 어르신이 한 손으로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김진사, 너무 흥분하지 말게. 그러면 건강에 해로워. 윤생원 말대로 형방을 기다려보자고. 형방이 돌아오면 그때 윤생원이 무슨 말이든 하겠지. 그걸 잘 들어 보자고.”
“대감, 옳은 말씀입니다.”
사또 김두수가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형방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반시진(1시간) 정도 지났을 때
저 멀리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형방이 헐레벌떡 사랑채 마당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나졸들이 한 사람을 끌고 들어왔다.
나졸들이 끌고 온 사람은 까치고개 주막 하인이었다. 바로 키 작은 남자였다.
형방은 한 손에 상을 들고 있었다. 상다리가 아주 긴 튼튼한 소반이었다.
윤진이 소반을 보고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형방이 윤진에게 급히 말했다.
“이 소반 상다리에 부서진 흔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윤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윤진이 다가오자, 형방이 상을 뒤집었다. 끝이 부러진 상다리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윤진이 형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침을 꿀컥 삼켰다. 그가 손에 든 나무 조각을 상다리 부서진 곳에 맞췄다. 둘이 딱 들어맞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무 재질도 같았다.
나무 조각이 부서진 상다리에 딱 들어맞자, 형방이 크게 외쳤다.
“딱 맞습니다. 나무 조각이랑 상다리가 딱 들어맞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형방이 대체 뭐라고 거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윤진이 손뼉을 짝! 쳤다. 그가 큰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진상을 밝혀야 했다.
“어젯밤 김진사댁에 출몰한 도둑은 매우 교활한 자였습니다. 그는 동길이가 아니었습니다. 동길이처럼 키가 크지도 눈썹이 진하디 진한 일자 눈썹도 아니었습니다.
도둑은 동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술수를 부렸습니다. 동길이처럼 키가 큰 것처럼 위장했고 진하디 진한 일자 눈썹인 양 눈썹과 미간에다 먹칠을 했습니다. 그 증거가 나왔습니다.”
“뭐, 뭐라고?”
김진사댁으로 몰려온 사람들이 윤진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김진사는 놀라지 않았다. 놀라기보다 숨이 꽉 막힌 거 같았다. 심장에 비수가 팍 꽂힌 듯 뒤로 두 발 물러났다.
윤진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시작했다.
“정황상 도둑은 두 명입니다. 키가 큰 자와 키가 작은 자가 같이 움직였습니다.”
윤진이 말을 마치고 안채 마당에서 도둑을 목격한 여종 둘을 불렀다. 그가 여종 둘에게 말했다.
“너희들! 분명히 말해야 한다. 안채 마당에서 목격한 도둑의 키가 동길이처럼 아주 컸니?”
여종들이 급히 답했다.
“분명, 키가 큰 남정네였어요.”
“다시 묻는다. 동길이처럼 키가 아주 컸니?”
“그, 그건 ….”
여종들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윤진이 말했다.
“너희가 본 건은 키가 큰 남정네인데 어찌 동길이처럼 아주 키가 크다고 말했지?”
여종 하나가 급히 답했다.
“그게, 행랑아범이 동길이가 범인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본 사람이 동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구나. 너희들은 동길이를 예전에 본 적이 있니?”
“예전에 본 적은 없어요. 키가 장승처럼 크다는 소문만 들었어요. 그 소문을 듣고 말 안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했어요.”
“저기에 동길이가 있다. 그 키를 확인해라.”
윤진의 말에 여종들이 고개를 돌렸다. 둘이 동길의 키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너도나도 입을 열었다.
“우와! 키가 진짜 크네요. 진짜 장승 같아요.”
“맞아요. 키가 정말 커요.”
여종들이 입을 쩍 벌렸다. 동길의 키는 상상 이상이었다.
윤진이 동길이를 가리키고 여종들에게 말했다.
“잘 봐라. 범인이 키가 동길이처럼 컸니?”
여종들이 다시 동길이를 바라봤다. 여종 하나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키가 저 정도까지는 아닌 거 같은데 … 잘 모르겠어요. 그때가 어두운 밤이라서.”
다른 여종도 마찬가지 답을 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윤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사또와 어르신들에게 말했다.
“여종 둘은 여태까지 동길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방금 동길이를 처음 봤습니다. 둘의 진술은 동길이가 범인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안채에 난입한 도둑의 키가 크다는 말에 불과합니다.
둘은 행랑아범이 동길을 범인으로 지목하자, 그 말에 따른 거뿐입니다. 따라서 여종 둘의 진술은 정확한 진술이 아닙니다.”
“그렇군. 맞는 말이야.”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사또 김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윤진이 고개를 돌렸다. 뒤편에 감나무가 있는 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담을 넘었을 때 아래에 평평한 바위가 있었습니다. 높이는 정강이 중간 정도였습니다.
그 바위 위로 오르자. 두 눈이 두 치 정도 담 위로 올라갔습니다. 도둑도 그 바위 위로 올라간 게 분명합니다.”
“감나무 아래에 바위가 있다고?”
사또 김두수가 화들짝 놀랐다.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윤생원. 도둑이 바위 위로 올라갔다는 건가? 동길이처럼 키가 커 보이려고.”
“네, 그렇습니다. 도둑은 두 명이었습니다. 키가 큰 도둑과 키가 작은 도둑입니다. 키가 큰 도둑은 안방에서 패물을 훔쳐서 담을 넘어 도망갔습니다.
동료가 달아나자, 담 아래에 숨어있던 키 작은 도둑이 평평한 바위 위로 올라가 그 모습을 보였습니다. 동길이처럼 키가 큰 행세를 했습니다.”
사또 김두수가 말했다.
“키 작은 도둑이 평평한 바위 위에 올라 동길이처럼 키가 큰 행세를 했다고? 아까 바위 높이가 정강이 반 정도라고 한 거 같은데 … 그러면 담 위로 어깨가 보일 거 같지는 않은데.”
“맞는 말이야.”
어른신들이 사또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윤진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사또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평평한 바위 위로 올라갔지만, 어깨는커녕 담 위로 코끝만 올라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그게 아니지 않는가?”
사또 김두수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윤진이 나무 조각을 든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담 아래에 숨어있던 도둑은 동길이처럼 보이려고 상다리가 긴 소반을 이용했습니다. 평평한 바위 위에 상다리가 긴 소반을 올려놓고 그 소반 위로 올라가 키가 큰 사람인양 위장했습니다.
그때 상다리 끝에서 나무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 조각을 평평한 바위 근처에서 발견했습니다.”
“오우! 그래?”
사람들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윤진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범행에 사용한 소반은 까치고개 주막에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증거입니다.”
윤진이 말을 마치고 형방을 바라봤다. 형방이 고개를 끄떡이고 상다리가 긴 소반을 들어 올렸다. 그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윤생원님 말씀이 맞습니다. 윤생원님은 평평한 바위 근처 바닥에서 나무 조각 하나를 주웠습니다. 그걸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윤생원님은 그 조각을 살핀 후, 상다리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까치고개 주막으로 어서 달려가 상들을 일일이 조사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에 주막으로 달려가 상들을 모조리 살폈고 소반 중에 상다리가 부서진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 소반 상다리와 윤생원님이 주운 조각을 맞춰본 결과 둘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뭐라고?”
“정말이야?”
사람들이 너도나도 형방에게 달려갔다. 형방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나무 조각과 상다리가 딱 들어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