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청 수사관, 윤진 01편 참수 장군
사람들이 너도나도 입을 딱 벌렸다.
“으으으~!”
김진사가 신음을 흘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이방이 급히 김진사에게 달려갔다. 이게 ‘뭔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김진사에게 물었다.
“김진사 어르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
김진사가 답을 하지 못했다.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윤진이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동길이는 어젯밤 거하게 술에 취했습니다. 동길이는 술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걸 아는 자들이 이걸 이용했습니다.
동길이가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자, 기회를 노리던 범인들이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길바닥에 쓰러진 동길을 보고 누명을 뒤집어씌울 적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여러분! 동길이가 술에 취해서 길바닥에 쓰러진 걸 누가 알았을까요?”
사람들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윤진이 힘을 주어 말했다.
“바로 까치고개 주막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동길이 만취할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까치고개 주막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그 얼굴을 자세히 살핀 결과, 키 작은 하인의 미간에 회색빛이 감돌았습니다. 이는 먹칠한 흔적이었습니다.
왜 먹칠을 했을까요? 동길이처럼 보이려고 애를 쓴 겁니다. 눈썹과 미간에 먹칠해서 진하디진한 일자 눈썹을 만든 겁니다.
그자는 김진사댁 패물을 훔친 후, 주막으로 돌아와 먹칠을 지웠지만, 그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원래 먹은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형방이 끌고 온 자가 바로 범인입니다. 미간에 먹칠을 한 자입니다.”
“저, 저놈이 바로 범인이라는 말이야?”
사람들이 너도나도 두 눈을 크게 떴다. 형방에게 달려가 끌고 온 하인의 미간을 살폈다. 윤진의 말대로 미간에 회색빛이 감돌았다. 한 어르신이 말했다.
“아, 이건 먹칠한 게 맞아. 먹칠한 걸 지우면 저렇게 돼. 며칠이 지나야 저 흔적이 지워질 거야.”
윤진이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이 진상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그가 동길과 그 어머니를 찾았다.
동길과 동길 어머니가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이제야 억울함을 풀게 됐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오늘 동길은 모진 매를 맞았다. 자칫하면 장독으로 죽을 뻔했다. 그걸 어머니가 지켜봤다. 어머니와 아들의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는 날이었다.
윤진이 크게 심호흡했다. 그가 형방에게 말했다.
“형방은 저자를 끌고 감나무 아래로 가게. 가서 평평한 바위 위에 상다리를 올려놓고 저자가 위로 올리게. 과연 담 위로 어깨가 올라오는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확인해야 하네.”
“네, 알겠습니다.”
형방이 답을 하고 키 작은 하인을 끌고 마당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범죄를 재현하는 순간이었다. 김진사와 친구 둘의 증언에 따르면 담 위로 범인의 어깨가 보여야 했다.
잠시 후, 감나무 아래 담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뭔가가 불쑥 올라왔다.
키 작은 하인이 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과 어깨가 담 위로 보였다. 윤진의 말대로였다.
“아! 맞다. 네가 어젯밤에 봤던 바로 그 장면이야!”
“맞아!”
김진사 친구 둘이 손뼉을 짝 치고 외쳤다.
“그렇다면 저놈이 바로 범인! 감히 본관을 속이려 하다니! 괘씸한지고!”
사또 김두수가 화를 참지 못했다. 그가 이를 악물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을 때
“사또! 사또!”
한 사령이 사또를 부르며 사랑채 마당으로 들어왔다.
“응?”
사또 김두수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을 때, 사령이 사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의 손에 물건이 있었다. 그건 패물이었다.
“패, 패물!”
사또 김두수가 번쩍이는 패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령이 급히 말했다.
“나졸들이 까치고개 주막 광 근처 땅을 파자, 이 패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물이 고여서 무른 땅이었습니다.
윤생원님이 키 작은 하인의 바지와 짚신을 압수했습니다. 바지와 짚신에 마른 진흙이 묻어 있었습니다. 흙들을 비교한 결과, 같은 흙이었습니다.
키 작은 하인이 김진사댁에서 패물을 훔쳐서 광 근처 무른 땅에 묻은 게 확실합니다.”
패물은 김진사 부인이 말한 대로였다. 옥 가락지. 금은붙이였다. 모두 값비싼 물건이었다.
사또 김두수가 급히 말했다.
“어서 부인께 이 패물을 보여줘라. 잃어버린 패물이 맞는지 확인해라.”
“네, 사또.”
사령이 여종에게 패물을 건넸다. 여종이 패물을 들고 안채로 향했다.
잠시 후, 여종이 패물을 들고 돌아왔다. 그녀가 말했다.
“마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잃어버린 패물이 맞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구나!”
사또가 오른손으로 오른 무릎을 딱 쳤다! 범인의 정체가 명백히 드러났다. 바로 까치고개 주막에서 일하는 키 작은 하인이었다. 그리고 공범이 있었다. 공범은 이 자리에 없었다. 그자도 잡아야 했다.
“역시 윤생원이야!”
“맞아, 윤생원이 진범을 잡았어.”
유향소 어르신들이 손뼉을 쳤다. 동길이 누명을 벗고 진범을 잡았다. 이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모든 증거가 한 사람을 가리켰다. 키 작은 하인이 범인이었다.
“네 이놈!”
사또 김두수가 담 위로 서 있는 범인, 키 작은 하인을 보고 역정을 냈다. 키 작은 하인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사또가 말을 이었다.
“어서 저놈을 이리로 데리고 와라!”
“예이!”
나졸들이 키 작은 하인을 사또 앞으로 데려왔다.
사또 김두수가 크게 소리쳤다.
“네놈이 범인이구나! 공범이 누구냐? 어서 말해! 왜 동길이한테 범행을 뒤집어씌웠지? 무슨 원한이 있냐? 이는 중대한 범죄다.”
“그, 그게 ….”
키 작은 하인이 울먹거렸다. 그는 큰 죄를 저질렀다. 양반의 집을 턴 것도 모자라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동길처럼 매를 맞다가 장독으로 죽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한 거뿐입니다!”
키 작은 하인이 이실직고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어차피 그는 큰 화를 피할 수 없었다.
“누가 시켰냐?”
사또 김두수의 말에 키 작은 하인이 울면서 말했다.
“김진사댁 행랑아범이 시켰습니다. 일을 잘 처리하면 큰 돈을 준다고 했습니다.”
“뭐라고? 김진사댁 행랑아범이 범행을 사주했다고? 어젯밤, 같이 도둑질한 사람은 대체 누구냐?”
“김진사댁 하인입니다. 키가 큰 덕쇠입니다. 덕쇠가 패물을 훔치고 담을 넘어 도망갔습니다.
저는 담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바위 위에 소반을 올리고 동길이처럼 키가 큰 행세를 했습니다.”
“뭐? 덕쇠!”
사또 김두수가 분을 참지 못했다. 그가 크게 외쳤다.
“어서 행랑아범과 덕쇠를 데리고 와라!”
잠시 후, 나졸들이 행랑아범과 덕쇠를 끌고 왔다. 행랑아범은 40대 남자였다. 보통 키에 마른 체격이었다. 덕쇠는 키가 큰 20대 남자였다.
셋은 각각 역할 분담을 했다. 행랑아범이 둘을 사주했고 둘은 범죄를 실행했다.
“사또!”
김진사가 급히 사또를 불렀다. 그가 급히 허리를 굽신거리며 말했다.
“이 모든 일은 제가 아랫것들을 잘 관리하지 못한 제 탓입니다. 제가 아랫것들을 혼쭐내겠습니다. 억울하게 잡혀 매를 맞은 동길이에게도 합당한 보상도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대충 ….”
“김진사, 이쯤에서 뭐요?”
김진사가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김진사는 엄청난 부호였다. 그가 신호를 보냈다. 사건을 무마하면 거액을 주겠다는 뜻이었다.
사또 김두수가 그 신호를 알아채고 입맛을 착 다셨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그 자태를 뽐냈다.
“사또, 지금 뭐 하는 게요?”
사또가 머뭇거리자, 유향소 어르신들이 너도나도 입을 열었다. 그중에서 대감이 말했다.
“사또, 저자들을 끌고 가지 않고 뭐하시오? 왜 이런 짓을 꾸몄는지 명백히 밝혀야 하잖소. 우리들이 관아로 가서 참관하리다.”
“… 아, 물론이죠. 대감님.”
사또 김두수가 서둘러 답했다. 유향소 어르신들은 쟁쟁한 양반들이었다.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몫 챙길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사또가 크게 외쳤다.
“저자들을 모두 관아로 끌고 가라! 내 친히 문초하겠다.”
“예이!”
나졸과 사령이 힘찬 목소리 답했다.
사또 김두수가 이방을 불렀다. 이방이 졸래졸래 사또에게 달려갔다. 사또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이방!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동길이가 범인이 확실하다고 했잖아!”
“아, 그게. 오전까지는 확실했는데 … 지금은 아니네요.”
“뭐야! 그걸 말이라고 해!”
사또 김두수가 화를 참지 못했다. 그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따귀를 때릴 기세였다. 오늘 그는 자신의 판결이 옳다는 걸 증명하려고 김진사댁까지 왔다. 그런데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윤진의 말대로 동길은 범인이 아니었다. 이방 말만 듣다가 망신을 제대로 당하고 말았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사또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 경솔함이 사또께 누를 끼쳤습니다.”
이방이 두 손을 모으고 살살 기기 시작했다.
윤진이 사또와 이방 앞으로 걸어왔다. 그가 사또에게 말했다.
“사또, 이는 이방이 월권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형방이 처음부터 사건을 처리했다면 동길이를 범인으로 단정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 그런 거요?”
사또 김두수가 무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윤진이 나졸 옆에 있는 형방을 가리키고 말했다.
“앞으로 절도나 상해 사건은 형방에게 맡기십시오. 그게 형방의 일이기도 합니다. 이방은 자기 일에 충실하면 됩니다.
이방을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아마 김진사와 친분이 있어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른 거 같습니다. 악의는 없는 거 같습니다.”
“아, 알겠소. 역시 윤생원은 대단하오. 군자요.”
사또 김두수가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별말씀을 ….”
사또 김두수가 윤진의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제보니 윤진 이자는 반짝이는 물건이군. 금붙이 저리 가라야. 앞으로 잘만 다루면 큰 도움이 될 거 같아. 흐흐흐! 잘 구슬러야겠어.’
이방이 윤진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윤생원님. 제가 주제를 모르고 깝죽됐습니다.”
“하하하, 그런 말씀 마시오.”
윤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또 김두수가 형방에게 명을 내렸다.
“동길이는 무죄다. 어서 풀어줘라. 그리고 술과 음식을 내려 위로해 줘라. 억울하게 매를 맞았다.”
“네, 알겠습니다, 사또.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형방이 예를 갖추고 사또에게 말했다.
윤진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억울한 누명을 썼던 동길이 무죄방면됐다. 그리고 진범을 잡았다. 신임 사또가 제대로된 판결을 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포박이 풀린 동길과 동길 어머니가 윤진에게 걸어왔다. 동길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윤진에게 말했다.
“윤생원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
윤진이 씩 웃으며 답했다.
“뭐, 별거 아니네. 자네 모친과 내 모친이 각별한 사이 아닌가?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암.”
“그래도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그럼, 어죽을 해주게.”
“어죽이요?”
“응, 자네가 어죽을 잘 끓인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네. 어죽 한 사발 얻어먹고 싶네. 그거면 족하네.”
“알겠습니다. 냇가로 가서 붕어를 잔뜩 잡아서 어죽을 끓이겠습니다.”
“하하하! 일단 몸조리가 먼저네. 아이고 살이 다 터져서 피딱지가 옷에 달라붙었구먼. 어서, 치료해야겠어.”
“네, 치료부터 하고 어죽을 끓이겠습니다. 아주 맛있게 끓이겠습니다. 어죽이 팔팔 끓어오르면 제일 먼저 윤생원님을 부르겠습니다.”
“그래, 그리하게.”
윤생원이 말을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김진사댁 절도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
형방이 이후 사건 수사를 맡았다. 그 결과가 나왔다. 동길 어머니와 윤진의 생각대로 김진사의 소행이었다.
김진사는 절색으로 유명한 동길의 처에 눈독을 들였다. 그 욕망을 참지 못하고 꾸민 일이었다.
진상이 밝혀진 후, 김진사는 관아로 가서 재판을 받았다. 그 형벌로 곤장을 맞아야 했다. 그는 곤장은 맞아야 했지만, 하인들이 대신 매를 맞았다. 이는 힘 있는 집안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김진사는 매질을 피한 후, 조정에 거액의 뇌물을 바쳤다. 그렇게 그 죄를 감했지만, 이후 두문불출했다.
그는 서산군에서 힘깨나 쓰는 양반이었다. 유향소에서 항상 큰소리를 쳤었다. 큰 부자라 그의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유향소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마을에 소문이 나돌았다. 환갑을 앞두고도 여색을 밝히는 음험한 자라는 소문이었다. 그렇게 김진사는 낙인이 찍혀 모두에게 기피 대상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