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청 수사관, 윤진 01편 참수 장군
5월 13일 신시(申時, 오후 네 시)
한성에 홍장군이 등장하고 한 달하고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홍장군은 출몰하지 않았다. 수사를 맡은 좌포도대장이 막중한 책임을 지고 분주히 움직였다.
좌포도대장의 명에 따라 포도부장(상부 관리자), 포도청 종사관(포도대장 보좌관)과, 포도군관(포교, 중간 관리자), 가설부장(실무책임자), 포졸(군졸)들이 한성 일대를 수시로 돌아다녔다.
그렇게 수상한 자를 찾았지만, 이렇다 할 게 없었다. 네 사람을 해치고 한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목없는 장군, 홍장군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치 연기와 같았다. 연기는 그 누구도 잡을 수 없었다.
홍장군 소문도 점점 퍼져만 갔다. 홍장군이 귀신이 되어 그 원한을 갚기 위해 한성에 나타났다는 소문이었다.
그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호기심을 보이고 두려움을 느꼈다. 헛소문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마음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느꼈다.
홍장군은 20년 전, 난을 일으켰던 장본인이었다. 그 난은 다른 난과 달리 그 규모가 무척 컸다. 난을 진압하던 관군들이 많이 죽었고 반군의 사망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 중에서 가장 마음이 급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주상이었다. 주상은 어린 나이에 즉위했었다. 즉위 당시 나이가 10대 초반에 불과했다.
그때 홍장군 난이 일어났다. 거센 반란의 불길이었다. 홍장군 세력은 그 세가 무척이나 강했다. 진압군이 난을 진압하는데 큰 애를 먹었다.
난이 장기화하자, 조정에서는 만약을 대비했다. 천도까지 고려했었다.
천도는 어린 왕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린 왕은 그때 잠을 설쳤다. 홍장군이 파죽지세로 한양으로 올라올 것만 같아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1년을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그렇게 홍장군의 난은 어린 주상에게 큰 상처를 줬다. 그 무시무시한 홍장군이 20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왕이 사는 한성이었다.
임금이 사는 궁에서 어전회의가 한창이었다.
주상이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어서 홍장군 사건의 진상을 밝혀라! 형조와 포도청은 대체 뭐 하는 거냐?”
주상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용의 역린을 건드린 듯, 왕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신하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왕은 현재 30대 초반이었다. 왕으로서 연륜을 갖춘 나이였다. 왕의 지시에 재깍 따라야만 했다.
형조 판서가 왕에게 고했다.
“주상 전하, 현재 포도청에서 한성부 순찰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사건을 맡은 좌포도대장은 믿을 수 있는 인물입니다. 좀 더 기다려봐야 합니다.”
“언제까지 기다리는 말이요! 사람이 넷이나 한성에서 죽었소. 그것도 만상대행수가 죽였소. 이는 보통 일이 아니오!”
주상이 목소리를 높였다. 신하들이 송구함을 감추지 못했다.
주상은 키가 크고 몸이 말랐다. 얼굴은 작았다.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한 인상이었다. 옅은 눈썹에 눈이 쭉 찢어졌다. 코가 높았고 입술은 가늘었다. 뾰족한 턱이 날카로웠다.
“주상 전하,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신하들이 고개를 숙이며 왕에게 아뢨다. 그들의 왕의 성격을 잘 알았다. 평상시에는 여유가 있고 유순했지만, 긴장하거나 불안하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신하들을 심하게 들볶았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는데 지름길로 가라고 재촉했다.
어릴 적 겪었던 홍장군 충격이 왕의 마음에 아직도 상처로 남아 있었다.
“경들은 도대체 왜 이리 태만하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오. 다시 난이 일어나면 어떡할 거요?
저번에는 천도를 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진짜로 갈 수도 있소. 경들은 과인이 천도 가기를 바라는 거요? 그런 거요? 솔직히 말해보시오.”
“아니옵니다, 주상 전하. 신들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사건 수사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옵니다. 그래서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여유라고?”
주상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여유를 부리다 반군이 한성까지 쳐들어오면 어찌할게요? 하늘이 과인을 버릴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이오?”
“아니옵니다. 소신들이 어찌 그런 불경한 생각을 품겠습니까?”
“그럼, 하루속히 대책을 마련하시오! 대책이 시원치 않으면 포도대장을 새로운 인물로 뽑겠소. 그리 아시오.”
“알겠사옵니다. 주상 전하.”
신하들이 모두 고개를 조아리고 답했다.
주상이 무척 못마땅한 표정으로 어전회의를 끝냈다. 신하들이 전각(임금이 거처하는 집)에서 나오며 말을 나눴다.
“이거, 대책을 빨리 마련해야 하오. 주상 전하의 조급증이 재발한 거 같소.”
“맞소. 이리 닦달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소. 형조의 일이니, 형조 판서가 이를 맡으시오.”
“알겠사옵니다.”
삼정승의 말에 형조 판서가 공손히 답했다.
형조 판사가 실무자인 형조 참판을 불렀다. 형조 참판이 부름을 받고 걸음을 옮겼다.
형조 참판은 이칙림이었다. 바로 청백리로 칭송받았던 서산군 전임 군수였다. 윤진을 총애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이칙림은 종4품 군수였다가 지방관으로서 그 공을 인정받아 종2품 형조참판으로 승진했다.
형조 판서가 이칙림에게 말했다.
“자네가 이 일을 맡게. 지방관으로서 송사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했다고 들었네. 수사를 잘해서 억울한 자가 없었다고도 들었고. 일을 잘 처리할 거로 믿네.”
이칙림이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대감, 전국에서 유능한 인재를 추천받는 게 좋은 거 같습니다.”
“인재? 조정에서 처리하는 게 아니라 인재를 추천받자고?”
“네, 그렇습니다. 전국 팔도에 인재가 숨어있습니다. 그 인재를 발굴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지금 주상 전하께서 하루라도 빨리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십니다. 그 뜻에 따라 인재를 서둘러 뽑으면 될 거 같습니다.”
“좋소. 그렇게 하게. 전국 관아에 명을 내리게. 그것도 하루속히!”
“네,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이칙림이 말을 마치고 씩 웃었다. 그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바로 윤진, 윤생원이었다.
이칙림이 각 지방 관아에 명을 내렸을 때 해가 지고 밤이 되었다.
두 사람이 길을 걸었다. 여기는 한성부 안이다. 냇가 옆 커다란 인도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취했고 다른 사람은 멀쩡했다. 취한 사람은 주인이었고 멀쩡한 사람은 하인이었다.
술에 취한 주인이 볼멘소리로 투덜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빨리 집에 가다니. 더 놀아야 하는데 ….”
하인이 답했다.
“영감마님, 취하셨습니다. 포도청에서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 해가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어서 가야 합니다. 포졸들이 누구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
주인이 그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냈다.
“이놈! 나는 전직 포도대장이다. 누가 감히 나를 잡아가냐?”
“그게 아니라, 지금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건, 나도 들었다. 홍장군이 다시 나타났다고? 그건 다 헛소문이다.
홍장군은 20년 전에 죽었다. 내가 그걸 똑똑이 봤다. 어디에서 그런 사기를 쳐! 홍장군이 귀신이 되면 모를까? 절대 그럴 리 없다.”
“저 영감마님, 홍장군이 정말로 귀신이 되어 나타난 게 아닐까요?”
주인이 화통하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홍장군 귀신이라고? 그럼, 나타나라면 나타나라고 해라.
난 20년 전, 홍장군 난을 진압하고 그 공으로 포도대장까지 승진했다. 또 한 번 공을 세울 좋은 기회로구나. 하하하!”
술에 취한 주인은 전직 우포도대장, 황인수였다. 황인수가 얼굴이 벌게진 채 호탕하게 계속 웃어댔다. 술을 먹고 기분이 무척 좋은 거 같았다.
그는 무관 출신답게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다. 얼굴도 부리부리했다. 그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명월이, 명월이를 내일 또 봐야겠구나. 옥구슬 같은 목소리를 또 듣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영감마님, 그런데 또 기생집에 가시면 안방마님이 역정을 내실 거 같습니다.”
“뭐? 역정, 역정을 내라면 내라고 해! 명월이는 절대 포기 못 해!”
두 사람이 계속 길을 걸었다. 해가 완전히 떨어져 꽤 어두웠다. 하늘에 달이 떴지만, 구름에 가렸다. 냇물에 검은 구름이 드리워졌다.
“흐흐흐!”
그때, 어딘가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무척이나 소름 끼쳤다.
“흐흐흐!”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응”
황인수가 웃음소리를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하인에게 삿대질하며 말했다.
“네, 이놈! 감히 주인을 보고 웃은 게냐?”
하인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제가요? 저는 웃은 적이 없는데요.”
“뭐라고? … 웃음소리가 분명 들렸다.”
하인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저도 웃음소리를 들었지만, 제가 웃은 게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러겠습니까? 영감마님 앞에서 실없이 웃다니요?”
“그래? 그럼, 누가 웃은 거지?”
황인수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냇가에 물이 졸졸 흘러갔다. 널찍한 인도가 한적했다. 인도를 따라서 민가가 있었다. 민가는 모두 어두컴컴했다.
“뭐야? 내가 헛것을 들었나?”
황인수가 무안한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바로 그때! 우레와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 이놈! 황인수!!”
“헉!”
황인수와 하인이 그 우레와 같은 소리를 들었다. 둘이 깜짝 놀랐다. 놀란 나머지 발바닥이 땅에 착 달라붙었다.
쿵! 쿵!
무거운 철신을 신고 걷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누군가가 둘을 향해 달려왔다. 어둠을 헤치며 그림자 다섯 개가 보였다.
곧 그림자 다섯의 정체가 드러났다. 허리춤에 긴 칼을 찬, 검은 옷과 검은 복면의 사내들이 등장했다. 다시 큰 소리가 들렸다.
“황인수, 이놈! 네놈이 홍장군의 아들을 죽였겠다. 그 빚을 갚으러 왔다.”
“뭐라고?”
황인수와 하인이 그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복면인 다섯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단번에 둘 근처로 왔다. 획! 하며 바람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칼끝이 황인수의 목을 겨눴다.
“아이고, 살려주세요!”
칼날이 번쩍였다. 어둠 속에서 광채를 발했다. 살기어린 광채였다.
황인수가 급히 두 손을 모으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그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
“나리, 이러지 마십시요! 돈이 필요하시면 다 드리겠습니다. 제발!”
황인수가 울면서 통사정했다. 하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쿵! 쿵!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철신보다 훨씬 무거운 소리였다. 이윽고 소리의 정체가 드러났다.
두정갑을 입은 키가 무척 큰 장수가 등장했다. 그런데 있어야 할 목이 없었다. 목 없는 장수가 황인수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홍장군이다! 20년 전 원한을 갚으러 왔다. 황인수 네놈이 내 아들을 죽였다. 그 빚을 받으러 왔다. 네 놈의 목을 내놓아라! 어서 지체하지 말고!!”
“으악!”
“세, 세상에!”
황인수와 하인이 서로 부둥켜안았다. 한성에 나돌던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다. 홍장군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목 없는 장군 홍장군이 20년 전 원한을 갚으려고 다시 등장했다. 이는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악!”
하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가 뒤통수를 얻어맞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
하인이 쓰러지자, 황인수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음은 자기 차례였다.
홍장군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살벌한 목소리로 외쳤다.
“황인수, 너는 내 아들을 죽였다. 너는 그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 반드시!”
“아, 아니 그게 … 그, 그게!”
황인수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목이 없는 홍장군이 그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