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파발마와 고소한 어죽

포도청 수사관, 윤진 01편 참수 장군

by woodolee

다음날 5월 14일 진시(辰時 오전 일곱 시)


큰 냇가 주변, 민가에서 백성들이 집 밖으로 나왔다. 두 시간 전, 닭이 울며 아침을 알렸다. 백성들이 기상해 아침밥을 먹었다. 이제 일하러 가야 했다.


백성들의 일과는 고됐지만,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다. 가족과 함께 열심히 일하며 먹고 살아야 했다.


백성 대 여섯이 농기구를 들고 냇가 인도를 걸어갔다. 그들이 말을 주고받았다.


“어제 비가 와서 다행이네요.”


“맞아요. 다행입니다. 올해는 풍년이 될 거 같아요.”


백성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봄은 농사에 매우 중요했다. 봄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었다.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있었다. 다행히 요 며칠 사이에 비가 내렸다. 흡족할 정도였다.


그렇게 백성들이 다른 날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 한 사람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오른손 검지를 들고 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두 사람이에요.”


“뭐라고?”


백성들이 검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 저 앞에 두 사람이 있었다.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어, 진짜네!”


백성들이 급히 움직였다. 두 사람이 의식을 잃은 거 같았다.


잠시 후, 백성들이 쓰러진 사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헉, 피, 피가!”


백성들이 검붉은 피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양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가슴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의 갓은 벗겨져 있었다. 저 멀리에 떨어져 있었다.


양반의 이마에 다음과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피로 쓴 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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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將軍(홍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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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백성들이 피로 쓴 글씨를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그들 모두 글을 몰랐지만, 큰일이 생긴 건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때, 신음이 들렸다.


쓰러진 양반 옆에 하인으로 보이는 자가 있었다. 하인은 피를 흘리지 않았다. 그가 신음을 내뱉고 두 눈을 힘들게 떴다.


“이보게, 이제 정신이 드나?”


백성들이 서둘러 하인에게 말했다. 하인이 몸을 일으켰다. 몸이 무척이나 무거운 거 같았다.


하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주인을 찾는 듯했다. 그러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주인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가 크게 외쳤다.


“여, 영감마님! 영감마님!”


“영, 영감이라고?”


영감이라는 말에 백성들이 깜짝 놀랐다. 영감은 고위직 관리를 존칭하는 말이었다. 백성들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 세상에!”


하인이 주인을 보고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몸을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두 눈에 커다란 공포가 서렸다. 어젯밤 일이 떠오른 듯했다.


백성 하나가 하인에게 물었다.


“이분이 영감마님이요?”


하인이 답을 하지 못했다. 입과 턱이 마구 떨렸다.


“아이고. 변고가 생겼구먼.”


백성들이 모두 혀를 찼다. 요즘 한성은 뒤숭숭했다. 20년 전, 죽은 홍장군이 다시 출몰해 사람들이 불안해했다.


하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가 겨우 정신 차리고 있는 힘껏 외쳤다.


“홍장군! 홍장군이 어제 나타나서 영감마님을 해쳤어요!”


“뭐라고? 홍장군이 나타났다고?”


백성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이 누구라 할 거 없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소문으로 듣던 홍장군이 다시 나타났다. 그가 한 사람을 죽였다. 죽은 사람은 고위직 관리였다.


“으아!”


백성들이 모두 기겁했다. 모두 허둥거렸다. 홍장군이 다시 나타났다는 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빨리 관아에 알려야 해요!”


한 백성이 말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고개를 끄떡이고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홍장군이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한 사람을 죽였다. 죽은 사람은 전직 관리였다. 우포도대장을 역임한 황인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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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군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이 조정에 고해졌다. 도승지(비서실장)가 이 소식을 듣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소식을 왕에게 알려야 했다. 왕이 이 사실을 알면 난리를 칠 게 뻔했다. 하지만 알려야 했다. 그게 도승지의 일이었다.


도승지가 급히 왕이 거처하는 전각으로 달려갔다. 내관이 왕에게 알렸다.


“주상 전하, 도승지가 알현을 청하옵니다.”


“그래, 들어오라고 해라.”


왕이 곶감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왕은 곶감을 좋아했다. 수시로 곶감을 챙겨 먹었다.


왕이 곶감을 오물오물 씹다가 꿀컥 삼켰다.


그때, 도승지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가 급히 아뢨다.


“주상 전하, 한성 상월천 일대에 변고가 생겼습니다.”


왕이 궁금한 표정으로 말했다.


“변고라고? 그게 대체 뭐냐?”


도승지가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왕이 재촉했다.


“도승지를 어서 변고를 말하라!”


도승지가 크게 숨을 내쉬고 변고를 말했다.


“상월천 인도에 두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죽었고 다른 사람은 머리를 다쳤습니다.”


“뭐라고?”


그 말을 듣고 왕이 깜짝 놀랐다.


도승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죽은 자는 전직 우포도대장 황인수였고 산 자는 황인수의 하인입니다.”


“황인수? … 아! 황인수. 우포도대장!”


왕이 황인수를 기억했다.


도승지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 그게.”


“그게 어떻다는 말이야? 어서 고하라!”


도승지가 힘들게 침을 삼키고 말했다.


“황인수의 이마에 피로 쓴 홍장군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하인의 말에 따르면 어젯밤 홍장군이 나타나 주인을 죽였다고 합니다.”


“뭐라고? 호, 홍장군이 다시 나타났다고!”


왕이 기겁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왕의 얼굴이 허옇게 변하기 시작했다. 고질병인 조급증이 재발했다.


왕이 안절부절못했다. 오른손 손톱을 입에 물고 방을 마구 뛰어다녔다. 정신이 사나울 정도였다.


“주상 전하! 고정하십시오.”


도승지가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


왕이 벌벌 떨다가 크게 외쳤다.


“어서 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신하들을 모두 불러라! 어서!!”


“네,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도승지가 답을 하고 물러났다. 도승지가 급히 신하들을 소집했다. 한 시진(2시간) 후, 어전회의가 열렸다.


왕이 신하들에게 삿대질하며 외쳤다.


“경들은 대체 그동안 뭐 하고 있었던 거요? 과인이 분명히 말했었소. 홍장군 사건은 가벼운 일이 아니라고, 그래서 무엇보다 시급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소.

그런데 경들의 대답은 한심하기 그지없었소. 시간이 필요하다고만 계속 말했소.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요!

오늘 또 한 사람이 죽었소. 그 사람은 전 우포도대장 황인수였소. 그자는 공신이었소. 홍장군 난을 진압한 공이 있는 자요.

홍장군이 과인의 공신을 죽였소. 이는 홍장군이 과인에게 도전하는 거요! 홍장군이 설령 귀신이라 해도 반드시 잡아야 하오!”


왕의 말에 신하들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사건이 왕의 말대로 다급하게 흘러갔다. 앞으로 누가 죽을지 알 수 없었다.


경상 대행수 하인들과 만상 대행수뿐만 아니라 양반 황인수마저 죽었다.


신하들이 모두 입을 열지 못하자, 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크게 외쳤다.


“이 사건은 과인이 직접 챙기겠소. 사건을 누가 담당하기로 했소?”


삼정승이 모두 형조 판서를 바라봤다. 형조 판서가 급히 형조 참판, 이칙림을 바라봤다. 이칙림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왕에게 아뢨다.


“신, 형조참판 이칙림이 사건을 맡았습니다.”


“오우! 이칙림!”


왕이 이칙림의 말을 듣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왕은 누구보다 이칙림을 신뢰했다. 이칙림은 지방관으로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조정으로 올라왔다. 종4품 군수에서 종2품 형조참판으로 승진했다.


왕이 안정을 되찾고 말했다.


“좋소. 형조참판. 앞으로 어떻게 사건을 조사할 계획이요?”


이칙림이 지체하지 않고 답했다.


“어제 지방 관아에 명을 내렸습니다. 사건 수사에 뛰어난 인재를 하루속히 한성으로 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파발마들이 오늘 아침 일찍 떠났습니다. 지금 지방 관아에 명을 속속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오우! 좋소! 아주 잘했소.”


왕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신하들에게 말했다.


“조정 신하들은 도통 하는 일이 없소. 그저 아니되옵니다 반복할 뿐, 하는 일이 대체 뭐가 있소? 그래서 과인이 지방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이칙림을 중용한 거요.

이 일은 형조 참판의 말대로 전국에서 인재를 뽑아서 처리해야 하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유능한 인재가 필요한 때요. 신분만 높고 말만 많은 자는 필요 없소. 공을 세운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소.”


“주상 전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칙림이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그렇게 파발마들이 지방 관아로 달려갔다. 지방관들이 형조의 명을 받고 깜짝 놀랐다. 사건 수사에 유능한 인재를 포도청으로 하루속히 보내라는 지시였다.


명을 받은 지방관들이 누구라 할 거 없이 안절부절못했다.


왕은 불안하거나 흥분하면 조급증이 있었다. 자칫 추천한 인사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큰 상을 받는 게 아니라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했다.


인사 추천을 제대로 못 했다고 질책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방관들이 선뜻 인재를 추천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지방관은 달랐다. 그는 서산 군수 김두수였다. 다른 지방관과 달리 형조의 명을 받고 반색했다. 그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사흘 후 5월 17일 오시(午時 오후 열두 시)


서산군 읍내에 큰 냇가가 있었다. 오늘은 완쾌한 동길이 어죽을 끓이는 날이었다. 동길은 어죽을 잘 끓이기로 읍내에서 유명했다.


구수한 냄새가 냇가에서 풍기자, 아이들이 귀신같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가마솥에서 팔팔 끓는 어죽을 본 아이들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순간, 군침이 폭발했다. 어죽을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거 같았다.


커다란 가마솥에 어죽을 끓이던 동길이 방긋 웃었다. 그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어죽을 먹고 싶니?”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네! 어죽을 먹고 싶어요! 배가 무진장 고파요!”


“하하하, 알았다. 그런데 먼저 어죽을 드실 분이 계셔.”


아이들이 텅 빈 배를 꽉 움켜쥐고 말했다.


“그분이 누구세요?”


동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윤생원님.”


“아! 윤생원님이요.”


아이들이 윤생원이라는 말을 듣고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윤진은 읍내에서 유명한 인사였다. 윤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좀 기다려야겠다.”


“그래, 윤생원님이 오셔야 우리 차례가 올 거야.”


아이들이 말을 마치고 모두 쪼그려 앉았다. 윤진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렸다. 어죽의 고소한 냄새가 사방으로 풍기자, 군침이 넘치다 못해 입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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