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윤진, 포도청 수사관 01 참수 장군
윤진이 임혁 종사관, 김척 포교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윤진이 무관들에게 말했다.
“나리, 사건 조사 기록을 보고 싶습니다.”
김척 포교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윤생원, 포도대장님 말씀대로 바로 수사에 착수하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포도대장님 말씀을 들으니 현재 처지가 매우 난처하신 거 같습니다. 삭탈관직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고충을 빨리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김척 포교가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윤진이 좌포도대장의 마음을 헤아렸다. 그가 말했다.
“그럼, 저기 나무 아래 자리로 가자고. 오늘, 날이 좀 더워. 시원한 곳에서 얘기하는 게 좋겠어. 내가 다 말해주지. 사건 기록을 다 기억하고 있어.”
“네, 좋습니다.”
셋이 걸음을 옮겼다. 포도청 마당에 커다란 향나무가 있었다. 향나무 아래에 넷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더운 여름날 무더위를 식힐 수 있는 명당이었다.
윤진이 자리에 앉았을 때 한 여종이 마당을 거닐었다. 키가 크고 얼굴이 예쁘장한 여종이었다. 나이는 십대 후반이었다. 여종이 향나무 아래 자리에 잡은 셋을 보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김척 포교가 여종에게 말했다.
“예인아, 차 좀 갖고 와라. 여기 임종사관님이 목이 마르신단다.”
임혁 종사관이 그 말을 듣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네, 나리.”
여종이 공손히 답하고 부뚜막으로 향했다. 그녀는 포도청에서 일하는 다모였다.
윤진이 젊은 다모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자 김척 포교가 윤진에게 말했다.
“윤생원. 저 다모가 마음에 드나?”
“네에?”
윤진이 정색하고 답했다.
“아닙니다. 그냥 본 거뿐입니다.”
“다들 그렇게 말하지. 예인이 미모가 하도 출중해서 다들 한 번씩 쳐다보지.”
“그렇군요.”
윤진이 무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는 평상시 여자를 멀리했다. 그동안 그의 고향인 서산군에서는 여색을 탐해서 벌어진 일들이 참 많았다.
지체 높은 양반들이 정실부인뿐만 아니라 여러 첩을 거느렸고 기생집을 제집인 양 들락거렸다.
그렇게 방탕하게 살다가 갑자기 죽는 사람도 있었고 동길 부인을 탐한 김진사처럼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윤진은 어릴 때부터 그 모습을 보면 자랐다. 그 볼 쌍 사나운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기생집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임혁 종사관이 입을 열었다.
“김포교, 그런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사건에 관해 얘기나 합시다.”
“아, 예. 종사관님.”
김척 포교가 답을 하고 입을 열었다.
“윤생원, 잘 듣게. 4월 3일 늦은 밤 남산골 경상 대행수 집에 홍장군 일당이 나타났네. 당시 경상 대행수 집에는 만상 대행수가 손님으로 와 있었네.
경상 대행수의 말에 따르면 갑자기 등장한 홍장군 일당이 하인들을 죽였고 자신과 친구인 만상 대행수를 위협했다네. 그래서 놀란 나머지 까무러쳤는데 일어나보니 만상 대행수가 죽었다고 진술했네.
만상 대행수 시신을 살핀 결과, 이마에 피로 쓴 글씨가 있었네.”
“글씨라고요? 뭐라고 적혀있었죠?”
“홍장군이라고 적혀 있었네.”
“한글입니까? 한자입니까?”
“한자였네.”
“그렇군요.”
윤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입을 열었다.
“경상 대행수 집에 출몰한 홍장군이 20년 전 난을 일으켰던 그 홍장군이 맞습니까?”
김척 포교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사건의 생존자인 경상 대행수의 말에 따르면 그 홍장군이 맞네. 자신을 참수된 홍장군이라고 말했네.”
“그렇군요. 그 홍장군이군요. 그런데 홍장군이 20년 전에 참수된 게 맞나요?”
“역적이니 당연히 참수됐지. 참수했다는 기록도 확인했네.”
“그렇군요. 홍장군 일당의 인상착의가 어떻게 되죠?”
“홍장군은 그 부하가 다섯이었네. 모두 검은색 옷을 입었고 두건과 복면으로 머리를 가려서 눈밖에 보이지 않았네. 허리춤에는 긴 칼을 차고 있었고.”
“그렇다면 부하들이 철저히 자기 모습을 감췄군요.”
“그렇지.”
“홍장군의 모습을 어땠나요?”
“홍장군은 붉은 두정갑을 입은 거인이었네. 장군답게 갑옷을 입었어. 그런데 머리통이 없다는 진술이네. 분명 걸어 다니는 사람인데 머리통이 없었다고 모든 생존자가 진술했네.”
“네에? 걸어 다니는 사람인데 머리통이 없다고요?”
윤진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임혁 종사관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윤생원. 그렇다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진술이지만, 생존자 셋의 진술이 일치해. 그러니 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야.”
윤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서산군에서 들었던 소문에는 이 내용이 없었다. 홍장군한테 머리통이 없다는 말은 지금 처음 들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윤진이 생각에 잠겼다.
‘머리통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걸어 다니면 사람이 아니야. 귀신이라야 가능한 일이야. 그런데 그 귀신이 부하 다섯을 부렸다고? 이상한 일이군. 뭔가 속임수가 있는 거 같아.’
윤진이 생각을 마쳤을 때 다모 예인이 쟁반을 들고 돌아왔다. 쟁반에 주전자와 찻잔이 있었다.
예인이 향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차를 대령했습니다.”
“그래, 그래. 수고했다.”
김척 포교가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마치 자기 딸을 보는 듯 했다. 반면 임혁 종사관은 예인의 얼굴을 외면했다. 뒤에 있는 향나무만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고 윤진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김포교의 행동은 자연스러웠지만, 임종사관의 행동은 부자연스러웠다.
윤진이 예인의 얼굴을 살폈다. 첫인상대로 아주 곱고 아름다운 처자였다. 날씬한 몸에 갸름한 얼굴형이었다. 피부가 고왔고 이목구비가 수려했다. 긴 눈매에 오뚝한 콧날, 앵두 같은 도톰한 입술이었다.
‘보기 드문 미인이군. 서산 읍내에서 유명한 동길이의 처보다 아름다워.’
윤진이 예인의 미모에 감탄했다.
예인이 슬쩍 윤진을 바라봤다. 과년한 처자가 윤진을 바라보자, 그가 깜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 그 시선을 피했다.
“그럼, 저는 일하러 가겠습니다.”
예인이 공손히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자, 차를 들자고.”
임혁 종사관이 찻잔을 들고 말했다. 이에 윤진과 김혁 포교가 찻잔을 들였다. 차를 잘 우려서 차 맛이 참 좋았다.
“참 좋은 차군요.”
윤진이 차 맛에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김척 포교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예인이가 차를 참 잘 끓이지. 그렇죠? 종사관님.”
“어험!”
임혁 종사관이 대답 대신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김척 포교가 실실 웃기 시작했다. 둘 사이에 뭔가가 있는 거 같았다. 둘은 딱 봐도 친한 사이 같았다. 스스럼없이 지낼 거 같았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셋이 차를 다 마셨다. 윤진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무관들에게 말했다.
“나리, 다른 사건들도 말해주세요.”
김척 포교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달하고 열흘이 더 지난 5월 13일 해가 떨어진 후, 전직 우포도대장을 역임하신 황인수 영감이 홍장군 일당에게 죽었네. 장소는 상월천 옆 인도네.”
“네에? 전직 우포도대장님이 홍장군 일당에게 죽었다고요?”
“그렇다네.”
“헉!”
윤진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죽은 자가 종2품 관직인 우포도대장을 역임했다.
범인이 대담하게도 포도대장을 역임한 사람을 죽였다. 이게 의도적인 일이라면 조정에 선전포고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렇구나! 그래서 조정에서 서두르는구나.’
윤진이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정이 좌포도대장에게 사건을 빨리 해결하라고 닦달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사망자가 평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체 높은 양반도 있었다.
김척 포교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5월 22일 해가 떨어진 후, 보부상단 한 명이 홍장군 일당에게 죽었네. 만상(의주 상인) 출신 전직 행수네.”
“그렇군요. 우포도대장님과 행수 옆에도 사람이 있었나요? 그들이 목격자인가요?”
“그렇지, 다들 옆에 사람이 있었네, 우포도대장님 옆에 하인이 있었고 행수 옆에는 친구가 있었네. 하인과 친구는 모두 기절했다가 깨어났네. 그들이 사건의 진상을 포도청에 알렸네.”
“아, 사건에 일관성이 있군요.”
“일관성?”
일관성이라는 말에 임혁 종사관과 김척 포교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윤진이 말을 이었다.
“세 건의 사건이 있었고 사건마다 한 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홍장군 일당이 목격자를 일부러 살려둔 거 같습니다. 충분히 죽일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맞아.”
“맞는 말이네.”
두 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진이 뭔가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정황상, 홍장군 일당이 노리는 게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사건을 통해 드러냈습니다. 그것도 사망자 옆에 있는 목격자를 통해 명백히 드러냈습니다. 이는 의도적인 일입니다. 노리는 게 분명 있습니다.”
“노리는 거라고?”
“네, 그렇습니다.”
임혁 종사관이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윤진에게 물었다.
“윤생원, 무얼 노리는 거 같은가? 어서 말해보게나?”
윤진이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제가 볼 때 … 소문과 공포입니다.”
“소문과 공포라고?”
“네, 일부러 목격자들을 살려둬서 그 소문을 퍼지게 하고 그렇게 해서 한성 일대에 공포심을 심으려는 겁니다. 그 소문이 한성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퍼지면 공포심이 전국으로 확대될 겁니다. 이는 20년 전 홍장군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려는 수작 같습니다.”
“수작이라고?”
임혁 종사관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왜 그런 수작을 하는 거지?”
윤진이 답을 하지 못했다. 아직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말했다.
“그 이유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수사를 통해 밝히겠습니다. 먼저 목격자들을 직접 만나서 상세한 얘기를 듣겠습니다.”
김척 포교가 말했다.
“윤생원, 그건 걱정하지 말게. 목격자 셋은 좌포도청 근처 주막에 있어. 그들을 부르면 돼.”
“잘됐네요. 그들을 불러주세요. 셋을 조사하겠습니다.”
김척 포교가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윤진에게 물었다.
“윤생원이 볼 때 귀신의 소행이 아니라는 말인가?”
윤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힘을 주어 말했다.
“포교님, 귀신이라니요? 홍장군은 귀신이 아닙니다. 귀신이 저렇게 치밀하게 행동할 리가 없습니다.”
“그런가?”
“원한에 사무친 귀신이 목격자를 살려주고 소문을 내라고 놔둘 거 같지 않습니다. 다 사람이 하는 짓 같습니다. 어떤 사특한 사람이 뭔가를 노리고 이 짓을 하는 거 같습니다. 그걸 밝혀야 합니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귀신의 소행 같은데 ….”
“포교님,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야, 한성 일대를 철통같이 막고 종일 경계를 서고 있어. 우리 포졸들도 매일같이 순찰을 돌고 있고. 그런데도 홍장군 일당의 흔적을 찾지 못했어.
내가 경험상, 이는 불가능한 일이야. 귀신이라면 가능한 일이지.”
“사대문과 성벽을 철통같이 지키고 한성 일대로 철저히 감시하는데도 홍장군 일당이 출몰한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이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그래서 난 귀신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어. 귀신이 사람을 부리는 거 같았어. 홍장군이 억울하게 죽었고 그 원한을 풀기 위해 사람들을 죽인다고 생각했어.”
“억울이라고요?”
억울이라는 말에 김척 포교가 입을 다물었다. 그가 사방을 둘러봤다. 그러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윤생원, 잘 들어. 내가 어릴 적 들은 소리야. 20년 전 북쪽에서 탐관오리가 기승을 부렸대. 그래서 홍장군이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봉기한 거래.
조정에 상소를 올린 후, 탐관오리를 척결하기만을 바랐는데, 그게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서 난을 일으킨 거라고 들었어.”
임혁 종사관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김포교, 그건 어디까지나 민가에 떠도는 헛소문이네. 20년 전 기록에 따르면 그런 일은 일절 없었어.
역심을 품은 홍장군이라는 자가 왕이 되기 위해 거짓 소문을 퍼트렸고 그 거짓 소문에 속은 자들이 난을 일으킨 걸세.”
윤진이 그 말을 듣고 급히 말했다.
“종사관님, 거짓 소문이 대체 뭐죠?”
윤진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사건을 풀려면 20년 전 홍장군의 난에 대해 알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