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내일 밤과 예인의 딱한 사정

탐정 윤진, 포도청 수사관 01편 참수 장군

by woodolee

날이 어두워지자, 좌포도청 포졸들이 서둘렀다. 야간 순찰을 돌아야 했다.


윤진과 임혁 종사관, 김척 포교가 종사관 집무실에서 나왔다. 셋이 마당에서 서서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포졸들을 지켜봤다.


포졸들의 얼굴에 피곤이 서려 있었다. 그들은 벌써 두 달 가까이 힘든 야간 순찰을 돌고 있었다. 홍장군 일당을 잡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녔다.


소득이 있었다면 다행이지만, 그동안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포졸들이 맥이 빠진 얼굴로 돌아다녔다. 오늘도 허탕이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임혁 종사관이 포졸들의 맥빠진 모습을 보다가 윤진에게 말했다.


“윤생원, 자네 말에 따르면 내일 홍장군 일당이 나타난다는 말일세. 그걸 장담할 수 있나?”


윤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답했다.


“세상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습니다. 저는 내일 홍장군 일당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씀드린 거뿐입니다. 내일 밤 반드시 나타난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군.”


임혁 종사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김척 포교가 말했다.


“종사관님, 윤생원 말을 한번 믿어 보조. 내일 밤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순찰을 돌아봅시다. 지금 포졸들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모두 지쳤고 그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해서 입이 오리 주둥이처럼 튀어나왔습니다. 제가 뭐 좀 물어보면 화부터 버럭 냅니다. 뭐 물어보기도 겁납니다.”


“그래, 그런 상황이군. 음…!.”


임혁 종사관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상황이 좋지 못했다. 매일 힘들게 순찰을 도는 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내일 군사 오백 명이 와야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만 같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임혁 종사관이 결정을 내렸다. 그가 김척 포교에게 말했다.


“오늘 밤은 예정대로 순찰을 돌고 내일 밤은 모든 역량을 동원하기로 하지. 윤생원은 서산군에서 인정받은 인재야. 그런 인재니 달라도 뭔가는 다르겠지.”


임혁 종사관이 말을 마치고 윤진의 얼굴을 바라봤다. 윤진의 얼굴에 자신감이 있었다. 그 근거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이었지만, 뭔가를 확신하는 거 같았다.


김척 포교가 잘 알겠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종사관님. 오늘은 예정대로 순찰을 돌고 일찍 쉬겠습니다. 내일 밤이 중요하다고 포졸들에게 말하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게.”


임혁 종사관이 말을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김척 포교가 상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윤진에게 말했다.


“윤생원, 자신 있어?”


“그건 좀 ….”


윤진이 확답을 하지 못했다. 김척 포교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한번 서산군 인재의 솜씨를 보자고. 조정에 있는 수많은 인재가 못하는 일인데 우리 서산군 인재님이 큰일을 하면 난리가 날 거야. 내일 밤 기대할게. 아니면 다른 사람처럼 별수 없는 거지, 뭐.”


김척 포교가 말을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윤진이 그 말을 듣고 커다란 부담감을 느꼈다.


그는 내일 밤 홍장군 일당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봤지만, 이를 확신할 수는 없었다. 만약 홍장군 일당이 내일 밤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의 위신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윤진이 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어서 내일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면 어떤 결론이든 날 수밖에 없었다.


내일 밤 홍장군이 나타나면 그보다 좋을 수 없었다. 모든 역량을 동원한 만큼 홍장군 일당을 잡을 수 있는 적기였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기회를 노려야 했다. 실망은 금물이었다.


윤진도 걸음을 옮겼다.


순찰 준비를 마친 포졸들이 줄을 섰다.


김척 포교가 큰소리로 포졸들에게 말했다.


“힘들지?”


“아닙니다!”


포졸들이 큰소리로 답했다. 말과 다르게 몸이 다들 피곤해 보였다.


김척 포교가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을 순찰을 일찍 종료하겠다. 내일은 아주 힘들게 돌 테니 그리 알아!”


“알겠습니다!”


포졸들이 기쁜 목소리로 답했다. 야간 순찰이 일찍 끝나면 잠을 좀 더 잘 수 있었다. 가뭄에 단비가 내리는 거 같은 좋은 소식이었다.


김척 포교가 포졸들을 데리고 좌포도청 건물에서 나갔다. 윤진이 그 모습을 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돌이가 있었다. 돌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김척 포교와 포졸들이 야간 순찰에 한창이었다. 한성의 밤거리는 아주 한산했다. 해가 떨어지자, 시전 상인들과 행인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모두 집 문을 꼭꼭 잠갔다. 그래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포졸들만 두 눈을 부릅뜨고 돌아다닐 뿐이었다.


윤진은 숙소에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옆에 돌이가 있었다. 돌이가 크게 하품하며 말했다.


“나리, 이제 주무셔야죠. 오늘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무척 피곤합니다. 좌포도청에 오자마자, 조사를 시작하셨잖아요. 얼굴이 피곤해보여요.”


돌이가 말을 마치고 하품을 계속해댔다.


윤진이 빙그레 웃으며 돌이에게 말했다.


“나보다는 네가 더 피곤한 거 같구나. 하긴 무거운 봇짐을 매고 돌아다녔으니 그럴만하지. 너 먼저 자려무나. 난 생각할 게 좀 있어.”


“그래도 될까요?”


“안 될 것도 없지 않느냐? 너는 내 하인이 아니다. 서산군 관아 소속이다. 내 눈치를 볼 거 없다.”


“저는 윤생원 나리를 옆에서 보필하라는 사또의 명을 받았습니다. 그 명을 찰떡같이 지켜야 합니다.”


“그래. 기특하구나.”


“헤헤헤! 그것보다는 전부터 윤생원 나리를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윤생원님 활약 덕분에 억울한 사람 여럿이 누명을 벗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감복했습니다.”


“알겠다. 지금 네가 할 일은 푹 자는 거다. 그래야 내일 밤 나를 잘 보필할 수 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방에 들어가서 누가 잡아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자겠습니다!”


돌이가 크게 답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부자리를 깔고 곧 골아떨어졌다.


윤진이 마당을 거닐었다. 좌포도청을 돌아다녔다. 밤에 반달이 떴다. 달빛이 밝았다. 건물들을 은은하게 비췄다.


그때 불이 켜진 곳이 있었다. 그곳은 임혁 종사관 집무실이었다.


집무실 안에 두 사람이 있었다. 둘은 임혁 종사관과 다모 예인이었다.


예인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임혁 종사관이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가 예인에게 말했다. 다정한 목소리였다.


“예인아, 결정을 했느냐?”


예인이 답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임혁 종사관이 답답한 듯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책상에 내려놨다. 그가 간절한 목소리로 예인에게 다시 말했다.


“어서 말해 보거라. 네 뜻을 ….”


예인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예인의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다. 미간이 모였다.


예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방을 비추는 촛불 속에서 한 송이 꽃과 같았다. 그 꽃이 환하게 피었다.


임혁 종사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말해 보거라, 어서!”


“휴우~!”


예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결심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앵두 같은 입술이 열렸다.


“소녀는 첩이 될 수 없습니다.”


“뭐라고?”


임혁 종사관이 그 말을 듣고 크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예인이 말을 이었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제 면천을 약속해주시고 혼사를 치르자고 말씀하셨지만, 종사관님은 정실부인이 계십니다. 저는 첩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예인아!”


임혁 종사관이 예인의 이름을 다급하게 불렀다. 그가 말을 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다. 부인과 이혼할 수는 없어. 네가 내 첩이 되면 힘든 일에서 벗어날 수 있어. 천민이 아니라 양인이 될 수 있어.”


예인이 윗니로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녀가 말했다.


“관노비는 저뿐만 아닙니다. 제 부모님도 관노비입니다. 저만 면천하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임혁 종사관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면천도 어려운 일이야. 네 부모님까지 면천은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그걸 이해해주면 좋겠다.”


“…….”


예인이 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예인아!”


임혁 종사관이 예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예인은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 젠장!”


임혁 종사관이 화를 참지 못하고 한 손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때, 윤진은 임혁 종사관 집무실 근처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한 사람이 마당을 뛰어다녔다. 처자였다.


처자가 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푹 숙였다. 처자의 어깨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흐흐흑!” 흐느끼는 소리가 마당에 들렸다.


임혁이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담 앞에 서 있는 처자를 향해 걸어갔다.


발소리가 들리자, 울음소리가 그쳤다. 처자가 등을 돌려 다가오는 사람을 확인했다.


윤진이 앞에 서 있는 처자를 보고 급히 말했다.


“너는 다모 예인!”


예인도 윤진을 알아봤다. 예인이 고개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나리. 어쩐 일이시죠?”


윤진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담벼락에 서 있는데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와봤다.”


예인이 답을 하지 않았다. 두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 모습이 무척 슬펐다. 새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같이 울 것만 같았다.


윤진이 고개를 돌렸다. 이곳은 임혁 종사관 집무실 근처였다. 그가 고개를 끄떡이고 예인에게 말했다.


“혹 임혁 종사관님과 무슨 일이 있는 거냐?”


“헉! 그걸 어떻게?”


예인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다 말을 이었다.


“역시 남다르시군요. 서산군에서 온 인재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맞는군요.”


윤진이 그 말을 듣고 씩 웃었다. 그가 말했다.


“혹 말하기 힘든 일인 게냐? 그렇다면 말하지 않아도 좋다.”


윤진이 말을 마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예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이 일은 좌포도청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임혁 종사관님이 저를 마음에 두시고 혼사를 치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어쩐지 ….”


윤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도 그걸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다. 임혁 종사관이 예인을 바라볼 때 그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애인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


예인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윤진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 거냐?”


예인이 울먹이며 답했다.


“저보고 첩이 되라고 하십니다.”


“첩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임혁 종사관님은 이미 혼례를 치르시고 정실부인이 있습니다. 좋은 가문의 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구나. 그러면 첩이 되기 싫은 것이냐?”


“네, 그렇습니다. 첩의 자식은 차별을 받기 마련입니다. 제 자식한테 차별을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


윤진이 입을 열지 못했다. 예인이 말하는 건 적서차별이었다. 정실부인에서 낳은 자식과 첩 사이에서 낳은 자식은 그 신분과 처우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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