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유강인이 결론을 내렸다. 그가 말했다.
“여태까지 사건을 추리한 결과, 베일에 가려있는 집단이 있는 거 같습니다.
아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천일수 살인 사건, 재벌 혼외자 박재영 납치 및 살인 미수 사건, 오늘 벌어진 백두성, 김정태 살인 사건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놈들이 분명 있습니다.”
백정현 형사가 급히 말했다.
“송상하 부회장이 이 모든 일을 진두지휘한 건가요?”
유강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답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송상하 부회장은 그럴 깜냥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귀공자입니다.
힘든 일을 겪으며 자란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일을 하려면 어렸을 때부터 산전수전을 다 겪어야 합니다.
일단 서울청으로 갑시다. 거기에 가서 사건을 정리합시다.
아! 백형사님은 출간 기념회 참석자를 다 확인했나요?”
“네, 다 확인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방문록 명단이 있어서 모든 인원을 빠짐없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행사 중에 밖으로 나간 사람은 단 한 명, 김정태 배우뿐입니다.”
“좋습니다. 어서 서울청으로 갑시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조수 둘과 정찬우, 백정현 형사가 따랐다.
건물 밖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여기저기서 보였다. 살인 사건이 벌어지자, 몇몇 사람이 놀란 나머지 구급차를 불렀다.
경찰차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서울 도심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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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청 강력범죄수사대 회의실에 앞에 탐정단과 수사팀이 모였다.
사건을 정리한 정찬우 형사가 말했다.
“이제 회의실로 들어가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들어가자고.”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회의실 문이 열렸다. 유강인이 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도 자리에 앉았다.
사건 담당 형사인 정찬우 형사와 백정현 형사가 서로 얘기를 나눴다. 사건 브리핑을 누가 할지 정해야 했다.
현재 서울청과 서해안 경찰서는 경찰청의 지시에 따라 합동 수사 중이었다.
정형사가 작은 목소리로 백형사에게 말했다.
“백형사님이 브리핑하시죠. 저보다 말을 잘하잖아요. 목소리도 좋고 잘 생기셨고.”
잘 생기고 목소리가 좋다는 말에 백형사가 슬쩍 웃었다. 그가 말했다.
“제가요? …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서울청에서는 잘 생기고 목소리 좋은 사람만 브리핑하나요?”
“아,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매일 브리핑하게요.”
정찬우 형사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렇게 두 형사가 농담을 나누며 긴장감을 달랬다.
백정현 형사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서류를 살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발생한 백두성, 김정태 살인 사건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백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말을 이었다.
“오늘 2025년 11월 16일, 오후 2시에 백두성 자서전 출간 기념회가 서울 중구 프레스 센터 20층 기자 회견장에서 있었습니다.
출간 기념회는 손님 100명이 참석했습니다. 성황리에 시작했습니다. 피해자 두 분은 맨 앞자리인 귀빈석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본행사가 시작하자, 백회장님이 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자서전을 들고 책 내용을 설명하셨습니다. 말씀하시다 목이 마르셔서 비서를 찾았고 비서가 준비한 매실차를 건넸습니다.
백회장님이 차를 마시려 할 때 위험을 감지한 유강인 탐정님이 단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애석하게도 백회장님은 차를 다 마셨습니다. 이후 단에서 내려가 유탐정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그다음은 비극이었다. 유강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코앞에서 벌어진 참극이었다. 아직도 몸에서 피비린내가 풍기는 거 같았다.
“매실차에 독이 있었고 독에 중독된 백회장님이 거품을 물고 그 자리에 쓰러지셨습니다. 이후 피를 토하고 절명하셨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거인의 죽음이었다.
유강인이 한 손을 들었다. 그가 말했다.
“백형사님, 독살이 맞나요? 의료진이 답을 했나요?”
백정현 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정밀 검사를 해야 하지만, 의료진이 시신을 살핀 결과, 매우 강력한 출혈독, 신경독 성분에 중독된 거 같다는 소견을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독을 먹고 짧은 시간 안에 사망한 거 같답니다.”
“강력한 독이란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백회장님을 반드시 죽이려고 강한 독을 쓴 거 같습니다.”
“역시 보통 놈들이 아니군요.”
유강인이 혀를 내둘렀다. 점점 적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천일수 살인 사건에서는 그 정체를 감췄지만, 오늘은 그 정체를 마음껏 드러냈다. 이제는 정체를 감출 필요가 없는 거 같았다.
백정현 형사가 말을 이었다.
“백두성 회장님이 독을 먹고 쓰러졌을 때 옆자리에 앉았던 김정태 배우님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소란한 틈을 타 행사장 밖으로 나갔습니다. 남자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김정태 배우님이 화장실에 들어가자, 계단 출입구에서 검은 옷을 입은 괴한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그자도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5분 후 화장실에서 괴한이 나왔습니다. 김정태 배우님은 화장실 안에서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됐습니다.
범행 도구는 튼튼한 나일론 끈이었습니다.”
유강인이 질문했다.
“김정태 배우님 소지품에 핸드폰이 있었나요?”
“조사 결과, 핸드폰은 없었습니다. 괴한이 갖고 달아난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괴한은 계속 추적 중인가요?”
“네, CCTV를 통해 괴한을 계속 추적 중입니다. 프레스 센터에서 나가서 대로를 걷다가 9856 광역 버스를 탔습니다. 서울에서 성남을 왕복하는 버스였습니다.
1시간 후 버스에서 괴한이 내렸습니다. 성남시의 한적한 주택가였습니다. 이후에 종적을 감췄습니다.”
“종적을 감췄다고요?”
“네, CCTV 사각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인근 지역 CCTV를 확인하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도주로까지 미리 계획하고 범행을 저지른 겁니다. 범행을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런 거 같습니다. 이상으로 브리핑을 마칩니다.”
백정현 형사가 브리핑을 말치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비극이 벌어졌던 출간 기념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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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이 움직였어. … 모, 모든 건 자서전에 있어. 만약 없다면 수수 … 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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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성이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모든 게 자서전에 있다고? 분명 그렇게 말했어. 분명히!’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백두성의 마지막 말에 단서가 있을 거 같았다. 마지막 순간, 허튼소리를 했을 거 같지 않았다.
그가 급히 말했다.
“출간 기념회에서 백두성 회장님이 한 말이 있습니다. 자신은 죄인이라며 사죄까지 했습니다. 세상에 비밀이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황수지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을 받았다.
“맞아요. 백회장님이 그렇게 말했어요. 1권이 아니라 2, 3권이 진짜라고 말한 거 같아요.”
황정수도 거들었다.
“맞아. 1권이 맛보기라고 한 거 같아. 자서전에 모든 게 있다고 한 거 같은데 …,”
“맛보기!”
맛보기라는 말에 유강인의 두 눈이 번쩍였다. 그가 급히 말했다.
“출간 기념회를 찍은 영상이 있을까요?”
정찬우 형사가 답했다.
“기자 회견장에 기자들이 있었습니다. 녹음이나 타이핑을 했을 거 같습니다.”
“그렇군. 그럼, 기자들을 찾아야겠네.”
그때 황정수가 아! 하며 급히 말했다.
“탐정님!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유튜버 같았어요. 딱 보기에 라이브 방송 중이었어요.”
“라이브 방송이라고?”
유강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급히 말했다.
“정수! 빨리 유튜브를 찾아봐! 찍은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을 수 있어.”
“네, 알겠습니다.”
황정수가 급히 유튜브를 열었다. 백두성을 입력하자, 관련 영상이 쭉 올라왔다.
그중에서 인기 동영상이 있었다. 1시간 전 동영상이었다. 벌써 수십만 명이 시청한 영상이었다.
제목이 심상치 않았다. 백두성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거다!”
황정수가 크게 소리 질렀다. 곧바로 영상을 플레이했다.
백두성의 마지막이 담긴 출간 기념회 영상이었다.
출간 기념회 때 벌어졌던 일들이 다시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두 귀를 쫑긋했다. 백두성의 말에 집중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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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의 백미는 … 1권이 아닙니다. 1권은 맛보기에 불과합니다. 2권 말미부터 진짜가 시작됩니다. 3권에서 모든 게 밝혀질 겁니다.
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자서전에 담았습니다.
저는 사실 … 죄인입니다. 이 자리에 빌어서 그 죄를 사죄하고 싶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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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인의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그가 급히 생각했다.
‘백미가 2권 말미와 3권이라고?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모든 걸 자서전에 담았다고?
세상에 비밀이 없다고도 말했어. 그러면 … 또 비밀을 폭로하려고 했던 건가?
송해성 회장한테 혼외자가 있다고 폭로한 건 맛보기였고 다른 것도 다 폭로하려고 했던 건가?
그래서 놈들이 백두성 회장을 죽인 건가? 백회장이 죽기 전 모든 걸 까발리려고 하자, 이를 막기 위해 그 입을 영원히 닫아버린 건가?’
유강인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침을 꿀컥 삼켰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금전을 갈취하거나 원한을 갚으려는 일반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사건의 배후에 비밀이 있었다. 그것도 오랫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은밀한 비밀이었다.
맛보기 비밀은 먼저 폭로됐다.
송해성 회장한테 혼외 자식이 있다는 비밀이었다. 그 비밀은 무려 50년간이나 숨겼던 비밀이었다.
‘그래, 자서전을 확인해야 해. 어서! 백회장님이 죽기 전 자서전에 모든 게 있다고 말했어.’
생각을 마친 유강인이 백정현 형사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자서전을 확보해야 합니다. 어서요!”
“자서전이요?”
“네! 자서전에 뭔가가 있습니다. 백두성 회장님이 자서전을 통해 비밀을 폭로하려고 한 겁니다. 그걸 막으려고 놈들이 움직인 겁니다.
이번 사건은 오랫동안 감춰진 비밀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비밀을 백회장님이 알고 있었고 이를 자서전으로 폭로하려고 하자, 비밀을 지키려는 자들이 이를 막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자서전을 확보하겠습니다.”
백형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회의실 밖으로 급히 나갔다.
유강인도 회의실에서 나갔다. 그 뒤를 조수 둘이 따랐다.
황수지가 유강인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탐정님, 그 비밀이 뭘까요? 백회장님이 자서전에 뭘 폭로하려고 했을까요?”
유강인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백두성 회장님은 연예계와 재계에 몸담았던 사람이야. 그쪽과 관련된 비밀이겠지.”
“그렇겠네요. JS 그룹 혼외자 사건도 재계 관련 비밀이니 ….”
황정수가 무척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탐정님, 대체 어떤 비밀이길래 이렇게 사람을 죽이고 난리일까요?”
유강인이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분명 큰일이겠지. 큰일이니 이렇게 일이 커졌겠지. 아마 감당하기 힘든 비밀일 거야.”
“감당하기 힘든 비밀이라고요? 그러면 그걸 밝혀내도 문제겠네요.”
황정수의 말에 유강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세 명이나 죽었어. 앞으로 사람이 더 죽을 수 있어. 이렇게 된 이상, 비밀을 반드시 밝혀야 해.
그게 어떤 비밀이든 간에 그 비밀을 반드시 명명백백히 밝혀야 해. 그래야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