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백정현 형사가 백두성 비서 성진수한테 연락했다. 성진수가 말했다.
“자서전 출판사가 어디냐고요?”
“네, 가르쳐주세요.”
“미라클 북스 출판사입니다. 고두희씨가 대표입니다. 서울 종로구에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백형사가 전화를 끊었다. 유강인에게 달려가 서둘러 말했다.
“유탐정님, 자서전 출판사를 알아냈습니다. 미라클 북스입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회사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어서 갑시다. 종로구라면 여기에서 멀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움직였다. 그 뒤를 조수 둘과 정찬우 형사, 백정현 형사가 따랐다.
탐정단과 형사들이 미라클 북스로 향했을 때
서울 용산구 한 저택에서 매콤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4m 수직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호화 주택이었다.
냄새가 점점 심해졌다. 이윽고 검은 연기가 커다란 담벼락 위로 치솟았다.
“저게 뭐야?”
“검은 연기다!”
행인 서너 명이 저택으로 달려왔다. 고개를 높이 쳐들고 담벼락 위로 마구 치솟는 검은 연기를 올려다봤다. 그중에 한 명이 외쳤다.
“안에서 불이 난 거 같아요!”
“그런 거 같네요. 검은 연기가 엄청나요.”
“119에 신고할게요.”
검은 연기가 점점 위력을 더했다. 그 모습을 보고 행인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걸리는 소리였다. 담벼락 위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행인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담벼락 위를 쳐다봤다.
“어, 저건?”
4m 수직 담벼락 위에 갈고리가 걸렸다.
“저게 뭐지?”
행인들이 갈고리를 보고 의아해했다.
그때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담벼락 위로 올라왔다. 온통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였다.
검은색 장갑, 검은색 야구 모자, 검은색 마스크, 검은색 선글라스를 썼다.
검은 옷 남자가 담벼락 위에 걸터앉더니 뭔가를 끌어올렸다. 그건 튼튼한 밧줄이었다. 끌어올린 밧줄을 담벼락 아래로 내리더니 담벼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저. 저 사람은 뭐야?”
행인들이 깜짝 놀랐다.
검은 옷 남자가 순식간에 4m 담벼락을 내려왔다. 아주 능수능란한 솜씨였다. 그 모습을 보고 행인들이 소리쳤다.
“도둑이다!”
검은 옷 남자가 행인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자기는 도둑이 아니라는 뜻 같았다. 여유가 넘쳤다.
행인들이 깜짝 놀랐다. 담벼락을 타고 내려온 도둑이 너무나도 태연했다. 아니 당당할 정도였다.
놀란 행인들이 뒤로 물러섰을 때
검은 옷 남자가 달리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나가서 차도로 뛰어들었다. 인도 옆에 4차선 도로가 있었다. 도로는 한적했다. 지나다니는 차들이 없었다.
검은 연기가 더욱 심해졌다. 담벼락을 넘어 인도까지 잠식했다.
행인들이 한 손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유독 가스가 사방으로 삽시간에 퍼졌다.
상황이 위태로워졌다.
그때 클랙슨이 갑자기 울렸다. 도로 건너편에 큰 가로수가 있었다. 가로수 밑에 검은색 밴이 있었다.
큰 소리가 들리자, 검은 옷 남자가 차도를 가로질러 검은색 밴으로 달려갔다.
“어서 타!”
검은색 밴에서 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검은 옷 남자가 뒷좌석 문을 열더니 차 안으로 쑥 들어갔다.
차에 시동이 걸렸다.
동시에 뭔가가 활활 타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연기 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담벼락 위로 치솟던 검은 연기 뒤로 시뻘건 게 보였다. 불이었다. 강한 화염이 저택을 휘감았다. 마치 커다란 능구렁이가 사냥감을 휘감는 거 같았다.
“불이다!”
“큰불이 났다!!”
행인들이 화재 현장에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불의 기세가 맹렬했다. 집을 다 태우고 담벼락까지 먹어치울 기세였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과 함께 화려한 저택이 시커멓게 변해갔다.
집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망자였다.
집도 그 주인을 따라서 점점 사그라들었다.
*
탐정단 밴이 종로구 미라클 북스로 향했다. 경찰차 두 대가 그 뒤를 따랐다.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며 급한 마음을 달랬다. 냉정함을 되찾고 사건을 수사해야 했다.
삐리릭!
전화벨이 울렸다. 유강인이 발신자를 확인했다. 이호식 팀장이었다. 이에 급히 전화 받았다.
“네, 팀장님.”
“유탐정.”
“어서 말씀하세요.”
“불이 났어! 백두성 집에 불이 났어.”
“네? 백두성 집에 불이 났다고요?”
“응, 방화범이 강력한 인화 물질을 뿌리고 집에 불을 질렀어. 현재 소방관들이 출동해서 불을 끄고 있지만, 잘 잡히지 않아서 집을 다 태울 기세래.”
유강인이 두 눈이 크게 떴다. 그가 급히 생각했다.
‘방화범이라고? 왜 불을 지른 거지? … 아! 증거를 인멸하려고 불을 질렀구나! 비밀을 감추려고 … 그렇구나! 이것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어서 서둘러야 해.’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비밀을 지키려는 자들이 불을 지른 게 분명했다. 사람을 막 죽이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방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미라클 북스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 쪽으로 지원 병력을 보내주세요.”
“아, 그렇게 되나? 알았어. 그리하지.”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핸들을 잡은 황수지에게 말했다.
“수지, 최대한 빨리 미라클 북스로 가야 해.”
황수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이 났다고요? 어디에서 불이 났어요?”
“백두성 회장님 집에 불이 났어.”
“네에?”
황수지와 황정수가 깜짝 놀랐다. 황정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이 불을 지른 걸까요?”
“그렇겠지.”
유강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잠시 차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당혹감이 서린 침묵이었다.
유강인이 고개를 돌려 차창으로 밖을 내다봤다.
서울의 거리가 붐볐다. 늦은 오후가 끝나갔다. 좀 있으면 해가 떨어지고 어둠의 몰려올 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에 노을이 보였다. 곧 보랏빛 노을이 서울을 덮칠 거 같았다.
*
미라클 북스 사옥에 경찰차 경광등이 번쩍였다. 경찰차 네 대가 사옥을 둘러쌌다. 사옥은 4층 건물이었다. 경찰차들이 보이자, 놀란 직원들이 황급히 테라스로 나왔다.
경찰에서 경찰들이 내렸다. 열 명이 넘는 경찰이었다. 건물 출입문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4층 테라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여성 목소리였다.
미라클 북스 오너이자 CEO인 고두희 대표였다. 4층 테라스에 나와서 상황을 초조한 눈으로 살피다가 조급함을 참지 못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고혜정 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팀장은 고대표의 친동생이었다.
“경찰한테 연락이 왔어요. 유강인 탐정님이 곧 온대요.”
“누구라고?”
“유강인 탐정님이요. 방화 위험이 있다며 건물을 통제한다고 했어요.”
“뭐? 방화라고? 누가 우리 건물에 불을 지른다는 말이야?”
“네, 백회장님 집에 불이 났대요. 누가 불을 질렀다고 했어요.”
“뭐? 백회장님은 행사장에서 쓰러졌잖아. 집에도 불이 났다고?”
“네, 그런 거 같아요.”
“김과장은 돌아왔어?”
“네, 돌아왔습니다.”
“김과장을 불러, 어서!”
고두희 대표의 말에 고혜정 팀장이 급히 움직였다.
“대표님.”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출간 기념회에 참석했던 김과장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테라스 앞에 서 있었다.
테라스에서 나온 고팀장이 김과장에게 말했다.
“김과장님, 대표님이 찾으세요!”
“알겠습니다.”
김과장이 서둘러 테라스 안으로 들어갔다. 고대표에게 행사장에서 벌어졌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고두희 대표가 급히 말했다.
“백회장님이 사망한 거 같다고?”
“네, 그렇습니다. 얼굴을 흰 천으로 가렸습니다. 들것에 실려 갔습니다.”
“세, 세상에! 백회장님이 죽다니 …. 어찌 이런 일이!”
고대표가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최근에 백두성을 만났었다. 그때 백두성은 정정했었다. 갑자기 죽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경찰의 출현으로 출판사 직원들이 우왕좌왕할 때
탐정단 밴이 미라클 북스 사옥 앞에 도착했다. 차가 멈추자, 유강인이 차에서 내렸다.
그가 고개를 들어 사옥을 올려다봤다. 4층 건물이었다. 흰색 대리석이 번쩍이는 사각 건물이었다. 2층부터 4층까지 테라스가 있었다.
4층 테라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고혜정 팀장이 급히 말했다.
“언니! 저 사람은 … 유강인이에요!”
고두희 대표가 동생의 말에 급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눈에 한 남자가 보였다. 짙은 눈썹에 눈매가 무척 날카로웠다. 동생의 말대로 유강인이 맞았다.
유강인이 동료와 함께 건물 출입문으로 향했다.
*
회의실 불이 팟! 하며 켜졌다.
고두희 대표와 고혜정 팀장, 김과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유강인과 조수 둘, 정찬우 형사, 백정현 형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기다란 사각 테이블이 있는 회의장이었다. 테이블 양옆으로 의자가 나란히 있었다.
고대표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무척 떨리는 목소리였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많이 긴장한 게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출입문을 기준으로 바깥쪽 자리였다. 조수 둘과 형사 둘도 유강인을 따라서 바깥쪽 자리에 앉았다.
탐정이 자리에 앉자, 고두희 대포가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안쪽 자리였다. 고혜정 팀장과 김과장도 차례대로 안쪽 자리에 앉았다.
모두 자리에 앉자, 젊은 직원이 안으로 들어와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익숙한 냄새가 회의실에 풍겼다.
유강인이 차의 향을 맡고 움찔했다.
매실차 향이었다.
매실차는 백두성이 마지막으로 마신 차였다. 차 안에 강력한 독이 들어있었다. 출혈독과 신경독을 합성한 맹독이었다.
조수 둘과 형사 둘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차 중에서 하필 매실차가 나오자, 무척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중에서 황정수가 울상을 지었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많고 많은 차 중에서 하필 매실차라니 … 이런 우연한 일치가 있다니.”
황수지가 억지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선임 조수님, 이상한 생각 하지 마세요. 설마요.”
황정수가 우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겠지. 그런 거 아니겠지. 난 여기서 죽기 싫어!”
탐정단과 수사팀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고두희 대표와 고혜정 팀장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김과장은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백두성이 죽은 후 행사장에서 나도는 말이 있었다. 매실차를 먹고 죽었다는 말이었다.
유강인이 잠시 매실차를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향이 매실차 같은 데 맞나요?”
고두희 대표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매실차가 맞아요.”
유강인이 질문을 이었다.
“손님을 접대할 때 항상 매실차가 나오나요?”
“아, 그거요.”
고대표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며칠 전 백두성 회장님을 만났는데 회장님이 매실차를 즐겨 드신다고 하셔서, 저도 마시기로 작정했습니다.
회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매실차가 건장에 좋다고, 자주 마시면 더욱 좋다고 권하셨습니다.”
“아, 그렇군요.”
고두희 대표가 말을 마치고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쭉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고 황정수가 안도했다. 황수지도 마찬가지였다.
“독이 없는 거 같은데.”
“선임 조수님, 이상한 생각 하지 말아요. 제발!”
유강인이 고두희 대표를 유심히 바라봤다.
고대표는 까만 단발머리에 세련된 외모의 여성이었다. 나이는 40대로 보였다. 키가 작았고 몸집도 작았다. 화장을 진하게 해서 이목구비가 선명했다.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영화배우 비비안 리가 연상됐다.
고두희 대표 옆에는 30대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외모가 고대표와 아주 흡사했다. 긴 생머리만 빼면 판박이였다. 목에 출입증이 걸려 있었다. 기획팀장 고혜정이었다.
고팀장 옆에는 남자가 있었다. 40대 남자였다. 남자 목에도 출입증이 걸려 있었다. 영업과장 김동인이었다.
고대표가 차를 마시자, 고팀장과 김과장도 차를 마셨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편안함이 감돌았다.
하지만 긴장감을 늦출 수는 없었다.
유강인이 생각했다. 어디를 가도 방심하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놈들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게 뻔했다.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