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을 위한 국물 한 모금
한겨울의 추위가 깊어졌다. 아침에 창밖을 보기만 해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날들이다. 이럴때면 아무 생각 없이도 따뜻한 국물이 떠오른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그릇을 앞에 두고 한 숟가락 떠올리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풀리는 그런 음식. 우리 부부에게는 그 음식이 바로 황태국이다.
집사람은 예전부터 황태국을 유난히 좋아했다. 감기 몸살로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면, 스스로 부엌에 들어가 황태채 한 줌을 들고 뚝딱 끓여 먹곤 했다. 속이 뜨끈하게 풀리고 기운이 돌아온다며, 다른 어떤 보양식보다도 편하고 믿음이 간다고 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 따뜻함을 대신 끓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언젠가’가 자연스레 찾아와 버렸다.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이라는 걸 몇 번이고 깨닫고 있다.
황태채는 늘 서울 중부시장의 건어물 가게에서 사 온다. 집사람이 알고 지낸 지인이 추천한 곳인데, 첫눈에 보기에도 상품이 다르다.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막상 끓여보면 그 차이를 금세 알 수 있다. 황태 자체의 향과 결이 살아 있어서 오래 끓여도 맛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 다녀오면 넉넉히 사와 냉장고에 쟁여두고 계절 내내 꺼내 먹는다.
황태는 단백질이 풍부해 기력이 떨어지는 겨울에 더없이 좋은 재료다. 건조 과정을 거치며 맛이 오롯이 응축돼 있어 국물로 우러낼 때 깊고 시원한 맛이 나는데, 이 점은 다른 어떤 건어물 국과도 비교하기 어렵다. 특히 제대로 손질된 황태는 씹을 때마다 쫀득쫀득한 질감이 살아 있고, 맑은 국물에 그 풍미가 더해지면 담백하면서도 속이 환하게 트인다. 겨울철 집사람의 든든한 한 끼로 이보다 좋은 메뉴가 또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내가 끓인 황태국을 앞에 두고 집사람이 ‘후르륵’ 소리를 내며 먹는 모습을 보면 그 순간이 참 기쁘다. 예전에는 몸이 좋지 않을 때 스스로 챙겨 먹던 음식을 이제는 내가 먼저 나서서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괜히 뿌듯하기도 하다. 요리를 배우길 잘했다는 마음이 이런 순간마다 기분 좋게 스며든다.
# 재료
황태 160g, 양파 1개, 대파 1줄, 마늘 5개, 홍고추 1/2개, 들기름 2Ts, 알배추 500g, 두부 1모, 소금 적당량
< 육수>
다시마 20g, 디포리 5마리, 큰 멸치 5마리
# 요리 과정
황태 160g을 5cm크기로 짤라 준비한다.
황태를 물에 한번 씻어준다.
양파 1개, 대파 1줄, 마늘 5개, 홍고추 반개를 썰어 준비한다.
황태, 야채에 소금 6꼬집, 들기름 2Ts를 넣고 10분 재운다.
3분간 볶다가 물을 400ml, 3분후에 400ml, 4분후에 1200ml를 넣고 끓인다.
알배추 500g을 소금 1/2Ts를 넣고 10분이상 절인다.
다시마와 디포리, 큰 멸치를 준비한다.
다시마, 디포리, 멸치를 냄비에 넣는다.
알배추도 냄비에 넣는다.
뚜껑을 덮고 20분 끓인다.
두부 1모를 썰어 준비한다.
다시마,디포리, 멸치를 꺼내고,두부를 넣고 1분 더 끓인다.
완성된 황태국
냉장고 한켠에 황태채가 준비돼 있다는 건 은근한 든든함이다. 바람이 차갑게 불거나 집사람 컨디션이 영 좋지 않다 싶으면, 고민할 것 없이 냄비부터 꺼내 들게 된다. 국물이 우러나는 동안 부엌에 퍼지는 향을 맡다 보면 ‘이래서 겨울엔 황태국이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좋은 재료를 정성껏 끓이면 그만큼 맛이 따라온다는 걸 이제는 몸으로 안다.
집사람 역시 내가 만든 황태국을 앞에 두면 말없이 국물부터 한 숟가락 뜬다. 그 모습만 봐도 오늘 할 일은 다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예전처럼 스스로 끓여 먹을 필요 없이 내가 챙겨줄 수 있다는 것, 그게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다. 요리를 배우며 얻은 가장 큰 보람이 바로 이런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의 겨울은 앞으로도 이 한 그릇으로 조용히, 꾸준히 따뜻하게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