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김치 국물로 끓여낸 겨울의 국물
요즘처럼 찬 공기가 하루하루 깊어지는 계절에는 식탁 위에 따뜻한 국물 하나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매 끼니마다 속을 데워주는 국 한 그릇이 있으면 마음까지 한결 누그러진다. 그중에서도 콩나물 김치국은 재료도 단출하고 조리법도 어렵지 않아 자주 만들게 된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늘 한 봉지쯤은 들어 있는 콩나물, 그리고 집집마다 빠지지 않는 김치만 있으면 충분하다.
며칠 전 배추김치와 깍두기를 먹고 난 뒤 반찬통을 정리하다 보니 김치는 거의 비었는데, 김치 국물이 꽤 남아 있었다. 그냥 따라 버리기엔 왠지 아까운 마음이 들던 참에 집사람이 한마디 했다.
“김치는 넣지 말고, 이 국물로 콩나물국 끓여보자.”
생각해 보니 한 번도 그렇게 끓여본 적은 없었다. 김치가 들어가지 않은 콩나물 김치국이라니, 과연 맛이 제대로 날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시원함과 얼큰함은 김치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막상 냄비에 물을 올리고 김치 국물을 풀어 넣고, 콩나물을 한 움큼 얹어 끓이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향부터 괜찮았다. 김치 국물 속에 배어 있는 마늘과 고춧가루, 젓갈의 깊은 맛이 은근히 국물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끓는 동안에도 ‘이게 정말 김치 없이도 성립이 될까’ 하는 궁금증은 계속 남아 있었다.
국이 완성되고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니, 그 걱정은 기우였다. 약간 매콤하면서도 지나치지 않은 담백함, 그리고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의 식감이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김치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시원하고 얼큰한 맛이 분명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맛의 균형이 나오는 건지, 먹으면서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치 국물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충분한 맛을 낼 수 있다니, 괜히 남아 있는 김치 국물을 아끼지 못하고 다 버렸던 지난날들이 후회스러웠다.
이번에 끓여보니 앞으로는 김치 국물이 남았을 때 국을 끓여 먹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치 국물에 이미 양념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고춧가루는 국물의 농도와 매운맛을 보며 조금씩 조절하면 된다. 김치 국물이 진할수록 고춧가루는 줄이고, 국물이 연하면 살짝 보태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게만 해도 맛있는 콩나물 김치국이 완성된다.
콩나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재료에 대한 생각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집 근처에 ‘오아시스’ 마켓이 들어선 이후로는 콩나물을 거의 이곳에서만 구입한다. 국산 콩나물콩을 사용하고 무농약으로 키운 제품이라 그런지, 씻을 때도 잡내가 덜하고 한결 깨끗하다. 국에 들어갔을 때의 식감도 확실히 다르다. 콩나물국은 단순한 요리인만큼, 재료의 차이가 맛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 재료
콩나물 450g, 김치 국물 1.5컵, 황태채 한 줌, 양파 1/2개, 청양고추 2개, 대파 1줄, 고추가루 2Ts, 다진 마늘 2Ts, 멸치 액젓 2Ts, 소금 1/2Ts, 육수(물 2L, 다시마 20g)
# 요리 과정
콩나물을 준비한다.
콩나물을 3차례 깨끗하게 씻어 준비한다.
물에 다시마를 넣고 끓으면, 중불로 10분 더 끓여 육수를 만든다.
김치 국물을 1.5컵을 준비한다.
황태채를 준비한다.
양파, 대파, 청양고추를 준비한다.
팬에서 육수가 만들어지면 다시마를 건져내고, 김치 국물, 황태채, 야채를 넣고 끓인다.(황태채는 육수 만들 때부터 함께 끓여도 좋습니다)
고추가루, 다진 마늘, 소금으로 양념을 준비한다.
한번 끓인 후에 콩나물, 양념을 넣고, 10분간 더 끓인다.
완성된 콩나물 김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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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김치국을 먹다 보면 어릴 적 기억도 함께 떠오른다. 추운 계절이 오면 어머니는 자주 콩나물 김치국을 끓여주셨다. 식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을 앞에 두고, 호호 불며 먹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국물은 꼭 한 숟가락 더 떠먹곤 했다. 그때는 그저 당연한 집밥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풍경 자체가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콩나물 김치국은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래도록 사랑해 온 이유가 분명히 있다. 속을 편안하게 해 주고, 부담 없이 한 끼를 책임져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숙취로 머리가 무겁고 속이 더부룩한 아침에는 더할 나위 없는 해장국이 된다. 콩나물에 들어 있는 어스 파라긴산이 숙취 해소에 도움을 주고, 김치 국물의 칼칼함이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해 준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믿음이 가는 국.
남은 김치 국물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음식.
추운 날, 냄비 하나 올려두고 끓여낸 콩나물 김치국 한 그릇은 오늘도 몸과 마음을 조용히 데워준다.
이런 음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겨울이 조금은 덜 춥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