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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Nov 10. 2022

실시 설계, 시공사 선정과 계약

설계사무소와의 첫 미팅에서 안내받았던 내용에 따르면 계획 설계 완료 후 허가도면을 접수하고 각종 보완사항을 반영한 다음 건축 허가가 마무리될 때 실시설계를 시작하는 게 일반적인 절차라고 한다. 허가 과정에서 각종 규제로 인해 도면이 수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올해 가을 착공을 목표하고 있었고 일정이 너무 빠듯한 나머지 허가 접수와 함께 실시설계를 바로 시작하였다.


실시설계가 중요한 이유는 시공에 필요한 전문 설계이기도 하지만 시공사에게 제대로 된 견적을 받기 위함도 있다. 도면이 자세할수록 견적의 정확도가 올라간다. 반대로 도면이 허술하면 시공사의 자유도가 올라간다. 하지만 그 자유도는 시장경제의 논리와 만나 가장 쉽고 저렴한, 또는 적절하지 않은 부실한 시공 방법을 선택하게 될 여지를 남긴다. 결국 허술한 도면으로 지어진 집은 하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고 피해는 고스란히 건축주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결코 저렴하지도 않은 하자 투성이의 집이 시장의 불신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


그렇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다 준비하여 실시설계에 반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구조, 기계, 전기, 통신, 소방 도면 이외에 우리가 별도로 협력하고 있는 조명과 가구 디자인 설계까지 총망라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완벽한 도면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수정할 사항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가파른 금리 인상, 경기 침체 신호, 대출 이자 등 현실적인 손해도 누적되고 있기 때문에 적정 수준에서 마무리지어야 한다. 어디에선가 건축물은 실시설계 단계에서 80%가 만들어지고 나머지 20%는 현장에서 완성된다 라는 내용을 읽었는데 크게 와닿는 대목이다.


사실 실시설계는 오롯이 건축사의 몫이므로 건축주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건축물의 성능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초나 골조, 지붕, 단열, 방수, 창호, 설비 등은 전문가인 설계사무소에 위임하고 그 이외에 생활과 연관이 있는 전기/통신 및 실내 마감 중 국소적인 부분에 건축주의 의견을 반영하는 정도이다. 이마저도 시공사와 논의할 사항이 더 많기 때문에 시공사와의 협의도 중요하다.


착공 시점을 최대한 앞당기고 싶어 잔뜩 조바심이 나있던 상황이라 건축 허가 완료 문자를 받고 나서부터는 거의 매일 설계사무소에 연락하여 시공사 견적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여쭈어보았다. 다행히도 앞서 설명한 건축물의 성능에 관련된 실시설계는 바뀔 여지가 적다 보니 이미 부분적으로 완료된 도면을 시공사에 전달하여 견적을 산출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실제로도 시공사가 보내온 첫 견적에는 기본 사항에 대한 내역만 포함되어 있었고 최종 견적에는 우리의 입김이 반영된 전체 내용이 반영되었다.


허가 접수일로부터 약 7주, 허가 완료일로부터는 약 3주 후 드디어 시공사와의 첫 미팅을 가졌다. 건축사사무소의 추천으로 패시브하우스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신 협회 정회원 시공사의 대표님과 만나 시공 견적 각 항목에 대한 검토와 변경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아직 수정 중인 전기 도면이나 인테리어에 관한 세부 사항은 설계사무소의 이사님과 시공사 대표님께서 기술적인 디테일을 서로 주고받으셨다.


결론적으로 첫 미팅에서 해당 시공사와 구두로 계약을 하였고, 좀 더 보강된 2차 견적서를 보고 계약서에 서명하고 계약금을 입금하였다. 어떤 확신이 들었기에 일사천리로 계약할 수 있었을까?


1. 사실 우리 부부는 이미 한차례 시공 견적을 받은 경험이 있다. (하우징, 건축사사무소) 이번에 받은 시공 내역서는 각 공정별로 단위 물량 산출에 의거한 재료비, 노무비, 경비, 그리고 관리비가 나뉘어 있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런 형식의 내역서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그렇지 못한 업체가 많다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물량 산출 근거를 하나하나 검증해보진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납득하지 못할 수준이 아니었기에 수용할 수 있었다.


2. 계약을 앞둔 시공사는 당연히 적극적일 수밖에 없지만,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매우 적극적으로 우리의 의견을 수용해주셨다. 놀랍게도 아내에게 처음 패시브하우스를 소개해 주었을 때 가장 강력한 반대 중 하나가 "예쁘지 않다"였다. 지금도 여전히 시장에서 선택받는 집은 성능 좋은 집이 아닌 디자인 적으로 예쁜 집 일지도 모른다. 지금에 와서야 모든 것은 예산에 달려있다는 상황을 잘 알지만 지금도 여전히 감각적이고 젊은 느낌의 패시브하우스를 짓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공사 대표님도 이런 시장의 씁쓸한 현실에 고민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고 결론적으로 시공사 입장에서는 다소 귀찮을 수 있는 내부 마감에 대한 디테일도 적극적으로 논의할 수 있었다. 직구로 구매한 다양한 지급자재를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3. 국내 패시브하우스 역사의 한편에 이 업체가 있었다. 약 10년 전 국내 최초로 3L 목구조 패시브하우스 인증 주택을 시공하셨다고 한다. 국내 패시브하우스의 역사가 사실상 한국패시브건축협회의 역사라고들 하는데 협회 초창기 때부터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해오셨다는 점도 신뢰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4.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느껴졌다.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나도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다 보니 호흡이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께서 출간하신 책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간 시공하셨던 건물의 뒷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끊임없이 도전하셨던 내용이 매우 흥미로웠다.


두 번째 미팅은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우리 동네의 한 카페에서 만나 진짜 오랫동안 견적서를 살펴보았다. 밤늦은 시간까지의 협의 끝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계약금을 바로 송금해드렸다. 드디어 그간 준비했던 모든걸 실체화할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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