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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Oct 18. 2023

늙어 보인다는 소리_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예쁘게 바라봐주기, 내가. 

여전히 색조 화장품을 찍어 바르는 건 흥미가 없다. 예뻐 보이는 것보다 편안한 것을 더 추구하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번 추석 연휴 때 오랜만에 친정에 갔는데 얼굴이 너무 푸석해 보인다, 아파 보인다, 늙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5살 많은 올케언니보다 내가 더 늙어 보인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관리를 안 했나?'에서 '내가 너무 신경을 안 썼나?'로, '내가 그동안 나에게 너무 관심이 없었나?'로 생각이 끝도 없이 뻗어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마냥 다급해지고 마음이 우울해졌다. 늘 보던 내 얼굴을 새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양볼에 기미가 엄청 많아졌다. 서른 중반을 넘어가면서 눈에 띄게 흰머리가 늘었다. 명확히 이건 새치가 아닌 흰머리다. 화장은 하지 않지만 선크림을 챙겨 바르고 염색을 매달 하는 것만으로 관리가 부족했던 걸까.

허둥지둥 나를 가꾸기 위한 것들을 사기 시작했다. 평소에 쓰던 것보다 비싼 크림도 사고, 피부 잡티를 감추기 위한 컨실러도 샀다. 새치커버용 어두운 색상이 아닌 밝은 색상의 멋내기용 염색약도 샀다. 기미 레이저 치료도 검색해 보았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덜 늙어 보이고 덜 늙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몰두하다가 문득 이런 모습이 나답지 않게 느껴지면서 피로감이 몰려왔다.   


점은 가능하면 감추면 좋겠지만 인위적인 화장으로 감추기보다 결점도 드러내되 내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너무나 이상적인 내 소망이었을까. 외모를 가꾸는데 게으른 자의 변명이었을까.


내가 원하는 건 그저 그냥 나는 나답게, 있는 그대로 내게 어울리게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었다. 늙어가니까 늙어 보이는 건 당연한 건데 나는 왜 늙어 보인다는 말에 속상함부터 느꼈던 걸까. 오랜만에 만난 내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솔직한 걱정의 말들이어서 그들의 생각이 아닌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던 건 아닐까. 혹은 어쩌면 내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 말에 더 크게 흔들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꽤 어려서부터 펌을 해왔다. 곱슬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으나 어떤 모양의 곱슬머리인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또래보다 꽤 일찍부터 흰머리가 많이 나서 염색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1년에 한 번 펌도 같이 하니 내 머리카락이 너무 상한 게 느껴져서 펌은 중단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20대 때의 나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펌을 하지 않은지 어느덧 3년이나 되었다. 곱슬머리라서 머리를 감고 나면 부스스하고 자기 멋대로 구불구불해져서 예전 같았으면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이제는 매번 다른 내 머리카락이 재미있고 매력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으론 펌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가꾸지 않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신경이 쓰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더 좋아하게 되고 편안하게 바라보게 된 것도 있다. 내 개성이자 매력으로 가꾸어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내 안의 변화가 나이 듦이 주는 여유라고 생각했다.


한동안은 나에게 맞는 스타일의 옷을 이것저것 사 입어 보는 데에 많은 돈을 썼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그렇게 고심 끝에 산 내 맘에 드는 옷 안에 감춰진 내 몸은 너무 약하다는 것. 애써 예쁜 옷으로 감춰보아도 나만은 아는 감추어진 내 몸. 늘 느끼는 피로와 통증, 조금만 무리해도 몸 이곳저곳의 염증이란 염증은 다 달고 사는 면역력 최악의 부실한 체력, 일자등에 구부정한 자세, 힘없는 걸음걸이, 잡티 많은 피부 등.


이제는 20대의 통통 튀고 생기발랄한 젊음을 부러워 하기보단 건강하게 나이 든 다부진 아름다운 모습을 선망한다. 마흔이 되기 전에 나는 내가 선망하는 모습의 그런 내가 되기 위해 내 삶에 루틴을 만들어 나 스스로를 더 내실 있게 가꾸어 나가고 싶다.


지금의 내 모습은 지금까지의 내가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생활 습관이 만들어지고 그 생활 습관으로 인해 서서히 만들어진 내 모습이다. 그렇기에 변화 역시 쉽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안다. 그러나 가랑비에 옷 젖듯이 매 순간 다짐하고 스스로를 다잡으면서 노력하다 보면, 서서히 아주 천천히라도 조금씩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하루하루 자라나는 내 아이를 바라보듯, 매일 물을 주며 보살피는 식물들을 바라보듯, 내 몸도 그렇게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가꾸고 싶다.


어릴 적엔 꼭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진로를 고민하고 늘 미래를 불안해했다.

그런데 요즘은 꼭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직업에 있어 더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과 일을 하는 데 있어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냥 직업은 직업일 뿐이지 직업이 나 자신은 아니지 않냐고 되묻게 된다. 그냥 내 나이에 맞는 나여도 충분히 괜찮지 않냐고 내게 반문해 본다. 다른 사람들이 더 꾸미지 않는 내 모습에 뭐라고 하든 그저 빙긋 웃으며 "그런가요?"라고 답할 수 있는, 건강한 몸과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나를 볼 것이다. 나는 나의 기준으로 나를 어여쁘게 바라봐 주고 싶다. 나는 역시 예뻐 보이는 것보다 내가 편안한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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