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신 Oct 08. 2023

달라지고 있다지만 여전한, 명절_

그러나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한 나의 마음가짐은,

괜히 남편이 미워지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는 시기가 왔다. 결혼 10년 차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너그러워지지가 않는 명절. 2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바쁜 첫 달을 보내고 9월의 끄트머리에 맞이한 추석이었다. 5일 동안 해야 할 일을 3일 만에 하느라 평소보다 더 진이 빠졌다.  


추석 연휴의 시작을 알리는 첫날 나는 내가 가진 역할들 중 하나인 며느리라는 역할의 옷으로 갈아입고 이제는 꽤 담담하게 차례상 음식을 준비하러 시댁에 갔다. 아들만 둘 있는 집에 나는 맏며느리였고 시동생은 미혼이라 시댁에 여자는 어머님과 나 둘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님이 음식 준비를 함께 해주셔서 며느리는 나 혼자지만 음식 준비는 3명이서 같이 한다는 점이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명절 음식 준비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 집이 큰집이 아니었기도 했고, 명절 때면 큰집에 모여 엄마들이 음식을 다 했던 터라 사촌들이나 내게 음식을 하라고 시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큰집이 가까이 있었기에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명절 때면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먹고 놀았다. 결혼하기 전까지 명절은 내게 짧은 방학 같은 휴식 시간이었다. 그러나 결혼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결혼 10년 차가 되었으나 여전히 음식을 잘 하진 못한다. 산적은 다 굽고 나면 속은 덜 익어 다시 구워야 했고, 동태 전은 요령이 없어서 계란옷이 자꾸만 훌러덩 벗겨졌다. 다른 집 명절 음식 사진을 보면 노란 계란 옷을 입은 고운 자태를 뽐내는데, 내가 한 전(煎) 요리는 언제나 갈색 빛이 돌았다. 평소에 튀김이나 전은 먹고 싶으면 사 먹고 말지 직접 해 먹는 일이 많지 않다 보니 명절 때 매번 하더라도 솜씨가 잘 늘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경험이 쌓여가면서 요령도 터득해 가고 있어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이제 내가 제법 어른이 된 것 같다. 잘 못하고 하기 싫지만 피하기보다 묵묵히 견디고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 내가 진짜 어른이 된 것 같달까.


남편과 아이는 만두와 동그랑땡을 좋아한다. 특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좋아해서 나를 더 일하게 만드는 것 같아 처음엔 못마땅한 마음이었다. 남편은 자신과 아이가 같이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설에는 같이 만두를 빚고, 추석에는 같이 동그랑땡을 만든다. 내게는 일이지만 아이에게는 재미있는 놀이였다. 아이가 재미있어하는 걸 보면 명절 음식을 만드느라 작아지고 고단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드는 것 같았다.  


음식을 만드는 건 같이 한다고 치더라도 뒷정리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다. 보통 뒷정리는 대부분 어머님과 내가 한다. 어머님은 음식을 통에 담고 정리하고, 나는 서서 설거지를 하면 되는데 이때는 모든 생각이 멈추는 경험을 하게 된다. 평소 이 생각 저 생각이 많은 나는 설거지를 할 때만큼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얼른 설거지를 끝내고 나서 쉬고 싶은 마음뿐. 이번 추석에는 어머님 눈치를 잠시 살피다가 큰 소리로 남편을 불러 도와달라고 했다. 남편이 와서 내가 부탁한 일을 재빨리 해주고 아이가 있는 거실로 돌아갔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기의 물기를 닦는데, 또 당연한 듯 어머님과 내가 일하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별로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다른 가족들이 돕는다면 더 빨리 끝날 일이었다. 나는 내 아이를 불렀다. 그리고 같이 물기를 닦자고 했다. 아이가 하기 싫어하자 어머님이 아이에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고 아이는 손에 쥐던 수건을 놓고 다시 소파로 돌아갔다. 나는 순간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아이에게 다시 와서 도우라고 말했고, 아이 옆에 있던 남편이 아이와 같이 와서 제기의 물기를 같이 닦았다. 금방 일이 끝났다. 


나 역시도 결혼하기 전까지 명절 음식을 해본 적도 뒷정리를 해본 적도 없을 정도로 우리 부모님들 역시 내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시댁에 와서 보니 시부모님 역시 마찬가지라 크게 놀랄 것도 없었다. 워낙 먹고사는 게 힘들었던 시대를 사셨던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우리 자식들이 자신들처럼 고생하지 않는 길은 오직 공부해서 출세하는 일뿐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들이 어릴 적에 비해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으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독립하고 나서 보니 나는 살아가며 중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은 전혀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밥 하나 해먹을 줄도 몰랐던 나는 그동안 부모님의 따뜻한 온실 속에 살다가 한순간에 거친 야생으로 던져진 느낌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딸이었던 나는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고 며느리가 되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잘하지 못하는 일들을 나는 해야 했다. 그러나 아들들은 달랐다. 엄마 대신 아내가 생겼고 한 가족의 가장이 되어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야 했으므로 그동안 안 해왔던 집안일은 여전히 안 해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집안일을 하더라도 돕는 입장이지 해야 하는 입장은 아니었다.(돕는 입장과 해야 하는 입장은 엄연히 다르다.) 


이번 명절에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양가 부모님들을 뵈니 그들 역시 많이 연로하셨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본인들이 대접받아도 되는, 몸 여기저기가 안 아픈 곳이 없는 연세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장성한 자식들의 밥상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나는 장성한 아들들은 두고 본인들과 며느리만 일하는 것이 당연한 우리 시댁에 새삼스럽게 불만을 토로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며느리가 일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를 살아오셨다. 한참이나 어린 내가 살아온 시대가 아예 다른 어른들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나는 [며느라기] 드라마 속의 첫째 며느리처럼 당차게 소신 있게 내 생각을 말하고 행동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방식은 그저 어른들이 살아온 방식과 가치관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나와 아이와 가족을 위해 나는 윗세대에 이의를 제기하고 묻고 따지고 바꾸려는 시도보다 이해하는 쪽을 택했다. 체념하고 포기하고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차츰차츰 점진적으로 변화해 나가고 싶다. 앞으로 내 아이가 살아갈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위해.    


내 아이는 나중에 부모가 없더라도 혼자서도 음식을 잘 챙겨 먹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분리수거를 하는 등 학교 공부보다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꼭 가르쳐서 독립시킬 것이다. 아들에게 아빠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므로 나는 앞으로 내 아이를 위해 '그냥 내가 하고 말지'가 아닌 남편과 아이가 같이 할 수 있도록 더 많이 기회를 줄 작정이다. 이번 추석 역시 나는 내 아이를 위해 아주 작게나마 용기를 냈다. 티가 날듯 말 듯 아주 소심하게. 그 소심한 용기가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세대가 바뀌어 내가 우리 집안의 어른이 되는 그때에는 좀 더 많은 것이 달라져 있겠지.    


    

    


    


          

이전 09화 나를 비우고 지켜봐 주는 일_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