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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Sep 03. 2023

나도 나를 잘 몰라서 글을 씁니다.

나의 코어는 무엇,

우연히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코어를 가지고 있다는 글을 보았다. 남들은 아주 어려워하는데 나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것. 그것이 자기만의 코어라고. 코어를 잘 쓰면 적은 힘으로 더 멀리 편안한 자세로 더 오래 나아갈 수 있다고.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발현되는 방식이나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나는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자라오며 만난 사람들은 내게 쉽게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잘 털어놓곤 했다. 가끔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이렇게까지? 싶을 정도였다. 내가 상담사가 되고 난 이후에 만나 우연히 내 직업을 알게 된 사람들은 더 많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고 들어주고 도와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굳이 내 직업을 밝히지 않았다. 나는 자신도 돌보아야 했기에. 일의 연속선이라는 부담을 느끼지 않고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나고 싶었다.


나의 코어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다가 먼저 나의 직업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은 내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기에.


나는 어려서부터 어쩌면 굳이 그땐 몰라도 되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익숙히 들으며 자랐다. 내 오빠처럼 밖에 나가서 노는 것보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예민한 기질을 가진 어린 시절의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엄마를 정서적으로 보살피는 역할을 했다. 내가 결혼 후 독립한 지 1년이 지났을 때는 엄마가 파킨슨병을 진단받았고, 그로 인한 가족들의 불안과 갈등으로 나는 거의 매일 가족들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어느 날은 그날 역시 바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와 막 씻으려는데, 부모님으로부터 온 전화가 울렸고 두 분이 앞다투어 전화를 바꿔가며 자신의 힘든 점을 토로하는 걸 들어주다가 처음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 힘든 증상을 경험했다. 그때 나는 울면서 엄마에게 나도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엄마는 조금 당황하신 듯했고,  네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며 너는 상담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괜찮은 줄 알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나의 증상은 더 잦아졌고, 지금도 여전히 증상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실 내가 힘들다고 말한 이후로도 크게 달라진 없었다. 내가 힘들다는 가족들이 알게 듯했지만, 그러기엔 각자 본인들의 고통이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스스로를 챙기고 보살펴주어야 했다.


증상은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방치해 버린 나의 고통과 괴로움을 알려주는 고마운 신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일을 할 때에도 자주 증상이 나타났고, 나는 내게 거듭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 직업을 계속해서 유지해도 될 지에 대해. 여전히 나는 상담 공부를 하는 것이 재미있고,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나부터 돌보고 보살펴 주어야 했기에, 특히 상담일은 자기 자신을 도구로 쓰는 일이기에 상담사인 내가 건강해야 했으므로 일을 놓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었다.


같은 일을 하는 친구는 내게 안식년을 가져보는 건 어떠겠냐고 했지만, 이대로 놓으면 다시 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중 때마침 상근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많은 고민 끝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일단 지원을 했다.

사실 단지 증상 때문에 일을 계속해도 될지를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아니었다. 상담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일이 내게 주는 의미가 많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8개월짜리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계약기간은 계속 연장할 수 있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내게 남은 6개월 동안 내 마음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려 한다.


생각이 많은 나는 내가 하는 생각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일일이 말할 없어서 글을 썼다. 말에는 내 생각이나 마음을 다 담기에 한계가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 직접 대화를 나누는 보다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위로를 받고 긍정적인 말을 듣는 것이 좋았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사람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는 것보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면 더 마음이 개운해졌다.    


떠올려 보면 어릴 적 나의 많은 꿈 중에는 동화작가도 있었다. 혼자 내 방 책상에 앉아 동화도 쓰고, 감수성 풍부한 사춘기 시절에는 시도 썼다. 다른 친구들은 글을 써서 내야 하는 숙제가 싫다고 했지만, 나는 글을 쓰는 숙제가 싫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세상엔 글을 훌륭하게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글쓰기가 일이 되어 버리면 점점 싫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나는 내가 뭐든 좀 가볍게 시도해 보기를 바란다. 어쨌든 시도를 하면 실패를 하더라도 경험은 남게 되니까. 무겁게 생각하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되니까. 그렇게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글 속에 내 마음을 더 잘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나만의 코어를 잘 쓰는 사람이고 싶다. 코어를 잘 쓰면 적은 힘으로 더 멀리 편안한 자세로 더 오래 나아갈 수 있다고 하니까. 그러기 위해서 나는 우선 코어의 힘부터 길러야겠다. 남은 계약기간 동안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한 글쓰기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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